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학에서 발견되는 과학성 | ||||||||||||||||||||||||||||||
'옹고집전'서 복제인간 개념 사용 | ||||||||||||||||||||||||||||||
우리나라에 자랑스러운 유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이 과학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보부족을 들지만 보다 더 신랄한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신화나 전설 또는 문학작품에 과학성이 깃든 내용 즉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이나 과학적 관찰력을 엿보이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선조들에게 과학성이라는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과학성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과거를 잘 잊는다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가스불 위의 냄비와 같이 금방 달아오르다가도 불이 꺼지면 금방 식는다며 과거를 생각지 않는 선조들을 매도한다. 우리나라 소설이나 민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말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필 리가 없으므로 매우 오래되었다는 뜻으로도 이해되지만 이 말은 우리가 과거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는 증거로도 활용된다. 학자들은 호랑이의 원류를 약 6000만 년 전에 살았던 마이어시스로 보므로 호랑이가 매우 오래 전부터 한반도를 포함한 지구상에서 살아왔으므로 호랑이부터 거론한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문제는 담배이다. 담배는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서유럽에 도입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므로 아무리 도입년대를 올려잡더라도 16세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사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더라도 500년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에게 500년이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이라면 그보다 오래 전에 일어났던 과거를 생각하지 않았거나 무시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선조들이 과거를 생각하지 않은 비문화적인 생활을 계속해왔으므로 과학이라는 말을 접목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과학이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는 것이므로 500년 이상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우리나라 선조들이 창작한 문학작품들에 과학성이 없었다는 것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미래에 대한 식견이나 과학적 사고 없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흥부와 놀부 형제의 우애를 적은 『흥부전』을 보자. 흥부의 집에 둥지를 튼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에 의해 제비 새끼가 다리를 다치자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준다. 흥부에 의해 치료가 된 제비는 강남으로 가서 다음해에 박씨를 물고 오고 흥부는 졸지에 부자가 된다. 이 소식을 듣고 샘이 난 놀부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리면서 자신에게도 박씨를 갖고 올 것을 기대한다. 결론은 놀부가 파산하고 벌을 받는다는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한국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부전』의 작가는 매우 놀라운 과학적 지식을 갖고 소설의 플로트를 구성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렸는데도 다음 해에 자기 집에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비가 다음해에도 똑같은 장소로 되돌아온다는 귀소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제비는 인간과 매우 친하여 자신이 태어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장면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것은 정확한 관찰력의 소산이다. 춘삼월에 찾아오는 제비들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나서 반드시 조개껍질 두세 쪽을 물어다가 집에 놓아둔다. 이는 어린 새끼들을 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옛날 사람들이 업구렁이라 하여 보호하던 능구렁이는 우리가 전봇대에 손톱을 긁을 때 몸서리치는 것처럼 조개 껍질과는 상극이다. 이를 잘 아는 제비가 먼바다로 가서 조개껍질을 물어오는데 바로 그러한 상황을 관찰한 작가가 하얀색의 조개껍질 대신에 하얀 박씨를 물고 온다고 변환시킨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거의 모든 초가집 지붕에 박을 심었으므로 박씨에 의해 열리는 커다란 박을 행복과 불행을 가져오는 소도구로 삼았다는데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렁이가 제비집을 자주 습격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흥부의 제비집도 구렁이가 습격했고 일전에 TV에서도 제비집에 동아리를 튼 뱀이 방영되기도 했다. 여하튼 제비로서는 조개껍질이 구렁이에 대항하는 최선의 방안이므로 지금도 조개껍질을 갖고 오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쥬라기공원〉에서 공룡 복제를 내놓아 일반인들로 하여금 동물 복제에 관심을 갖게 한 이래 복제 관련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양이나 원숭이, 소나 돼지 등의 복제는 이제 상식이 되었고 인간이 복제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기술이 총 결집되었다는 인간복제도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예견하고 작품에 사용하였다. 『옹고집전』이 바로 그것이다. 황해도 옹진골 옹당촌이라는 묘한 곳에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격이 고약해서 매사에 고집을 부리는 것은 물론 인색하여 팔십 노모가 냉방에 병들어 있어도 돌보지 않았다. 학대사가 어린 중과 옹고집의 집에 시주를 구하러 왔다가 매를 맞는 등 수모를 당하자 원출봉 비치암의 도사는 옹고집을 징벌하기로 한다. 그가 허수아비를 만들어 부적을 붙이니 옹고집이 하나 더 생겼다.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의 집에 가서 둘이 서로 진짜라고 다툰다. 옹고집의 아내와 자식이 나섰으나 누가 진짜 옹고집인지를 판별하지 못해 관가에 고소를 하지만 가짜 옹고집이 승리한다.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맞고 쫓겨나 거지가 되며 가짜 옹고집은 집으로 들어가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살며 아내는 아들을 몇 명이나 낳기까지 한다. 거지가 된 옹고집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드디어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친 후 산 속으로 들어가 자살을 하려고 한다. 이때 도사가 나타나 부적을 주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집에 돌아가서 그 부적을 던지니 그동안 집을 차지하고 있던 가짜 옹고집은 허수아비로 변하고 아내가 가짜 옹고집과 관계해서 낳은 자식들도 모두 허수아비였다. 그 후 옹고집은 새 사람이 되어 착한 일을 하는데 여기서 옹고집이 두 사람이 있다고 설정한 것 자체는 복제인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도깨비감투』도 있다. 머리에 쓰면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마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몸에 등거리를 걸치거나 풀잎을 지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내용도 자못 해학적이다. “옛날에 갓을 만들어 근근이 살아가는 영감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열심히 갓을 만들어 팔았지만 늘 생활이 쪼들리므로 갓 만드는 짓을 언제 면할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평소와 같이 한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늙도록 갓만 만드니 화가 날만하다고 웃는 것이었다. 소리나는 곳을 보니 시커먼 그림자가 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까만 도깨비였다. 놀랍게도 도깨비는 영감의 소리를 듣고 도우러 왔다며 회색 감투를 그에게 주었다. 감투를 쓰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영감을 볼 수 없으니 영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밤부터 영감은 감투를 쓰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지고 나왔다. 도둑 때문에 마을이 온통 소동이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영감이 감투를 벗어 놓고 담배를 피우다가 실수로 담뱃불에 감투 한 쪽을 태워 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내에게 감투를 기워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마침 붉은 헝겊 밖에 없어 그것으로 감투를 기웠다. 그는 빨간 헝겊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감투를 계속 쓰고 남의 집 물건을 훔쳐다. 마침내 도둑을 맞은 사람들은 빨간 헝겊조각이 왔다 갔다 하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소금 장수 집에 들어가서 지게에 얹어 놓은 소금을 지고 나오는데 주인이 몽둥이로 후려치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집으로 도망쳐 왔다. 아내는 영감을 자리에 뉘면서 공연히 딴 생각말고 부지런히 갓이나 만들어 팔자면서 도깨비감투를 불살라 버렸다.” 이와 같은 마술적 물건을 얻게 된 방법은 여럿이다. 도깨비에게서 직접 얻는 방법도 있고 도깨비가 장난하다가 버려 둔 것을 갖고 온 경우,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곤충이 떨어트린 풀잎을 줍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둑질의 형태도 시장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 외에 남의 집 제사음식을 훔쳐먹는 경우도 있고 형제간의 선악대립을 담은 시나리오도 있다. 이 유형은 서양의 ‘요술 모자’와 같은 내용이며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도깨비감투』는 서양의 투명인간과 같이 인간의 육신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었음에도 남을 해치거나 감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정권을 잡으려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잔치 집이나 제사 집 음식을 훔쳐먹는 정도이고 관가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거나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투명인간이야기는 특히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긍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는 과정에 부당한 일을 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권선징악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감각에 맞춘답시고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을 탈취하는 등의 일을 꾸미게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한민족이 도깨비를 창안했다는 점이다. 중국에도 도깨비와 유사한 것이 있지만 망량이나 이매 또는 독각자(禿脚子)) 이들은 사람을 흘리는 정체불명의 요괴다. 일본에도 오니나 천구(天狗) 등은 신이나 귀신,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말한다. 반면에 우리 나라의 도깨비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자적 노선을 걸어 온 창작품으로 유럽의 요정과 같은 존재이다. 도깨비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도깨비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도깨비 팀’이나 ‘도깨비 방망이’라는 말이다. 시즌 중에 갑자기 바닥에서 연승을 하거나 연패를 당할 대 도깨비라는 별칭을 붙여준다. 이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성적이 종잡을 수 없는 팀이거나 타율의 기폭이 심한 경우를 의미한다. 도깨비 방망이란 말에는 매우 짙은 해학이 담겨있다. 그 누구도 방망이 속에 도깨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들은 도깨비를 설화나 소설에 등장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문학작품은 비교적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내용을 주제로 삼지 않았으며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가 과학기술면에서 뒤떨어진 요인이었다고 줄기차게 비판을 받아왔지만 『흥부전』, 『옹고집전』, 『도깨비감투』, 『도화녀와 비형랑』등등을 보면 우리 조상들도 많은 작품 안에서 공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상상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2003/12/22 이종호(과학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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