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중·고문
요즘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謝過)하라’는 말이 유행이다. 너도 나도 나서서 ‘사과하라’고 다그친다. 야당인 민주당이 그러더니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선언’을 해댄다. 일부 변호사들도 ‘사과’를 들고 나왔다.
사과에 머물지 않고 대통령이 ‘사죄(謝罪)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이나 단체도 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한 야당 의원이 분향하는 이 대통령에게 “사죄하라”며 소리지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과의 사전적(辭典的) 정의가 ‘잘못된 허물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이라면 사죄는 ‘저지른 죄나 그릇된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으로 돼있다. 아마도 죄(罪)가 있고 없는 수준의 차이인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이른바 촛불시위 때부터 사과·사죄의 대상이더니 노 전 대통령의 별세에 이르러 사과·사죄의 정점에 올라있는 상태다. 이 대통령이 허물이 많고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인가? 아마도 역대 대통령 중 그처럼 많은 사과·사죄의 대상이 됐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현직에 있으면서 그런 수모(?)를 당한 대통령은 기억에 없다.
이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의 과오를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이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지 않은 허물도 있고 정책이 오락가락 했던 실수도 있으며 오만하고 교만하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사과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번번이 국민 앞에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꼴도 성숙한 나라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고 또 사과했으니까 “용서해준다”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듯한 태도도 성숙한 국민의 모습이 아니다.
일반사람의 사과는 그것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이 대통령의 사과·사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잘못은 용서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잘못과 죄는 책임을 수반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대통령의 책임은 곧 국정의 마이너스로 작용하며 책임의 궁극적 종착점은 사퇴다. 따라서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사죄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차라리 사퇴하라고 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 대통령에게 사과·사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그들이 대통령에게 사퇴하라고 할 때는 그들도 그런 주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히 정치적 구호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성을 띠어야 하고 법적인 타당성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으로부터 “그런 일로 대통령을 나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역풍에 몰릴 위험성마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퇴하라고는 하지 않고 사과·사죄의 선에서 머무는 것이다. 국민이 “사과쯤이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쉽게 편리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면서 대통령을 코너로 모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대신 사과·사죄라는 용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이 대통령이 계속 잘못하고 있고 또 대통령으로서 원만한 국정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에게 작은 펀치를 여러 번 날려 은근히 멍들게 하고 대통령이 거기서 더 흔들려 언젠가 ‘큰 잘못’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다. MB의 무릎 꿇리기와 집권당의 무기력을 겨냥한 것이다.
이 대통령 측에서는 그래서 ‘사과’할 수 없다고 한다. 사퇴할 생각이 아니라면 ‘사죄’해서도 곤란하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잘못 했다고 그때마다 국민에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면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집권자는 없다.
물론 대통령의 현저한 잘못과 오만 때문에 국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할 수 있고 사태가 사죄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사퇴까지 가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적 공감대를 전제로 집권자의 성찰과 용기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법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지 야당과 반대세력이 사과하라, 사죄하라고 들고 일어나 두들긴다고 해서 밀려갈 일이 아니다.
특히 이번 사태의 경우 대통령이 사과하면 우선 노 전 대통령의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정치보복을 했음을 시인하는 결과가 된다. 이 대통령이 그것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는 사과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에 사죄해서는 안 될 사람이 사죄한 경우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임채진씨다. 그는 노무현 수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사죄 드린다”고 말했다. 우선 그는 국민을 상대로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선출직도 아니고 임명직이다. 임명직은 아무리 고위공직자라도 국민을 운운할 자격이 없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다. 더욱이 자기가 책임지고 있던 검찰의 수사를 ‘사죄할 거리’로 만들며 자리를 떠나는 검찰수장의 자기 보신(保身)에 기가 막힌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우리의 검찰이 국민의 곧은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그런 선배들, 그런 지휘자 때문이 아니냐는 검찰의 자성도 나올 법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분명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는 그의 잘못이 우리 정치를 잘못 이끌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검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현재 야당 등이 주장하는 이유 때문이라면 대통령이 사과하고 사죄할 일은 아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야당과 반대세력도 잘못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번번이 사과하는 사람이어서는 곤란하다.
야당 등이 주장하는 이유 때문이라면 대통령이 사과하고 사죄할 일은 아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야당과 반대세력도 잘못됐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번번이 사과하는 사람이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