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목숨이 있는 온갖 동물을 한 쌍씩 배에 데리고 들어갔다. 40일 동안 폭우가 쏟아졌고, 물이 줄어들기 시작해 150일이 되던 날 배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창세기 7장)
“하늘과 바람의 신은 인간들이 불만을 늘어놓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쉴 수가 없어 인간을 없애고자 홍수를 일으켰다. 홍수가 일곱 낮 일곱 밤 동안 땅을 휩쓸어버렸다. 신에게 선택받은 착한 인간 지우수드라는 배를 만들어 살아남았다.”(수메르 신화)
“먼 옛날 백두산에 비가 40일 동안 내렸다. 산꼭대기에 살던 어머니와 유복자가 살아남았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하늘의 여와씨는 증손녀를 내려보내 홍수를 가라앉히고 유복자와 혼인케 했다.”(백두산 홍수 신화》
세계에는 대홍수와 관련해 수백개가 넘는 고대신화가 있다. 부족간 왕래가 많지 않았을 먼 옛날인데도 이들 신화 가운데는 홍수의 내용이나 시기가 비슷한 것들이 많다. 백두산 홍수신화만 해도 홍수가 계속된 기간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같다. 그렇다면 홍수는 신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물음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1996년 미국 학자들의 연구가 홍수 탐사에 불을 붙였다. 컬럼비아대 지질학자인 빌 라이언 교수와 월터 피트먼 교수가 러시아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흑해를 탐사한 끝에 흑해에서 대홍수가 있었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
왜 흑해였을까. 흑해는 홍수 신화를 갖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스키타이, 미케네, 페니키아 등 수많은 고대 국가들이 번성했던 중심지다. 홍수가 있었다면 흑해가 공통분모가 됐을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아라랏산도 흑해 연안 국가인 터키에 있다.
두 교수는 20여년에 걸친 각종 문헌 연구와 현지 탐사를 통해 1만5000년 전 빙하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7500년 전에 이르러 지중해로부터 흑해 남서쪽 보스포루스해협 너머로 나이아가라폭포의 200배에 달하는 속도로 바닷물이 유입되는 ‘대홍수’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흑강(江)’이 ‘흑해(海)’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흑해에 존재하는 독특한 비산소층을 홍수의 대표적 증거로 들었다. 흑해의 해저 200m 이하는 산소가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비산소층으로 이뤄져 있다.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밀도 차이로 바닷물과 민물간 층이 형성됐고, 층간 대류 작용이 멈추면서 대기와의 접촉이 차단된 아래층에서 산소가 점차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이후 각국의 과학자들이 홍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흑해로 향했다. 흑해 연안국가인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비롯해 멀리 미국에서까지 탐사팀이 몰렸다. 명목상으로는 흑해 이론을 증명하고 인류 고대사의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겠다는 의도였지만, 흑해 속에 숨겨진 수많은 유물을 노린 측면도 없지 않았다.
미 해양탐사연구소(IFE) 로버트 발라드 소장(61)이 1999년 흑해 탐사에 뛰어들면서 이후 흑해 탐사는 IFE를 중심으로 일원화됐다. 발라드 소장은 1985년 타이태닉호를 발견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해저 탐사가. 이후 미국지리학회 등 미국 내 주요 해양 전문가들을 비롯해 터키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흑해 주변국 과학자들도 IFE와 손을 잡고 탐사에 나섰다.
첫 탐사 도중 IFE는 바다 밑 170m 지점에서 민물 서식종 조개들을 발견했다. 탄소 동위원소 분석 결과, 조개는 7500년 이상 된 것들이었다. 최고령은 1만5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즉 7500여년 전만 해도 이 조개가 살던 물은 민물이었지만 홍수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갑작스럽게 바다가 됐다는 게 입증된 셈이었다.
바다 밑 100m 지점에서는 ‘사이트 82’로 불리는 인간 거주지 추정 지역이 발견됐다. 이곳에서 가로 10m, 세로 12m의 직사각형 돌이 발견된 것. 너무나 인공(人工)적인 모양의 이 돌은 흑해 연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신석기시대 거주지와 유사한 형태였다. 석기와 도자기 조각 등도 함께 발견됐다. 대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고서야 거주지가 통째로 물 속에 잠기기는 불가능한 일. 연구팀은 중요한 ‘홍수의 증거’를 또 하나 추가했다고 자평했다.
미스틱(미 코네티컷주)=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발라드 美 해양탐사연구소장 인터뷰▼
미국 해양탐사연구소(IFE)의 로버트 발라드 소장(61.사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해양탐사 전문가다. 소설 ‘해저 2만리’의 주인공인 ‘네모 선장’이 그의 별명이다.
“성경뿐 아니라 수메르 잉카 이집트 중국 등 대부분의 고대 국가들이 홍수 신화를 갖고 있다. 흑해 탐사를 통해 나는 기원전 7500년 흑해에서 큰 홍수가 있었다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 그러나 반드시 그것이 노아의 홍수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내 생전에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답을 찾을 때까지 탐사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