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sr]인류진화

인간 없는 세상’ 쓴 앨런 와이즈먼 기자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18. 11:14
“인간이 사라졌다고 칩시다,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논픽션의 힘, 세상을 바꾸다]
<1> ‘인간 없는 세상’ 쓴 앨런 와이즈먼 기자

독자 겁주는 대신, 가정법으로 환경문제 생각하게 만들어
커밍튼=글·사진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자의 다른 포토보기
입력 : 2007.10.29 01:25

 

논픽션은 힘이 세다. 점잖게 서탁에 앉아 사사롭게 상상하고 짐작하고 추론한 바를 일필휘지 적어 내려간 글이 아니라 득달같이 현장에 뛰어가 보고, 묻고, 듣고, 받아 적은 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의 이야기, 이곳의 이야기,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다. 논픽션의 꽃은 신문이다. 신문기자(저널리스트)는 호기심에 불타고, 사실에 집착하며, 공정과 간명(簡明)을 자기 문장의 성취를 가늠하는 추로 삼는다. 1억원 고료 논픽션 대상을 공모하는 조선일보가 세계인을 흥분시킨 논픽션 신간 저자들을 가려 뽑아 만났다. 발군의 취재력, 깊이 있는 문제 의식, 색채 화사한 문장으로 일찌감치 해외 독서시장에서 독자의 ‘부르심’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다.


“환경오염 때문에 재앙이 일어난다는 얘기 많이 들으셨지요? 겁도 나고 죄책감도 느끼지만, 뾰족한 답도 없지요? 지구온난화니 기상이변이니 하는 끔찍한 얘기는 껑충 건너뛰고 그냥 어느 날 인류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칩시다.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될까요?”

▲ “호기심과 자연 사랑이 나를 환경 전문기자로 만들었다”고 앨런 와이즈먼은 말했다. 그는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에서 쌍안경을 들고 새를 관찰하며 자랐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땄으며, 평생 단 한번도 특정 언론사에 적을 두지 않고 프리랜서를 고집했다.
덤불 속에 꿀벌이 붕붕거리는 가을날 아침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60)이 불쑥 물었다. 열린 창 밖에서 천장 높은 서재 안으로 쌉쌀하고 비릿한 참나무 숲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여기는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커밍튼. 삼림 우거진 구릉을 따라 담배 밭과 옥수수 밭이 드러누운 곳이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만한 비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간 숲에 빨간 목조주택이 있었다. 미국에서 첫손 꼽히는 환경 전문 기자, 와이즈먼이 거기 산다.

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하퍼스·디스커버 같은 유력 언론의 단골 필자다. 책도 여러 권 썼다. 컬럼비아의 생태마을을 다룬 ‘가비오따쓰’(원제 Gaviotas·월간 말)는 우리말로도 번역됐다. ‘사실’(fact)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한 편의 이야기를 건축하는 것을 논픽션의 본령이라 칠 때 그의 신간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코리아)은 기발하고 엉뚱하다. 책 전체를 떠받치는 힘이 “만약 우리가 사라진다면(What if)”이라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가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와이즈먼이 두 다리를 쭉 뻗고 빙긋 웃었다. “환경론자들이 ‘당신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자동차를 자주 몰아서 징벌이 임박했다’는 투로 대중을 몰아붙이면 사람들은 옳은 말인 줄 알면서도 골치가 지끈거려서 그 문제를 피하게 됩니다. 나는 독자를 겁주는 대신 느닷없이 ‘인간 이후’를 보여주는 전략을 썼지요. 우리가 여기 없다고 가정한 순간, 우리 말고도 얼마나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실감할 수 있거든요.”

그는 2003년 가을부터 3년 반 동안 다섯 개 대륙 10여 개 나라를 돌았다. 폴란드에서 웅장한 원시 침엽수림의 향기를 들이마시고, 한국 비무장지대(DMZ)에서 두루미의 우아한 날갯짓에 경탄했다. 들소가 풀 뜯는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사고 현장에서 자연의 복원력에 경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내다본 ‘인간 없는 세상’의 미래는 한마디로 현대인의 프라이드를 여지없이 깔아뭉갠다. 고대의 석조 유적은 인간 없이도 수백 년을 더 버티겠지만, 거대한 현대 도시와 기념비적인 마천루는 불과 수십 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시간의 매질을 견딜 수 있는 인공 건축물은 영불 해협 해저 터널(수백만 년 존속 예상)과 미국 러시모어 산에 새긴 대통령 두상(720만년) 정도다.

가령 뉴욕을 보라. 뉴욕 지하철 공사 직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펌프 753대를 동원해 하루 5000만?씩 물을 퍼낸다. 인간이 습지인 맨해튼에 억지로 흙을 퍼날라 땅을 다지고 도시를 세웠기 때문이다. 펌프질이 중단되면 36시간 안에 지하철이 물에 잠길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3년 안에 아스팔트와 배관이 갈라 터질 것이다. 20년이면 고층건물 피뢰침이 삭아서 꺾이고, 번개라도 한번 치면 삽시간에 도시 전체가 활활 탈 것이다. 건물은 도미노처럼 주저앉고, 풀과 나무와 짐승이 도시를 차지할 것이다. 서울은 어떨까. 와이즈먼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하철이 한강 수면보다 높은지 낮은지, 어떤 건축 자재를 썼는지 따져봐야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걸요.”

문제는 쓰레기다. 인간의 위업은 금세 사라져도, 인간의 쓰레기는 장구히 존속할 것이다. 500년 뒤에 인간이 살던 곳에 지진이 나면 오래된 지층 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나올 것이다. 플라스틱은 아무리 오래, 아무리 깊이 묻어도 최소 수십만 년, 최장 수백만 년은 썩지 않을 것이다. 그런 플라스틱을 인간은 벌써 10억? 넘게 생산하고 소비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분량인지 가늠할 수 있도록, 와이즈먼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있는 먼 바다로 독자를 데려간다. 적도 고기압이 서서히 소용돌이치면서 북적도·구로시오·북태평양·캘리포니아 해류가 시계방향으로 도는 이 해역을 학자들은 ‘태평양 대(大)쓰레기장’이라고 부른다. 선원들이 별생각 없이 바다에 던진 플라스틱 쓰레기, 어부가 버린 그물과 밧줄, 강에서 흘러온 산업 쓰레기가 아프리카 대륙(3036만㎢)에 육박하는 넓이(2600만㎢·7조8649억6460만 평)로 둥둥 떠있기 때문이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자연이 더 번성한다면, 인간은 바퀴벌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와이즈먼은 “인간과 바퀴벌레는 사실 유전적으로 별 차이 없어요”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개미가 보기엔 개미가, 새가 보기엔 새가 가장 중요할 거예요. 인간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라곤 생각지 않아요. 그러나 지금 인간은 너무 빨리, 너무 깊이, 엄청난 규모로 지구를 파헤치고 있지요.”

와이즈먼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건, 어떤 종교를 믿건 인간은 누구나 ‘우리 동네에 나무가 무성하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침엽수림에 갔을 때 그는 “생전 처음 가본 곳인데도 마치 몸이 그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에선 반대의 느낌을 받았다.

“한강은 멋진 강이에요.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서울이 한강을 따라 얼마나 광대하게 팽창했는지 보세요. 무서울 정도지요. 산사(山寺)는 아름답지만 도심엔 추한 건물이 많았어요. 인간이 냉·난방을 해결할 줄 알게 되면서 건축은 흉해졌어요. 해가 뜨고 빛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이치를 따지지 않고 멋대로 지어 올리게 됐으니까요. ”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 회의에서 한 개도국 장관이 선진국을 싸잡아 비꼰 적이 있다. 일찌감치 산업화를 마치고 지금껏 신나게 온실 가스를 뿜은 주제에 이제 막 공업화에 뛰어든 개도국에게 환경보호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자들끼리 풀코스 디너를 먹고 나서, 후식이 나올 때 합석한 가난한 손님에게 ‘N분의 1로 계산하자’고 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와이즈먼은 “일리 있는 얘기긴 한데, 그런 얘길 하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는 계속 더워지고 있다”고 딱한 얼굴을 했다. 원제 The World Without Us.
 
 
 
그린란드에 돌아온 그린 온난화로 식물 녹색 찾아
박민선 기자 sunris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7.10.30 00:15
‘얼음의 땅’ 그린란드(Green land)에 ‘녹색’이 번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바뀌고 있기 때문.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29일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 네 그루가 “깨어나고 있다(waking up)”고 보도했다. 1893년 한 네덜란드 식물학자가 실험을 위해 이곳에 심은 이 소나무들의 꼭대기에 초록빛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린란드에는 아홉군데 침엽수림이 있지만, 사실상 야생에 방치됐던 이 소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반도 면적의 약 10배(216만㎢)인 그린란드에는 5만6000여명이 살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모두 51곳의 농장에서 양만 키웠다. 소 사육은 기온 탓에 여의치 않다. 감자를 제외한 야채 대부분은 덴마크에서 수입해 써왔다. 그런데, 최근 그린란드의 80%를 덮었던 거대한 얼음 층이 급속히 녹으면서 이들의 생활도 크게 바뀌고 있다고 IHT는 전했다.

올해 이곳 수퍼마켓에는 현지에서 키운 컬리플라워·브로콜리·양배추·딸기가 처음 등장했다. 경작 기간은 5~9월 중순으로, 10년 전에 비해 3주나 늘어났다.

‘그린란드’라는 명칭은 980년대의 인물인 노르웨이 출신 에이리크 토르발드손이라는 사람이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그린란드를 선전하려고 얼음땅을 ‘푸른 땅’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