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곡식과 풍요'라는 뜻이란다. '안나'는 물이 풍부한 것을, '푸르나'는 생산을 높인다는 의미로 힌두교에서 농사와 관계된 여신을 의미한다. 인도 대륙과 티베트 고원을 동서로 가르고 흐르는 네팔 히말라야의 중심선에 안나푸르나의 제1봉(8,091m)을 비롯한 안나푸르나의 산군들이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마나슬루(8,156m)' 산군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다울라기리(8,167m)가 서로 연접하여 거대한 하나의 산군을 이루고 있다. 8,000m 이상의 고봉중에 열번째에 해당하며 8,000m가 넘는 고봉 14좌 중 인간의 발걸음을 처음으로 허락한 산이다. 일찍부터 교역로를 따라 트레킹 코스가 발달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안나푸르나 라운딩'은 안나푸르나 산군을 한 바퀴 크게 도는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코스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은 5,416m의 토롱라(Thorung La)다. 야카와캉(Yakawakang·6,482m)과 카퉁캉(Kathungkhang·6,484m) 사이로 넘어가는 이 고갯길은 티벳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낭'지역과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진 '무스탕' 지역을 양분한다.
폭포 아래서 그네를 타는 어린이들.
무작정 길을 떠나다
무작정 서울을 떠나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 것은 10월 9일이었다. 현지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동행할 포터 한명을 부탁한 뒤 혼자 생면부지의 오지인 안나푸르나를 향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5일. 그 중에서 서울에서 트레킹의 시작점인 베시사하르까지 이틀, 종착점인 나야풀에서 다시 서울까지 돌아오는데 이틀이 필요해서 트레킹은 단 11일 뿐이었다.
하루 20km에서 많게는 하루 35km를 혼자서 걷고 또 걸었다.
보통 3,000m가 넘으면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번 코스는 5,416m의 토롱라 패스가 있다. 이 곳을 무사히 넘는 것이 이번 산행의 관건이 될 터였다. 고산에서의 트레킹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문제와 싸워야하고 거리와 상관없이 하루 500m 이상 고도를 올릴 수 없다. 고소적응을 위해서 3,000m 정도에서 하루나 이틀을 쉬어야 하지만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안나푸르나'가 나를 안아주면 무사히 넘어갈 것이고 '안나푸르나'가 허락하지 않으면 되돌아갈 수 밖에...
지금부터 짧았지만 고통스러웠고 잊을 수 없는, 낮선 곳으로의 여정을 기록해 나가려 한다.
유럽에서 온 단체 트레커들이 쇠줄로 만든 구름다리를 지난다. 안나푸르나는 유럽 트레커들의 천국이다.
트레킹 시작점인 베시사하르에서 3시간쯤 걸으면 처음으로 안나푸르나의 설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마을 불불레에 도착한다.
마을 초입에 긴 구름다리도 처음 만난다. 처음 만난 구름다리에 잠시 흥분하기도 했지만
트래킹을 하는 동안 이런 구름다리는 수도 없이 지나게 된다.
"덩그렁, 덩그렁" 맨앞에 선 당나귀 목에 걸린 '워낭소리'가 정겹다.
윗마을로 윗마을로 삶에 필요한 물품을 나르는 당나귀 무리를 따라 길을 재촉한다.
당나귀의 무리의 이동속도는 매우 느린 것 같지만 결국은 그들을 앞질러 갈 수는 없다.
사과 말리기. 사과는 매우 작아서 탱자만 했다.
경사가 거의 없어 밋밋한 하루를 지나자 갑자기 낯선 풍경들이 날 끌어안는다.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사이에 마르샹디 나디(강)이 흐른다. 길을 계속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길을 걷다보면
마르샹디 강은 까마득한 절벽아래서 소용돌이 치며 흘러간다.
수백미터의 폭포들이 산 정상에서 바로 강물위로 낙하하는 꿈같은 장관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
베시사하르를 출발하여 토롱라 패스(5416m)를 넘어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하여 나야풀까지 보통 18일이 소요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는 매우 다양하고 잘 발달되어 있어 성수기인 10월부터 12월 사이에는 트레커들로 붐빈다. 짧은 '푼힐' 코스와 중간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 가장 긴 '안나푸르나 라운딩'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1. 푼힐(3,193m) 코스
푼힐 코스는 포카라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나야풀에서 시작한다. 힐레, 울레리를 지나 말들이 쉬어간다는 고라파니까지 가야한다. 힐레에서 울레리까지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심한 돌계단길이어서 매우 힘들다. 보통 힐레에서 하루를 자고 고라파니에 도착하면 다음날 오후가 된다. 3일째 새벽에 일어나 약 50분정도 걸어서 푼힐에 오르면 안나푸르나 산군과 다울라기리 산군의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다. 일출을 본 다음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하산. 내려오는 길은 하루면 충분하다. 고소 적응이 필요없어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2.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코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 역시 나야폴에서 시작한다.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데 4일, 하산에 3일 정도 소요되고 중간에 고소적응을 위해 3,000m 정도에서 하루를 쉬는 것이 좋다. 3,000m 이상 고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을 잡으면 고소증세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푼힐 코스와 묶어서 열흘 정도 잡으면 여유있는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지도에서 청색으로 표시된 루트)
3. 안나푸르나 라운딩(5,416m)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는 18일 이상이 소요되고 고소적응과 거리때문에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고소적응에 실패하거나 눈이 쌓여 등산로가 막히면 5,416m의 토롱라를 넘기 힘들다. 네팔 사람들이 진정한 샹그릴라의 땅이라고 부르는 마낭지역의 풍경과 은둔의 왕국으로 불리는 무스탕의 경이로운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은 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까?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는 트레커들은 대부분 베시사하르에서 출발하여 토롱라를 넘는 코스를 택한다. 물론 시계방향으로 도는 트레커들도 있지만......
안나푸르나 라운딩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토롱라를 넘을 때 시계 방향으로 넘으면 묵티나트(3,800m)에서 토롱라(5,416m)까지 하루에 1,600m 이상의 고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고소적응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 마지막 롯지가 있는 토롱패디(4,800m)에서 600m만 오르면 정상에 도달하고 바로 묵티나트로 하산하기 때문에 고소적응이 용이하다. 그래서 많은 트레커들이 시계반대방향을 택하게 된다.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하루 500m 이상 고도를 높이면 안되고 3,000m와 4,000m에서 반드시 하루정도 휴식을 해야한다.
여정
제1일 서울-카트만두
제2일 카트만두-베시사하르(카트만두에서 트레킹의 시작점인 베시사하르까지 자동차로 7시간 소요)
제3일 베시사하르-불불레-느가디-바훈단다-샹제
제4일 샹제-탈-다라파니-바가르찹
제5일 바가르찹-다나규-차메-브라탕-두쿠리포가리
제6일 두쿠리포가리-피상-훔데-브라가
제7일 브라가-마낭-군상-야크카르카
제8일 야크카르카-레타르-토롱페디
제9일 토롱페디-하이패스-토롱라-묵티나트
제10일 묵티나트-카그베니-좀솜-마르파-툭체-나르중
제11일 나르중-칼로파니-레테-다나-타토파니
제12일 타토파니-시카-고라파니
제13일 고라파니-푼힐-고라파니-울레리-힐레-나야폴-포카라
제14일 포카라-카트만두(경비행기 30분)
제15일 카트만두-서울
아침 6시, 산행 시작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처음에는 더위와 따가운 햇볕과의 싸움으로 시작됐다. 밤에는 선선하지만 해만 뜨면 땀이 등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한여름부터 한겨울 날씨를 겪어야 한다. 둘째날부터 작전을 바꾼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지않고 세면도 하지않은 채 해뜨기 전까지 두시간 정도 열심히 걷기로 했다. 새벽에 두시간을 걷고 아침 먹고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정도 진행하면 계획한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많아서 더위를 느낄 때 쯤 길가에 베낭을 벗어두고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다. 두시간 걷고 처음 만나는 롯지에서 아침을 먹었다.
밀크차 한잔에 마늘 수프, 달걀과 함께 볶은 '달밧(Dal Bhat)'을 주로 먹었다. 달밧은 네팔 다락논에서 수확한 쌀로 만든 밥이다. 네팔 사람들의 주식이나 다름없는데 월남쌀처럼 찰기가 없고 모래처럼 쉽게 부서졌다. 여러번 먹다보니 달밧도 입맛에 맞았다.
아침을 먹으면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햇볕에 말린다. 아침식사가 끝날 쯤이면 바짝 마른다. 이렇게 식사 시간때마다 신발을 말렸다. 나와 한나절을 동행했던 일본 트레커는 베낭 뒤에 빨래집게로 양말과 속옷을 메달아 말렸다.
트레킹 시작 4일째가 되면서 고도가 3,000m를 넘는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추위가 느껴졌다.
구룽족들이 주로 산다는 람중 지역이 끝나고 티벳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낭(Manang) 지역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작은 비행장이 있는 훔데를 지나면 가파른 산길을 만난다. 이 비탈길이 끝나면 야크와 염소 무리가 풀을 뜯는 넓은 초원지대가 나온다. 동쪽으로는 첨탑처럼 뾰쪽하게 솟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서쪽은 마르샹디 계곡을 따라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가 역시 바위산에 막혔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고목나무 아래에는 서낭당처럼 돌탑이 서 있었다.
트레킹 4일째는 두쿠리포가리(3060m)에 묶었다. 두쿠리포가리(3060m)에서는 '안나푸르나Ⅱ'의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낭 아랫동네인 브라가(Braga, 3,360m)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브라가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경이 바뀐다.
침엽수림과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 작은마을 브라가가 멀리 보이면서부터 키가 높은 나무숲은 사라지고 넓은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안나푸르나의 산꼭대기 빙하가 녹아 폭포를 이루며 거침없이 쏟아져 내려오던 마르샹디강의 계곡물도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곳이다.
마낭의 가을 풍경
마낭(Manang, 3,540m)까지 가려던 계획을 바꿔 브라가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저녁 햇살에 주변풍경도 카메라에 담고 내일 아침에는 마낭으로 가면서 아침 햇살을 받은 풍경들을 찍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낭까지는 1시간 거리다.
겨우 롯지를 잡아 짐만 내려놓고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브라가 주변에는 트레커들을 위한 롯지 몇개를 빼고는 티벳에서 중국의 핍박을 피해나온 난민들이 모여사는 전통적인 티벳마을들과 바위산위에 곰파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 봐도 퇴락한 마을과 전원적인 풍경과 달리 그 속에서 팍팍한 삶을 꾸리는 난민들의 생활이 들여다 보인다.
산에서 땔감을 구해 집으로 돌아오는 아낙들과 마을 앞에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우리의 어릴 적 모습과 너무 닮았다.
나는 옴짝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히말라야의 대자연속에 포개진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지금 얼마나 아늑함을 느낄까? 편안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도 지금 그들의 공간에 몰입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5일째.
이른 아침 브라가를 출발했다.
마낭으로 향하면서 뒤돌아본 브라가의 모습.
브라가를 출발해 마낭까지 오는 길은 경사가 없고 넓은 신작로 같았지만 숨이 가파왔다.
비로소 고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상적인 트레킹이라면 마낭에서 하루를 쉬어 고소에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마낭(3,540m)에서부터 야크카르카(Yak Kharka, 4,018m)까지는 거리는 멀지 않지만 본격적인 고소적응의 관건이 되는 구간이다. 최대한 속도를 줄이고 쉬는 시간을 늘렸다. 하루도 쉴 수 없으므로.
제법 크고 고풍찬란한 롯지들이 줄지어 서있는 마낭의 가운데 골목을 지나 급한 경사로를 오르니 마낭이 한 눈에 보이고 마르샹디 강의 흐름도 한 눈에 잡힌다. 마을 아래로 밭뙈기들과 목장 울타리도 보였다.
안나푸르나의 일부인 '룽다'와 '타르초'
그러나 마낭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을 전체를 뒤덮은 '룽다'와 '타르초'였다.
'룽다'란 바람이란 뜻의 룽과 말(馬)이란 뜻인 다가 합쳐진 티베트 말로 말 갈퀴가 휘날리는 모습을 의미한다. 긴 장대에 깃발을 매달아서 집집마다 지붕위로 서너개의 룽다가 펄럭인다.
'타르초'는 긴 줄에 정사각형의 깃발을 줄줄이 이어놓은 것으로 만국기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룽다와 타르초는 우주의 다섯 가지 원소를 상징하는 청, 백, 홍, 녹, 황색의 천에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만트라 경문이 가득 씌어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히말라야의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에 퍼져 모든 중생이 고통없는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히말라야의 기원이 담긴 것이다.
안나푸르나에서는 언덕위에서나 마을의 지붕위 어디서나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나푸르나 사람들에게 룽다와 타르초는 삶의 한 부분이며 신앙에 다름아니다.
"안나푸르나에는 향수(鄕愁)같은 게 있어"
"안나푸르나에는 향수(鄕愁)같은 게 있어"
"한 번이라도 안나푸르나에 발을 들여 놓으면 또 가지 않고는 못 견디지"
혼자 '에베레스트 트래킹'을 해보겠다는 나를 보고 벌써 다섯번이나 안나푸르나에 갔다 온 산 선배가
마낭의 가을 풍경을 회상했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반사하며 꿈처럼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 본 사람이라면
어찌 그 향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네팔 사람들이 마낭을 왜 진정한 '샹그릴라의 땅'이라고 불렀는 지 알 것 같았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6일째 시작이다.
지난 밤은 야크를 놓아 기르는 목장이라는 뜻을 가진 '야크카르카(Yak Kharka, 4,018m)에서 하루를 묵었다.
마낭(Manang, 3,540m)부터는 롯지가 만원이었다.
마낭 주변은 경치도 뛰어나고 토롱라를 향한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늦게 도착하는 트레커들은 숙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야크카르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쯤이었는데 벌써 롯지들은 만원이었다. 독일에서 온 부부 트레커와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맨 바닥에 침대가 다섯 개 있는 큰 방이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은 베시사하르에서 출발 나야풀까지 안나푸르나 산군을 돌아오는
약 250km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다.
어제 마낭(Manang, 3,540m)을 지나면서부터는 고소에 대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급한 경사길이 자주 나타나면서 오르막에서는 숨이 차기 시작하고 걷는 속도도 많이 느려졌다. 마낭에서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를 쉬었어야 하는데 쉬지 못해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질까 걱정이 됐다. 야크카르카에 도착하자마자 고소적응을 위해 베낭을 벗어두고 롯지 뒤에 있는 봉우리로 올라갔다. 롯지에서 고도가 200m쯤 될 것 같다. 200m를 올리는데 3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고소에 대한 느낌이 확 달려든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비아그라 한 알을 반으로 나눠 반을 삼켰다.
고산을 많이 다녔던 산 선배들이 고소증세에 특효라며 비아그라를 꼭 가져가라고 했다. 이렇게 높은 산에 혼자 올라와서 비아그라를 먹게 되다니... 그 후에도 토롱페디에서 잠자기 전에 한 알, 새벽에 토롱라로 출발하면서 다시 한 알을 삼켰다.
어쨌든 비아그라 먹고 무사히 토롱라를 넘었으니 고소증세에 비아그라가 특효라는 선배들의 경험을 임상실험을 통해서 증명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나의 비아그라 첫 임상실험은 또 다른 확신을 갖게 했다.
비아그라가 고소증세에는 특효약이었지만 원래 생각했던 비아그라 약효는 전혀 없더라는 것.
야크카르카에서 본 안나푸르나의 아침. 산 위로 보름달이 지고 있다.
'타르초' 네팔인들의 신앙이 묻어있다.
야크카르카에서 토롱페디로 가는 길의 구름다리.
안나푸르나의 빙하들. 멀리서도 빙하가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토롱페디 가는 길의 롯지 Ledar.
롯지 지붕위에서 트레커들과 포터들이 설산을 배경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은 안나푸르나 라운딩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토롱라(Thorung La Pass, 5,416m)를 넘기 전 마지막 롯지인 토롱페디(Thorung Phedi, 4,450m)가 목적지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토롱라를 무사히 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날이다.
야크카르카의 새벽은 추웠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쌌다. 포터를 깨워 15kg디는 짐을 맡겨 토롱페디로 출발시켰다. 포터를 먼저 보내면서 토롱페디에 방이 없으면 마루든 식당이든 화장실 바닥이든 무조건 잠자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부탁아닌 협박을 했다.
시즌에는 많은 트레커들로 붐비기 때문에 너무 늦게 올라가면 숙소가 없어 난감한 경우도 있었다. 토롱페디에서 숙소를 잡지 못하면 고도가 500m나 높은 하이캠프(4,925m)까지 가거나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할 지도 모른다.
거리로는 하루에 충분히 갈 수 있지만 고소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하이캠프까지 900m를 올린다는 것은 바로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토롱페디로 가는 길.
산사태 지역의 외길. 이 길 끝에 토롱페디 롯지가 있다.
마르샹디 나디(강)의 원류가 되는 협곡 위로 실핏줄같은 길이 수천년 전부터
네팔인의 삶을 연결해왔던 길이다.
토롱페디(Thorung Phedi, 4,450m)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긴 돌길을 따라 토롱페디 입구에 도착하니 포터인 기리가 롯지 벽에 몸을 기대고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많이 지쳤구나. 기리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하루도 쉬지 못하고 엿새를 강행군 했으니 좋은 고객이 걸린 건 아니었을 것이다.
"방 잡았니?"
"방이 없다는데....."
"뭐? 지금 농담하니? 아무데나 잡아놓으라고 했잖아"
"방은 없는데 괜찮으면 여기서 자도 된대"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트레킹 가이드들의 방으로 맨 바닥에 침대를 놓은 허름한 방이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화장실 바닥도 아니고 어차피 내일 새벽 3시에 출발해야 했으므로 숙소에 마음 쓸 필요가 없었다.
토롱페디(Thorung Phedi, 4,450m)는 토롱라(Thorung La, 5,416m)를 넘기 위한 사실상의 마지막 캠프이다. Thorung Phedi의 Phedi는 고개의 뿌리(Foot of the Hill)라는 의미라고 하니 여기가 Thorung La의 시작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침대에 베낭을 내려놓고 카메라만 들고 나왔다.
하이캠프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요량이었다. 고소적응도 해야 하고 내일 새벽에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주변 사진을 찍기에도 좋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롯지에서 하이캠프까지는 거리는 멀지 않아도 고도차가 500m인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였다.
잔 자갈길이라 밑으로 돌이 구르면 멈추지 않고 아래까지 굴러 떨어졌다. 다섯 걸음 걷고 쉬고 다섯 걸음 걷고 또 쉬었다.
토롱페디의 롯지 식당. 유럽 트레커들이 대부분이다.
하이캠프에서 토롱페디로 다시 내려오니 토롱페디의 롯지 식당은 발디딜 틈도 없이 트레커들과 가이드, 포터들로 붐볐다. 트레커들은 롯지에 도착하면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식당에 모여 낯선 사람들과 여행이야기를 하거나 독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차 한잔 마신 뒤 어두워지면 각자 방으로 돌아간다.
토롱페디 식당에는 100여명의 트레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현지인들을 빼고는 동양인 트레커는 나 혼자였다.
마늘 수프와 달밧으로 저녁을 먹고 새벽 3시에 출발하겠다며 마늘 수프와 뜨거운 물 1리터를 예약한 뒤 방으로 돌아왔다. 마늘 수프는 입맛에도 맞았지만 고소증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매 끼니마다 주문을 했다. 주둥이가 큰 날진 물통에 채운 뜨거운 물은 여러가지로 유용했다. 커버가 된 날진 물병에 뜨거운 물병을 채워 침낭에 넣고 자면 새벽까지 온기가 남아 있어서 난방이 없는 롯지에서 따듯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물은 다음날 식수로 사용한다.
한 밤에 포터 기리가 방으로 찾아왔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비상약으로 넣어간 타이레놀을 줬다. 비아그라 한 알을 반으로 나눠 반은 잠자기 전에 먹고 반은 새벽에 출발하면서 먹으라고 줬다. 기리는 나보다 하루 먼저 고소증세를 보였고 많이 지쳐 있었다. 하산길에도 지친 기리 때문에 몸 고생과 마음 고생을 하게 됐지만 착하고 순진했다. 세 살 난 아들이 있는 스무살의 가장이었다.
바람소리는 점점 세지고 있었다.
새벽은 아직 멀었는데 머리는 쥐어짜는 듯이 아파오고 속은 메스꺼웠다. 뒤척여봐도 웅크려봐도 아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4,450m. 토롱페디의 밤은 그렇게 고통이었다.
새벽 3시.
안나푸르나 라운딩 7일째를 맞았다.
대망의 정상 토롱라를 향하는 날이다.
포터 기리가 점점 힘에 겨워하고 있어 그에게 맡겼던 짐 중 일부를 내 베낭으로 옮겨서 기리의 짐 무게를 줄여주었다. 어차피 둘 중 한명이라도 토롱라를 넘지 못하면 묵티나트로 가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할 처지였다.
짐을 넘겨주면서 기리에게 부탁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토롱라를 넘어.”
토롱라를 넘어가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기리를 먼저 출발시켰다. 이제 되돌아 오는 선택은 없어졌다. 어떻게든 토롱라를 넘는 수 밖에...
새벽 4시. 토롱페디 출발.
헤드랜턴을 켜고 어제 오후에 답사했던 하이캠프 가는 길을 다시 밟아 나갔다. 고소 증세와 베낭 무게 때문에 발이 자꾸 헛디뎌 지고 미끄러졌다. 5,000m의 고소에서는 공기중의 산소량이 거의 반으로 줄어든다. 낮은 곳에서도 비탈길을 오르면 숨이 차오르는데 고소이다 보니 평지에 있을 때보다 4배나 숨을 더 쉬어야 했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한 시간 걸려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하이캠프에서 고소증세에 시달리며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단체 트레커가 출발했다.
그들을 뒤따라가기로 했다. 트레킹 전문 셀파가 속도를 조절하고 있으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안나푸르나의 설산 꼭대기들이 어제처럼 아침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토롱페디에서 하이캠프를 지나 토롱라로 향하는 트레커들.
토롱라 정상이 보이는 마지막 오름.
토롱라 정상에서....
토롱라에서 본 안나푸르나 봉우리들.
정상이 보인다.
토롱라 정상에는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오두막 찻집과 정상을 표시하는 '타르초'가 세찬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오전 7시 40분.
아, 나는 얼마나 고통스럽게 이 길을 걸어 왔는가.
내가 견디며 걸어왔던 길은 왜 이렇게 험하고 옹색한 것이었을까.
저 푸른 하늘과 구름과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눈부시게 서있는데 작은 몸 하나를 이 곳까지 끌고 온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멈춰서서 뒤를 돌아본다.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몸을 가느다란 막대기 두 개에 의지한 채 고개를 숙였다. 생채기 나고 옹이졌던 그 동안 내가 걸어온 모든 세월들을 다 털어내 버릴 듯 '꺼이꺼이' 소리를 삼키며 한참을 울었다.
정상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내 몸이, 내 영혼이 이 땅과 하나되어서 같이 숨쉬기를 열망하는 것일 뿐. 세속적인 다툼과 승부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고립이라는 것!
모든 관계에서 떨어져 있어보면 그 모든 관계들이 명확해진다. 내가 걸어왔던 길, 또 걸어가야 할 길. 나와 관계했던 모든 인연들이 이 고립에서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다.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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