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개신교회의 주요교파의 특징
현재 우리 나라에는 크게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성공회 등등 여러 교파가 있지만 그 교파 내에서도 다양한 교단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예컨대 장로교 내에서도 '기독교 장로회'(기장)와 '예수교 장로회'(예장)가 있고, 예수교 장로회 내에서도 통합, 합동, 개혁, 고신, 대신 등등 수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개신교에는 많은 교파가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교파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회, 성공회를 들 수 있습니다.
1. 장로교회 [長老敎會, presbyt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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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리교 [監理敎會, Methodist Church]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그리고 G.휘필드 등의 대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메서디스트(Methodist:格式主義者)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성경 및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감옥의 죄수들의 전도에 힘썼다.
요약
1729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 교파.
본문
↑ 감리교회 본부 /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인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집회소에 참석하여 오후 8시 45분경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로마서(書) 서문을 읽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고, 감리회의 구원·신앙·성결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원래 존 웨슬리는 고교회파(高敎會派)로서 영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하였는데, 영국교회에서는 그의 교회 내 설교를 금하였으므로 야외설교의 방법을 택하여 그 운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1744년 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파 신자들을 런던에 모아놓고 전도사업 방침에 대하여 협의하였는데, 이것이 곧 감리회의 최초의 연회(年會)이다. 이때까지도 존 웨슬리는 영국교회와 분리하려는 뜻은 없었고 교회에 속한 채 전도하려 했지만, 1784년 런던 감독에게 미국으로 파견할 선교사를 안수하여 주도록 청하자 감독이 거절하므로 그 자신이 안수를 베풀어 T.코크 박사를 미국의 총감독으로 삼고 그 밖에도 몇 사람에게 안수를 주어 목사로 세우니 이때부터 감리교회는 실제적인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감리회의 발전은 교구제도와 경건한 신앙을 고수하는 데 있었다. 존 웨슬리의 인격 ·조직력 ·지도력, 그리고 야외설교 ·평신도설교 등 꾸준한 복음활동 및 엄격하고 규율적인 생활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1791년 존 웨슬리가 서거하였을 때의 교세는 영국 전역에 확장, 잉글랜드를 본거지로 하였던 감리회 부흥운동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이르렀고 미국에서는 휘필드의 주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의 기본단위는 구역이며, 그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교회로 조직된다. 구역들은 지역적으로 지방회를 조직, 감리사가 피차 협동하여 교회조직과 사업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지방회는 다시 더 큰 집단을 형성하여 연회를 조직하며, 연회는 감독이 관할한다. 그리고 최고기관인 총회가 있다.
감리회 교리는 사도신경 속에 제시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다. 감리회의 특색은 교리보다도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며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감리회에는 모든 신도가 각기 행하지 않으면 안될 규율, 곧 규범이 있고, 25개조의 종교강령이 있으며, 이것은 감리회의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감리회 전도방법의 특색은 부흥설교를 통한 전도와 평신도를 통한 개인전도 및 심방전도이다.
감리회의 신앙과 교리는 존 웨슬리가 발표한 25개조의 종교강령과 그의 53개의 ‘표준설교’,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3. 침례교 [浸禮敎, Baptists]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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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교리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창설자·입법자로 내세우고 침례(浸禮)와 성찬을 의식으로 삼으나 의식은 상징적인 것일 뿐 구원에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보며 신약성서를 유일한 경전으로 삼고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내세운다.
1889년 캐나다의 독립선교사 M.펜윅이 토론토대학교 기독청년회의 후원으로 극동선교에 뜻을 품고 내한하여 포교를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펜윅은 서울·황해도 솔내[松川] ·함경도 원산(元山) 등지를 전전하며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1893년 일단 귀국하여 침례교로 전향한 후 1896년 다시 내한하였다.
원산에 본부를 두고 선교에 힘쓰던 중 1901년 재정난으로 한국에서 철수하는 엘라딩 기념 선교회의 충남 공주 ·강경 지역의 선교기반을 인수하여 자신의 한국 순회선교회와 병합하고 조직을 강화하였다. 1905년 공주에 성서학원을 설립, 목회자 양성에 힘쓰는 한편, 신명균에게 안수하여 원장에 임명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침례교 첫 목사의 탄생이었다.
1906년 강경에서 첫 회의를 열어 명칭을 '대한기독교회'라 하고, 초대 감독에 펜윅을 추대하였다. 원산에 본부를 두고 한국 전역에 걸쳐 선교사업을 벌이는 한편,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교세를 넓혔다. 1921년 일제의 강요로 명칭을 '동아(東亞)기독교회'로 개칭하였고, 1936년 펜윅이 사망한 후로는 일제의 교회탄압이 심하여 많은 순교자를 냈다.
광복 후인 1949년 '대한기독교침례회'로 되었으며 1950년 제40회 총회때 미국 남침례교 선교사 아버나티 부부가 내한하여 이들과 손잡으면서 선교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1959년에는 그 동안 분열 상태이던 대한기독교침례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가 다시 통합하였고, 1969년 재단법인이 설립된 후, 1976년 기독교한국침례회로 개칭되었다. 1951년 부산 침례병원 개설, 1954년 대전침례신학대학 설립(현 침례신학대학교), 1955년 《침례회보》 발행, 1979년 수도침례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점차적으로 교세를 확장해갔다.
2001년 현재 교회수 2,310개, 목사수 3,167명, 신도수 69만 2547명이다. 본부 소재지는 한국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 2동 115-1번지이다.
본문 | ||||||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원리(聖書原理) ·침례 ·만인사제(萬人司祭), 각 교회의 독립,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을 강조한다. 영국의 청교도(퓨리턴)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로 생겨났으며, 창시자는 J.스미스(1554?∼1612)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직자로 1608년 국교회의 압박을 피하여 동지들과 함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는데, 그 중 T.헬위스와 몇몇 동지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침례교회를 창설하였다. 아르미니우스파(派)의 입장을 취한 일반침례파와 칼뱅적 입장에 선 특수침례파의 구별이 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게 퍼져서, 현재 미국 최대의 교파를 이루고, 대소 27개의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는 1890년 캐나다의 M.위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함남 원산(元山)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것을 효시로 하여, 1905년 제1회 총회를 가지면서 보급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총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총회'의 두 그룹이 있었다. |
4. 기독교대한성결교회 [基督敎大韓聖潔敎會]
요약 한국 프로테스탄트계(系)의 교단.
설립연도
1907년
소재지
한국 서울 강남구 대치동 890-56
설립목적
하나님의 복음 전파, 영혼 구제
주요활동
선교, 교육기관 및 사회사업기관 운영, 해외선교활동
규모
교회 3,101개, 목사수 5,010명, 교인수 62만 3,813명(2001)
4중복음(四重福音), 즉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을 주요 명제(命題)로 삼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영혼 구제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본 도쿄[東京]에 있던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金相濬)·정빈(鄭彬) 두 사람이 1907년(융희 1) 동양선교회 선교사 C.E.카우만 부부와 E.A.킬보른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 염곡(鹽谷:현재의 武橋洞)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福音傳道館)'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본문
1911년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설립하고, 1921년에는 '기독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이듬해부터 기관지 《활천(活泉)》을 발간하였다. 그 후 유지재단(維持財團) 설립, 총회 조직 등 교세확장에 힘써 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구세군과 더불어 다른 교단보다도 심하게 탄압받아 강제해산되었으며, 많은 교역자와 신도가 순교하거나 추방당하고 또는 옥고를 치렀다.
8·15광복 후에 재건되어 1949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나 다시 6·25전쟁으로 많은 성직자가 납북되는 등 남다른 수난을 겪었다. 1951년 미국에 본부를 둔 동양선교회 주한선교부(駐韓宣敎部)가 활동을 개시하였고, 1957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관을 설립하는 등 많은 기념사업을 펼쳤다. 1961년 연합기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의 탈퇴문제로 일시 교단이 분열되었으나 1965년에 다시 합동을 이룩하고 교세확장에 힘썼다.
2001년 현재 교회 3,101개, 목사수 5,010명, 교인수 62만 3,813명이다. 교육기관으로 서울신학대학교가 있으며, 기타 사회사업기관이 있다. 한편, 인도·타이 등 해외선교활동도 활발하다. 기구편성은 총회·총회장 밑에 각 위원회와 학교법인·유지재단 등 많은 부서가 있고, 교단 산하에 해외·국내·특수전도·농어촌부를 비롯한 각종 부처가 있다. 본부 소재지는 한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890-56번지이다.
5. 순복음교회(오순절 교단)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基督敎大韓-聖會]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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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보통 순복음교회(純福音敎會)라고도 한다.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 삼위일체(三位一體)인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重生)·성령충만·신유(神癒)·재림(再臨) 등을 주요교리로 삼고 있다. |
6. 성공회 [聖公會, The Anglican Domain]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밖에 영국 국교회, 영국교회, 영국성공회, 잉글랜드교회, 앵글리컨처치라고 하며,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감독제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교회(Episcopal Church)라는 명 칭을 사용한다.
요약
영국의 국교회.
구분
영국교회
설립연도
1534년
소재지
영국
설립목적
로마 교회로부터 분리 독립
주요활동
종교활동
규모
영국의 성공회 및 세계의 성공회
↑ 세인트폴대성당 / 영국 런던 소재하는 영국 국교회. 중세 이후에 건립되었다. 1666년의 런던 대화재로 폐허가 되었으나 성당의 장대한 모습이 다시 복구되었다.
본문
영국에 처음으로 가톨릭이 전파된 것은 1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596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세(540∼604)가 어거스틴(?∼604)과 수도사 40명을 영국에 파견한 이후 로마가톨릭은 영국교회는 물론 정치적으로 영국을 지배하였으며, 교회법정에서는 국가의 사법권을 대행하였다. 성공회의 개혁은 헨리 8세(1491∼ 1547)와 캐서린 왕비의 결혼무효소송으로 시작되었다.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이 소송을 거절하자, 헨리 8세는 의회를 소집하여 1534년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 을 발표한 데 이어,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하였다.
개혁은 대주교 크랜머에 의해 프로테스탄트적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크랜머는 1549년 성서적 요소를 회복시킨 공동기도서를 만들었다. 1553년 여왕 메리 1세(15 53~ 1558)가 로마가톨릭으로 복귀했으나,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즉위 후 종교개혁의 정착기를 맞이하였다. 1559년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포용하는 기도서를 제정하고 1563년 중용 노선을 추구하는 39개 신조를 발표하여 가톨릭적이며 개혁적인 성공회의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1570년 교황 비오5세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파문하자 성공회는 로마교회와 완전히 갈라섰다.
성공회는 온건한 칼뱅주의로, 성세·성체·고백·혼인·견진·종부·신품성사의 7성사를 행하며, 구약과 신약 66권 외에 외경(外經) 14권을 준정경(準正經)으로 삼고 있다. 신앙의 판단은 성서와 이성, 전통에 의거하며, 다음의 람베드-시카 고 4개 조항을 신앙적 기준으로 삼는다.
① 구약과 신약 66권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이다. ②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은 그리스도신앙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선언이다. ③ 세례와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두 가지 성사다. ④ 역사적 주교직은 교회의 일치를 위한 적절한 처리방법이며,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성직에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 계급이 있다. 네 개 이상의 교구가 있으면 관구를 형성할 수 있고, 교구는 많은 전도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도구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교회가 속해 있다.
근세 영국의 해외 진출에 따라 성공회는 북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 니아로 확대되었으며, 대표 주교인 캔터베리 대주교관구와 통공(通共)관계에 있 는 모든 교회를 일컫게 되었다. 세계성공회는 중앙헌법이나 연방적 통치의 체제 를 갖지 않으며, 독립관구가 되지 못하여 캔터베리 대주교 관할 하에 있는 소수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성공회는, 나라마다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립 적인 헌장과 교회법 체계를 갖추어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7. 그리스도교회 [Churches of Christ]
1807년 장로교 출신의 토마스 캠벨이 주창한 환원운동에 근원을 둔다. 환원운동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신앙운동으로,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인위적 신조나 전승들을 거부하였다. 이들은 침례를 주장하였으며, 개체교회 이외의 어떠한 교회적 권위도 부정하였다. 매주일 성찬식을 행하였으며, 그리스도인 연합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교회 내의 호칭도 목사, 장로 등을 거부하고 형제, 제자, 그리스도인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다
요약
미국에서 생성된 그리스도교의 교파.
구분
그리스도교 교파
설립연도
1807년
소재지
미국
설립목적
초대교회로의 회복
본문
초기에는 침례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개혁주의적 침례파와 연합하였으나, 1827년 침례파와 결별하고 제자파(Disciples)를 독자적으로 조직했다. 1831년 서부 지역에서 신앙운동을 벌이던 B.W.스톤의 그리스도교회와 연합하여 활발한 전도활동을 벌였다. 1849년에 첫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미국 그리스도선교회(American Missionary Society)가 창립되었다.
그러나 1906년에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 두 개의 파로 나뉘었다. 보수적 교회는 예배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무악기파 그리스도의 교회, 진보적 교회는 악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유악기파 그리스도의 교회로 불렸다.
1927년 유악기파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시 분열하였는데, 다른 교단에서 들어오는 비침례교인의 입교문제를 놓고 개방입장과 보수입장으로 나뉘어 보수적 교회들이 복아메리카 그리스도인 총회를 조직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극단적 보수주의의 무악기파, 중립적 독립파, 개방적 협력파 등 셋으로 나뉘었다.
한국은 1974년 3월 한국그리스도의교회선언이 발표되었고 유악기파와 무악기파로 크게 구분되어 교세를 확장해가고 있다.
8. 구세군 [救世軍, Salvation Army]
1865년 7월 2일 런던에서 당시 감리교(監理敎) 목사이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와 그의 부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가 창시하였다. '그리스도교 전도회(Christian Mission)'라는 명칭으로 서민층을 상대로 동부지역 빈민가 등을 찾아가 노방(路蒡)전도를 한 데서 시작하였다. 각 군국(軍國)에는 사령관이 있고 지역사령부에는 지역사령관이 있다. 또한 군국마다 각 지방을 관장하는 지방장관이 있으며, 각 지방에는 소속된 영(營)이 있어 담당 사관이 복음선교와 예배, 지역사회 봉사사업을 지도한다. 영문(營門)에는 병사가 있는데, 이들은 구세군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의 죄악과 싸울 것을 다짐하고 병사로서 동참하고 있다.
요약
그리스도교 교파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창설한 교파.
설립연도
1865년 7월 2일
소재지
영국 런던
설립목적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전인적 구원
주요활동
복음선교, 예배, 자선 및 사회사업
본문
그리스도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교리를 가지고 선도와 교육, 가난구제, 기타 자선 및 사회사업을 통해 전인적 구원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1878년 구세군으로 개칭하였다. 조직은 군대식 제도를 모방하고 교회를 국제적인 단일조직으로 하여 부스가 초대 대장이 되었다.
주요 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신구약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졌으며, 성서만을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의 표준으로 믿는다. ② 하느님만을 만물의 창조자요 보존자요 통치자로 믿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③ 하느님 안에 성부·성자·성령의 3위가 있는데, 본질상 동등하며 권능과 영광으로도 동등함을 믿는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는 신·인성(神人性)이 합쳐 있어 예수는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임을 믿는다. 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느님의 진노의 대상의 실존임을 믿는다. ⑥ 예수의 죽음은 만인의 죄를 대속한 은총이므로,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⑦ 구원의 조건은 하느님께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새로 나는 것이다.
⑧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마다 구원의 체험을 갖게 됨을 믿는다. ⑨ 구원 상태의 지속은 순종하는 믿음을 계속 가져야 한다. ⑩ 예수의 재림을 믿으며 신자는 그때까지 성결을 보전하게 됨을 특전으로 믿는다. ⑪ 영원한 생명은 현재적이요 미래적임을 믿으며 육체의 부활, 세상 끝의 총심판,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영원한 행복을 믿는다.
이상 11개 교리에서 신학적으로 하느님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서 연구하는 한편, 윤리면에서는 하느님에 관한 일반적 지식[神認識]은 반드시 성서적 지식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하고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제규모의 복음전도와 각종 사회사업을 전개, 세계 80개국 나라에 1만 6000개의 전도센터가 있으며, 3,000여 개의 사회복지단체·기관·학교·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도 1908년 영국에서 파견된 로버트 호가트(Robert Hoggard) 정령(正領)이 이끄는 10여 명의 사관이 선교사업을 시작한 이래, 그 교세를 확장하는 한편, 의료선교 및 고아원·양로원·육아원 등을 경영하며, 그밖에도 교육기관을 통해 포교에 힘쓰고 있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에 이처럼 기독교가 여러 교파로 나뉘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파 통합을 이루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강행한다고 해도 많은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교파 통합보다는 교파 간의 협력과 화합을 도모하는 교파 연합이 가장 현실적인 교회일치운동의 방법입니다.
기독교 내에 여러 교파가 있는 것은 뿌리는 하나이나 그 위에 수많은 가지가 있는 나무처럼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위에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교파가 생긴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현재 우리 나라 개신교의 교단수는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단 분열은 신학적·교리적 노선차, 지역 갈등, 교권 다툼 등이 주요 원인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이처럼 교단이 나뉘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28에서 증거한 것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교단 분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들의 신앙관과 신학적 관점이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 교단 내에서 서로 갈등하며 지내기보다는 자신의 신앙에 맞는 교단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는 교단 분열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교단이 분열될수록 성도가 더 많이 늘어났다는 거죠. 그래서 혹자는 만일 한국 개신교가 하나의 교단으로 이루어졌다면 복음의 확장과 교회 성장이 이만큼 크게 이루어지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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