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시담록

“노 전 대통령, 받은 돈 충격”/문재인/김동길/정호승/송기인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30. 10:53

 

“노 전 대통령, 받은 돈으로 미국 집 산 것 알고 충격” [중앙일보]

정상문 ‘100만 달러’ 말하자 탈진한 상태로 거의 말 못 해
법적 공방 구차하게 여겨 참여정부 가치 무너져 절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경위를 수사 중인 경남지방경찰청은 2일 경남 김해시 봉화산 부엉이바위 일원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현장조사를 지켜본 뒤 두 손을 모은 채 앉아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가 유학비용 정도로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미국에 집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본지는 2일 문 전 실장과 전화 통화를 했으나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문 전 실장은 1일 가진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올해 2월께였다”며 “정상문 전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에게 ‘박연차 회장이 돈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먼저 전하고,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 전 비서관이 봉하에 내려오면 늘 대통령을 먼저 뵈었는데, 그날은 권 여사를 먼저 만났다”며 “대통령이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해 두 분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권 여사가 넋이 나가 울고 있었다. 그제야 (정 전 비서관이) 이실직고해 대통령이 화도 내고 했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들은 정 전 비서관 표현에 따르면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탈진한 상태에서 거의 말씀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과 관련, 문 전 실장은 “사적인 잘못을 넘어서서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이 퇴임을 대비해 정 비서관이 준비한 것이라는 점을 아시기 때문에 더 괴로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책임을 통렬하게 느끼면서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할 상황을 참으로 구차하게 여겼고,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생각을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며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지향했던 가치까지 깡그리 부정당하는 상황이 되니 절망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 전 실장은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해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여러 가지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현 수사팀으로서는 이미 결론을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게 불가능해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며 “이번 검찰 수사는 유죄라는 결론을 처음부터 내려놓고 모든 조사를 거기에 맞춰서 해나간 것”이라고 했다.

박연차 회장에 대해선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도 있고 직간접적으로 들은 바도 있다.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놓고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나 소환자들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수사 방식과 대검찰청에서 유일하게 중앙수사부만이 직접 수사권을 갖는 게 바람직한 건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김동길 "내 제자 중에는 이런 못된 놈 없다"

  • 입력 : 2009.06.02 16:54 / 수정 : 2009.06.02 17:26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관한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요새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며 화를 냈다.

    김 명예교수는 지난 1일 “비리 연루된 전(前)대통령이 자살한 순간부터 성자(聖者)가 되는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린 바 있다. 이를 본 일부
    연세대 학생들은 김 명예교수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학교에 붙이기도 했다.

    김 명예교수는 2일 홈페이지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교육이 잘못 됐어요’란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몇 마디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 하여 나를 “망령난 노인”이라며 욕설을 퍼부으니 동방예의지국의 꼴이 이게 뭡니까”라고 일갈했다.

    그는 “나도 오랜 세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마는 내 제자 중에는 이런 못된 놈들이 없습니다”라며 일부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명예교수는 “내가 바지에 똥을 쌌습니까. 밭에다 된장을 퍼다가 거름으로 주었습니까. 이제 “겨우” 여든 둘에 망령이 났다면 이거 큰 일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시 300수를 지금도 암송하고 아직 한자도 틀리는 법이 없는데, 이게 망령난 노인이냐”고 반문했다.

    김 명예교수는 “우리가 이놈들에게 조국을 맡기고 떠나야 하는데, 대통령께서 좀 잘 타이르고 깨우쳐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아래는 김 명예교수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

<교육이 잘못 됐어요>

이명박 대통령, 요새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버릇이 없습니까. 이놈들 집안에는 노인이 없습니까. 몇 마디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 하여 나를 “망령난 노인”이라며 욕설을 퍼부으니 동방예의지국의 꼴이 이게 뭡니까.

나도 오랜 세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마는 내 제자 중에는 이런 못된 놈들이 없습니다. 나를 “망령난 노인”이라?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내가 바지에 똥을 쌌습니까. 밭에다 된장을 퍼다가 거름으로 주었습니까. 이제 “겨우” 여든 둘에 망령이 났다면 이거 큰 일 아닙니까. 전국 방방곡곡에 뿐 아니라 심지어 미국에도 캐나다에도 강연 초청을 받아 쉬는 날 없이 뛰는 이 노인을 하필이면 “망령났다”고 비난합니까. 이 버릇없는 젊은 놈들에게 한번 물어봐 주세요. “김 교수는 시 300수를 지금도 암송하고 아직 한자도 틀리는 법이 없다는데, 그래도 노망이냐”고.

좌익이니 우익이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적어도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터무니없는 논쟁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이 나라의 불행한 젊은이들, 포악한 독재자와 자유 없이 헐벗고 굶주린 2,300만 동포를 북에 두고,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입니까.

김정일을 두둔하면 진보가 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하겠다고 나서면 보수·수구·반동이 되는 겁니까. 그래도 우리가 이놈들에게 조국을 맡기고 떠나야 하는데, 대통령께서 좀 잘 타이르고 깨우쳐 주세요. 부탁합니다. 김동길
 
 

[시론]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 정호승·시인
  • 입력 : 2009.05.29 23:07 / 수정 : 2009.05.29 23:21
정호승·시인

우리는 지금 슬프다 대통령이 희망이 없었다면
우리의 희망은 어디 있겠는가
그의 죽음을 뒤따라맑은 종소리는 들리는데…

대통령은 세상을 버릴 자격이 없다. 오늘 국민장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깊은 슬픔과 통곡 속에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한명숙 전 총리께서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셔서, 내가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대통령께서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셨을까, 도무지 머릿속은 하얘지고 가슴은 멍멍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충격 속에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바로 대통령은 스스로 세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데 대통령이 그러시다니….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목숨을 던진다 해도 안 되지만 대통령은 더더욱 그럴 자격이 없다.

대통령이 세상을 버리셨다는 것은 국민인 내가, 나아가 국가가 그렇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죽음을 대통령의 '서거'로 받아들이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그 서거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분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아직도 멍멍하다.

노 대통령을 극단적인 고통에까지 몰고간 여러 외인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께서는 결코 그 길을 선택하지 말아야 했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께서는 살아계셔서 끝까지 진실을 밝히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죽음으로 덮어버리셨는가.

덕수궁의 대한문 앞에서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한 모자(母子)를 지하철에서 봤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검은 리본을 보자 새삼 대통령을 잃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고 그 현실은 비통으로 이어졌다. 엄마는 아이에게 노 대통령이 스스로 절명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그리고 그 아이는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죽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혹시 그 아이는 자결과 죽음을 동의어로 이해하지는 않았을까.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은 결국 희망이 없을 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 삶 자체가 죽음일 때 스스로 목숨을 던진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희망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또한 희망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노 대통령이 세상을 버릴 정도로 희망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에겐 어떤 희망이 있는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수없이 희망을 이야기해왔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오뚝이처럼, 흙을 뚫고 나오는 봄날의 죽순처럼, 단단한 아스팔트의 틈새를 뚫고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희망으로 피어나자고 했다.

노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의 희망의 죽음이다. 우리는 지금 희망을 잃었다. 노 대통령을 잃은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었다. "대통령도 살기 힘들면 죽는데 나 같은 것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두렵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을 때만 허락되는 말이다. 생사불이(生死不二)라고 해서 우리는 생을 함부로 내던질 수 없다. 생이 있기 때문에 사가 있는 게 아닌가. 사가 있기 때문에 생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나는 노 대통령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의 죽음을 어떻게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국민인 나의 숙제이자 우리 국가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께서 쓴 유서에는 우리 국가의 앞날에 대한, 통일 조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당부의 말씀이 없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국민에 대한 어루만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러셨을까.

우리는 지금 슬프다. 슬프다 못해 노 대통령을 따라 죽고 싶다. 노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전 대통령들의 제왕적, 독재적 모습에서 대통령도 바로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온 분이었다. 그러나 죽음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나 그분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분의 죽음 자체는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은 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오늘의 국민장을 비통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죽음은 곧 국민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장을 치른 우리는 지금 국민이라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이제 기다려야 한다. 사람은 죽은 뒤 그 관을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의 청탁(淸濁)에 의해 역사가 평가를 내린다. 이제 노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다. 부디 그에게서 맑은 종소리가 들려오기를 소망한다. 그분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의 힘들고 지친 가슴속에 한줄기 맑은 바람이 끝없이 밀려오기를 기도해본다.

 

 

 

대구 ‘매일신문’ 김정길 명예주필의

 

‘수암칼럼’이 지난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두번째 유언 형식으로 노사모와 김대중 전 대통령, 민주당 의원 등을 우회 비판해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일 ‘천국서 보내는 두 번째 유언’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칼럼에서 김 명예주필은“(노 전 대통령이)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남은 우리에게 두 번째 유언처럼 당부의 말을 쓴다면 이렇게 써 보냈을지 모른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입을 빌어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방송이나 인터넷은 더 이상 저를 마치 희생당한 영웅인 양 그리지 말아 주십시오. 겸손이 아닙니다”라며 “저는 저를 사랑한 노사모와 아끼고 믿어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서 당부하고 싶습니다”고 했다. 김 주필은 지난달 29일 경복궁에서 진행된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사과하라”고 외쳤던 노 전 대통령 비서출신 백원우 의원을 향해서도 노 전 대통령이 “자네 같은 친구를 비서로 썼던 내가 부끄럽다”고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저의 반쪽이라시면서 ‘나도 똑같이 했을(자살) 것이다’고 하신 것은 큰 지도자가 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라며 “천국에 와 보니 그런 말씀은 저에겐 결코 위로가 아닌 화합을 깨고 분열을 부추기는 선동이란 생각이 들 뿐입니다”고 했다. 김 주필은 유족들에게도 “엄마랑 함께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 유족을 찾아가 나 대신 위로와 사죄를 전하거라. 그게 사람사는 도리였다”고 했고, “이광재, 이강철, 자네들은 상주도 아니면서 감옥에서 참회하며 기도나 하고 있지 구속집행정지 신청은 왜 해서 TV 앞에 얼굴을 치 들고 다녔나? 자네들을 풀어준 MB(이명박 대통령)도 고맙거나 인자하다는 생각보다는 겁먹은 것 같은 유약함과 법 정신의 원칙을 허무는 것 같아 앞날이 걱정스럽네”라고도 했다.

이 칼럼이 나가자 매일신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주요 인터넷사이트에서는 거센 논란이 일었다. 홈페이지에는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망자에 대한 모독 아니냐” “돌아가신 분의 유언이라는 교묘한 형식을 빌어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인 비겁하기 짝이 없는 글장난”이라고 비난이 빗발쳤고,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속 시원히 내가 하고픈 말을 다 했다. 목소리 큰 소수의 눈치를 보지 않은 바른말이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매일신문은 3일밤 해당 칼럼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國民葬(국민장)이 끝났다. 그리고 그(노무현)도 떠났다. 그의 혼령이 있다면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해준 모습을 보면서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남은 우리에게 두 번째 유언처럼 당부의 말을 쓴다면 이렇게 써 보냈을지 모른다.“국민 여러분, 못난 저를 위해 울어주고 꽃을 뿌려주신 연민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대통령 노릇도 부족했고 修身齊家(수신제가)도 제대로 못 하고, 나라와 국민 여러분께 번듯하게 남겨 드린 것도 없는 저에게 국민장까지 치러준 배려 또한 고맙습니다.

요 며칠 새 저는 천국에서 만난 많은 분들의 말씀과 위로를 들으며 문득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깨우치게도 됩니다. 권위주의를 깨고 개혁을 위해 애썼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방송들이 고맙게도 저의 모자란 모습들을 좋은 모습으로 비쳐 보여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는 천국에 와서 제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저의 죽음은 왜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죽음도 아니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한글을 창제하다 병고로 쓰러지신 세종대왕의 愛民(애민)의 죽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토록 슬퍼해주신 사랑, 가슴 아리도록 고마울 뿐입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은 더 이상 저를 마치 희생당한 영웅인 양 그리지 말아 주십시오. 겸손이 아닙니다. 저는 저를 사랑한 노사모와 아끼고 믿어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서 당부하고 싶습니다.


외국인과 해외 TV가 중계되는 영결식장 앞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고함을 지른 나의 옛 비서에게도 당부합니다. ‘자네 같은 친구를 비서로 썼던 내가 부끄럽다’고….국민장이 끝났음에도 광화문에 분향소를 고집하고 곡괭이와 각목으로 국가경찰을 치는 분들, 그리고 ‘책임을 묻겠다’며 법무장관, 검찰총장 사퇴를 떠드는 민주당 후배들에게도 저는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법치국가고 두 사람은 법치와 공권력을 지키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었던 저까지 의혹이 있나 없나 수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용기와 원칙적 자세는 칭찬하면 했지 탓할 일이 아닙니다. 본분을 다한 공직자에게 무슨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까?

저와 가족을 위해 울어주신 DJ 님께도 한 말씀 드립니다. 저의 반쪽이라시면서 ‘나도 똑같이 했을(자살) 것이다’고 하신 것은 큰 지도자가 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천국에 와 보니 그런 말씀은 저에겐 결코 위로가 아닌 화합을 깨고 분열을 부추기는 선동이란 생각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딸아, 검찰이 내 처지를 감안해 행여 수사를 중단하더라도 이 아비 모르게 미국 땅에 계약서 찢었다는 아파트 얻어 둔 게 정말 있다면 끝까지 되돌려 주거라. 그것이 우리 집안과 이 아버지의 남은 자존심을 지켜주는 길이다. 그리고 엄마랑 함께 대우 南(남) 사장 유족을 찾아가 나 대신 위로와 사죄를 전하거라 그게 사람사는 도리였다. 그리고 이광재, 이강철, 자네들은 喪主(상주)도 아니면서 감옥에서 참회하며 기도나 하고 있지 구속집행정지 신청은 왜 해서 TV 앞에 얼굴을 치 들고 다녔나? 자네들을 풀어준 MB도 고맙거나 인자하다는 생각보다는 겁먹은 것 같은 유약함과 법 정신의 원칙을 허무는 것 같아 앞날이 걱정스럽네.

이 대통령이 배짱 하나는 나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마저 드네. 일부 전교조 여러분도 이젠 교실로 돌아가십시오. 장례 끝난 밤거리에서 촛불들 시간에 북 핵 안보교육이나 더 시켜주십시오. 민노총, 화물연대 여러분도 힘들지만 참으십시오. 북핵이 난리인 이때 여러분의 손에는 아직 만장깃발이나 촛불 대신 工具(공구)와 핸들이 쥐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양보와 희생은 언젠가 나라와 국민이 모아서 갚아주실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천국에서 보내는 저의 두 번째 유언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국민 여러분 고맙고 미안합니다.”

 

 

 

주성영 `盧전대통령, 무모한 승부수`

20090610/중앙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일국의 최고권력자를 지낸 사람이 가족들이 부정한 돈을 받은게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이는 자신만의 도피일 뿐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냉혹하고 무모한 승부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주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국민은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위선을 알게 됐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노 전 대통령은 조국을 위해 자신을 던지고 적의 흉탄에 숨진 이순신 장군이 아니다"며 "막부시대 사무라이도 아니고 이 얼마나 두렵고 잔혹한 선택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자살에 대해선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의 자살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매섭고 냉정한 선택이기에 대통령 노무현의 자살을 냉혹한 승부사의 무모한 선택으로 보는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는 이어 "자살자에 대한 미화는 '냉혹한 승부사가 정치의 승자가 된다'는 참으로 한심한 현상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노 전 대통령의 실정은 모두 미화되고 노무현 가족의 부정한 돈 받기는 억울함으로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민주당을 겨냥, "정세균 대표가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한 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위선적"이라며 "과거 열린우리당의 반노.비노 진영은 공공연히 '노 전 대통령 그늘 아래선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지 않고선 어떻게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는가"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봉하마을서 온 비통한 청 … 봉은사 문 나섰다” [중앙일보]

‘1000일 기도’ 907일째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한 명진 스님

명진 스님(59·서울 봉은사 주지)이 산문 밖으로 나왔다. 지난달 29일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 불교계를 대표해 의식을 치렀다. 봉은사와 명진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2006년 12월 5일부터 시작한 1000일 기도 중이었다. 1000일을 다 채울 때까진 봉은사 일주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는 서원도 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날은 907일째 되는 날이었다. 왜 그랬을까. 5일 서울 삼성동 봉은사를 찾아 명진 스님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명진 스님은 “수행자에게 1000일 기도가 따로 있겠나. 매일매일이 1000일의 하루인 거다. 다만 한 중생의 고통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1000일 기도 중이다. 어째서 산문을 나갔나.

“지난달 26일 저녁에 봉하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영결식에서 스님이 의식을 좀 해주십사’ 하는 청이었다. 그때는 거절했다. ‘제가 기도 중이고, 1000일 기도는 봉은사 신도들과의 약속이다.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도 ‘그렇게 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찌 됐나.

“그날 밤에 다시 연락이 왔다. ‘(권양숙) 여사께서 꼭 스님이 해주셨으면 한다’고 하더라. 난감했다. 일단 ‘기도 중에 나가는 게 쉽진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통화 하기로 했다.”

권양숙 여사는 1980년대부터 봉은사를 다녔다. 20년 넘게 봉은사 신도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에는 새벽에 직접 봉은사를 찾아왔다. 며느리와 함께 108배를 했다. 그때 권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 절에 오면 티가 나서, 다른 종교에 어떻게 비칠까 싶어서 그동안 못 왔습니다”라며 청와대에 들어간 후 5년간 내지 못했던 신도회비(120만 원)를 한꺼번에 냈다. 명진 스님은 “봉하마을에서 비통한 청을 받고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깜깜한 밤, 그는 혼자서 봉은사를 거닐었다. 이래도 난감하고, 저래도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긴 밤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다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째서 참석키로 결정했나.

“부처님을 생각했다. 부처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 그랬더니 답이 나오더라. 유가족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 정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아니겠는가. 내가 힘이 있다면 그 짐을 덜어줘야지 않겠나.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어찌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 본다.”

-그뿐인가. 허물은 남지 않나.

“허물이 남는다. 1000일 기도 중에 93일을 남겨 놓고 산문을 나선 허물은 내가 안고 가는 거다. 봉은사 신도들에겐 미안하다. 그 허물은 두고두고 내가 미안해 할 대목이다. 그건 내 몫이다. ”

-승려로서 ‘1000일 기도’는 일종의 ‘훈장’이기도 하다. 아쉽진 않나.

“그런 건 없다. 막상 결정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영결식날 산문을 나설 때도 마음은 담담하더라. 1000일 기도는 다시 한다 해도 상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닌가”라고 했다.

“고인의 심정을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얘기지 싶다.”

-사람들은 “유서의 메시지가 굉장히 불교적”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다. 그러니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거다. 모멸감에다 자존심까지 뭉개진 거다. 본인 스스로 ‘면목이 없다’고 했다. 그 속에서 엄청난 무상함을 느꼈으리라 본다. ‘산다는 게 뭘까’ 하는 회한 말이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란 대목은 그런 내면의 소리를 담은 것이라 본다.”

-불교적 깨달음과는 다른 차원인가.

“그렇다. 엄격히 말해 깨달음의 차원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죽음을 향해 던지는 일종의 위안이다. 그런 독백의 소리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3년간 관 속에 들어가는 게 수행자의 1000일 기도다. 그런데 스님은 중간에 관 뚜껑을 열고 나온 셈이 아닌가.

“그것도 나의 업(業)이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하고, 매순간 결정을 한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선택과 결정이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할 뿐이다. 봉은사에 있으면서도 사람들 만나고, 신문도 보고, 할 말도 하고 지냈다. 따지고 보면 안 나간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다시 그런 상황을 맞는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봉은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런저런 의견이 올라와 있다. 명진 스님의 결정에 대한 찬성이 8, 반대가 2쯤 된다. 간혹 신도들이 묻는다. “아휴, 스님. 1000일 기도 다 됐는데, 스님께서 꼭 나가셨어야 했습니까?” 주지실 툇마루에 선 명진 스님이 말했다. “그런 말 들으면 미안하지. 정말 면목없지. 그런 허물도 내가 안고 갈 몫이지.”

명진 스님의 1000일 기도 회향일(마지막 날)은 8월30일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0일째와 겹친다. “1000일 기도 끝나면 뭘 할 건가?” 하고 물었다. 명진 스님은 “지금같이 살 뿐이다. 그냥 신도들과 도량 가꾸고, 수행하고, 공부하면서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MB 성공한 대통령 돼야 … 국민이 밀어 줘야 해” [중앙일보]

49재 즈음 … ‘노무현의 정신적 지주’ 송기인 신부 인터뷰

송기인(71) 신부는 낯설다. 하지만 ‘노무현’과 관련짓는 일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켰다. 그는 ‘노무현 국민장’ 때 가톨릭 대표로 집례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그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그에게 다가가면 ‘노무현 세계’가 낯익어진다. 그의 눈빛은 형형하다. 사제적 카리스마의 엄숙함이 더해져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따뜻함이 풍긴다.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한다.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의 한적한 시골에서 산다. 그는 삼랑진 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49재를 앞둔 7일 그의 집을 찾아갔다.

송기인 신부가 7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자택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밀양=송봉근 기자]
만난 사람 = 박보균 정치분야 대기자

-노 전 대통령의 유서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갈등은 심해졌는데요.

“서로 화합하기 위해선 책임자가 앞장서 풀어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대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이명박(MB)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제 생각으론 화합의 빠른 길은 그런 겁니다. 국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는 거지요. 사과를 표시하고 내일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하면 국민이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해요.”

-대통령 사과는 검찰 수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데요.

“그런 부담은 있겠지요. 그러나 검찰이 잘못한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서울로 불려 올라갔잖아요. 전직 대통령이면 집에 찾아와 조사하는 게 맞는 건데요. 뚜렷한 증거가 없었잖아요. 망신 주자는 것 아니겠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합천 에서 끌려갔었는데요.

“그때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잖아요.”

-노 전 대통령이 부인과 자녀들의 돈거래를 몰랐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의 성격으로 충분히 그랬을 것으로 생각해요. 부인이 하는 일, 애들이 하는 일을 꼬치꼬치 간섭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정치적 타살론 쪽에 서 계시는 건가요.

“그런 표현을 쓰기보다는 지금 집권층에서 옭아매려고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자살)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보십니까.

“후퇴했어요. 국민 의사 표현을 막는 것이 그래요. 데모 막는 방법이 옛날로 회귀했다고 생각해요. 용산 참사도 마찬가지였고요. 국민 의사를 공권력으로 짓밟은 것은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헌법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민주주의 위기론을 펴고 있습니다.

“그분은 제발 조용히 있으면 좋겠어요. 전직 대통령은 일반 국민과 다르잖아요. 관망하고 말을 안 하는 게 무게와 가치, 역할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말을 함으로써 말에 말려들고 소란스러운 것보다는….”

-DJ는 노 전 대통령과 ‘전생에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요.

“노 대통령은 자기 나름의 철학으로 살다 간 사람이에요. 누구에게 의존했다거나 따라가지 않았어요.”

(“자유인이라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송 신부는 “그는 자유인이었고 독립적인 사람이었지”라고 말했다.)

-죽음으로 상당수 국민적 평가가 비판에서 지지, 향수로 대반전했습니다.

“동정이겠지요. 죽었다는 그 점을 놓고 정치적 지지라고 볼 수 있을까요.”

-(추모 글에서) 서민들 향수를 거론하셨는데요.

“재임 중 노 대통령에 대해 서민들의 불만족이 많았지만, 죽고 보니까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고 본 겁니다. 소탈한 어투로 친구처럼 소통했던 최초의 대통령이었지요.”

-추모 물결 속에 MB 정권에 대한 불만은 무엇입니까.

“현 정권 들어 부자 세금 경감이라든가 서민들의 힘든 삶, 독선과 소통의 어려움, 그런 일로 국민 불만이 많으니까 현 정부에 대한 국민 반감이 추모로 반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 전 대통령은 승부사였습니다. 죽음을 결심하면서 대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을까요.

“전혀, 그의 죽음은 그런 것과 상관없다고 봅니다.”

-왜 극단의 선택을 했을까요.

“내가 경험(유신 때 그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다)이 있어요. 자신이 당하는 것은 견디기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옆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어요. 노 대통령도 자기 가족, 주위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참고 이기는 힘이 모자랐던 겁니다.”

(송 신부가 유서를 보여 줬다. 컴퓨터에서 A4용지로 처음 프린트한 것. 위쪽에 ‘5:23 05:10’의 작성 시점이 연필로 적혀 있다. 유서는 그때 고통과 충격을 담고 있는 듯했다.)

-병원에서 시신을 보셨다면서요.

“얼굴은 깨끗했고 편하게 자는 것처럼, 오른쪽 어깨에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어요.”

-자살은 종교에서 죄악인데요.

“천주교에서 자살은 가장 큰 잘못으로, 교회 관습은 자살자가 신도들의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노 전 대통령)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요.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거지요. 가족·동료·수족(手足)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으로 생각해야지요.”

-봉하마을에 가는 게 성지(聖地) 순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성지 순례, 그건 아니고요. 그냥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가 보는 거지요. 과도한 의미 부여도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봐요. 죽음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측, 그런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은 실리를 취하려고만 해선 곤란해요. 한나라당도 양보할 수 없다는 거지만.”

(봉하마을에서 조문을 막고 대통령 조화가 짓밟힌 것에 대해 그는 당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짓”이라고 개탄했다.)

-노무현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의 가치 지향점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어요. 미래지향적인 도전, 그런데 사람이란 현실적 이해를 따지니까 그런 것이 잘 안 먹힐 수밖에 없었지요.”

-이 대통령이 서민 중시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제발 그렇게 돼 나갔으면 좋겠어요. DJ, 노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어요. 이 대통령은 엄청난 지지를 받아 당선됐어요. 국민도 그의 임기 동안 힘껏 밀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목 잡아선 우리나라가 덕 볼 게 없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은 ‘강부자·고소영’ 정책, 인사 같은 것을 통해 느낍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면 국민이 협조하고 싶어도 못할 겁니다. 대통령이 통치 방법,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박보균 정치분야 대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백성호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