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좋은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관련 참고자료도 같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학문적 입증
시미즈 기요시 전 교수-박명미 규슈산업대 강사 공동논문
경상도 사투리와 일본어는 발음과 억양이 대단히 비슷하다. 경상도 사투리에는 한국어의 옛 형태가 많이 남아 있다. 옛 한국어와 일본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미즈 기요시(64)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와 박명미(44) 일본 규수산업대 강사(사진)는 그 ‘추측’을 ‘학문’의 지평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두 연구자는 오는 15일 춘천교육대에서 열리는 한말연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어(韓語)사 상대연대학 서설’이라는 공동논문을 발표한다.
3년간 양국 언어 비교연구 어휘 7천개이상 동일 어근 입증
한국어 [m], [b] 등 입술소리 일본어선 [h] 로 변화 현상 분석 ‘상대연대’ 측정 도구 활용 “언어전달 방향은 대륙→한반도→일본” 주장
이 논문은 주요 어휘의 음운 비교를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지를 밝히는 ‘상대연대학’의 이론틀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어근이 같은 두 나라 어휘를 비교하면서 [m], [b] 등 한국어의 입술소리가 일본어에서 ‘음의 약화현상’에 따라 [h] 소리로 바뀌는 법칙성을 분석하고, 이런 음운 변화가 두 나라 언어의 ‘상대 연대’ 측정의 기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
박 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논문은 “포괄적이기보다는 특정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라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연구자가 난해한 언어학 개념을 빌려 설명하려는 내용은 간단하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3년 가을, 한글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이같은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아나타는 한국인>(정신세계사)이란 단행본도 함께 펴냈다. 이번 논문 발표는 그 연장선상이자 연구의 새로운 도약과 진전을 알리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언어의 유전자는 자음에 새겨져 있다.” 그 유전자 분석의 시료는 음운 비교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두 연구자는 지난 2002년부터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에 뛰어들었다. 이후 3년여 동안, 한·일의 고유어 어휘 7천개(파생어 포함) 이상이 같은 어근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예컨대 다발(a bundle)을 뜻하는 일본어는 ‘다바’다. 둘 다 한자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유어다. 두 어휘는 공통적으로 [d], [b]의 음운을 갖고 있다. 말의 뿌리가 같은 것이다. 박 강사는 “모음은 같은 나라의 방언에서도 서로 차이가 나지만, 자음은 유전자처럼 보존된다”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자음 비교를 통해 두 언어가 ‘체계적으로’ 닮아 있음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문제는 어느 쪽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가다. 박 강사는 “‘삯월세’가 ‘사글세’로 변하듯, 언어는 복잡한 형태에서 간단한 형태로 변화하는데, 같은 어근을 가진 어휘를 비교해보면, 한국어의 여러 자음이 일본어의 첫 자음에만 남는 현상이 무수히 많다”며 “언어학적 측면에서 일본-한반도-대륙이 아니라, 대륙-한반도-일본의 방향으로 언어가 전달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들은 일본어를 아예 ‘열도 한어’로 분류하고, 대륙한어-반도한어-열도한어를 아우르는 ‘한어사(韓語史)’ 연구를 주창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오늘날 쓰이는 일본어의 상당수가 기원전·후부터 7세기 말까지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허재영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본 학자들은 일본어가 알타이어(및 한국어)와는 독립적으로 형성됐으며, 오히려 일본어가 한국어에 영향을 줬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두 연구자는 이를 반박하는 강력한 논증을 하고 있으며, 이번 논문을 통해 그 분석 시스템을 보다 정교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세계가 인정하면 일본도 받아들이겠죠”
연구성과 일본 학계 반발 우려 9월 세계학회에 먼저 발표하기로
두 연구자가 처음 조우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박명미 강사는 일본 구마모토대 언어학과의 대학원생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연구에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시미즈 기요시 전 교수가 이 대학 언어학과에 부임했다. 시미즈 박사는 아프리카어 비교연구로 비엔나대 언어학과에서 18년 동안 재직한,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다.
두 연구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서로 익히며 두 언어의 비교연구 가능성을 모색했다. 결국 시미즈 전 교수는 지난 2002년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어-일본어 비교연구에만 몰입했고, 여기에 박 강사가 힘을 보탰다.
비교언어학에 대한 탄탄한 방법론을 갖춘 두 연구자의 이런 ‘배경’은 그들의 연구가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박 강사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는 물론 알타이어 전체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비교언어학의 방법론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학문적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일간의 미묘한 관계는 이들의 연구가 결국은 맞닥뜨리게 될 장벽이기도 하다. 두 연구자의 논문은 아직 일본 비교언어학회 등에서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일본 학계의 반응이 조심스런 것이다.
박 강사는 <한겨레>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서는 비교언어학 자체가 활발하지 않다”며 “이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뿌리라는 학설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시미즈 전 교수의 명성과 권위조차 ‘일본어는 알타이어와 별개로 형성된 언어’라는 일본 학자들의 믿음을 쉽게 허물 수 없는 것이다.
두 연구자는 오는 9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국제학회를 통해 지난 3년여의 연구성과를 처음으로 세계 언어학계에 알린다. 박 강사는 “일본의 ‘신념’과 바로 맞서는 것보다는, 먼저 세계를 설득시키는 것이 지름길”이라며 “우리의 연구를 세계가 인정하면 그제서야 일본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