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경희대 교수
“한민족 기원은 시베리아 유목민이 아닌 고조선 농경민”
김상운 기자
입력 2015-06-11 03:00:00 수정 2015-06-11 03:00:00
아르잔 1호 고분-랴오둥 강상묘, 강인욱 경희대 교수 비교 분석
《 우리 민족의 조상이 시베리아 유목민이라는 북방기원설은 사실이 아니며, 기원전 8∼9세기 고조선이 동시대의 스키타이 문화와 대등한 수준에서 교류했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나왔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발생과 동북아시아의 청동기시대’ 논문에서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의 아르잔(Arzhan) 1호 고분과 중국 랴오둥(遼東) 반도 남쪽 끝에 있는 강상묘(崗上墓)를 비교 분석했다. 》
그에 따르면 아르잔 1호 고분은 기원전 9세기경 조성돼 흑해 연안보다 발생시기가 앞서는 스키타이 문명의 기원지. 그런데 비슷한 시기(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고조선 문화의 강상묘가 아르잔 1호 고분과 일부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사점은 두 고분 모두 한가운데 족장급의 무덤을 먼저 만든 뒤 이를 중심으로 친족이나 측근의 무덤을 방사형으로 배치한 ‘집단묘’ 형태라는 것이다. 예컨대 아르잔 1호 고분은 지름 120m, 높이 3∼4m의 대형 봉분 안에 통나무로 사방을 두른 목곽이 70여 개나 들어 있다. 이들은 중앙 목곽을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강상묘 역시 동서 19m, 남북 20m의 직사각형 무덤 안에 중앙 석곽묘를 중심으로 23개의 석곽이 들어서 있다. 강상묘에서는 총 144개체의 인골이 출토됐다.
중심부를 둘러싼 주변 묘역이 서로 다른 집단에 의해 점진적으로 채워진 점도 비슷하다. 특정 구역은 빈 공간이 많은 데 비해 다른 구역은 무덤을 조성할 공간이 부족해 목곽이나 석축을 덧댄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개별 구역에서 나온 청동기 등 부장품의 종류가 조금씩 다른 것도 여러 집단이 함께 무덤을 만든 사실을 뒷받침한다. 강 교수는 “두 문화권에서 느슨한 형태의 부족 간 통합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두 고분의 유사성은 고조선 문화권이 시베리아 주변 초원지대와 교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목민이 만든 아르잔 고분과 농경민이 조성한 강상묘는 2000km 넘게 떨어진 두 곳의 거리만큼이나 본질적으로 다른 구조를 지닌다. 아르잔 고분이 통나무로 주변을 두르고 측신굴신장(側身屈身葬·마치 말을 타는 형상처럼 피장자를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매장하는 것)의 매장법을 취한 반면, 강상묘는 돌로 석축을 쌓고 시신을 화장했다. 이는 두 문명이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존재한 별개의 문화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 시베리아 유목민이 한민족의 뿌리라는 북방기원설이 성립될 수 없는 셈이다.
기원전 8∼9세기 무렵 두 지역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회적 변환기를 맞았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흔적도 나왔다. 아르잔 고분과 강상묘에서 비파형동검처럼 발달된 청동기가 등장했고, 이후 조성된 무덤에서 권력집중이 심화되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발견된 것이다. 예컨대 아르잔 1호에 뒤이은 아르잔 2호 고분과 강상묘 다음의 누상묘(樓上墓)는 무덤의 전체 규모가 거대해졌지만, 내부의 무덤 수는 오히려 줄고 부장품은 더 풍부해졌다. 느슨한 부족연합체에서 특정 집단의 지배층으로 ‘권력 쏠림’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강 교수는 “기원전 8∼9세기 시베리아와 랴오둥 지역이 비슷한 사회발전 단계를 겪었다는 사실은 시베리아 유목민이 한민족의 기원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실증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시베리아 남부의 아르잔 1호 고분(위위 사진)과 랴오둥 반도의 강상묘 전경. 두 곳 모두 족장급 무덤을 중심으로 주변 무덤이 방사형으로 배치된 집단묘 형태를 띠고 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그에 따르면 아르잔 1호 고분은 기원전 9세기경 조성돼 흑해 연안보다 발생시기가 앞서는 스키타이 문명의 기원지. 그런데 비슷한 시기(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고조선 문화의 강상묘가 아르잔 1호 고분과 일부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사점은 두 고분 모두 한가운데 족장급의 무덤을 먼저 만든 뒤 이를 중심으로 친족이나 측근의 무덤을 방사형으로 배치한 ‘집단묘’ 형태라는 것이다. 예컨대 아르잔 1호 고분은 지름 120m, 높이 3∼4m의 대형 봉분 안에 통나무로 사방을 두른 목곽이 70여 개나 들어 있다. 이들은 중앙 목곽을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강상묘 역시 동서 19m, 남북 20m의 직사각형 무덤 안에 중앙 석곽묘를 중심으로 23개의 석곽이 들어서 있다. 강상묘에서는 총 144개체의 인골이 출토됐다.
중심부를 둘러싼 주변 묘역이 서로 다른 집단에 의해 점진적으로 채워진 점도 비슷하다. 특정 구역은 빈 공간이 많은 데 비해 다른 구역은 무덤을 조성할 공간이 부족해 목곽이나 석축을 덧댄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개별 구역에서 나온 청동기 등 부장품의 종류가 조금씩 다른 것도 여러 집단이 함께 무덤을 만든 사실을 뒷받침한다. 강 교수는 “두 문화권에서 느슨한 형태의 부족 간 통합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두 고분의 유사성은 고조선 문화권이 시베리아 주변 초원지대와 교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목민이 만든 아르잔 고분과 농경민이 조성한 강상묘는 2000km 넘게 떨어진 두 곳의 거리만큼이나 본질적으로 다른 구조를 지닌다. 아르잔 고분이 통나무로 주변을 두르고 측신굴신장(側身屈身葬·마치 말을 타는 형상처럼 피장자를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매장하는 것)의 매장법을 취한 반면, 강상묘는 돌로 석축을 쌓고 시신을 화장했다. 이는 두 문명이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존재한 별개의 문화권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 시베리아 유목민이 한민족의 뿌리라는 북방기원설이 성립될 수 없는 셈이다.
강 교수는 “기원전 8∼9세기 시베리아와 랴오둥 지역이 비슷한 사회발전 단계를 겪었다는 사실은 시베리아 유목민이 한민족의 기원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실증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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