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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페르시아인들 新羅 이주' 담은 古代 이야기 찾았다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21. 14:59

 

'페르시아인들 新羅 이주' 담은 古代 이야기 찾았다

아랍권 11세기 서사시 '쿠쉬나메' 발굴
필사본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신라 공주와 결혼' 내용도… 당대 모습 밝혀줄 희귀 자료

아랍군의 공격으로 멸망한 페르시아 왕국의 유민들이 신라로 이주해 그 지도자가 신라 공주와 결혼한다는 내용의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가 발굴돼 주목을 끌고 있다. 한양대 이희수 교수(문화인류학)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서사시 '쿠쉬나메(Kush-nameh·쿠쉬 이야기)'를 발굴해 한국이슬람학회논총에 발표했다.

아랍권에서 '서사시의 전성시대'로 불리는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져 구전(口傳)되다 14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쿠쉬나메의 필사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이란에서 1998년 인쇄본이 출간됐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 국립박물관 큐레이터 다르유시 아크바르제데(Daryoosh Akbarzadeh) 박사에게서 쿠쉬나메에 대해 전해듣고 지난 7월
이란을 방문해 인쇄본을 입수했다. 이 교수는 "쿠쉬나메 전체 1만129절(節) 가운데 2011~5925절이 '신라[Shilla]' 또는 '바실라[Bashilla]'에 관한 내용"이라며 "아랍 문헌에선 신라를 '알신라[Alshilla]', 페르시아 문헌에선 '베실라[Beshilla]' 등으로 표기하는데, 지금까지 아랍·페르시아권에서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신라 관련 서술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쿠쉬나메'의 내용이 신라 관련이 맞을 경우, 고대 신라의 생활상과 신라·페르시아 관계사를 밝혀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라와 페르시아의 교류사를 알 수 있는 서사시‘쿠쉬나메’를 한국에 소개한 이희수 교수가 1998년 이란에서 출간된 책을 펼쳐보이고 있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쿠쉬나메의 줄거리

쿠쉬나메는 쿠쉬라는 무서운 영웅의 전설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시대배경은 사산왕조 페르시아(226~651)가 아랍의 공격으로 멸망한 이후이고, 페르시아 주민들을 이끌고
중국으로 피신한 쿠쉬가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신라 관련 부분은 쿠쉬의 어린 시절 후견인인 아비틴(Abtin)에 집중돼 있다.

산중에 버려진 쿠쉬를 거둬 키워준 페르시아 유민 지도자 아비틴은 위기에 몰리자 중국의 변방국가인 마친(Machin) 왕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직접 도움을 주는 대신 이웃의 신라 왕인 타이후르(Tayhur)를 추천해준다. 그러면서 신라는 낙원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침략을 받지 않은 나라라고 알려주며 추천 편지를 써준다. 배를 타고 신라에 도착한 페르시아 사람들은 마친 왕의 편지를 신라 왕에게 전달하고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신라에 정착한 아비틴은 신라 왕과 함께 사냥을 다니고 국정의 조언자로 활동한다. 아비틴은 신라 공주인 프라랑(Frarang)과의 결혼을 요청한다. 신라 왕은 프라랑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아비틴 앞에 비슷한 모습의 처녀 10명을 놓고 찾아내라고 말한다. 아비틴이 정확히 공주를 지목하자 왕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다. 공주가 임신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은 조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항해에 능숙한 신라인의 안내로 페르시아로 향하던 중 프라랑 공주는 왕자를 출산한다. 이 왕자는 훗날 아랍군을 물리치고 조상의 원수를 갚는다.

고증과 향후 연구과제

이희수 교수는 "쿠쉬나메에 묘사된 시대적 상황은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르시아 멸망 후 그 유민들이 중국 영토로 망명했지만 아랍과 외교관계를 맺은 당(唐)은 이들의 신라 망명을 주선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비틴' '쿠쉬' '타이후르' '프라랑 공주' 등은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현재는 쿠쉬나메의 대강 줄거리만 번역된 상태이지만 완역(完譯)하면 외부 시선으로 본 신라의 모습이 상당히 복원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쿠쉬나메 필사본 원본을 확인하고 이란 학자와 국내의 고대사 전공자 등 관련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