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은 고대史 비밀 푸는 열쇠 (동아일보 07/10/17)
최근 충남 태안군 대섬 앞바다 청자 운반선에서 화물 꼬리표로 쓰인 고려시대 목간(木簡)이 처음 발견되면서 고대의 비밀을 간직한 목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본보 12일자 A13면 참조
목간은 좁고 길게 다듬은 나무판에 글씨를 쓴 것. 고대인의 삶을 생생히 보여 주는 기록유물이다. 1975년 경북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경주 월성 해자, 충남 부여 궁남지, 경남 함안 성산산성 등에서 신라와 백제 목간 400여 점이 출토됐다.
그러나 중국 일본에 비해 국내에서 발견된 목간의 수는 적으며 체계적인 연구도 부족한 실정. 우리 목간을 종이가 발견되기 전에 사용된 기록수단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목간은 중국 죽간(竹簡)과 달리 종이와 함께 쓰였다. 종이가 최고급품으로 귀했던 6세기경 목간이 종이 문서의 일부 기능을 담당한 것이다.
종이와 함께 쓰인 목간이 왜 고대사회의 비밀을 간직한 보물창고로 여겨질까.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기록된 종이 문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과 일본 쇼소인(正倉院·왕실 유물 창고)에 남아 있는 신라 촌락 문서가 전부다. 고대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200∼300년 뒤 후대인이 기록한 2차 사료다. 이들 사료는 고대인의 일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비문과 같은 금석문도 법령, 왕의 행차, 축성, 승려의 일대기를 보여 주는 데 한정돼 있다. 목간엔 음식문화, 도시의 모습, 행정체계, 물품의 이동 경로뿐 아니라 연습용 글씨와 낙서까지 발견된다.
○ 음식문화
안압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식생활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목간이 발견됐다. 목간 전문가인 이용현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최근 계간지 ‘역사와 현실’(65호)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안압지 출토 목간 중 가오리를 뜻하는 가화어(加火魚) 등 다양한 식재료가 적힌 목간이 확인됐다.
목간은 식재료를 담은 단지에 붙은 꼬리표였다. 목간에는 식재료의 제작 시기와 가공지, 등급도 적혀 있어 고대에도 오늘날처럼 유효기간을 지키며 식품 유통을 철저히 관리했을 것이란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목간에선 젓갈이란 뜻의 ‘조사(助史)’, 액체류를 담는 용기 ‘부(缶)’, 통 모양의 두레박을 뜻하는 ‘관(罐)’이란 표기도 발견돼 흥미를 더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음식을 상하지 않도록 절인, 이른바 ‘통조림’ 형태의 항아리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하급관리의 일상
안압지에선 사람의 얼굴을 익살스럽게 그린 목간도 발견됐다. 목간 앞면에는 신라 하급관리를 뜻하는 ‘한사(韓舍)’를 여러 번 쓴 글씨가 확인됐다. 하급관리가 무료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 연습용 목간에 낙서를 한 것이다.
○ 도시 모습
목간은 오늘날 시군구와 같은 고대 도시의 행정구역을 추정할 단서도 제공한다. 백제 마지막 수도 부여 궁남지에서 발견된 목간에선 백제의 5부 아래 행정단위인 항(巷)의 존재가 확인됐다. 신라 궁성인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목간에서는 신라 왕경의 행정체제인 6부 아래 단위인 이(里)의 존재가 확인됐다. 자연적 지명뿐 아니라 상리(上里) 하리(下里) 신리(新里)처럼 인위적으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재편한 흔적도 나왔다.
○ 호적제도
궁남지 목간에선 이름 뒤에 21세 남성을 뜻하는 정(丁), 16세 이하를 나타내는 소(小), 20세 이하를 나타내는 중(中)이 확인됐다. 백제시대에 이미 연령별로 인력을 구분한 호적제도가 정비된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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