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sr]산행,여행

암벽 위의 메테오라(Meteora) 수도원들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27. 16:15

암벽 위의 메테오라(Meteora) 수도원들

 

  

메테오라(Meteora)는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이라는 뜻으로, 바다속의 기암군이 형성되어 만들어진 지역입니다. 11세기이후로 중세의 수도사들은 일반인이 쉽게 근접할수 없는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이 곳 메테오라의 바위산 정상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숱한 어려움속에서도 15세기에 은둔의 극치를 보여주며 고립된 암벽 위에 24개나 되는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속세와의 차단을 위해 물자 보급과 사람들의 출입은 도르래를 이용해 끌어올리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메테오라의 고립된 수도원들은 그리 스 정교가 중세의 오토만 투르크의 그리스 점령(1453~1829)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종교적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를 살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16세기 프레스코화들은 비잔틴 후기 회화의 발전상을 살펴볼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치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천년의 풍상을 견뎌내고 지금도 바위 산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관은 198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 수도원들은 터는 비좁았지만 수도사의 개인 기도실과 물 탱크, 교회당, 휴게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도사들의 식당(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이 흥미를 끌고 있으며, 아기오스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1510년 세워졌으며 내부에 잘 보존된 프레스코화가 있음)과 아기아 모니 수도원(1315년경 세워짐)에는 수많은 필사본과 희귀본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도 있습니다.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한곳 만이 남아있으며, 대부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25년부터 바위를 깎아 진입도로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쉽게 출입할수 있게 되었으며, 특이하게도 여자들의 경우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치마를 입어야만 관람이 허용됩니다.  이 고립된 수도원의 정상에서 멀리 핀도스 산맥과 테살리안 평야를 내려다 보게 되면 수도사들이 왜 이곳을 은둔지로 선택했는지를 이해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대 메테오른 수도원(The Holy Monastery of Great Meteoron, Megalo Meteoro)  

아타나시오스에 의해 세워진 메테오라의 첫번째 수도원으로, 1382년이전부터 건립되어 수도사 요하사프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대 메테오른 수도원은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중 가장 크고 높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가장 오래된 수도원입니다.  이곳에는 14세기 중반에 세워진 24M 높이의 둥근 천정의 교회(Katholikon)가 있습니다. 4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본당이 있으며, 천정에는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기간 중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탄생과 변형, 십자가에 못박힘과 부활, 그리고 참혹한 죽음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본당 맞은편에는 이곳에서 사망한 수도사들의 해골과 뼈로 가득찬 방이 있습니다.

대 메테오른 수도원에는 이곳의 설립자인 수도사 아타나시오스와 요아사프의 검은 턱수염을 한 전신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그리스도의 삶을 비롯해 불가리아를 침략할 때 사용하던 고대의 성 데미트리우스의 창등 비잔틴 후기의 뛰어난 성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에 사용된 돔으로 된 식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상과 필사본, 판화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람 수도원(The Holy Monastery of Varlaam)  

발람 수도원은 메테오라에서 대 메테오른 수도원에 이어 두번째로 큰 수도원으로 1541년에서 1542년에 세워졌습니다. 은둔한 수도자 발람에 의해 세워졌으며,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발람 수도원이라 불리웠습니다. 이 수도원에도 세명의 주교를 기리는 돔으로 된 십자형 교회(katholikon)가 있으며, 벽면에는 1548년 잘 알려진 성화가(1780년에 복원됨)인 프랑고스 카텔라노스가 그린 성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교회 북쪽에 있는 오래 된 식당은 1627년에 세워졌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복잡하게 조각된 목조 십자가와 성골함, 성화 등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수도원(The Holy Monastery of St. Stephen) 

다른 수도원들과 비교해 작은 편이지만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다른 수도원들에 비하면 쉽게 도달할수 있어서인지 현재 수녀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내부는 밝게 빛나고 대 메테오른이나 발람 수도원보다도 더 넓습니다. 이곳에는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1개의 작은 본당이 있는 성 스테파노스 교회가 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황금 잎새 조각상과 벽화, 오래된 성상들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역병을 피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녔던 것으로 보이는 성 카랄람보스의 성스러운 두상이 은그릇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루사노 수도원(The Holy Monastery of Rousanou)  

수녀로 개종한 성 바바라를 기리기 위해 14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1545년경 이오안니나에서 온 두 수도사 요하사프와 막시모스에 의해 확장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어 계곡 아래로 메테오라의 경관을 내려다 보기에 그만인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대한 포스터나 가이드북 등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위 위에 직접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그 벽이 약화되면서 루사노는 1980년에 황폐화되었습니다. 성 바바라를 기리는 16세기에 세워진 작은 십자형 교회가 있으며, 이곳에는 크레타인들이 그린 교회의 무자비한 수난을 묘사한 뛰어난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성 트리니티 수도원(The Monastery of Holy Trinity)  

가장 도달하기가 어려운 수도원으로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방문자들은 계곡을 건너서 바위를 지나 위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1981년 제임스 본드의 영화 "For Your Eyes only"의 클라이맥스 추격장면에 이 수도원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1476년 수도사 도메티우스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곳 교회에는 서투르게 그려진 벽화(200년후에 추가됨)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두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돔으로 된 이 교회는 1475년에서 1476년에 세워졌으며, 십자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트리니티 수도원은 정원과 구조물이 서로 분리되어 그림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멀리 눈으로 덮힌 핀도스 산맥이 바라다 보입니다.

 

성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The Holy Monastery of St. Nicholas Anapausas)  

카스트리키에서 메테오라로 가는 중에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수도원으로, 아나파프사로도 불리우는 성 니콜라스를 기리는 수도원입니다. 1388년에 세워져 1628년에 확장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상태가 악화되어 더 이상 일반에게는 개방되지 않고 있습니다. 16세기에 세워진 돔으로 된 작은 교회에는 크레타 화가 테오파네스가 1527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국'을 묘사한 가장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메테오라 안내  

 

방문시기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연중으로 방문할수 있지만 12월에서 3월까지는 습기가 많고 추운 편입니다. 최성수기는 7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로 몹시 붐비며, 5월에서 6월 사이가 가장 날씨도 좋고 그다지 혼잡하지 않으며, 요금도 비수기요금으로 적용되는 시기입니다.

 

교통편

아테네나 테살로니키, 트리칼라, 이오아니아 등에서 칼람바카(Kalambaka)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약 5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버스편은 아테네 터미널 B-(버스, 5시간 30분)-트리칼라-(30분)-칼람바카-메테오라로 연결하면 되고. 칼람바카 중앙광장에서 버스가 아기오 스테파노스나 대 메테호른 등으로 연결할수 있습니다.

기차편은 아테네나 테살로니키에서 출발해 라리사(Larissa)에서 갈아타고 갈수도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칼람바카까지 바로 가는 것은 현재 16:11 한편뿐이라, 오전에 출발하시려면 아테네-(2시간 30분)-라리사-(1시간 10분)-칼람바카로 연결해야 합니다. 아테네에서 07:20, 08:01, 08:30, 11:07에 라리사로 가는 기차가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출발한다면 오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리바디아와 람비아 사이의 멋진 산악풍경을 감상할수 있습니다.

 

복장

수도원은 소매가 없는 옷이나 길이가 짧은 복장등 노출이 심한 경우는 입장이 금지됩니다. 샌들이나 반바지 차림도 입장을 시켜주지 않으므로 복장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일반정보

메테오라 수도원 입장시 약간의 입장료가 필요하며, 개관시간은 보통 오전 9시에서 오후 7시까지며, 대 메테호른은 화요일, 바람은 금요일, 루사노는 수요일에 휴관하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숙소는 근교의 타운인 칼람바카나 카스트라키에서 숙박을 할수도 있지만 다른 곳들보다는 숙박비가 매우 비싼 편입니다. 자고리아나 할키디키 반도쪽에서 메테오라 여행을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 북쪽까지 여행할 계획이 없거나 시간이 없는 여행자라면 아테네에서 버스 투어로 다녀오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있는 여러 여행사에서 많은 투어상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군

 

 

현기증이 날 만큼 거대한 바위산 꼭대기에 세운 수도원, 그 풍경과 수사들의 생활이 많은 여행자들을 메테오라로 이끈다. 지난날 고독을 갈구했던 은둔 수사들이 이 일대로 옮겨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엄숙한 공간에서 삶의 의미와 영원한 신에 관한 명상에 잠겼다. 메테오라의 수도원에서는 초기 비잔틴 양식의 벽화, 아이콘, 삽화가 곁들여진 필사본, 목조 등 귀중한 작품들이 수없이 탄생되었다.

 

기암의 은둔 수도지
  핀두스 산맥의 기슭, 피니오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거대한 바위들이 수없이 솟아 색다른 광경을 자아낸다. 이 바위 탑들은 핀두스 산맥의 카르스트 지대가 피니오스 강과 그 지류에 깎여 생긴 골짜기에 있다.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깎여 골짜기가 생기지만 단단한 사암이나 역암 퇴적층은 그대로 남는다. 게다가 극심한 기후 작용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그대로 드러난 지형을 만들었다. 바위는 높이가 20~30m에서 400m까지 다양하며, 꼭대기의 형태도 평평한 것에서 뾰족한 것 등 그 수가 약 60개에 이른다.


  실제로 피니오스 협곡의 특이하고 장대한 지형은 세속과의 교류를 일체 끊고 오로지 신에게 기도하고 명상하는 일에 몰두하고자 했던 경건한 은둔 수사에게는 분명히 이상적인 수행지였다. 9세기경에 이미 미 곳에 정착한 은둔 수사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바위 기슭의 동굴이나 갈라진 바위 틈에서 살았는데, 두피아니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이 원초적인 은수(隱修) 형식을 간직하고 있다.


  1340년에 세르비아의 왕 스테판 듀산은 테살리아를 제압하고, 1346년에는 ‘세르비아인과 그리스인의 황제’임을 선언했다. 이 정치 변동기에 은둔 수사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메테오라의 바위산 꼭대기를 찾았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뜨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이처럼 고립된 땅이 은둔 수사들의 생활을 평온하게 지켜 왔다. 이윽고 공동 거주 체제가 정비되어 바위산 꼭대기에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좁은 바위 길과 가파른 계단, 또는 줄사다리나 도르래 없이는 절벽 위에 있는 수도원에 오를 수 없었다. 수사들은 이 수도원에서 적대자의 침략이나 약탈을 면하고, 전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냈다.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 해도, 이처럼 불편한 장소에 건물을 지으려면 강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메테오라의 수도원은 인간 생활의 경이로운 성과물이다.


  15~16세기에 절정기를 맞은 메테오라에는 24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그 지방의 왕이나 영주, 총주교들은 한결같이 갖가지 특권을 부여해 메테오라의 수도원을 보호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수도원은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을 비롯해 6개이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매력적인 초기 비잔틴 미술의 실체를 명확히 밝혀 주는 동시에 그리스 정교 수도원의 규율과 엄숙한 생활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수도원의 시초
  성아타나시오스와 후계자 성이오아사프, 두 사람은 메테오라 수도원의 역사상 중요한 은둔 수사로 꼽힌다. 아타나시오스는 14세기 초 아토스에서 이 곳으로 옮겨와,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을 메테오라의 ‘폭넓은 바위’ 정상에 건설했다. 이 곳은 1490년 메테오라에 있는 모든 수도원을 총괄하는 대수도원이 되어, ‘대(大)메테오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타나시오스가 1356년에 착수해, 1388년에 대략적인 완성을 본 그리스 십자형 평면의 성당은 16세기에 증축되어 지금과 같은 주성당 모습이 되었다.


  역대 수도원장들은 이 수도원의 송사를 충실히 이어받아 왔다. 성이오아사프는 세르비아 왕 스테판 듀산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했을 때 이미 수사로서 자신의 사명을 깊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통치 기간은 매우 짧았다. 1381년에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모든 삶을 신에게 바쳤다.


  이 수도원의 주성당에는 12각형으로 된 둥근 지붕이 덮여 있으며, 아토스에서 온 수사들이 전한 크레타 양식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익랑 서쪽 벽에 있는 아타나시오스와 이오아사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황금빛 아이코노스타시스(성장)도 설치되었다. 지난날의 대식당은 현재 아이콘이나 옛 필사본, 호화로운 전례용구와 자수가 놓인 제복 등을 진열하는 보물실로 쓰이고 있다. 아이콘 작품으로는 파나기아(더없이 성스러운)형 성모자 외에 [성모의 탄식], [예수의 수난] 등 14세기의 작품이 남아 있고, 성다니엘의 모습이 조각된 십자가 3개는 정교한 만듦새로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십자가를 제작하기 위해 한 수사가 14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프레스코화와 갖가지 보물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과 이웃한 바위산 꼭대기에는 바를라암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그 절벽에는 지난날 수도원으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줄사다리가 늘어뜨려져 있어, 중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4세기에 은둔 수사 생활을 했던 수도사 바를라암의 은소가 있던 곳으로, 16세기에 아파라스의 형제 테오파노스와 넥타리오스가 창설한 수도원이었다. 1544년에 주성당의 여러 성인 성당이 완성되었으며, 이 곳에 티바의 프랑코 카스텔라노스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크레타 양식으로 표현된 벽화에는 지상의 고통과 천상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모의 죽음]을 비롯해 종교적인 열정이 넘치는 강인한 인물상이 독창적으로 그려져 있다.

 

현관랑에 있는 프레스코화 제작에는 프랑코 외에 게오르기오스도 참가했다. 이 수도원에서는 주성당과 함께 부속 간호실, 굴뚝 연기에 그을린 부엌, 그야말로 보물실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들이 진열된 지난날의 넓은 식당도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보물실에는 갖가지 화려한 아이콘, 목조품, 전례용 자수천, 그리고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복음서 필사본 등이 소장되어 있다. 예배당에는 1637년에 그린 프레스코화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 중에서 루사누 수도원은 바위 모양에 맞게 건설되어 외관이 독특하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더욱 높아 보이게 하는 3층 건물의 수도원이 건설되었는데, 옛날에 이 곳으로 올라가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창설자는 아파라스의 이오아사프와 마키시모스라고 한다. 1545년에 주성당을 세우고, 이미 정비되어 있던 공동 거주 체제가 재편성되고 강화되었다. ‘예수의 영광’에 바쳐진 이 주성당에는 1560년에 제작된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으며, 수도원에는 중요한 필사본을 제작하는 곳도 있다. 기술을 배운 수사들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필사하고 삽화를 곁들여 금박 머리글자나 꽃 모양의 띠 등으로 장식해 갖가지 아름다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메테오라의 겨대한 기암들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작은 바위 위에는 성니콜라오스 수도원이 남아 있다. 니콜라오스는 이 곳의 자비로운 정숙함과 관련하여 ‘아나파브사스(고요를 가져오는 자)’라는 존경을 담은 호칭으로 불렸다. 이 수도원은 14세기에 라리사의 대주교이자 스타고이 니카노르 수도원의 총주교 대리였던 성디오니시오스가 창설했다. 이 곳의 주성당에는 훗날 크레타 섬 출신의 테오파네스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테오파네스는 초기 비잔틴 양식의 크레타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15~16세기에 아토스에서 일한 다음, 메테오라로 옮겨와 살았다. 인물의 진중한 동작과 명쾌한 표현에는 전체적으로 숭고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며, 이 양식은 후대 몇 세기에 걸쳐 계승되었다. 주성당의 현관랑이나 바깥 현관의 벽화 중에서 [최후의 심판], [성에프라임의 죽음], [낙원에서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아담]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고립의 수도원
  성스테파노스 수도원은 메테오라 계곡에서 동떨어진 바위 위에 세워졌다. 1192년의 명문에 홀로 은둔 생활을 하던 수도사 예레미아스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12세기에 수사가 정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수도원이 창설된 것은 1367년으로, 이 때 단신랑으로 이루어진 소형 바실리카 형식의 옛 주성당도 세워졌다. 18세기에 건립된 새로운 주성당에는 1398년에 이 수도원에 모신 성샤라람보스의 기적의 두개골이 안치되어 있다. 성샤라람보스는 스테파노스에 이어 이 수도원 제2의 수호성인이 된 인물이다. 성당 내에서 제실을 분리하려고 설치한 아이코노스타시스는 1814년의 작품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엄숙한 전례 의식은 제단을 중심으로 성직자들만이 아이모노스타시스의 보호 아래 몰래 집행되고, 그 외 사람들의 자리는 신랑에 한정된다. 성스테파노스 수도원은 1961년부터 여자 수도원으로 바뀌었다.


  성스테파노스 수도원 근처의 바위 꼭대기에 성트리아다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15세기 후반, 수도사 두메티오스가 창설한 이 수도원의 주성당은 그리스 십자형 평면에 둥근 지붕을 씌운 구조로서, 훗날 작은 둥근 지붕을 얹은 넓은 바깥 현관이 증설되었다. 수도원 입구에는 세례자 요한에게 바치는 원형 예배실이 있고, 거기에 1682년에 니코데모스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메테오라의 기암 지역 일대에는 이 밖에도 몇몇 수도원과 은둔 수도지가 남아 있는데, 오늘날에도 접근이 힘들고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몇 세기에 걸쳐 파괴되지 않고 전해져 오는 건축물이나 미술은 지극히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겸허하고 독실한 수사들이 메테오라에서 발견한 평안의 세계는 오늘날 매일 많은 관광객을 실은 채 찾아오는 버스와 자동차로 인해 어수선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수사들은 세속인을 엄격하게 멀리하는 아토스로 떠나 버렸다.  그러나 여행자가 귀로에 오르고 밤의 장막이 내린 메테오라는 유구한 고요에 감싸인다. 원래부터 메테오라는 세속에서 벗어나 지상 높은 곳에 있는, 세상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수도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