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칼럼] 나는 왜 한글전용론에서 탈출했는가
"한글 專用은 反민족, 反문화, 反교양, 反이성의 논리이다"
"한자 및 우리 뿌리와의 재회인가, 영원한 이별인가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다"
한 記者의 體驗的 報告(전국 한자 교육 추진 총연합회 주최 강연회 녹취기록. 2001년 5월29일. 세종문화 회관) - 나는 왜 한글專用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 趙 甲 濟(月刊朝鮮 社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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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자리에 나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 때 한글專用論者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딸이 둘인데 다 순한글이름으로 戶籍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글專用 잡지에도 근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에 한글專用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왜 한글專用에 들어갔다가 벗어나서 漢字混用主義者가 되었느냐 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곳에 계신 분들의 자녀분들이라든지 손자, 손녀 또 후배 등 젊은 사람들 주로 한글專用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때 유용한 論理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저의 體驗的인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大韓民國이 앞으로 先進國이 되려면 넘어야 될 難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北韓 金正日 집단과 거기에 附和雷同하고 있는 南韓의 親金正日勢力의 도전 그리고 한글專用입니다.
이 두 가지는 共通點이 있습니다. 그것은 억지와 煽動의 論理, 속임수의 論理를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韓國社會에서 이 너무나 明明白白한 거짓말의 論理, 煽動의 論理, 僞善의 論理가 어떻게 뿌리를 박고 오랫동안 힘을 쓸 수 있었느냐? 이게 문제의 핵심입닌다. 이것을 우리가 合理的으로 科學的으로 除去해가면서 統一로 나가고 그 이후에 先進國으로 나가는 긴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北韓의 首領支配體制의 論理가 오늘날 맞지 않고 世界史의 흐름에서 守舊反動의 論理인 것처럼, 한글專用의 論理도 言語生活이나 科學的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불리하고 歷史와 傳統의 흐름에 비추어서도 맞지 않습니다. 맞지 않는 論理가 韓國社會에서는 구체적인 힘을 發揮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新聞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한글專用으로 가고 있고 雜誌나 圖書出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거의 99% 한글專用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억지논리 선동논리를 輕蔑하고 無視해버리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것이 韓國社會에서 많은 사람들을 捕虜로 만들어 가지고 실제로 우리의 文字를 低級化 低質化시키고, 우리의 精神文化까지 상당히 오염시켜 이것이 우리가 先進國으로 되는 데 상당한 장애요소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認定하고 直視하지 않으면 결국은 이런 억지논리에 合理的인 사람들이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와 合理가 대결할 때 合理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合理와 科學이 항상 이겼다고 하면 우리는 벌써 地上에서 天國을 建設했을 것입니다. 억지를 부리지만 勇氣가 있고 억지를 부리지만 行動力이 있는 사람한테 행동하지 않는 合理가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韓國의 現實에서 많은 例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1945年 生입니다. 漢字와 처음 만난 기억을 더듬어보면 初等學校 4학년 때 新聞을 보면서 입니다. 그 때가 1950年代인데 저는 한번도 書堂에 가지도, 漢字敎育을 부모님에게서 받지도, 千字文을 공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初等學校 4學年 때 漢字混用으로 된 新聞을 읽으면서 저절로 漢字를 깨치게 되었습니다. 新聞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저절로 깨치게 되었는지, 그것은 漢字가 가진 신비한 自己增殖力 또는 자기 스스로를 敎育하는 그런 힘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漢字를 정확히 쓰는 것은 어렵지만 읽는 것은 漢字가 많이 쓰여진 책이나 신문, TV에 노출되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가능해진다는 것을 저의 경우가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중·고교 시절에도 저는 漢字敎育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漢字를 쓸 때 상당히 隘路事項이 있습니다. 획을 正確하게 順序대로 쓰지 못하고 가끔 까먹기도 합니다.
저는 高等學校 시절에 讀書를 좀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日本 冊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日本語 공부를 혼자서(그 당시에는 日本語 學院이 없었습니다.) 문법책을 갖다 놓고 했는데 한 6개월 하니까 「文藝春秋」정도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漢字의 도움이 없이는 不可能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저는 野球狂인데 日本의 野球中繼 放送을 들으면서 듣기 공부를 하였고, 空軍에 근무할 때 日本 自衛隊하고 연락하는 그런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日本語 말하는 것도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日本語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漢字의 도움을 받아서 깨우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記者生活을 시작한 1971年부터 저의 나이로 20대 후반 30대 사이 저는 한글專用으로 돌았습니다. 그래서 70년대 초에 두 딸을 얻었을 때 객기를 부려서 한글이름을 지어 가지고 戶籍登錄을 했습니다. 이때 왜 제가 한글專用으로 기울어졌느냐 하면 한글專用에 대한 社會 雰圍氣가 한글專用을 하는 것은 民族的이고, 獨立運動이고, 勇氣 있는 일이라는 방향으로 澎湃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論理的으로 비판하는 글을 제가 보지 못해서 그런지 하여튼 저는 한글專用은 뭔가 좋은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것을 해야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한 10여년 이상 저는 한글專用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한글專用을 하는 잡지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도 큰 문제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제가 이제는 제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의 글을 보고 후배기자의 글을 고쳐주고 하는 이런 입장에 서니까 아하 한글專用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구나 하고 실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컨대 美國에 계신 분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요새 주상복합건물이라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무슨 말인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기둥 柱자, 모양 狀자, 즉 기둥같이 생긴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주택과 상가가 합쳐져 있는 그런 건물을 住商複合建物이라 한다고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漢字로 표기되었더라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 2년전쯤 ‘원조교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원조교제가 무엇이냐 해운대갈비 元祖할 때의 元祖이냐, 못 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援助냐? 그때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 때 그런 교제하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남에 가면 음식점 이름에 ‘우미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측하기에는 ‘넉넉할 優’字와 ‘맛 味’자에 ‘집 家’字, 그래서 ‘맛이 참 좋은 집’이라는 뜻을 한글로 쓴 것 같다라는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등등을 보면서 한글專用은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月刊朝鮮의 編輯長이 된 것이 1991년부터인데 이때부터 論理를 준비를 하여 1993년에, 앞으로 月刊朝鮮은 漢字를 露出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記者들이 반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反撥을 설득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저는 일종의 對應論理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글專用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獨立運動하는 것과 같이 民族的이다."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民族이라는 말의 힘이 세니까 民族이라는 말을 先占한 사람은 말싸움에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한글專用은 民族的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한글專用은 民族的이 아니라 反民族的이다. 한글專用을 하게 되면 우리의 傳統文化를 잃고 파괴하고 단절시킨다. 말하자면 文化·傳統·歷史破壞의 論理가 한글專用이다"라고 저는 대답을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인간은 항상 어린아이가 된다.” 歷史를 모른다는 것은 나라의 歷史를 모른다는 뜻도 되고, 族譜를 모른다는 뜻도 되고, 父母도 모르고 先輩도 모르고 앞서 걸어간 開拓者들이 여러번 겪었던 施行錯誤의 敎訓도 얻지 못하는 말하자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뿌리가 없는 人間이다라는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歷史를 알려면 歷史의 창고를 여는 키가 있어야 하는데 韓國에서는 95%의 기간동안, 文字歷史 2000년 동안 공용으로 쓰여졌던 것이 漢字인데, 漢字가 남긴 굉장한 文化的인 寶庫를 열 수 있는 열쇠, 즉 漢字를 抛棄한다는 것은 결국은 우리는 뿌리 없는 인간이 되고, 맨날 억지만 부리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마마보이같이 무책임한 이런 인간이 될 것이다라고 저는 반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글專用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 배우고 멀쩡한 사람도 漢字는 外國語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漢字가 外國語이면 族譜는 漢字로 쓰여져 있으니까 당신 祖上은 다 외국사람이냐? 朝鮮王朝實錄이, 高麗史가, 三國史記가 한글로 쓰여져 있느냐? 그러면 이것들은 한국이 아닌 외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가. 한자는 外國語가 아니고 國語이다. 漢字는 國語의 일부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漢字가 外國語'라는 한글專用의 論理를 파괴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글專用의 論理에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漢字는 외국어가 아니라 國語의 일부라는 주장을 科學的으로 입증하면서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만으로 글을 써도 理解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습관적인 사람은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援助交際를 많이 해본 사람은 援助交際를 한글로 알 수가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항상 잘 아는 사람에게만 언어가 통하면 안됩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韓國言語의 70%가 漢字語이고, 漢字語의 70% 이상이 同音異義語라고 했을 때 우리말의 50%이상이, 漢字로 표기하지 않으면 暗號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暗號를 가지고 意思疏通을 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느냐. 意思傳達이 정확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暗中摸索하게 되고 대강대강 눈치로 때려잡게 되며 특히 科學敎育이 제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社會에서 굉장히 위험스럽게 퍼져가고 있는 現象입니다. 高等學校 科學敎科書의 用語를 살펴보면 90.5%가 漢字語입니다. 漢字語를 한글로 쓰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 ‘상온(常溫)’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위 上’字로 알고 ‘高溫’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일상적인 대기 상태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듯 槪念語 특히 科學用語가 부정확하게 쓰이니까 敎育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槪念語를 정확하게 알려놓지 못하면 교육을 아무리 해도 밑 빠진 독처럼 옆으로 새어 버리는 現象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글專用이 지금처럼 계속되면은 우리 사회는 科學敎育, 특히 高等學問의 敎育에서 중대한 문제에 봉착할 것입니다. 그것은 정확한 意思疏通이 안되고, 정확한 敎育이 안되고, 意思傳達이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共同體’라는 漢字語가 있으나 이 ‘共同體’라는 말을 한글로 만들어 쓸 수는 없습니다. ‘共同體’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한글로 ‘공동체’하면 외울 수는 있지만 그 정확한 개념이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순한글로 말을 할 때는 '더불어 사는 모임'이란 식으로 너무 길어져 도대체 다른 사람한데 전달과 교육이 불가능합니다. 槪念語라는 것이 길어지면 교육이 불가능합니다.
풀어쓴 槪念語는 槪念語가 아닙니다. 한글專用을 할 경우에 後進國으로 落後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은 情報化社會에서 情報의 傳達이 迅速하고 正確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한글專用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社會의 生産性은 떨어지고 效率이 감소합니다.
그렇게 되면은 經濟의 落後로 이어져서 결국은 後退하고 말 것이라는 自明한 論理가 成立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東洋 5000년의 歷史에는 哲學과 科學과 美學과 敎養과 멋이 있습니다. 이것은 漢字를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寶庫라고 후배들을 설득하곤 하였습니다.
月刊朝鮮의 記事에 漢字를 混用하는 頻度는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전체 지면중에 漢字를 露出시키는 비중이 5% 미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5%라도 키워드이기 때문에 읽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젊은 기자들하고 討論을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이 한글專用은 누구한데 아주 유리한 논리이냐 하면 게으른 사람들 한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하기 싫어하고 게으르고 편하게 지내려고 하는 사람한데는 한글專用이 매우 좋은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워드프로세서를 쓰다가 키펀치를 한번 더해야 漢字가 나오는데 그것을 하기 싫은 사람, 한글로 써서 그냥 지나가면 편하니까, 또 과거에는 漢字를 쓸려면 劃도 고민하고 辭典도 찾기 싫으니까 그냥 한글로 쓰는 사람, 말하자면 굳이 漢字를 쓸 필요가 없는 수준의 사람한데는 한글專用이라는 것이 魅力的인 論理입니다.
거기에다가 그렇게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獨立運動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論理를 공급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한글專用은 社會主義的 論理와도 類似點이 있습니다. 편하게 살고, 아무 것도 안하며 살고 無爲徒食하는 사람이 큰소리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社會主義 基本 論理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1993년에서 1994년을 기점으로 해서 한국사회에서 한글專用이 더 以上 나아가면 안 된다라는 自己覺醒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한글專用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言論에서도 크게 報道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한글專用의 趨勢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따져보면 우선 漢字語를 이해하는 觀光客들이 많이 오게 되고, 또 中國과의 交易이 넓어지고 인터넷의 보급이 늘게 되면서 결국 인터넷 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言語는 漢字와 英語 밖에 없다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旣成世代들의, 이대로 가면 孫子代에는 族譜도 읽지 못하겠구나 하는 危機意識이 하나로 뭉쳐져서 한글專用에 대한 反對와 비판의 輿論, 그래서 漢字混用을 해야 된다는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글專用으로 가는 그 慣性은 거대하여, 한쪽에서는 한글專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輿論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또 한쪽에서는 한글專用의 擴散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1990년대 후반에 朝鮮日報를 포함해서 모든 新聞이 가로쓰기로 가면서 漢字露出을 중지하고 漢字를 괄호 안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漢字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은 訃告欄 정도이며, 그나마도 넣지 않는 新聞도 있습니다. 이 兩面的인 憂慮할 점과 아주 肯定的인 점이 같이 共存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月刊朝鮮을 만들면서 아주 귀한 글을 한번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吳之湖 선생이 30년전에 쓴 「國語에 對한 重大한 誤解」라는 책입니다. 제가 결론 부분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月刊朝鮮에 再收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책의 요점은 "漢字를 떠난 漢字語는 소리이지 말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한글專用은 우리 民族을 低級한 原始狀態로 돌려놓는다는 것입니다. 한글專用은 한국을 天涯의 文化的 孤兒로 만들 것이라고 오지호 선생은 지적합니다. 한글專用은 高級 思考能力을 退化시킬 것입니다. 한글專用은 우리 사회를 소수의 白人化한 知識 貴族(英語를 아는 사람)과 多數의 原住民 低知識族의 두 가지 계층으로 나눌 것이다. 多數의 原住民 低知識族이란 漢字를 모르는 따라서 水準이 낮아져 버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吳之湖 선생은 이를 30년 전에 豫言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 30년 뒤인 지금의 韓國社會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적인 美風良俗과는 거리가 먼 억지와 생떼와 暴力 등 이런 것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는 한글專用과 분명히 관계가 있습니다.
漢字를 아는 사람들이 가지는 몸가짐과 신중함, 교양과 예의를 지키는 자세와 비교해서 보면 분명히 오늘날의 世態에 한글專用의 가벼운 풍조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 전 어떤 喪家에 가서 初等學校 校長 校監 선생님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初等學校의 漢字敎育은 과거에 비해서 더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父母님들이 漢字敎育의 必要性을 認識하여 학교에서 漢字敎育을 많이 시켜 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漢字實力이 꾀 있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사회에서 그 漢字를 써 먹어야 할 動機附輿와 자극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자연스럽게 漢字를 잊어버리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신문에 漢字가 많이 나와야 漢字實力을 유지하고 또한 발전시킬 것인데 신문에 漢字가 안나오니까 기억하고 있던 漢字實力 마저도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큰 문제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서울시에서 각종 標識板에 漢字를 넣기 시작한 것처럼 간판에 漢字를 많이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大學入試에 漢字를 출제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高等學生들은 漢字를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初等학생들이 漢字보다는 컴퓨터와 英語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이 컴퓨터·英語·漢字 세 가지를 같이 배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早期敎育은 하되 漢字를 배우면 漢文의 語順이 英語와 비슷하기 때문에 英語實力도 늘어난다고 설득을 하든지, 또 이것이 인터넷 교육과 연결되는 등 1石3鳥의 교육방법 연구에 우리는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이 아주 중요한 岐路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는 漢字를 復活시켜야 된다는 운동이 열심히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共感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글專用의 慣性은 지금 브레이크를 걸어도 정지하려면 10∼2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있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1998년에 住民登錄證을 갱신하면서 漢字를 없애려고 했었으나 다행히도 金鐘泌 총리가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어서 國漢混用으로 갔습니다. 저는 이 점 때문에 金總理에 대한 非難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非難에 同參하지 않습니다(웃음).
이처럼 두 가지 흐름이 같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한국사회가 기울 것인가의 岐路에 서 있습니다. 말하자면 漢字와 영원히 離別할 것인가, 또는 漢字와 再會할 것인가. 再會의 길이냐 離別의 길이냐 하는 것은 아마 오늘 여기 계신 분들의 힘에 의해서 그 균형이 결정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全國漢字敎育推進總聯合會에서 하는 이 운동이 저는 言論의 觀心을 받는다는 면에서는 시끄러운 운동을 많이 하는 소위 市民團體보다 별로 적습니다만, 꾸준히 한다는 점, 즉 운동의 불씨를 지켜간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큰 힘으로 바뀔 것이고 爆發力을 가질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글專用을 하면 우리 社會가 落後되고 歷史가 後進된다하는 식의 이야기보다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은, 漢字를 아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먹고사는 데, 출세하는 데, 교양인이 되는 데, 존경을 받는 데 도움이 된다 하는 利己主義的인 면을 부각시킬 때 漢字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漢字는 제가 경험을 통해서 말씀드렸지만 최소의 노력으로써 최대의 수확을 올릴 수 있는 글입니다. 말하자면 3,000字만 알면 30萬 單語는 그냥 자동적으로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기가 막힌 魔力을 가진 言語가 漢字라고 생각합니다.
이 漢字와 한글이 서로 相互補完的으로 結合될 때 그 理解力과 情報의 傳達力이 우리 언어가 세계 어떤 언어보다 앞서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적으로 漢字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선 漢字는 記憶이 잘 됩니다. 그래서 명함을 교환할 때 漢字名銜을 교환하면 그 분의 姓銜이 오랫동안 기억이 되는데 한글로 쓴 名銜을 받아놓으면 두 번째 만났을 때 기억이 안됩니다. 그것은 漢字라는 것이 이미지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映像과 같기 때문에 사람머리에 刻印되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漢字에는 욕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漢字를 쓰는 사람은 교양이 있고 격이 있고 품성이 수양됩니다.
그 다음에 漢字는 槪念語가 많기 때문에 어떤 글에서 漢字가 몇 개만 있어도 사막 중의 오아시스처럼, 큰 바다중의 섬이 몇 개 있는 것처럼 읽기가 수월하고 편하고 피로하지 않으며, 전달이 빠르고 정확하고 그 기억이 오래 갑니다. 그러나 순한글로만 쓰여진 글을 읽으면 어떤 경우에는 머리가 띵하고 속이 메스꺼울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중심이 안 잡히는 거이죠. 어디서부터 읽을 것이지, 키워드도 없고 높낮이가 없기 때문에 눈이 피로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曖昧模糊하고 進度가 늦고 나중에 책장을 덮었을 때 머리에 남는 말이 별로 생각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漢字는 그 한 자 한 자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歷史가 담겨져 있고, 철학이 담겨져 있고, 그 단어 하나하나를 통해서 人間을 思索하도록, 또 聯想推理 작용을 하도록 유도하여 영어보다 월등한 사유의 가이드로 역할을 합니다.
예컨대 知識人이라는 말을 漢字로 써놓고 보면 기가 막힌 말뜻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知’字는 화살을 의미하는 ‘화살 矢’字와 ‘입 口’字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엇을 아는 것이 知인가. 그것은 사람 먹여 살리는 經濟와 화살을 쏠 줄 아는 軍事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軍事와 經濟만 알면 되는가. 그 옆의 ‘알 識’字를 뜯어보면 ‘말씀 言’은 人文的인 지식일 것이고, 가운데에 ‘소리 音’字는 藝術을 나타내며, 그 옆에 武器를 나타내는 ‘창 戈’字가 합쳐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東洋에서 말하는 知識人이라는 것은 知·德·體를 온전하게 아는 사람. 經濟도 알고, 戰爭도 알고, 人文的이고 社會科學的인 동시에 藝術的인 여유도 가진 사람을 합쳐서 우리가 ‘知識人’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이 단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漢字 세 자로서 상당히 깊은 수준의 인간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앞으로 젊은 세대들을 敎育하고 한글專用論者와 대결할 때 어떤 論理로써 接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過去 한 때 한글專用에 빠졌던 제가 한글專用의 捕虜에서 脫出하여 漢字混用主義者로 바뀐 經驗談을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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