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27만주 계좌이체 잔고 변동없도록 전산조작
검찰, 은닉자금 추적 중
외국계 증권사 직원이 고객이 맡긴 110억원대의 주식을 몰래 빼돌렸다가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적발됐다. 이번에 금융사고가 난 외국계 증권사는 메릴린치 인터내셔날 인코포레이티드증권(이하 메릴린치)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투자금융·증권딜러 업체로 2008년 9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당시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됐다. 이런 증권사에서 어떻게 고객 주식을 가로채는 사건이 벌어졌을까.
이 사건으로 10일 고객계좌 관리 담당 최모(33)씨 등 세명이 구속됐다. 주모자인 최씨는 메릴린치 서울지점에서 7~8년째 근무해왔고 나머지 2명은 최씨가 빼돌린 주식을 팔아준 최씨의 사촌동생과 자금 세탁을 도와준 박모씨다.
최씨가 눈독을 들인 주식은 D사가 위탁한 신한금융지주 주식 27만주였다. 일정 기간 매매를 보류시킨 '보호예수' 주식으로 메릴린치 명의계좌로 금융예탁원에 보관돼 있었다. 당시 시세로 112억원어치였다.
그는 작년 7월 27일 이 주식 1만8000주를 사촌동생의 동양증권 계좌로 빼돌렸다. 금융예탁원에는 위조된 '주권반환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어 5만2000주(8월14일), 5만주(9월10일), 5만주(11월10일) 등 모두 27만주를 작년 12월 28일까지 6개월간 사촌동생 계좌로 이체시켰다.
사촌동생은 개미투자자였는데 매각 대금 1억원당 수수료 5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부하'가 됐다. 사촌동생은 최씨가 보낸 주식을 처분한 뒤 매각 대금 24억원을 최씨에게, 72억원을 자금세탁 담당 박씨에게 보냈다.
최씨가 단골로 출입했던 마사지집 실장이었던 박씨는 1억원을 '세탁'해주면 500만원을 준다는 솔깃한 말에 포섭됐다. 최씨는 "사연이 복잡한 우리 집안의 유산(遺産)"이라고 속이고 박씨에게 돈 세탁을 의뢰했다고 한다.
박씨는 72억원 가운데 35억원으로 금괴를 샀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금 밀매업자에게 금괴 200여개를 샀는데, 명함크기만한 금괴 한개당 1600만원이었다. 나머지 37억원은 현금으로 바꿔 최씨에게 되돌려줬다.
3인조가 6개월간 주식을 훔쳐내는 동안 메릴린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최씨의 사촌동생이 지난달 검찰에 적발될 때까지 범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최씨의 마음먹기에 따라선 더 큰 금융사고가 날 뻔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주식을 빼돌리면서 주식잔고에 변동이 없는 것처럼 전산을 조작했다. 회사가 주식잔고 현황을 체크할까봐 6개월간 출퇴근 시간도 잘 지켰다. 휴가 때도 회사에 나오는 '모범사원'이 된 것도 금융예탁원에서 매일 보내는 자료와 회사의 실 잔고가 차이 나는 사실이 들통날까봐서였다.
연봉 4000만원대를 받던 최씨가 첫 횡령 이후 5000만원짜리 제네시스 쿠페 승용차를 사는 등 씀씀이가 눈에 띄게 커졌는데도 그게 '도둑질' 덕분인지 회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들은 "최씨가 아무리 치밀해도 100억원대 고객 주식이 외부로 빠져나간 걸 몰랐다는 건 관리시스템에 구멍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주식을 맡겼던 D사도 최근에서야 소식을 접하곤 어리둥절하는 상황이다.
D사 관계자는 "매달 잔고증명서를 확인하고 있는데 우리 주식은 온전하게 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했다. 그 잔고증명서는 최씨가 조작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니 당연히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최씨는 검찰에서 "인생 뭐 있냐, 다 그런 거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인과의 불화와 개인 빚 수천만원도 범행의 한 동인(動因)이 됐다.
검찰은 "(최씨는) 작심하고 빼돌렸다. 나중에 잘살아 보겠다는 것이다. 외국으로 도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고 했다. 어차피 감옥갈 것을 예상했고 훗날 숨겨놓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최씨는 현재 "유흥비와 여자 교제비로 다 쓰고 남은 돈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괴는 차에 싣고 다니다 모두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
찾고 싶으면 찾아보라는 '배째라' 식이다. 검찰은 최씨와 자주 연락했던 여대생과 가족 주변을 중심으로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을 추적하고 있다. 최씨가 2005년 발생한 'ABN암로 사건'을 모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당시 ABN암로 직원 2명이 최씨와 같은 수법으로 고객 주식 69억원어치를 빼돌렸다가 구속기소됐는데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한 변호사는 "횡령범 중엔 거액을 은닉해놓고 재판에 가서 거물 변호사를 통해 형량을 줄인 뒤 교도소에서 나와 여생(餘生)을 즐기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최씨의 경우 ABN암로 직원처럼 가져간 돈을 '토해낸다'면 징역 5년을 선고받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버틴다면 징역 15년 이상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다급해진 건 메릴린치다.
최씨에게서 금괴와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D사에 돈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금융당국에선 사고 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메릴린치 서울지점 측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홍콩지점으로 문의하라"고 했다.
한편 2008년 5월 리먼브라더스 서울지점 이사가 주가조작 세력에게 코스닥 기업 주식을 대량 매입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작년 대구에선 외국계 증권사 간부가 투자자 돈 수십억원을 빼돌렸다 입건됐다.
실제로 빌린 액수는 5억여 원인데 2년여에 걸쳐 개인 사채피해액 사상 최고라는 약 80억 원을 상환했지만, 아직도 이자상환 요구에 시달린다는 피해자가 나타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에 이러한 내용을 고발한 사람은 의약분업 전 1일 매출 8000만 원대를 자랑하며 제약업계에 영향력을 갖고 있던 유명 약국 경영주 박 모씨. 불과 수년 만에 알거지가 돼 기획사채의 무서움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실제 사례로 등장했다.
종로5가에서 20여년간 K약국을 경영해온 약사 박 모씨는 2006년 12월에 월 3부 이자로 사채업자 C 모씨에게 1억원을 빌린 후 2009년 초까지 실미만 해도 무려 76억원을 지불했지만, 아직 원리금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상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처지라고 밝혔다. 아무리 갚아도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도돌이표’ 같은 사채시장의 덫에 당한 케이스로 보인다.
다음은 최근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시킨 후 밝힌 피해 내용이다. 박씨는 2005년 초 교통사고를 당해 2년여 간 약국 경영이 허술해지고 때마침 직원이 영양제 수액제를 의사 처방없이 판매하는 바람에 법정에 서게 됐고, 10억원대의 불의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긴급 자금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종로 K약국은 하루 천만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약국. 업계의 큰 손이었던 박씨는 50억 원대의 부동산과 저축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낙 급했던 박씨는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친분이 있던 사채업자 C 모씨에게 5억원을 빌렸다. 몇 달만 쓰고 갚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사채를 쓴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부동산을 급매 처분하기 싫어 이자가 비싸더라고 한 두 달만 쓰겠다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이것이 황당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기획사채에 휘말려 전 재산을 날리고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박씨는 꿈에도 몰랐다.
몇 달 후(07년 3월말) 돈이 더 필요해져 1억 5000만원을 추가 융통할 때는 이자가 월 3000만원(연 156%)을 훌쩍 넘어버렸고,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07년 4월 받을 어음이 부도나 자금압박이 발생하면서 2억 7000만원을 더 빌리고는 이자를 월 6250만원(연 166%)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총 빌린 금액은 3차례에 걸쳐 총 5억2000만원이었는데, 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원금에 얹혀진 빚만 20억원이 훌쩍 넘어섰고 이자가 최고 연 1000%가 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초고금리를 아무리 장사가 잘되는 사업자라 해도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개인이면 벌써 자빠졌을 테지만 박씨는 약품업계에서 쌓아온 신용과 체면 때문에 밀린 이자를 내기 위해 또 추가 대여를 받는 식으로 이리저리 돌려 막다 보니 결국 76억 원이란 거액을 상환했다는 것이다.
재산이 거덜났지만 원금은 아직도 그대로여서 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박씨가 고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한편, 사채를 빌려준 C 모씨는 자신이 편취한 게 아니라 박 모씨의 모친에게 다 넘어갔다며 고소한 상태여서 사건이 어떻게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다행히 박씨는 모든 송금을 은행 계좌로만 입금시켜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어서 법적인 입증과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 사건은 고리 사채에 의한 최대 피해사례로 알려지고 있는데, 사채 전문가들 사이에선 박씨가 ‘꺾기’, ‘업어가기’, ‘알까기’, ‘부풀리기’, ‘되돌이표 수법’ 등 사채시장에서 은밀하게 통용되는 각종 채무자 옥죄기 수법이 총동원된 악성수법에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꺾기’는 연체된 이자 꺾기, 축적된 이자꺾기 등이 있는데 이자납입이 연체되면 금전거래 없이 명목상 빚 원금에 이자와 원금을 빌려준 것으로 하고 갚게 하는 수법으로 이율은 원래의 최소 3배 이상이다.
‘업어가기’는 빚내서 빚 갚게 하는 방식인데, 모인 이자를 다시 더 고리의 이자로 대출해주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하는 수법이다.
‘알까기’는 단기간 고리(월 5할, 10할)의 이자를 모아 다시 대출해 초고리(10일에 1할)를 받는 지옥 같은 수법.
‘부풀리기’는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어 대출금 원금 주인이 수십명이 되는 것처럼 위장해 채무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수법이다.
이 가운데 업어가기 고리사채 방식은 60년대까지 사용됐으나, 피해 강도가 너무 커서 수십년간 업자들도 사용하지 않던 방식인데 다시 등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잠깐의 판단실수가 헤어날 수 없는 사채의 늪에 빠져 평생 모든 재산과 신용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으므로 사채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을 말하고 있다. / 이득수 기자
은행직원이 금품받고 1조4천억원 부정 PF대출 [현재창] 2010.11.23
관련한 PF대출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은행 부동산투자실무협의회의 위원 서명록을 위조해 대출 승인을 받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결과 이들이 주도한 부정 대출로 우리은행은 6건의 PF사업에 ...
선박왕 ‘좌초’시킨 경리직원?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4100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가 드러나 검찰에 고발된 권혁 시도상선 회장(61). 그는 불과 2, 3년 전까지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업가였다. 선박 및 항공기 임대사업은 나날이 번창해 회사의 자산규모는 10조 원을 넘겼고 보유선박의 수리를 맡기기 위해 전남 목포 지역의 조선소 인수를 검토할 정도로 자금 사정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14일 법조계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권 회장의 처제인 시도항공여행 대표 김모 씨(48)는 2007년 초 경남 거제시 일운면에 씨팰리스 호텔을 짓기 시작했다. 거제 지역의 조선소를 찾는 외국인 선주 등 장기 투숙객을 타깃으로 한 이 호텔은 2009년 초 완공됐다.
직원 수가 10명 남짓에 불과하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도항공여행이라는 회사가 호텔 사업에 손을 대자 거제 지역에서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도항공여행이 공사비를 부풀려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돈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정치인들에게 흘러들어 갔다는 것.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이 같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시도항공여행의 자금거래 내용을 뒤지는 등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결국 정치권 로비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김 씨가 시공업체와 짜고 공사비를 부풀린 가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은행에서 80여억 원을 부정대출 받고 회삿돈 3억 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씨와 김 씨를 도운 회사의 자금담당 직원 A 씨 등 2명은 이 일로 지난해 9월 법원에서 모두 유죄가 확정돼 각각 징역 1년 6개월∼3년의 집행유예 및 6억 원씩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호텔 사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권 회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권 회장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말썽을 일으키고 처제 김 씨의 회삿돈 횡령에 가담한 A 씨를 해고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시도상선 주변에서는 A 씨가 앙심을 품고 자신이 갖고 있던 비밀장부를 국세청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A 씨는 검찰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권 회장 일가의 비리를 제보했고 검찰은 이 사건을 경찰에 내려보내 수사하도록 했다. 국세청이 권 회장을 고발한 직후 A 씨가 제보한 사건은 다시 검찰로 송치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성윤)에 재배당됐다.
시도상선은 국세청의 고발 이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는 등 검찰 수사와 이후의 각종 민형사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나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간에 시도상선과 권 회장이 입을 피해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통영지청의 씨팰리스 호텔 수사가 시작된 이후 시도상선 측은 조선소 인수는 물론이고 중화경제권에서 추진하던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 일정 등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지점장이 고객 예금 470억 횡령, 관리감독 못한 은행이 책임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