[이스라엘 민족의 영웅 모세] 제1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 모세] 제1부
히스토리채널
모세는 죽은 지 3천년도 넘은 사람이지만, 그의 특이한 일생은 오늘날까지도 감동적이다. 그를 통해 한 민족이 자기들의 신을 발견하고 이집트의 굴레에서 벗어나 약속받은 땅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 모세를 통하여 오늘날 서양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십계명이 인류에게 소개되었다.
모세는 나약한 어린이에서 강력한 지도자로, 부유한 왕자에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도 했고, 두려워하며 신을 섬겼지만 때로는 신과 다투기도 했다. 그는 백성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들에게 자유를 주려던 해방자였다. 모세는 사람들이 듣건 못듣건 신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였다.
성경에서 모세의 일생은 아주 복잡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 동포로부터 하나님을 지키는 한편,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동포를 지켜야 했다. 수천년 동안 그의 생애는 신성한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모세는 강대국 이집트에서 기원전 1300년쯤 전에 태어났다. 당시 이집트는 엄청난 부와 문화를 가진 문명국가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통과 착취로 가득했으며, 당시 세계화된 국가의 국민들의 여유로운 삶은 착취당하는 노예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당시 이집트 노예들은 이집트 국경 동쪽의 사막지역에서 끌려온 유목 민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미디안과 모압이다.
당시 문명국가인 이집트의 노예는 미디안과 모압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모세 이전의 몇 세기 전에 이집트는 아시아의 부족들이 지배했었다. 그 당시를 일컬어 ‘힉소스 왕조’라고 한다. 힉소스란 ‘외국인 족장’이란 뜻이다. 힉소스는 기원전 1650년경 이집트를 지배했는데, 그들은 당시의 신무기인 전차를 이용했다. 이 힉소스 왕조 시대에 많은 사막의 부족들이 이집트로 들어왔다. 그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부족이다.
이스라엘 부족은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고센 지방에 정착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고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인들이 힉소스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성서 출애굽기에서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등장으로 시작된다(출 1:8). 이스라엘의 사내 아이를 죽이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린 파라오는 기원전 1308년경의 세티 1세로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모세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자식을 낳지 말고 이혼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모세의 어머니는 이럴수록 더 많이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언젠가 기적이 일어나서 마음대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세가 태어난 후에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출 2:5) 그의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는 상황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그의 누이인 미리암이다. 미리암은 이후 모세의 일생에 든든한 후원자와 협력자가 된다.
유대의 전설에 의하면 모세는 미남에다가 영리했다고 한다. 그는 청년기에는 왕족이 받아야 하는 특별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세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의심이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친어머니와 떨어져 살게된 모세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었다. ‘나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지? 또 딴 집으로 가는 건 아닌가?’
자신이 누구인지 회의에 빠졌을 모세의 일생에 일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유대의 전설에는 모세가 동족인 히브리인의 노역에 동참했으며 노예들에게 휴가를 달라고 파라오를 설득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히브리 노예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집트 감독관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은 그가 마음속에 품어왔던 결단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의 살인행위는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이것은 자신을 속박하던 끈을 상징적으로 끊은 것이며, 이집트와 양어머니에 대한 인연을 끊는 행위였다.
그런데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히브리인의 밀고로 인하여 그는 곤경에 처하고 만다. 이것은 모세가 동족에게서 받을 배신의 시작에 불과했다.
모세는 민족의 해방자로 평가받을 모든 근거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모세는 번번이 자기 민족에게 거부당하곤 했다. 자신이 민족의 해방자이면서도 자기가 보호하려는 그 민족에게서 고맙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상황은 모세의 전 생애를 괴롭혔다.
모세는 파라오의 박해를 피해 미디안 광야(오늘날 시나이 사막)로 피신한다. 모세는 사막 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주체성을 발견하고 신에게 좀더 가까워지는 창조적인 기간을 가졌을 것이다. 이 기간 중에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가정을 이룬다. 그의 아내 십보라(새)를 통해서 아들을 낳고 이름을 게르솜(방랑자)이라고 지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생활이지만 속으로는 해묵은 해답없는 의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이 무렵 파라오가 죽고 히브리인들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새로운 통치자인 람세스 2세는 히브리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일을 시켰다. 히브리인들은 절망 속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고, 이들의 아우성을 들으신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새로운 목자를 물색하셨다.
새로운 이집트의 통치자 람세스는 히브리인을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양을 잃은 모세가 양을 물가에서 찾아서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장면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자로 선택하셨다고 한다. 모세에게서 지도자의 능력을 본 것이 아니라 남을 돌볼 줄 아는 마음을 보신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틴다.
하나님과 모세의 대면은 처음부터 삐그덕 거렸다. 모세는 자신은 갈 수 없다고 구실을 댔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이름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실 분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세와 하나님의 씨름 끝에 결국 모세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이집트로 가기로 결정한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마중나온 아론과 함께 파라오에게 간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를 만나 히브리 민족이 사막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사흘의 휴가를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파라오는 완강했고 오히려 더 힘든 일이 히브리인들에게 부과되었다.
이후 10가지 재앙이 이집트에 내렸고(당시의 기상변화가 10가지 재앙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최후로 장자의 죽음을 통해서 이집트는 충격에 휩싸인다. 죽은 부모에게 제사를 드림으로 저승에 간 부모가 복락을 누리게 하는 역할은 맏아들의 역할이었다. 당시에 맏아들은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였다. 이집트인의 맏아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은 이집트인의 신과 미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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