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옥에 흙이 묻어 길가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다 흙만 여기도다.
두어라! 흙이라 한들 흙일 수가 있으랴.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 본 바 있는 시조인데- 작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 한데, 이 시에서 유학, 또는 선비…….뭐 이런 이미지가 연상 되는가?
누군가 만약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내 대답은 단연“노”이다. 이 시와 유학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단연코, 한마디로 잘라 말 할 수 있음이다
한가지, 옥의 본질에 변화가 없음에 따르는 연관성으로 불변의 진리 즉, 성선(性善)의 의미를 옥에 비유 한다면 그 말은 수긍 할만 하다. 허나, 옥 자체를 제외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유학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흙 묻은 옥을 닦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둔 다거나, 세상에 구지 드러나지 않음과 숨어 있어도 자족한다는 의미는 곧, 무(無)그리고 은(隱)을 의미함인데, 이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유학이 궁극하는 바가 전혀 아니다.
유학은 오히려 이 옥이 그냥 버려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 가 나날이 갈고 닦아 더욱 빛을 냄은 물론이려니와 그 구슬을 꿰어 더한 부가가치로 확대 재생산하여 이 세상에서 빛나는 보석으로 내놓기를 원한다. 하여,
이 빛나는 보석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학의 궁극인 군자지도(君子之道)라 할 수 있다.
군자의 도-유학의 최종목표인 군자를 향해 정진하는 과정으로 수기와 치인의 도를 말함인데- 이를 유가의 철학입문서인 대학(大學)에서는 이렇게 3강령으로 설명한다.
“대학의 도는 명명덕(明明德)하고, 신민(新(親)民)하고,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있다”
다시 말해 천지의 모든 밝은 덕을 밝혀서 모든 인민을 나와 같이 하여 새롭게 하고, 하늘이 내린 지극한 선(善)에 모두 더불어 이름이니, 이를 위한 모든 시작과 과정과 결과를 모두 중히 여기는 것이 곧, 유가의 기본 철학이다.
아무리 좋은 구슬이라도 꿰어야 그 가치를 더욱 발하는 보배로 거듭나듯 군자지도 역시 예외일 수 가 없다.
하늘의 성(性), 즉 본성인 四德(仁:惻隱之心. 義:羞惡之心. 禮:辭讓之心. 知:是非之心)이 구슬이라면 이를 보배로 만드는 개념은 바로 신(信)이다.
인. 의. 예. 지. 신의 오행(五行)이라야 그 사덕(四德)의 상통함이니, 그로 인해 사대문(동.서.남.북대문)의 중앙에 보신각(普信閣)이 있음이요, 목(木),화(火),금(金),수(水)의 중앙에 토(土)가있음이다.하여,이 오행(五行)의 무궁무진한 구슬꿰기 변화중에 율여(律呂)에는 궁.상.각.치.우가 있음이고, 한글에는 자음의 원리인 아(牙).설(舌)순(脣).치(齒).후(喉)가 있음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기본이 되는 하늘. 땅 그리고 인간! 삼재(三才)! -이 삼재 ( . ,ㅡ ,ㅣ) 가 한글 모음의 기본이다-
이 삼재인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 이치이고-정음(正音)의 모음 10자도 삼재의 구슬꿰기의 결과물이다- 삼재(三才)인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임금 王 이다. - 이 왕(王)자를 해자하면 삼재(하늘. 땅. 인간)를 하나로 잇는 모양을 형상한다 ―. 하니,
이 王이 왕다워야 보석이 보석다워진다는 사실을 강조한 사상이 바로 유학의 기본청치철학임은 공자님의 그 유명한 말씀인 “왕은 왕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함이라”(君君臣臣父父子子).하였고,
맹자는 이런 도리의 실천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역설함에 평생을 바쳤고 ,
퇴계선생께서도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지어 선조에게 바친 연유 또한, 이 왕도정치 즉 군자지도를 현실정치에 직접 구현하기 위함이었음 입니다.
하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우리 역사상 가장 구슬을 잘 꿴 위대한 왕은 또는 대통령은 누구일까? 이론이 분분 할 테지만, 나는 단연코 이분이다.
"세종대왕!"
하면, 세종대왕은 누구인가? 그는 과연 어떤 철학을 가진 어떤 인물일까?
이 질문의 답변으로 바로 나올 수 있는 말이 “그는 유학에 즉 유가철학에 그 누구 못지않게 정통한 대 학자이고 그 실천가이었음과 동시에 이를 정치에 접목시킨 위대한 구슬 꿰기 예술가였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이 유가철학을 국가이념으로 하여 탄생한 국가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니 두 말할 이유가 없고, 세종 또한 그 시대에 유학을 어려서부터 몸소 배우고 익힌 철저한 유학자이었음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왕께서 창제한 한글,정음(正音) 역시 유학을 근간으로 하여 역(易)의 원리로 만들어 졌고, 정음(正音)창제 이념에 분명히 밝힌 여민동락(與民同樂)사상은 - ....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배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시러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 내 이를 위하여 어엿비 여겨.... - 맹자의 왕도정치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로 세종대왕께서 유학자임의 확인은 더 이상 재론하기조차 새삼스럽다.
이렇듯 우리역사상 가장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인 동시에 위대한 과학자인 세종대왕은 유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유학이 반드시 수구 보수의 대명사도 아님은 물론이려니와 유학이 과학적 사고의 걸림돌이라는 선입견 역시 허무맹랑한 편견 이였음이 여실히 증명됨을 세종대왕의 예로 보여주었다 생각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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