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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멋진 과학] 멸종 생물, 유전자로 되살린다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18. 12:41

[Why] [이인식의 멋진 과학] 멸종 생물, 유전자로 되살린다

  •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KAIST 겸임교수
  • 입력 : 2010.02.27 03:12 / 수정 : 2010.02.28 14:19
오래전에 사라진 생물의 유전물질, 곧 디옥시리보핵산(DNA)이 잇따라 복원되고 있다. 유전자의 본체인 DNA 분자가 유기체의 사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처음 입증한 인물은 미국 생물학자 앨런 윌슨(1934~1991)이다.

1984년 윌슨은 콰가(quagga) 피부에서 DNA를 복원했다. 멸종된 생물에서 찾아낸 최초의 DNA 분자이다. 얼룩말 비슷한 콰가는 140년 전 멸종되었다. 소멸된 생물로부터 DNA가 검출됨에 따라 새로운 학문이 탄생했다. 분자고고학(molecular archeology)이다. 화석 대신에 DNA 분자를 연구하는 고고학이다.

1991년 미국 인디언 미라의 뇌에서 DNA 단편이 추출되었다. 7500년 된 인디언 DNA는 사람의 옛 DNA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멸종된 동물의 옛 DNA는 호박(琥珀) 안에서 속속 발견되었다. 1992년 도미니카 호박에서 2500만년 전의 흰개미, 2500만~4000만년 정도 된 침 없는 벌의 DNA를 각각 찾아냈다.

1993년 6월에는 레바논에서 발굴된 1억3000만 년 전의 호박에서 멸종된 곤충인 바구미의 DNA가 채취됐다. 이 바구미는 딱정벌레의 일종으로 공룡과 같은 시기에 살았다. 때마침 영화 '쥬라기 공원'이 미국에서 상영되고 있던 터라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호박 속의 모기에서 공룡의 DNA를 뽑아내서 공룡을 복제한다는 영화의 줄거리가 더욱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을 부활시키는 것처럼 멸종 생물을 복제하려는 과학자들도 나타났다. 1999년 미국 과학잡지 '디스커버(Discover)' 4월호는 일본 생물학자들이 매머드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고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매머드는 빙하기 말기인 1만1000년 전 사라진 털 많은 코끼리다.

일본 과학자들은 매머드의 세포핵을 유전적으로 유사한 아시아코끼리의 난자에 집어넣으면 매머드 복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999년 10월 시베리아에서 영구 동결돼 얼음 밑에 묻혀 있던 2만년 전 매머드의 몸체가 고스란히 발굴됐으며 2008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스테판 슈스터는 2만~6만년 전 시베리아에서 살았던 매머드의 DNA를 해독하여 게놈(유전체) 초안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게놈은 한 생물체가 지닌 모든 유전 정보의 집합체를 뜻한다.

분자고고학을 주도하는 인물은 독일 생물학자 스반테 파보이다. 2009년 2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총회에서 파보는 3만8000년 전 생존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초안을 완성했다고 보고했다. 1856년 독일 네안더 계곡의 석회석 동굴에서 뼛조각이 출토된 네안데르탈인은 13만 년 전부터 3만년 전까지 서부 유럽과 중부 아시아에서 번성했던 원시 인류이다.

2010년 '네이처' 2월 11일자에는 4400년 전 갈색 눈을 가진 에스키모 사내의 게놈이 완전히 해독되었다는 논문이 실렸다. 연구 책임자인 덴마크 코펜하겐대 에스케 윌러슬레브는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오래전에 살았던 인류 조상의 게놈을 분석할 계획임을 밝히고 이른바 '옛 유전체학(ancient genomic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분자고고학 또는 옛 유전체학의 목적은 옛 DNA를 통해 인류 진화 과정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