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sr]역사,종교

치우(蚩尤) 천왕의 청구(靑丘)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8. 15:41

치우(蚩尤) 천왕의 청구(靑丘). (1)

 

 

이제,

신시(神市)[shenshi, 썬쓰] 시대의 말기에 접어든다.

그 가운데,

14대 환웅(桓雄)[huanxiong, 환슝]의 이름은

자오지(慈烏支)[ciwuzhi, 츠우쯔]= ‘첫, 솟은+위, 오른+솟은 이’ 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이 분이 곧,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치우(蚩尤)[ciyou, 츠이유]라고 한다.

헌데, 이 이름은,

중국인의 한족(漢族)에게는,

악귀 같은,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 즉, 또한,

그 한자 표기가 비칭(卑稱), ‘추함이(蚩)+더한, 허물(尤)’이므로,

이 양반은 그네들 한족일 리가 없고, 바로, 우리네의 환인(桓仁)족이며,

배달(倍達)[beida, 이따]족 = ‘높이+돋은 (터의 사람)’이다.  

 

우선,

그 두 개의 이름이 동일인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 이름들을 표기한, 한자의 ‘개수’가, 각각, 3개와 2개이니, 

[츠우쯔](慈烏支)는 [츠이유](蚩尤)와 다르다, 라고 할 수 있으나,

‘발음’으로 보면,

‘올라 솟은’=[우쯔](烏支)à ‘(위) 오른’= [이유](尤)로,

그 발음의 뜻이 같다.  한자의 훈(訓)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앞의 글에서 보인, 우리네 환웅의 이름들과 비교하면,

두 이름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본다. 

한편, 이 글에서는, [츠이유](蚩尤)라는 ‘발음’을 쓰겠다. 

왜냐고?

중국인의 한족은 지금, 이 [ciyou, 츠이유]를,

‘발음의 뜻’도 모르면서,

자기네 선조로 ‘다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므로!

희한하지 않은가? 

이는 한족의 ‘습관적 역사 왜곡’이라는 진부한 지적은 놔두고라도,

과연, ‘다민족 통일 국가’라는 ‘창의적’인 개념에, 아주 잘 어울리는,

지극히 ‘관대한’ 행태라 할 것이다.

 

 

-[츠이유](Ciyou)의, 중국측, 흉상 [이미지].

강소(江蘇)[쟝쑤]성의 무석(无錫)[우씨]에 있다고 한다.-

 

 

[츠이유](蚩尤)는,

한족에게서, 악귀 같은 대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는,

---그 말뜻이나 알고 썼는지 모르지만---,

[츠이유]가 ‘천자(天子)의 칭호’라 ‘카더라.’ 했다!

, 중국 땅의 ‘천자 1호’였다는 것이다.

‘묘한 수수께끼’가 아닌가?

그 해답은 이렇다.

‘치우 천왕(蚩尤 天王)’이라는 호칭에서,

천왕(天王)[tianwang, 티앤+왕]은 ‘돋아 오른 곳의+오른 이’이다.

바로, [츠+이유]= ‘솟아+오른 이’와 똑같은 이름이다!

그리고, 천자(天子)[tianzi, 티앤+즈]는, 다름 아닌, 우리 말의,

‘돋아 오른+솟은 이’인 즉,

이제,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아신 셈이다.

 

그는,

현재의 만주 땅, 요서(遼西)[liaoxi, 랴오씨]의 서쪽을 치고,

다시, 중국 땅 북부의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여,

현재의 중국 하남성(河南省)과 산동성(山東省)에,

청구(靑丘)[qingchu, +츄] ‘첫째의+솟은’ 나라를 세웠다. 

중국측 사가의 입장에서 보면,

‘천하를 바꿨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참고로, 말씀 드리거니와,

우리네 땅을 의미한다고도 하는,

청구(靑丘)[칭츄]는 그 무슨, ‘푸른 언덕’ 따위가 절대로 아니다!

역사에 무지한, 그리고,

우리네 [알타이] 말을 모르던, ‘순진한 선비’들의 왜곡이다.

, 시간이 되시면, 앞서의 글, ‘중국 신화의 이름들’ (9/28~10/22)중,

그 시기가 겹치는 부분들을 같이 참조하시기 바란다.

 

[츠이유]의 확장 과정에서,

같은 동족과도 분쟁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현재의 내몽고(內蒙古) 지역에 있던,

탁록(涿鹿)[zhuolu, 쥬어루]에서,

황제(黃帝)[huangdi, 황띠]라고 후세에 부른,

헌원(軒轅)[xuanyuan, 쇈왠]과 싸웠다.

앞서 설명 드린 대로, 한족의 표기 방법에 따르면,

우리 말 발음, [쇈왠]의 뜻은 황(黃)[황]이 ‘뒤따라서 부연 설명’한다. 

해서, [+왠]의 ‘솟아 오른 (곳에서)+오른, 내려온 이’와,

[황](黃)의 뜻인, ‘누른, 늙은, 오래된, 어린, 오르는’의,

발음의 공통점을 비교하면,

[쇈왠]은 ‘솟아+오른 이’ 쯤이 맞을 듯하다.  

그리고, [황](黃)의 ‘오래된’의 의미인,

[lao, 라오](老)는 자기네에게 ‘친근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족(漢族)이 자기네의 후원자로 [황띠](黃帝)를 내세워,

후세의 역사에서, [츠이유]를 극렬하게 비하했다는 점이다.   

[황띠](黃帝) [꿍쑨 쇈왠](公孫 軒轅)은 73번이나 [츠이유]에게 덤볐다니,

실로, 백종백금(百縱百擒)이었다. 

이에 비하면, 삼국지(三國志)[싼궈쯔]의,

[쭈꺼량](諸葛亮)과, [멍훠](孟獲)의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애들 장난이다. 

중국측 기록으로는, 지남차(指南車)[즈난처]---혹시, [쭤란](作亂)? ---로,

[츠이유]의 ‘안개’를 피하고, 최후에는,

‘북’(鼓)[gu, 꾸]---혹은, 고씨 환족(高氏 桓族)? ---을 쳐서, 이겼다고 한다. 

[쇈왠](軒轅)의 한자 훈은 ‘전차(戰車)의 멍에’이나, 이는 무의미하다. 

그런 한자 기록 속에 숨겨진 비밀은 그 ‘발음’으로 드러난다.  

[황띠](黃帝)라는 이름은, (黃+地)[+띠],

‘(중앙의) 밝은+땅’을 차지하려는 염원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어떤 이는,

공손(公孫)[gongsun, 꿍쑨]씨가,

, 즉 웅(熊)[xiong, 슝]씨의 후손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이들의, 원래의 근거지는 훗날, 연(燕)[yan, 얜]의 지방이며,

그 도읍이 연경(燕京)[yanjing, 얜징],

, 오늘날의 [beijing, 베이징](北京)이다. 

또한, [황띠](黃帝)는 소전(少典)[shaodian, 샤오띠앤]의 아들이라 했다. 

내 생각에, [dian, 띠앤]은 (檀)[tan, ]= ‘돋아 오른’과 통하니,

결국, 환족의 지배층 출신이라는 말씀이다. 

그걸, 굳이, ‘적을 소(少)’자를 붙여, 별거 아닌 것으로 했다. 

허나, [샤오+띠앤]의 발음은 우리 말의, ‘새로운+돋아 오른’일 터이다.

중국측 성씨로는, (姬)[ji, ]씨라고 했다. 

그 역시나, [지]= ‘솟아’ 라는 집안 내력을 말한다. 

허면, [+쑨](公孫)은 우리 말의, ‘큰+솟은’의 뜻으로,

꽤 실력이 있는 ‘환인족의 일파’였을 것이다.

 

황제(黃帝)[황띠]가,

탁록(啄麓)[쥬어루]에서 도읍 했다 함은,

이를테면, 내몽고(內蒙古)지역에서, 중국 내륙으로 왔다는 것을 말한다. 

, 황제(黃帝)[황띠]는, 만주와 [화베이](華北)지역의 환인족에서,

독립하여, 과거와는 결별하고, ‘남쪽’으로 쳐들어 왔으며,

그로부터, 한족(漢族)을 이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결과,

소위, ‘화족(華族)의 시조(始祖)’로 모셔진다는데,

[춘츄쓰꽌](春秋史觀)의 소위, [웨이궈훼츠](爲國諱恥),

---나라, 즉, 한족을 위해, 부끄러운 것은 숨긴다---가 여기서 시작된다. 

역사의 앞머리가 잘려 나간 것이다.

한족(漢族)은 [츠이유]천왕의 확장을 ‘위협’으로 봤다.

[츠이유] 천왕은 이런 [황띠 쇈왠]을, 오늘날의 내몽고에 있었다는,

탁록(啄麓)[zhuolu, 쥬어+루],

‘솟아+오름’의 벌에서 쳐내고 남하했다.  

 

우리네 작가 몇 분이,

[츠이유](蚩尤) 천왕의 장대한 얘기를 ‘소설’로 쓰신 듯 하다.

이들을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걱정하는 바는,

그 양반들이, 겉으로 한자의 모습들을 하고 있는,

그 속의, ‘우리 말 발음’을 제대로 짚어냈을까,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국내용’의 것으로만 한정되고 만다.

부디, 왕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족의 중국인들도 수긍할 수 있는, 대작들을 만드시기 바란다.

---우리네와 한족(漢族)의 역사에서,

공히, 비중이 있는 영웅이므로.

---그리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자면,

여러 가지로, 더욱, 아쉬워지는 분이므로.

 

치우(蚩尤) 천왕의 청구(靑丘). (2)/ 과보(夸父), 도철(饕)과 붉은 악마.

 

 

어제,

여러 분이, 이 [블로그]를 방문해 주셨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앞의 글에서, 중국인 한족의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역사 왜곡’의 사례를 말씀 드렸다.

치우(蚩尤)[ciyou, 츠이유] 천왕을 비하하면서도,

이제는, ‘자기네의 조선(祖先)’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증거들이 많기 때문이다.

허나, ‘현재’의 중국 땅에서,

과거에 등장한 옛 인물은 ‘모두’ 중국인인가? 

물론, 아니다.

그네들은, [츠이유](蚩尤)를, 그네들이 모시는 [황띠](黃帝)에 덤빈,

자기네와 같은 동족의 하나쯤으로 꾸미고 있다.

이런 것들이 도대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 말씀이 괴이하다면,

그네들에게 [츠이유]의, 그 한자 비칭의, ‘발음의 뜻’을 물으시라.

나는 중국측의 역사를 구태여 폄하하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그네들의 최근, 1~2000년의 성취를 ‘대단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중국 음식은 그 얼마나 [스마트]한가?

다만, 그네들이 ‘공연히’ 고대사를 꾸미고 있다는 것뿐이다.

 

한편, 우리네는, 스스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증거가 속출하고 있다.

만일, 과거의 우리네가 ‘진실로’ 형편없었고,

그저, 동 [아시아]의 변방쯤이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아주 가까운 예로,

일본의 [나라](奈良)나 [교또](京都)의,

그 고색창연한 유물들을 만들어 준, 우리네에게는, 정작,

, 그런 것들이 우리 땅 곳곳에 없는지를 잠시 생각하시라.

기록으로만 봐도,

우리 땅은 970여 회의 외침(外侵)이 있었다고 하는 즉,

그만큼 우리 땅은 970여 회의 ‘초토(焦土)’가 되기를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물질적, 정신적’ 과거를 잃게 된 것이다.

---마치, 기억상실증(amnesia)에 걸린 것처럼.

날 달걀을 ‘냉장고에 넣었다 꺼냈다’ 를 여러 번 반복하면, 어찌 될까?

강인해진다고?  아니다.  나중에는, 곯아 버린다.

 

중국 신화에서는,

치우(蚩尤)[츠이유]가 거인족(巨人族)이라 했으니,

, 우리네 환인족이고,

---고대, 만주 지역의 평균 신장(身長)이 세계 최고였다. ---

[츠이유]의 모습을,

‘사람의 몸에, 소의 발굽’(人身牛蹄), 그리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銅頭鐵額)라 했은 즉,

이를테면, 발에는 장화도 신고, 얼굴에는 투구도 쓴,

막강한, 그리고 한족에게는 이질적인,

‘금속’ 문명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는 또한, 묘족(苗族)을 ‘선동’했다고도 한다. 

---선동이 아니라, 당연한 지휘를 한 것이 아닐까? 

현재는, 묘족(苗族)[miaozhu, 먀오쭈]가,

중국 [광시싱](廣西省)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라 하나,

과거에는, [miao, 먀오](苗)= ‘높이, 빨리+오르는’, 날쌘 족속으로써,

북부 중국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 그들이 고구려의 후예가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다지만,

아마도, 우리와는 더 오랜 역사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중국 인민 은행이 2003년 발행한,

신화(神話) [시리즈]의 금화에 그려진,

[kuafu, 콰푸](夸父)의 ‘태양’과의 경주 모습.

중국인의 한족은 [콰푸]를 자기네 얘기로 만들고 있다. -

 

 

한편, 중국 신화에서는,

[황띠]가 [츠이유]천왕을 이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의하면,

전쟁의 승리자는 늘 [츠이유]천왕이었다. 

---그 [황띠 쇈왠](黃帝 軒轅)이 승리한 것은, 한참 나중에,

[츠이유]천왕의 부하, 또는 그 후손에게, 였다고 한다. 

허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양쪽 기록에 같이 나와있는, 탁록(啄麓)[쥬어루]의 위치로써,

[츠이유]가 그 지점을 돌파하고 남하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중국 신화에서는, [츠이유]천왕에게 동원된,

거인족(巨人族)이 하늘의 태양과도 뜀박질 시합을 했다고 한다. 

그 이름, 과보(夸父)[kuafu, +푸]는,

다름아닌, 우리 말의 ‘크고+무서운, 또는 빠른’이다. 

[콰푸]가 쓰러진 곳에, 복숭아(桃)[tao, 타오]가 났다던가? 

결국은, 도망갔다? 는, ---[tao, 타오](逃)---, 중국측 얘기다. 

과연, 그랬을까?  아니다. 

[황띠](黃帝)는 [콰푸]들을 위해,

박보국(博父國)이란 것을 세워 줬다? 하므로,

그들은 실제로는, [황띠]와는 상관 없이, 어딘가에서 계속 살았다.

 

헌데,

[콰푸]족(夸父族)의 ‘우공(愚公)’이,

집 앞의 ‘산을 옮기려 했다’는,

이른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古事)가 있다.

‘어리석을 우(愚)’,

또는, 중국인? 의, 대대손손의 ‘집념’이라는 교훈 사례로 인용된다.

너도 나도, 학교에서 그렇게만 배웠다.

허나, 그 실체는 뭘까?

이는 바로, ‘산하(山河)를 옮기던’ [츠이유]와 [콰푸]의,

저 한족에게는 몸서리쳐지는, ‘기억’을 반증하는 것이다.

중국측의 ‘말장난’ 풀이는 다시 봐야 한다.

 

 

 

 

-[츠이유]를 뜻하는,

[taotie, 타오티에](饕) 무늬의 하나. -

 

 

아무튼,

[츠이유] 천왕은,

한족 중국인의 입장에선, 악귀(惡鬼)였다.

그 상징물인, 도철(饕)[taotie, 타오티에]의 경우,

그 한자의 훈은 ‘탐(貪)하다’의 뜻이라 한다.

헌데, 왜, 이렇게 복잡한 한자를 굳이 썼을까?

원래, 한자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타오+티에]를, 우리 말 발음의, ‘따로+떨어지는’,

또는, ‘덧 씌우는+(구멍) 뚫린 것’= ‘탈’로 본다.

이것은 실은,

[츠이유] 천왕의, 그 몸(身體)은 없이,

두상(頭像)만을 본뜬 ‘탈’로써, 그릇, 도끼 등에도 장식을 했고,

[츠이유] 천왕의 ‘탐욕(貪慾)?’ 을 두고두고 경계하는 상징물이다.

중국인으로서는, 두려움의 대상 제1호가 그 분이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도철’을 ‘도찬(饕)’이라 잘못 쓴 책 때문에 고생을 했다.

중국에는, 치우희(蚩尤戱)[ciyouxi, 츠이유씨]라는 ‘곡예’도 있었다 한다.

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츠이유]의 영향력을 보이는 것이다. 

한편, [츠이유]의 무덤에서 솟았다는,

치우기(蚩尤旗)[ciyouqi, 츠이유치]는 ‘붉은 색(赤)[chi, ]’이었다. 

실은, 치(蚩)[ci, 츠]와 비슷한 발음! 의 [츠](赤)를 쓴 것뿐이다.

 

 

 

 

-2002년, 졸지에 유명해진,

‘붉은 악마’의 표시물.

이것이 ‘한국의 힘 (Forza Corea)’ 이라? -

 

 

2002년, ‘붉은 악마’라는 응원단이,

‘붉은 악마’의 기원과 [츠이유]를 연결한 것도 엉뚱하지만,

또한, 무슨 ‘악의(惡意)’는 없었다고 보지만,

[츠이유]의 [타오티에](饕)를 ‘붉은 빛깔’로 만든 것은,

중국인 한족의, [츠](蚩)à [츠](赤),

단순한 ‘유추(類推)’ 방식을, 검증 없이, 그대로 따른 것이다!

---다들, 그 ‘색깔’ 좋다고만 했고.

그리고,

그 얼마 전부터,

이 땅에서는, ‘색깔론’이 ‘금기 사항’이 됐다.

갑자기, 모두가 ‘색맹(色盲)’이 됐다는 얘기인가? 

혹은, 누가 그리 만들려는가?  왜 그럴까?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내게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붉은 것’을 ‘붉다’고 말을 못하게 하다니!

 

치우(蚩尤) 천왕의 청구(靑丘). (3)/ 관련 지명들과 청동기의 기원?

 

 

어디선가,

[프로페셔널]한 ‘작가(writer)’는, 끊임없이,

‘현실에는 없는 것을 채워주는’ 글을 ‘써야 한다’고 했. 

[블로그]의 글들은, 다만, 현실에서 잊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니,

그런 엄격한 정의에는 감히, 어울리지도 못한다.

어제 올린, 색깔에 대한 글은, 예전의 [메모]에서 군살을 뺀 것이나,

다시 읽어본 즉, 너무 [다이어트]를 해서 그런지, 느낌이 빠졌다.

역시, 글에 관한 한, 나는 2%, 아니, 20%가 부족한 [아마츄어]이다.

 

중국은,

대외적, 대내적 정치를 위한, 역사의 효용을 잘 아는 듯 하다.

이제껏, 신문에 공개된, 그네들의 움직임을 정리하면,

우선, 자기네의 정체성이,

56개 민족의 통일적(統一的) 다민족(多民族) 국가라고 한다. 

과거에는, 다민족 대가정(大家庭)이라는 통일 전선 이론도 있었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1981년에 제기된 것으로,

중국의 판도 안에 있었던, 모든 국가나 민족은, 중국에 귀속된다,

(非) 역사적 궤변이다.  이는 현재의 설명은 될지언정,

그들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증명은 결코 아니다. 

참고로, 중국은 인구의 절대 다수, 95%! 가 한족(漢族)으로,

중국 영토의 30% 만을 점유하면서도, 다른 70%의 땅도 통치하고 있다.

헌데, 우리네 일각에서는, 100만 명의 동학군 중, 그 중심 인물들은 빼고,

450명만의 명예를 살린다고 한다. (조선일보, 05-12-29) 

, 그럴까?  비싼 비용을 쓰면서도, 역사 왜곡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다.

 

중국은 이미,

1986년에, 소위, 장학 연구중심(藏學硏究中心)을 만들어,

서남쪽 [티베트] 역사를 왜곡했고,

변강사지(邊疆史地) 연구중심을 통해,

서북쪽의 [신짱 위구르]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했다. 

그리고는, 2002년에는, 동북쪽의 만주 지역을 대상으로,

[뚱뻬이꿍청](東北工程)을 착수해서, 이를 이미 마쳤다. 

이렇듯, 공간적으로,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한편,

시간적 역사로는,

1996년에,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斷代工程)으로 고대 역사를,

2003년부터는,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으로 상고사를,

각각, 한족 위주로 꾸미고 있다

[블로그]의 글은, 비록, 미력하지만, ‘말’의, 그 ‘발음의 뜻’을,

통해서, 그 ‘~공정’들의 허구(虛構)를 반박해 보려는 것이기도 하다.

 

 

 

 

-용산(龍山)[longshan, 룽싼] 문화 지역. -

 

 

[츠이유](蚩尤) 천왕은,

한족(漢族)에 치우친 감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호(少昊)[shaohao, 싸오하오], 신농(神農)[shennong, 썬눙]과

제곡(帝嚳)[digu, 띠꾸] 등도 공격했다. 

그리고, 나라는 발전했다. ---300년 후, BC 23세기의 어느 날,

[칭츄](靑丘)는, 다른 북방계의 동족들에게 밀려나서,

원래의 환웅 시대의 근거지인, [랴오허](遼河) 쪽으로 옮긴다. --- 

[츠이유]는 중국 대륙의 북부를 장악했다.

공상(空桑), 현재의 개봉(開封)시 진류(陳留)에서 즉위했고,

뒷날, 수장(壽張)에 묻혔다.  그와 관련된 지명들은, 제하(濟河), 치하(淄河),

임제(臨濟), 임치(臨淄), 염구(鹽丘), 청구(靑丘) 및 안구(安丘) 등이다. 

[츠이유] 시대에는, 구리와 쇠를 잘 다뤘다고 했고,

또한, 구 자일 박사에 의하면,

‘갈로’산(葛盧山)에서 쇠를 캐어, ‘옹호’산(雍狐)에서 야금을 했다는데,

현재의 ‘옹우’특기(翁牛特旗)로, 몽고어로는 [옹곹](ongot)이며,

‘영고’탑(寧古塔)이었다고 했다.  헌데, 구 박사는, [츠이유]의 청동기 문화가,

[수메르]? 에서 왔고, [츠이유]의 시대는 이른 바, ‘용산(龍山) 문화’와,

그 시기와 일치한다고 한다.

 

-용산(龍山)문화:

BC 2,800~2,000년. 

현재의 산동성(山東省)의 제남(濟南)[jinan, 지난]을 중심으로,

중국의 하남성, 섬서성, 산동성, 하북성에 이른다. 

BC 2,700년의 대문구(大汶口)문화를 대체했다고 한다. 

-하가점(夏家店)문화:

BC 2,000년의 것으로, 첫 청동기 문화의 유적이라 한다. 

-소하연(小河沿)문화:

BC 2,200년의 것으로, 특히 ‘만(卍)의 형상’을 비롯한,

최초의 부호 문자가 출현했다.

 

PEM으로 지명을 해석한다. 

[츠이유]가 즉위한, 공상(空桑)[kongsang, +쌍]은,

‘비어있는 뽕나무’가 아니라, 우리 말의 ‘큰+솟은’ 이며,

그 현재 지명인, 개봉(開封)[kaifeng, 카이펑]은,

‘닫힌 것을 연다’가 아니고, ‘(해) 크게 올라+밝은, 높은 곳’이다. 

진류(陳留)[chenliu, +류]는 ‘첫+오름’이고,

그가 묻힌 곳, 수장(壽張)[shoujiang, 써우+쟝]은,

‘첫 (어른)+지다, 저물다’이다.

언젠가, 중국인이 [츠이유]의 뼈를 발굴?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게 가능할까?  나는, ‘(葬)’이란 회의문자(會意文字)를, 그저,

글자 모습만을 따라서, ‘묻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을 의심한다.

그 옛날에는 혹시, 귀인(貴人)은 화장(火葬)하지 않았을까?

, (葬)[zang, ]= ‘草[cao, 차오]+死[si, ]+卄[yi, ]’는,

‘(위로) 솟게+숨을 멈춘 이를+(태워) 올려’+‘잘 가시라는 것’은 아닐까?

고대 [그리스] 영웅의 화장(火葬), 인도의 다비식(茶毘式) 등등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한편, 다른 지명들,

제하(濟河), 치하(淄河), 임제(臨濟) 및 임치(臨淄)를 보면,

[츠이유](蚩尤)의 ‘첫’을 따른 ‘’(淄)[ci, ]와,

‘(해) 솟아’의 의미를 지닌, ‘’(濟)[ji, ]가 구별되어 있다. 

염구(鹽丘), 안구(安丘)는 각각, [yanqiu, +츄], [anqiu, +츄]로,

‘오르는+솟은 곳’, 청구(靑丘)[qingqiu, +츄]는 ‘첫+솟은 곳’이다.   

한편, 유적지 이름들의 뜻은 다음과 같다

용산(龍山)[longshan, +싼]: ‘오르는, 이룬+솟은’이고,

제남(濟南)[jinan, +난]은 ‘(해) 솟아+내린’이다.

하가점(夏家店)[xiajiadian, +쟈]은 ‘솟은 (곳의)+솟은’.

소하연(小河沿)[xiaoheyan, 쌰오+허+얜]은 ‘솟은+높이+오른’이다.

이 명칭의 이름, 그 발음들이 어디서 비롯했을까?

 

청동기와 철기 문명의,

그 전래와 발전에 대해, 이론들이 많다.

갈로(葛盧山)[kelushan, +루]은,

철광석, 동광석을 ‘밖으로+캐어+올린’ 산인 듯도 하다. 

옹호(雍狐)[wenghu, +후]산은 ‘윗+높은, 밝은’ 산이니,

그곳에서 야금(冶金)을 했을 성도 싶다.

영고탑(寧古塔)[ningguta, +꾸+타]는 ‘높은+큰+돋은 곳’이다.

[황띠](黃帝)가 ‘지남철(指南鐵)’을 썼다는데,

만일, [츠이유]의 ‘쇠’가 없었다면, 그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한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Sumer)가,

세계 최초로? 청동기를 사용했고, 가까운 지역과는 무역을 했다지만,

거기서 어떻게, 동쪽으로? 청동기 문화가 전래됐는지는 모르겠다.

 

‘환단고기’의 일부 해설자들이 말 하듯,

[수메르](Sumer)와 [우르](Ur)가 우리 고대 민족의 한 갈래? 라면,

먼저, [수메르]의 도시 국가와 왕의 이름부터라도, 그 ‘교착어’라는,

음운의 형식과 의미를 규명해야 한다. 

다만, [수메르]는 BC 3500년~ BC 2000년까지의 나라로,

그 시기의 뒷 부분은, [환슝](桓雄)의 신시(神市) 시대 후기의, 

[츠이유](蚩尤)의 청구(靑丘) 시절에 해당한다.

[우르]는 그 [수메르]의 12개 도시 국가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고,

[수메르]인들은 도시에 신전을 짓고, ‘별’과 신들을 연결 지었다 하므로,

우리 [알타이]의, ‘해’를 중시하는 문화와는, ‘좀 다르다’고 본다. 

헌데, [야훼](Yahweh)를 숭배한, [히브루]족의 [아브라함](Abraham)이

[우르] 출신이라니, 검토가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훼]는,

그 해석이 분분하나, 우리 말의, ‘올라+높은, 밝은’으로 풀이 되므로.

참고로, [수메르]의 도시와 왕의 이름들은,

-도시: Adab, Arshak, Badtibira, Erech, Kish, Lagesh,

Larak, Larsa, Nippur, Sippar, Umma 및 Ur.

-왕: Meskiagasher, Enmebaragesi, Mesanepuda,

Lugalanemundu, Sargon 및 Uthuhegal.

이 이름들을 ‘접두어, 접중어 및 접미어’로 분해하면, 우리 말로,

그 풀이가 가능해 보인다.  허나, 이는 [수메르]학-(Sumerology)이

찾은 내용과 비교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라, 일단, 숙제로 남긴다.

 

그 보다는,

그 옛 발음을 승계한 것으로 보이는,

후대의 [바빌론](Babylon)과 관련하여, 기존의 개념과는 다른,

내 나름의 해석을 말씀 드리려 한다.

그들의 신(神), [+르+두+크](Marduk)의 뜻은,

우리 말의 ‘밝게 높이+올라+돋은+큰’이다.  이게 ‘태양’일까?

그들의 나라, [바빌+론](Babylon)과 저 유명한 전설적인 탑,

[바벨](Babel)의 뜻은 ‘밝고 높이+오른 곳’이다. 

그들의 위대한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의 경우,

‘Nabu-Cho-Dono-Sor’, 또는 ‘Nabu-Ku-Durri-Usur’로 추적하여,

그 뜻이, ‘오, 네보여, 내 나라를 지키소서’ (O Nebo, defend my land)?

라고 하나, 이 해석은 ‘네보?’ 라는 말뜻을 확실히 풀이하지 못했다.

헌데, 이를 우리 말로 보면,  

‘높이+크게+솟아 돋아 오른 터에+위에 솟은 이’이다. 

현재의 [+그+다+드](Bagdad)는 ‘밝게, 큰+돋은+터’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말로 풀이가 된다면,

그 고대 시절에도, 원거리 ‘교류’는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테면, ‘세계화(世界化)’가 당시에도 존재했으며,

우리네 선조는 분명히! 그 ‘무대’의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화’에 반대하는 분들의 심정은 이해하나,

‘쌀(米)’도 원래, 교류해서, ‘도입된 것’이지, ‘우리 만의 것’이 아니다.

한편,

‘청동기 문명’의 기원이 어느 쪽인가를 검증하는 방법은,

일단, [수메르]와 [츠이유] 시대의 청동기의,

‘금속 성분’들을 각각,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의 해석일 터이다.

왜냐하면, 더 원시적인 것이 그 성분이 단순할 수도 있고,

혹은, 모방하는 쪽이 기술이 부족해, 성분이 단순할 수도 있다.

, ‘말의 변화’는 그 이동에 따라, ‘단순화’ 하는 것과 달리,

‘금속 성분’의 해석은,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동위 원소를 이용한, 연대(年代) 측정도 그 정밀도에 한계가 있은 즉,

무형의 ‘말’도 그 열쇠를 쥐고 있다 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