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른다고 과학성 없다는 뜻은 아니다. | |||||||||||||||||||||||||||||||||||||||||||||||||||||||||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세계의 유명 문화재를 보고 온 사람들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들이 외국의 유산에 비해 상당히 과장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실토한다. 우선 우리나라 유산들의 규모에 대해 불평을 한다. 외국의 유물들과 비교하여 너무나 왜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천 년 전에 지어진 건물도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4500년 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2000년이 넘었고 로마의 고대 유적 모두가 한국에서 삼국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이르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산들의 질과 양을 외국 것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자랑했던 것이 창피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빠짐없이 우리 조상들을 욕한다. 그 동안 변변히 세계를 향해 큰소리 쳐보지도 못한 것은 물론 항상 강대국에 침략 당했으며 일제 시대에는 합병이라는 수모도 당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과 중국이 우리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까지 하겠느냐고 한탄한다.
더구나 우리의 유산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세계에 자랑할만한 유산이 정말로 있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석굴암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조차 심사위원을 매수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있을 정도이다. 한국민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평은 우리의 선조들은 한마디로 과학적인 사고력이 없이 살았다고 비하하며 우리 선조들이 미래에 대한 식견이나 과학적 사고 없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고 단정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한 마디로 과학적인 사고력이 없이 살았다고 매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산에서 과학성이란 무엇을 뜻하는 가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학이라고 거론 할 수 있는 분야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첫째는 수학과 이과적인 실험을 거친 순수 이공계 분야를 의미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공계의 범위가 넓어져 과연 이것도 이과분야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영역이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학을 기초로 한다. 둘째는 어느 분야이든 적용되는 규범과 틀이 과학적인 체계에서 움직이는 경우이다. 사회과학, 인문과학은 물론 정치과학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 분야에서 과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를 수학과 실험을 통해서 규명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도 과학적인 규범과 틀에서 파악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셋째는 인간에 관련된 분야로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달리 희노애락을 느낀다. 인간이 갖고 있는 특권 중에 특권이다. 이 특권을 보다 값지게 만들거나 문제점을 해결해 주는 것 자체를 과학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익한 도구를 만드는 것 즉 보다 편리하게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한 과정을 과학으로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과 직결되는 문제점 해결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원래 갖고 있는 생명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게 만드는 요인은 개인적인 질병이나 돌발사고를 비롯하여 고민과 불안 등 헤아릴 수가 없다. 나름대로 치료 방법이 제시되지만 의사들이 제시하는 치료방법은 대체로 유사하다. 환자가 병이 완쾌된다는 믿음을 갖고 병에 적합한 수술 또는 약을 투여 받으라고 한다. 환자가 질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더 든든한 후원자를 갖게 된다고 의사들이 단언해서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낙담한 사람들의 병세는 갑자기 나빠지는 반면 병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환자의 병세가 극적으로 좋아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종종 암에 걸린 사람이 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할 경우 암이 보다 빨리 진전되고 자신은 암을 꼭 이길 수 있다고 각오를 단단히 할 경우 기적과 같이 완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열정에 의한 믿음만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믿으면 이뤄지는 현상)’가 있다.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는 인간들의 믿음이 놀라운 효과를 얻게 하는 ‘플라시보 효과(가짜 약을 투여해 심리효과 등에 의해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가 있다. 우울증의 치료에는 ‘가짜약’이 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의 유산 중에는 과학적인 실험과 연구에 의해 과학성이 증빙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정신적인 문화유산인 경우 실험으로 과학성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을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분야로 분류할 경우 풍수지리나 제사, 사주팔자나 부작, 일부 종교인들과 학자들이 미신으로 여기기도 하는 장승이나 솟대 등도 과학으로 다룰 수 있다.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도깨비도 포함된다. 이들을 과학성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인간의 믿음과 관계되는 심리치료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의 많은 유산들이 과학적인 측면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적 시각으로 유산의 재해석〉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것이 과학성도 없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제일 먼저 우리의 유산 중에서 제작 방법이라든가 작동 방법 등 과학적인 설명을 구체적으로 적은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술적인 내용일지라도 한자로 적은데다가 그림도 많지 않으므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것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수많은 자료들이 그동안의 전란이나 관리 소홀로 거의 파손되거나 멸실되었다는 사실이다. 기록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선조들이지만 전란이라는 악재 앞에 귀중한 자료라 하여 일일이 챙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다룰 수 있는 유산은 현재 우리들이 볼 수 있는 한정된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 번 째는 위정자들이 필요에 의해 고의적으로 자료를 파괴하거나 훼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 정부를 세운 조선 왕조는 이성계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또한 36년 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직적으로 왜곡시킨 것은 물론 중요한 유산들을 파괴하거나 훼손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들이 우리의 문헌이나 자료에 남아 있어 당초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논란이 이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네 번 째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뿌리깊게 내려오고 있는 조상과 스승에 대한 숭배사상이다. 과학은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학문인데 스승의 이론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는 것이 순리요 도리라고 보았다. 철저한 조상 숭배 관념과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과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유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것은 아무래도 경제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릿고개란 말이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은 먹기 살기도 바쁜 터에 우리 것에 대한 과학성을 규명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파르테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모세상'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품들은 물론 소소한 과학적 기구들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유는 유산 자체가 우수한 이유도 있지만 과거부터 수많은 연구가들에 의해 장단점이 분석된 자료가 워낙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것에 대한 기술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외국 것에 대한 정보가 가감 없이 곧바로 유입되었으므로 외국 것이 우리 것보다 더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유산이 외국 것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보 부족이 과학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유산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적은 상태에서 우리의 유산이 과학성이 없다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느 유산이 과학성이 있는가를 찾는 것이 보다 시급한 일이다. 유산은 미래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어야 할 것’을 예견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우리 것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산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면 또 다시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2003/12/15 이종호(과학저술가)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세계를 속인 거짓말>,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로마제국의 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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