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성궤를 찾아서
신비의 도시 예루살렘은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되는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탄생을 했다. 그리고 구약시대 가장 강력하고 성스러운 유물인 성궤도 이 도시에서 사라졌다.
Act 1 : Out of the Desert
3천년 전 예루살렘으로 운반된 성궤는 세상에 구현된 신의 존재를 보여주며 가장 성스러운 물건으로 숭배되었다. 그러나 어느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사라진 성궤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었다. 성궤는 영화나 소설의 주제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사라진 성궤’는 십자군, 신비주의자, 고고학자, 탐험가 등 세대를 초월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과연 성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성서에 의하면, 성궤는 모세에게 준 십계명의 돌 판이 들어 있는 상자로 길이 130cm, 너비와 깊이는 79cm의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다. 종종 하나님은 눈부신 빛의 모습으로 성궤 위에 나타나 제사장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전하곤 하셨다. 당시 성궤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절대적 증거였다.
성궤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절대적 증거였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성궤는 강물을 막고 산을 무너뜨리며 적을 무찌르기도 하였다. 기원전 11세기 후반, 다윗왕은 모리아산의 마을로 성궤를 옮겼고, 그의 아들 솔로몬(BC 970~931년)은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성궤를 모셨다. 그런데 그 이후 어느 순간에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은 오늘날 수많은 순례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중세 시대에는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고대 유물협회 회원이자 고고학자인 기드온 아브니(Gideon Avni)는 예루살렘 유적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열왕기상에 의하면 기원전 966년부터 성전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955년경 성궤는 성전이 완성되면서 지성소에 모셔졌다고 한다. 이 솔로몬의 신전은 헤롯왕 때에 이르러 더욱 웅장하게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이후 초기 이슬람 시대에 신전이 새롭게 확장되었고, 헤롯왕 시대의 신전의 유적이나 유물의 흔적을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기드온 아브니(Gideon Avni)
성경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속죄의 날에 성궤를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오늘날 속죄의 날에는 성전산 곳곳에서 이슬람교의 기도가 들려온다. 1300년간 지속된 이슬람의 지배하에서 원래 신전이 있었던 자리에 이슬람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사원 한가운데에는 마호메트가 천국으로 승천한 자리라고 믿는 세티아라는 돌이 있다. 이곳은 이슬람인들에게 메카와 메디나 다음으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이슬람 사원
과거 수백년동안 유대인들이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곳은 두 번째 신전 시기에 세워졌던 통곡의 벽 뿐이었다. 이곳은 현재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통곡의 벽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종교들은 모두 유일신을 숭배한다. 그리고 그 신의 개념은 바로 성궤를 통해 구현되었다. 성궤는 구약시대 초기에 모든 것을 지배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어떤 위기의 상황에 적들이 성궤를 약탈했거나, 신전의 제사장들이 비밀 장소로 안전하게 옮김으로써 사라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나의 주장은, 기원전 10세기 후반 애굽의 파라오인 시삭이 가져갔다는 주장이다. 이 시삭이 가져갔다는 학설은 영화 [레이더스]의 바탕이 되었다. 영화에서 성궤는 애굽의 타니스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시삭의 군대는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다른 하나의 주장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성궤를 가져가거나 파괴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대의 정복자가 어떤 목적으로 약탈했는가에 따라 성궤의 운명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아론 메이어에 의하면 고대의 정복자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신전을 뒤지는 일이었다고 한다. 신전을 더럽히고 그 신을 모독함으로써 그 도시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보물들이 신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결단력있는 제사장이 성궤를 숨기지 않았다면 바빌론인들이 성궤를 가져가서 전리품으로 보관했거나, 혹은 녹여서 황금으로 된 다른 물건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바빌론에게 빼앗겼던 신전 보물의 목록이 남아 있는데, 그 속에는 성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흥미롭다. 기원전 538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은 두 번째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신전에 성궤가 모셔졌다는 기록은 없다. 그리고 그 이후 더 이상 성궤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은 누군가 성궤를 빼돌렸다고 생각했다.
Act 2. The Temple Mount
십자군 전쟁 시대, 서기 1119년 템플기사단이라고 자신들을 지칭하는 9명의 프랑스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들은 모리아산 꼭대기에 자신들의 본부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도적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성전산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대신 여기저기를 파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현재 성전산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밑에 있는 지하 동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슬람 전설에서 영혼들의 우물이라고 불리우는 이 동굴은 지하 세계로 가는 통로이며 수많은 악마들이 나타나는 통로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속에 진기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기사단은 성궤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1126년 템플기사단은 성궤를 찾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최근 학자들은 12세기에 템플기사단이 팠던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 이슬람 관계자들의 반대로 조사하지 못했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영국인 파커가 예루살렘에서 탐사 활동을 벌였다. 이 탐사는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가장 멍청한 활동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다윗 시대의 하수시설을 발견했다. 그 이후 영국 후원자들의 기대에 압박을 받은 파커는 돈으로 예루살렘 총독을 매수하여 이슬람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사원의 밑을 몰래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이슬람 신도에게 발각되어 항구도시 자파로 탈출한다. 이후로 서구 고고학자들의 탐사활동이 금지되는 사태로 발전되었다. 후원자들의 아우성을 달래기 위해 파커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생명이 위험하다는 친구들의 만류로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 갔다.
Act 3. Journey To The South
1989년, 영국의 글래엄 핸콕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전세계를 뒤 흔드는 발언을 했다. 그에 따르면 성궤는 에디오피아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에디오피아의 전설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시바의 여왕이 에디오피아의 여왕으로 등장한다. 에디오피아의 전설에 의하면 솔로몬과 시바의 사이에서 태어난 메넬릭이라는 아이가 예루살렘에 방문했다가 성궤를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설을 들은 핸콕은 성궤가 에디오피아에 있는 것을 확신하지만 그 과정과 경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궤가 사라진 때가 언제인지 성서를 면밀히 조사했다. 그 결과 기원전 701년에도 예루살렘 성전에 성궤가 존재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626년에는 성궤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그 사이에 성궤가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의 기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기간에 므낫세라는 왕이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그는 우상숭배를 자행하면서 지성소에 우상을 가져다 놓았다. 성궤가 우상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제사장들이 성궤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흥미롭게도 애굽의 엘레판타인 섬에 기원전 650년경, 유대교 신전이 건설되었다. 핸콕은 이것이 성궤를 모시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엘레판타인 섬의 성궤는 에디오피아의 고지대인 타라호스라는 지역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은 유대인들이라고 하며, 그곳 사람들은 조상들이 성궤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로부터 8백년이 지난 후에 기독교의 왕이 성궤를 교회로 옮겨놓은 것이다.
Act 4. Sanctuary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오늘날 엑섬이라는 작은 교회에 성궤가 있다고 믿는다. 성궤는 한 사람의 선택된 수사가 지키고 있다. 성궤를 다루는 사람은 죄가 없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성궤는 또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궤를 지키는 수사의 표현을 따르면 성궤는 두려움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핸콕은 그 수사의 말에서 진실한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성궤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에디오피아의 협조를 얻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에브라임 이삭이라는 학자는 핸콕의 주장이 흥미로은 것은 사실이지만 엘레판타인 섬으로 옮겨졌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성궤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믿음과, 그 성궤가 자신들의 나라에 있다고 믿는 에디오피아인의 믿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저 전설을 존중하며 즐길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학자인 실버만(Neil Asher Silberman)은 성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는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고대의 유물과 고고학적인 장소를 찾는 것은, 솔직히 신앙심이 강하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이 정말로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과 장소들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굳이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보기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찾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구약 시대의 성궤는 하나님의 존재와 힘을 나타내는 상징적, 실제적 도구 이상의 성스러운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까지 성경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은 모양과 규격의 상자를 찾으려고 전세계를 뒤지는 것은 사실상 종교적인 목적 때문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죠. 만약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투철하고 성경 말씀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굳이 성궤를 찾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한마디로 종교적인 믿음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되죠.”
앞으로는 성전산에서 발굴 작업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루살렘은 도시 전체가 고대의 유물로 덮여있다. 이 도시 어딘가 우연히 성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나 증거를 찾을 수 잇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왜 성궤를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성궤가 여전히 신비하고 환상적인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사라진 성궤에 대한 이야기와 전설은, 성궤와 상징적 의미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성궤가 오늘날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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