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만든 앞선 시대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필요로 한다. 이 점은 우리가 잘알고 있는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그 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그보다 앞선 우리민족의 건국사인 '단군조선'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수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고구려라고 하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서기전 37년에 건국되어 가야ㆍ백제ㆍ신라 등과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고구려를 말한다. 그러나 '고구려(高句麗)'라는 명칭은 이 고구려가 건국되기 훨씬전인 서기전 12세기 이전부터 요서지역에 존재했던 '단군조선'의 거수국(渠帥國, 중국에서는 제후국이라 부름)이었고, 그 위치는 후대의 고구려와는 달리 중국의 수도인 북경(北京, 베이징)에서 가까운 지금의 난하 유역에 있었다. 이 두 고구려는 그들의 존재시기와 지리적 위치는 달랐으면서도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서기전 12세기는 단군조선 중기이고, 서기전 37년은 단군조선이 붕괴한 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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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건국이 서기전 37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의 옛 문헌에는 그보다 이른 시기부터 고구려가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주(周)나라의 역사서인 ≪일주서(逸周書)≫에는 서주(西周)가 성주(成周, 지금의 낙양(洛陽))에서 개최한 성주대회에 고구려가 참석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대회에는 서주가 건국된 후 제(齊)에 봉해졌던 태공 망(望)도 참석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망은 주족(周族)이 상(商, 은(殷))나라를 칠 때에 선봉장으로서 큰 공로를 세웠던 인물이다. 망(望)이 참석했던 것으로 보아 성주대회는 서주 초인 서기전 12∼11세기 경에 개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서기전 12세기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은 얼마나 많은 거수국을 거느리고 있었을까. 단군조선은 부여(扶餘)ㆍ고구려(高句麗)ㆍ고죽(孤竹)ㆍ예(濊)ㆍ맥(貊)ㆍ추(追)ㆍ진번(眞番)ㆍ낙랑(樂浪)ㆍ임둔(臨屯)ㆍ 현도ㆍ숙신(肅愼)ㆍ청구(靑丘)ㆍ양이(良夷)ㆍ양주(楊州)ㆍ발(發)ㆍ유(兪)ㆍ옥저(沃沮)ㆍ기자조선(箕子朝鮮)ㆍ 진(辰)ㆍ비류(沸流)ㆍ행인(荇人)ㆍ해두(海頭)ㆍ개마(蓋馬)ㆍ구다(句茶)ㆍ조나(藻那)ㆍ주나(朱那)ㆍ한(韓, 삼한(三韓)) 등의 거수국(제후국)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부여ㆍ고구려ㆍ고죽ㆍ예ㆍ맥ㆍ추ㆍ진번ㆍ낙랑ㆍ임둔ㆍ현도ㆍ숙신ㆍ청구ㆍ양이ㆍ양주ㆍ발ㆍ유ㆍ옥저ㆍ기자조선 등은 지금의 요서지역에, 진ㆍ비류ㆍ행인ㆍ해두ㆍ개마ㆍ구다ㆍ조나ㆍ주나ㆍ한 등은 지금의 '요하(遼河)' 동쪽의 만주와 한반도에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이 보다 훨씬 많은 거수국이 있었겠지만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과 관련을 갖지 못한 거수국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다. 단군조선의 강역에 대해 알아보자. 단군조선의 강역은 서쪽으로는 중국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로부터 북쪽은 어르구나하(額爾古納河), 동북쪽은 지금의 흑룡강을 국경으로한, 즉 한반도와 내몽골 자치구 동부와 재중동포들이 살고 있는 동북3성(흑룡강성ㆍ길림성ㆍ요령성)을 비롯한 만주 전 지역을 차지하고, 때로는 재러동포들이 살고있는 연해주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국(서기전 16세기부터 단군조선 말기까지 대체로 이러한 강역이 유지됨)이었다. 단군조선은 2300년간 실재했던 동북아 최강국가였으며, 중국의 최초국가인 하(夏)나라보다 1백여년 앞선 나라였다.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그 통치영역으로 한 단군조선의 존속기간에 중국에서는 하(夏)ㆍ상(商, 은(殷))ㆍ서주(西周)ㆍ춘추(春秋)ㆍ전국(戰國)ㆍ진제국(秦帝國)을 거쳐 서한제국(西漢帝國)이라는 왕조와 시대의 변화가 있었고, 일본에서는 단군조선 말기(서기전 3세기 이후)의 영향을 받은 야요이(彌生)문화가 있었다. 단군조선의 국력은 어떠했을까. 단군조선은 중국 전국(戰國)시대 연(燕)나라(서기전 323∼222)와의 전쟁에서 일시침공을 받았으나 그것을 격퇴하고, 오히려 연나라의 동부의 땅을 빼앗아 침략에 대한 응징을 하였고, 서한제국은 단군조선과의 국경을 지키지 못해 뒤로 물린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단군조선의 강한 국력(군사력)을 알게 해 주는 것이며 이러한 국력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경제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단군' 한 사람이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을까. '단군'은 군주(君主)를 뜻하는 말로서 오늘날의 대통령이라는 칭호와 비슷한, 단군조선을 통치했던 최고 통치자에 대한 칭호로서 단군조선 시대에는 수십명의 단군이 있었으며, 단군은 각 지역의 거수(渠帥)들만을 통솔하고, 각 거수국(渠帥國)의 주민들은 거수들에게 위임통치하였다. 각 지역의 거수들은 '단군'에게 일정한 의무를 이행하면서 단군을 그들의 공주(共主)로 받들었던 것이다. 해모수는 우리말의 해머슴아가 한자화된 것으로 '단군'에 대한 다른 칭호였다. 단군조선인들은 '단군'을 최고 지도자로하여 하느님을 믿는 동일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동일한 언어와 풍습을 가지고, 동일한 정치체제와 경제상황속에서 생활하였다. 이처럼 단군조선은 강력한 왕권을 갖추고 중국과 맞선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이며, 그 중심지는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 북경 동쪽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