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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운주사는… “장보고의 추모 유적지”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20. 12:39

 

운주사는… “장보고의 추모 유적지”

(동아일보 06/11/16)

 


불상이냐, 사람의 모습을 조각한 석상이냐의 논란의 핵심에 있는 석불군. 주존불(오른쪽) 왼쪽에 입상들이 서 있는데 표정과 차림새가 모두 다르다.

《“운주사는 해상왕 장보고의 추모 유적지였다.” 특이한 문양(× ×× ◇), 홀수가 아닌 짝수(6층) 불탑, 항아리를 쌓아놓은 듯한 원구형 불탑, 부부를 연상시키는 250t의 와불(臥佛), 북두칠성에서 따온 7개의 대형 석판(칠성석), 등을 맞댄 두 불상을 모신 석조불감…. 천년 불가사의 ‘천불(千佛) 천탑(千塔)’을 품고 있는 전남 화순 운주사의 미스터리에 또 하나의 색다른 가설이 제기됐다. 해상왕 장보고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도선국사가 설계하고 그를 추종했던 재당(在唐) 신라인들이 축조했다는 추론이다. 소설가 최홍 씨는 최근 발간된 ‘한국의 불가사의-천년의 비밀 운주사’(바보새 펴냄)라는 책을 통해 ‘미륵신앙 기원설’, ‘몽골군 축조설’ ‘호족세력 건립설’ 등을 반박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 운주사(雲住寺) 아닌 운주사(運舟寺)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雲住寺)로 표기되어 있지만 1737년에 쓰인 ‘일봉암기(日封庵記)’, 1907년의 개천사 중수상량문 등에는 ‘운주(運舟)’라는 말이 나온다. 또 전래되고 있는 운주사의 여러 한자 이름 중에도 운주사(運舟寺)가 있다. 최 씨는 운주사의 주탑인 9층 석탑을 시발로 현재 남아 있는 17개의 탑을 직선으로 연결해 봤다. 그 결과 사찰 동쪽 산 위에 있는 5개의 탑을 뺀 12개의 탑이 4개의 돛대를 가진 배의 형상으로 드러났다(도형도 참조). 운주사 터에 위치한 8개의 탑을 연결하면 배의 윤곽이 나오고 그 선과 서쪽 산 위의 탑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면 돛대가 완성된다는 것.

 

최 씨는 북두칠성을 반대로 배열해 놓은 듯한 칠성석을 ‘바람에 흩날리는 배의 깃발’로 해석했다. 그는 또 와불에 이르는 길 주변에 배치된 주돛대와 보조돛대에 두툼하게 새겨진 ‘×’ 문양에 주시했다. 백제 송산리 6호 고분 내 아치형 전축분(塼築墳)에 사용된 ‘오수전 무늬 벽돌’이 ‘×’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 또 무령왕릉 내 벽돌에서도 ‘×’에 연꽃이 새겨진 ‘연꽃무늬 벽돌’이 있다는 것이 최 씨의 주장. ×를 ‘××××’처럼 연속으로 이어붙일 경우 중앙에 ‘마름모(◇)’가 만들어지는데 운주사 탑에는 유독 마름모 문양이 많다. 최 씨는 신라시대 죽은 사람을 화장해 뼈를 담는 골호(骨壺)에 마름모 문양이 새겨진 것에 착안해 ‘◇나 ×’ 문양은 모두 죽음이나 무덤과 관련이 있다는 논지를 폈다.

 

최 씨는 추모의 대상이 절 서쪽 산등성이에 위치한 와불이라고 결론짓는다. 말이 와불이지 사실은 불상이 아닌 부부를 형상화했다는 것. “백제에 영향을 준 중국의 남조시대 능묘는 부부를 반드시 합장했고, 이때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배치했는데 운주사의 와상도 이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결론. 와불은 과연 누구인가란 질문만 남는다. 북두칠성이 전통적으로 왕권을 상징했다는 점, 거대한 유적을 남겼다는 점을 들어 최 씨는 와불이 왕이나 군주에 해당하며, 운주사 설화들에서 언급하는 도선국사와 관련 있는 인물, 장보고라고 추정한다. 도선국사는 827년생, 장보고의 암살 시기는 841년이었고, 도선국사의 출생지가 전남 영암이었다는 점을 가설의 근거로 제시했다.

 

○ ‘진실은 어디에’

최 씨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가설에 가설을 이어붙이다 보니 논리적 취약성도 적지 않다. 2004년 ‘몽골군 축조론’을 주장했던 소설가 정동주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 ‘◇’ 문양 등은 몽골 지역에서, 석불도 중앙아시아 튀르크 지역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며 “고대 문양사 측면에서 봐야지 ‘우리’라는 울타리에 천불 천탑을 가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운주사 측은 공식 홈페이지(www.unjusa.org)를 통해 “아마도 천불 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운주사 주지 정행 스님은 “문헌 자료가 없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다각도에서 해석을 하고 있다”며 “장보고의 유적지라는 최 씨의 주장도 그중 하나로 다양한 해석과 연구가 이뤄지는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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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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