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金剛>은 불교경전인 화엄경에 "해동에 보살이 사는 금강산이 있다"고
기록된데 연유했다고 한다.
또 봄에는 온 산이 새 싹과 꽃에 뒤덮히므로 '금강산'이라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므로 '봉래산'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풍악산'
겨울에는 나뭇잎이 지면서 산세가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는 '개골산'이라 부르는
철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금강산을 보기 전에는 천하의 산수를 말하지 말라.'는 선조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 한마디가 금강산에 대한 평가를 압축하다고 생각한다
웅장한 산세와 신기한 절경, 숭고함의 정기, 금강산 숲의 아름다움 등이 어우러지는 신비와 절제의 미는
더 이상의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금강산을 이번에 다녀왔다.
다른 여행지와 달리 여러가지의 주의해야 할게 많아 솔직히 부담되는것도 많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았다.
첫째는 자유롭지 못한 북한땅이라는 거여서 모든게 일일히 허락을 받은 것만 가능하다는것,
둘째는 정해진 장소 이외에서는 촬영이 금지 되어 있다는것,
세번째는 우리가 무언가를 가르킬때 흔히 하는 손가락질을 조심해야한다는것,
네번째는 산행중의 화장실은 유료라는거였다.
무엇보다 비무장지대를 거쳐 북측 땅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왠만한 외국여행 때의 까다로운 출국심사, 입국심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드러운 입출국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아침 8시 정각에 압구정동에서 금강산을 향해 출발한 버스가 남측 CIQ, 북측CIQ를 통과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금강산에 도착해보니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또 여기서 타고간 대한민국버스로는 북측땅으로 들어갈 수 없는고로 북측에서 정해진 버스로 갈아타고 가서
금강산영역에 들어와서는 다시 현대관광사 직원이 함께 탑승하는 다른 버스를 또다시 갈아타는 번거로움 때문에
트렁크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런 불편과 막대한 금액이 북측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금강산 관광은
솔직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절차상의 문제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어쩌랴. 기왕에 왔으니... , 두번다시는 오지 않을 곳이니 꼼꼼이 보아 두는 수 밖엔.
현대직원들이 각버스에 안내직원으로 한명씩 탑승하는 버스앞에서,
안내는 여자직원만 있는게 아니고
남자직원도 관광안내를 맡아하는데 이들은 휴가이외에는 서울의 집에 갈 수도 없어
여기서 같은 일만 반복하며 몇달씩 지낸다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 이제까지의 불편을 싹 가시게 하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신선한 공기가 피부를 간지럽히고
주변의 산세는 나도 모르게 촬영을 유혹하고, (찍을 수 없는곳이라며 같이간 동료들이 촬영을 말렸음. 만일 촬영할 수 없는 곳에서 촬영할 경우 카메라를 압수당함)
구름속에 가려진 신비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금강산은 까다로웠던 모든 절차들을 단번에 잊게 만들었다.
이곳이 유일한 식당이며 금강산 관광지에서는 서울역 같은 곳이라고나 할 온정각이다.
여기서 호텔로 가는 버스,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 각기 나뉘어진 관광코스 입구까지 가는버스를 타는 정류장이 있다.
온정각 바로 코앞에 이렇게 버스정류장도 있다. 모두 현대에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호텔해금강 이었다.
이건 육로로 금강산 관광을 하기전 금강산을 오가던 유람선 해금강호를 현대에서 이렇게 호텔로 개조하여 숙소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숙소로 손색이 없이 훌륭했으며 욕실은 샤워시설도 완벽했고 불편함이 없는 호텔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금강산 산행이 시작되었다.
첫날은 구룡연 코스다.
구룡연 구역은 외금강의 으뜸가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며, 구룡폭포,비봉폭포, 무봉폭포,옥류담,연주담,상팔담등
폭포와 소들이 집중되어 있는 계곡이라 할 수 있다.
계곡사이 좁은 통행길 가장자리는 여지없이 모두 쇠파이프로 둘러놓고 계곡으로 내려가는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여기보이는 관광객들은 모두 우리 대한민국에서 간 관광객들.
계곡을 건너는 곳은 이런 출렁다리를 놓아 건너게 하는데 깊은계곡을 건널 때는 어지러움증도 ....
넓은 바위, 빼어난 경치 옆의 사람들이 쉬어 갈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이런 바위에
선전문구 같은 글귀들을 새겨 놓아 손가락질도 못하게 한다.
옥류동의 입구인 금강문이 'ㅅ'자모양으로 ....
그안의 돌계단을 빠져나가면 옥류동의 절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빛은 비취색으로 이렇게 맑은 물은 일찌기 본적이 없을 지경이다.
이물은 실제로 마구 떠먹어도 아무 지장이 없이 좋은 생수 그 자체였다.
실제로 물을 먹기위해 계곡가장자리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딱 두곳만 허용하고 있었는데
관관객들중 생수병을 들고 내려가서 물을 담아오길래 나도 병안에 남은 물을 버리고 이물을 떠서 먹었다.
물맛은 최고였다.
이 옥류동 계곡의 물속은 너무 깨끗해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생수 속에 생명체가 살 수 없듯이..
천화대와 옥류봉, 세존봉등 서로 마주하며 옥류동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골짜기 안의 풍경은 더없이 황홀했다.
세존봉의 높은 중턱에서부터 층층으로된 한장의 바위벽을 타고 얇게 떨어지는 이 폭포를 비봉폭포라 한다.
'봉황새가 창공을 향하여 은빛날개를 펴고 긴 꼬리를 휘저으며 나는것 같다하여 비봉폭포라 한다'고
북녘의 안내원이 설명하지만 내눈엔 도무지....
이제 구룡연 코스의 하일라이트인 구룡폭포를 보자.
이 구룡폭포의 높이는 150여미터나 되고 너비는 4미터 정도라 하며 수량이 풍부한 폭포라 한다.
구정봉이 뒤를 감싸고 양옆으로 세존봉이 둘러쳐진 하나의 거대한 통바위에서 비단필을 풀어놓은듯
하다하여 에로 부터 이 폭포를 구경하기위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곳을 찿아왔었다는 이 구룡폭포.
신라 최치원의 시와 조선시대의 화가 겸재 정선도 이 구룡폭포를 그리고 노래한 것이 그들의 대표작 아니던가
폭포를 받는 아래의 못을 '구룡연'이라고 부르며
시퍼런 물이 마치 용이 조화를 부리는것 같다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구룡폭포를 구경하기위해 지어놓은 정자가 '관폭정'이다.
구룡연 코스를 구경하다 보면 이렇게 신비로운 소를 많이 보게 된다.
연주담, 상팔담등이 모두 구룡폭포와 연계되어 있는것이다.
옛부터 관동팔경중의 하나로 여기 삼일포가 꼽힌다.
온정리에서 버스를 타고 약3,40분이면 닿는 이곳은 담수호로 둘레는 8km정도 되는 비교적 큰 호수였다.
1947년에 위락시설을 갖추고 보트놀이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보트 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호수의 전경이 보이는 전망대로 오르면 장군대가 있다.
이 곳은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이곳 삼일포를 찿은 걸 기념하여
충성각이라 붙이고 단풍관이란 수준급의 식당도 들어섰다.
금강산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인 '금강송'이다.
이 소나무는 이름이 5가지나 있는데 5가지의 이름을 한번 듣고 외울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는 현대 직원의 익살로
나는 기어이 다 외울 수 있었다.
금강산에만 있는 소나무라고 '금강송'
매우 아름답게 죽죽 뻗었다하여 '미인송'
임금님이 돌아가시면 입관하는 관을 짠다하여 '황장목'
겉의 색이 붉다하여 '적송'
혹은 붉은색이니 '홍송'
이런 5가지의 명칭은 그자리에서 외워야지 어디에서도 찿을 수 없었다.
저녁식사 후는 그 유명한 북한의 교예관람이 있었다
사실 난 서커스 같은거는 관심도 없었고 특히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때문에 흥미도 없었다.
그런 나를 확 사로 잡은게 실제로 본 그들의 교예였다.
인간의 몸으로 그렇게 차원 높은 기술을 나타낸다는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거의 환상적인 예술 이었다.
특히 저들의 공훈배우 남녀 한쌍이
실제로 연주하는 악단의 서정적이고도 잔잔하며 애닲은 멜로디에 맞춰
수직으로 내려온 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공중에서 펼치는 우아한 발레는
저들이 인간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수준 높은 몸짓으로 환상 그 자체를 선사했다.
공연모습은 촬영 금지여서 끝난 후 인사할 때 찍을 수 있었다.
흰색 발레복 차림의 두 남녀가 그 주인공.
이들은 실제로 대단히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다고..불쌍하게 생각지 말라고 했다.
온정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들의 숙소가 있었는데,
숲속에 펜션같은 좋은 벽돌집이었고 자가용도 있다고 한다.
모든 교예단원들이 끝난 후 인사를 하며 손도 흔들고....
다음 날은 아침부터 만물상을 오르는 급경사 코스의 본격적인 등반이다.
자못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코스다.
너무 깎아지른듯 높으니 고소공포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된다는 이야기하며
아무나 못 간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더욱 겁나게 하는말은 중간쯤 가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포기를 할 경우, 포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번 갔으면 오로지 앞으로 오르기만 하고 내려오는 코스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길 두번 다시 올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맘을 독하게 먹고 완전 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총 14km이상되는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오르는길은 겨우 한두사람 정도 지날 수 있는 돌계단길,그리고 깍아지른 절벽을 올라야 할 때는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추측컨데 현대측에서 만든게 아닌지....
절경을 감상하며 제일 먼저 만난 건 달력등의 사진으로 만 보았던 삼선암이다.
나란히 선 세개의 바위가 깎아세운 듯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구름이 덮힐 때는 이 바위들이 움직인는것 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늘에서 세명의 신선이 내리는 듯 하다는 이 삼선암의 높이는 각각 30m를 넘는다고.
마치 도끼로 찍은듯 밑둥이 절개되었다 하여 이름붙인 절부암.
안심대에서 멀리 보이는 만물상
천선대가 조금만 더 오르면 나타나는데...
이미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너무 세차게 몸을 날려 버릴듯이 부는 바람이 두려움을 안긴다.
천선대에서 멀리 동해바다가 보였다.
천선대는 온통 돌로된 칼등 처럼 등 말기가 잘려나간 것 같기도 하고 아래로는 수백길 낭떨어지로 벼랑이 늘어서 있는데 만물상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만물상의 뛰어남 경치를 한 눈에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만물상은 금강산의 여러 코스중 깍아지른 층암 절벽과 온갖 형상의 기암 괴석들로 이루어진 산악미로 가장 인상적인 곳이라고 생각된다.
금강산의 다른 곳과는 달리 만물상의 바위들은 결이 세로로 난데다가 오랜 세월 풍화되어 매우 밝은 색의 바위산이다.
이러한 지질적 특성으로 하여 수십,수백길씩 솟아잇는 바위들이 서로 키자랑이나 하듯이 높이 솟아 있고 그 모습이
마치 천태만상 다르다하여 만물상이란 호칭이 붙었다 한다.
내가 본 만물상의 입체적인 경치는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절경이었다.
산행시간은 약4시간정도 걸렸지만 오르기전 몸도 나쁜 상태여서 포기할까 했었는데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독한 오기하나로 시작하니 못할게 없었다.
이번 금강산에서의 만물상 등반은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된 크나 큰 계기가 되었음을 우리 조블가족 여러분에게 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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