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시담록

[박근혜3] 최태민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에 대한 증언들

이름없는풀뿌리 2016. 11. 1. 11:36

박근령 "육 여사, 생전에 '최태민 조심하라' 경고"

노컷뉴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 입력 2016.11.01. 09:51 -박근령 "착잡한 심정, 만감 교차"
-최태민, 박 대통령 경제권 장악?
-최태민, 박 대통령의 오장육부인셈
-전두환 위로금이 최태민 종잣돈?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신동욱 (박근령 씨 남편, 공화당 총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 박 대통령 뒤에서 이렇게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사람이 따로 있을 거라고 국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약 20년 전부터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왔던 사람들이 있죠. 바로 박 대통령의 두 동생들입니다. ‘우리 언니를 그들로부터 구해 달라’ 이런 편지를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었는데요.

그런데요, 박근령 씨는 최태민 일가에 대해 지금 세상에 알려진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사실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저희가 접촉을 해 봤습니다. 하지만 박근령 씨 본인은 당분간 인터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와서 저희가 남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입장을 확인하겠습니다. 공화당 총재, 박근령 씨의 남편 신동욱 총재 연결이 돼 있습니다. 신 총재님 안녕하세요.

 

◆ 신동욱> 네, 안녕하십니까. 신동욱입니다.

◇ 김현정> 지금의 이 상황,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 하나둘 드러나는 이 상황을 박근령 이사장은 어떻게 지켜보고 있습니까?

◆ 신동욱>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씀하셨고요. 만감이 교차된다고 하셨고요. 어찌됐든 간에 인터뷰에 응한 것은 한국의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박정희 대통령 가문과 최태민 일가의 40년 흑막사. 이 부분의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거군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사실은 그 40년의 역사를 곁에서 함께 지켜봐온 목격자가 박근령 이사장이 되는 건데요.

◆ 신동욱> 그렇습니다.

◇ 김현정> 최초로 최태민 씨의 접근을 목격한 건 언제쯤이었다고 증언을 합니까?

◆ 신동욱> 목격을 한 시점은 1981년 성북동 시절로 봐야 하고요. 그런데 그 이전에 우리 아내가 최태민 씨와 관계된 언론의 방송이나 보도를 보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김현정> 뭐라고요?

◆ 신동욱> ‘지금은 방송에서 오보가 나오고 있는 것이고 왜곡된 것이다. 틀림없이 최태민 씨의 등장은 어머니 서거 이후가 아니라 어머니 살아 생전에 최태민 씨가 등장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김현정> 잠깐만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육영수 여사가 숨진 다음 해인 1975년 경부터 박근혜 대통령한테 최태민 씨가 ‘어머니를 꿈에서 봤다’ 이러면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게 아니란 말씀이세요?

◆ 신동욱> 우리 아내는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어떻게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 신동욱> 그 당시 박근혜 영애의 비공식 행사들이 당연히 많이 있었겠죠. 그 행사장에 최태민 씨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시기 전에요?

◆ 신동욱>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시다시피 대통령의 영애의 행사는 동선이 정해져 있습니다. 시나리오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곳에서 약간의 동선이 틀어지는 행동을 하게 되면 당연히 경호원이나 또는 사정기관에 의해서 포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두 번이 겹쳐지면 반드시 신원조회를 했을 걸로 봐지고요. 박정희 대통령께는 보고할 사항이 아니었고 육영수 영부인께 그게 아마 보고가 들어간 것 같아요.

 

◇ 김현정> 접근을 어떤 식으로요? 그냥 집회나 행사 현장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접근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육영수 여사한테 보고가 들어갈 정도라면 어떤 제스처, 어떤 행동을 취했기에요?

◆ 신동욱>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뭔가 인연을 만들려고 하는, 그러니까 동선이 틀어지는 행동이라는 거죠.

◇ 김현정> 가서 대화를 건다든지?

◆ 신동욱> 그렇죠. 좀 과한 행동들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게 그 동일한 인물이 계속해서 나타나서 그렇게 한다는 게 바로 문제가 됐다라는 거죠.

 

◇ 김현정> 그래서 뒷조사를 해서 육영수 여사한테까지 보고가 됐다고요?

◆ 신동욱> 그렇죠.

◇ 김현정> 그걸 받아본 육영수 여사는 뭐라고 했다고 박근령 이사장이 증언을 하나요?

◆ 신동욱>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조심해야 되고 주의해야 된다’라고 아마 그 당시 영애에게 주의를 주면서 주변을 환기시켰다고 하는 걸 기억하더라고요.

 

◇ 김현정> 어머니 육영수 여사께서 ‘주의하라, 이런 사람들 조심하라’라고요. 그래서 ‘육영수 여사 생전부터 최태민 씨가 접촉이 있었다. 육영수 여사도 그 사실을 파악하고 주의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이 말씀이군요?

◆ 신동욱> 그렇죠.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61) 전 육영재단 이사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61) 전 육영재단 이사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김현정> 하지만 어머니 말씀대로 되지 않았네요? 박 대통령의 의존은 어떤 식으로 의존이 됐답니까?

◆ 신동욱> 1979년 10월 26일이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경남기업의 신기수 회장의 도움을 받고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성북동으로 이사를 가지 않습니까? 그게 1981년도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 아내가 박근혜 퍼스트레이디의 운전기사, 집사, 코디네이터, 비서, 1인 4역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때쯤 다시 최태민 씨와 최순실 씨가 다시 등장을 한 것 같아요.

◇ 김현정> 1981년 성북동 그 시절에서부터요? 가장 외로웠던 그 시절에?

◆ 신동욱> 그렇죠. 그때는 우리 아내가 또렷이 기억을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런데 언니가 그때도 요즘 걱정스러울 정도로 의존하는 게 있었답니까?

◆ 신동욱> 그 당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우리 아내의 기억 속에는 그분들은 굉장히 고마운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1990년, 불과 9년 뒤에는 박근령, 박지만 남매가 노태우 대통령한테 탄원서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우리 언니를 최태민에게로부터 구해 주세요’라고 절절하게 쓴 탄원서요. 어떻게 그러면 그렇게 고맙던 최태민 씨가 이런 탄원의 대상이 됐을까요?

◆ 신동욱> 탄원서 이전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 김현정> 뭔가요?

◆ 신동욱> 제 아내가 풍산그룹으로 시집을 가죠.

 

◇ 김현정> 그러니까 박근령 이사장이 결혼을 한 후에는 박근혜 퍼스트레이디의 비서 역할하는 사람, 운전 역할하는 사람, 운전사 역할하는 사람이 다 따로따로 구해진 거군요?

◆ 신동욱> 아니죠. 그 역할을 최태민, 최순실 씨가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또 중요합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이혼을 하니까 제 아내가 미국으로 떠나죠. 미국으로 떠날 때 미국에서 1년 동안 아내는 꼬박꼬박 그 달 그 날짜에 생활비가 꼬박꼬박 들어왔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언니로부터요?

◆ 신동욱> 그렇죠. 그런데 언니로부터 돈이 들어왔지만 돈을 부친 사람은, 송금한 사람은 다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니는 은행 업무를 볼 수가 없죠, 해 본 적이 없으신데 누군가가 해야 될 것 아닙니까?

 

◇ 김현정> 그게 누구랍니까?

◆ 신동욱> 그게 최태민, 최순실 일가 중에 한 사람이라고 우리 아내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재무에 관한 것들을 이미 최태민 일가가 다 맡아보기 시작했군요? 그 성북동 시절부터요.

◆ 신동욱> 그럼요. 그렇게 해서 미국 생활을 했는데 1년이 경과되고 난 이후에는 생활비가 들쑥날쑥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비자를 연장하러 다시 한국에 들어옵니다. 1984년도, 85년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들어왔는데 어느 날 최태민 친척 되는 사람이 반포동의 한신아파트를 계약하러 가자고 해서 따라가서 계약을 하나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아내는 최태민 씨가 아파트를 사준 건지, 우리 언니가 사준 건지 아직도 미스터리하다고 이야기를 하던데요.

 

◇ 김현정> 그럼 그 얘기는 이미 그때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통장이 하나가 됐다는 얘기예요? 재무가 하나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예요, 뭐예요?

◆ 신동욱> 우리 아내는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위로금이 6억입니다. 어찌됐든 간 공식화된 금액이에요. 제가 1970년대 말 정도로 계산을 해보죠.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얼마입니까?

◇ 김현정> 얼마나 됐을까요.

◆ 신동욱> 200만 원이죠. 그러면 아파트가 300채 가격입니다. 그 아파트를 우리 아내는 어찌됐든 한 채를 받았어요, 그렇죠? 300채 중에서 한 채를 받은 겁니다. 박지만 회장도 그 당시 아파트 한 채가 있었습니다. 받은 겁니다. 298채 아파트는 어디로 가 있죠? 거기에는 최태민 일가가 부를 축적한 시드 머니로 갔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우리는 의심하고 있는 겁니다.

 

◇ 김현정> 그때부터 이미 최태민 씨 일가가 성북동에서 재무를 담당을 해 줬던 거고,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위로금 6억 원은을 시드머니, 종자돈으로 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라고 박근령 이사장은 보고 있는 거군요?

◆ 신동욱> 우리는 거기에 강한 의혹을 가지고 있고요. 최순실 씨가 지금까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유치원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는데요. 유치원을 오픈해서 3년 안짝에 그 정도의 금액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 김현정> 지금 부동산으로 수천 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 신동욱> 이번 기회에 최태민 일가가 축적한 부를 낱낱이 조사해서 그 돈의 출처가 밝혀지지 않는 돈은 국고환수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 김현정> 박근령 이사장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 최순실 씨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 의상 하나하나까지 다 골라줬단 말입니다. 그러면 예전에도 돈 관리하는 정도 수준이 아니라 최태민 일가 혹은 최순실 씨가 의상까지 다 골라준다든지 이런 역할도 했답니까?

◆ 신동욱>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 김현정> 당연한 것.

◆ 신동욱> 그걸 누가 합니까?

◇ 김현정> 당연한. 그러면 옛날에 하던 걸 지금까지도 쭉 하고 있는 거군요.

◆ 신동욱> 그럼요. 어느 날 그들은 대통령의 옷으로 다가온 겁니다. 그저 추울 때 바람을 막아주는 옷으로 다가왔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가니까 그 옷이 피부가 되어버린 겁니다.

 

◇ 김현정> 피부가 됐어요?

◆ 신동욱> 네, 그리고 또 어느 세월이 흘러가니까 그게 오장육부가 된 겁니다.

◇ 김현정> 오장육부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이미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태민 일가, 최순실 씨는 오장육부가 됐다.’ 그러면 이 악연을 끊을 수 있는 겁니까? 이미 오장육부가 됐으면?

◆ 신동욱> 끊을 수 있죠. 이번 기회가 절호의 기회죠. 어찌됐든 간에 지금 3인방은 도려냈습니다. 3인방은 오장육부의 한 장기에만 들어갔다고 봅니다. 비서실 총사퇴는 이루어졌고요. 3대 사정기관의 최순실과 관련된 사람은 발본색원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순실 씨의 대포폰 4개. 4개를 잘 조사해 보시면 거기에 등록돼 있는 의원들의 이름이 많이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냥 예상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뭔가 근거가 있는 얘기입니까?

◆ 신동욱> 제가 그동안 최태민, 정윤회, 최순실 씨 뒤를 쫓았으니까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신동욱>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씨의 남편이죠. 신동욱 공화당 총재를 통해서 박근령 씨가 이야기하고 있는 증언들 확인해 봤습니다.




박근령 "피는 물보다 진해… 언니 지켜야"

등록 : 2016.11.02 04:40


남편 신동욱씨 본보에 심경 전해

"최태민, 육여사 서거전부터 접근

전두환이 준 위로금 6억원이

최씨 일가 종잣돈으로 들어가

최순실 대포폰 4개 조사해야"

2007년 10월 26일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28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동생 근영씨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인 박근령(62)씨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마지막까지 언니를 지켜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이렇게 힘들 때 가족으로서 형제로서 도리를 다 해야 한다”며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전했다. 박씨도 본보에 “대통령께서 철저한 수사 지시를 내린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아직 경우에 맞지 않으니 이해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사태를 예고하듯 노태우 정부시절 동생 박지만(58) EG회장과 함께 ‘최순실씨와 언니(박 대통령)를 떼어 놓아야 한다’는 탄원서를 냈지만, 지금은 박 대통령을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신 총재는 1일 본보 통화에서 “(박씨가) 언니가 너무 외롭고 힘드니 당신(신 총재)도 언니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 총재는 “아내는 착잡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번 사건을 지켜보고 있으며 (저에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가문과 최태민 일가의 흑막 역사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총재는 “언론 보도와 달리 최태민씨는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등장했고, 박 대통령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실이 육 여사에게 보고돼 ‘이런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ㆍ26이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서 받은 위로금 6억원은 그 시절 강남 아파트 300채를 살 수 있던 돈”이라며 “아내와 지만씨가 아파트 한 채씩을 가졌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298채의 돈이 어디로 갔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이 돈이) 최태민 일가의 시드머니(종잣돈)로 들어갔고 그 일가의 부의 축적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때 언니의 비서이자 집사, 운전기사, 코디네이터였던 아내 근령씨의 역할을 아내가 결혼(1982년)한 뒤부터 최씨 일가가 맡아 했다”고 설명했다.

신 총재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최씨의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비례대표 A 전 의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또 최순실 인맥으로 B 전 청와대 비서관도 주목하라고 말했다. 신 총재는 “최씨의 대포폰 4개에 들어 있는 모든 인맥을 조회해야 한다”며 “최태민 일가를 모두 파악해 그들이 국가기관, 정부부처, 정치권, 재계,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대 등에 얼마나 있는지 들춰내야 한다”고도 했다. 신 총재는 “아내가 육영재단 이사장이 된 뒤(1990년) 서울 강남 모처에서 최순실씨를 만났는데 얼굴을 가리면서 피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면서 “최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언니(박근혜)의 동생을 만났다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뭔가 당당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朴대통령-최태민 영적 부부·부적절 관계 절대 아니다”

 

최태민 지인 전기영 목사 “최씨는 주술가…영과 통하는 사람”
“박 대통령에게 존경 표현…대통령 연설문 최씨 영향받은 듯”


고 최태민씨와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등에서 10여 년간 알고 지낸 충남 서산 충성교회 전기영(76)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에서 사용한 ‘혼이 비정상’ 등의 단어에 대해 “최태민씨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 목사는 1일 충남 서산의 한 교회에서 진행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최태민씨는 목사가 아니라, 자신만의 신을 믿는 주술가였다”며 “혼을 믿고 영과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79년 종합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당시 총회장이었던 최씨와 알게 됐으며, 최씨 사망 직전인 1993년까지 10여년 동안 최씨와 교류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연설 등에 사용해 논란이 된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등의 단어는 최씨가 주로 썼던 ‘신’이란 의미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전 목사의 분석이다.  

그는 “당시 젊은 내가 종합총회 부총회를 맡자 목사들이 시기 질투를 많이 했는데, 그때 최씨가 그들에게 무당이 가진 혼도 못 가진 사람들이 무슨 목사를 하느냐”며 “나(전 목사)를 가리키며 이 분은 나보다 영이 높아 모셔온 분이라고 옹호한 적이 있다”고 떠올렸다. 이어 “최씨는 특히 ‘내 신이 그랬다’는 등의 ‘자신만의 신’ 단어를 참 많이 사용했다”며 “박 대통령이 쓰는 혼이라는 단어가 최씨에게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전 목사에 따르면,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뒤 최태민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육 여사를 꿈에서 만났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측에서 최씨에게 차량을 보내 청와대로 불러들였고, 최씨에게 육 여사가 빙의해 ‘최태민씨를 따라야 한다. 널 도와줄 것이다’라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순간적으로 기절까지 했다는 게 전 목사의 주장이다. 

이후 최씨는 대한구국선교단 등의 직책을 맡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깝다는 점이 알려지자,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또 최씨는 사망 전 해인 1993년 전 목사에게 거액이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같이 힘쓰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전 목사는 “(최씨가) 은행에 13억원이 있고, 이자도 9천만원이나 나온다”며 “근화봉사단을 이끌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최씨가 직접 그 돈의 출처를 밝힌 적은 없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났겠느냐, 기업들이 알아서 가져다준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씨는 원래 가난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씨 얼굴을 보니 귀신에 홀린 것 같아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교단에서 내쫓았고,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라며 “당시 귀신에 들린 것 같은 최씨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전 목사는 최태민씨와 그의 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곁에 머물며 했던 행동이 비슷하다는 개인적인 의견도 내놨다.

그는 또 최씨에게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전 목사는 “여러 소문이 많길래 최씨에게 직접 물은 적이 있는데, 최씨가 자신은 박근혜 대통령과 영적인 부부이며, 부적절한 관계라는 등의 소문도 알고 있으나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고 전했다. 전 목사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은 수준 낮은 사람이나 하는 얘기이며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 목사는 또 “최씨가 생전에 주변인에게 박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많이 안했지만, 이야기할 때마다 ‘영적으로 높은 분이다’라는 등 존경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최태민, 박근혜에 '女王 될 것, 부정타니 친인척 접촉 피해라'

입력 : 2016.11.04 03:00 | 수정 : 2016.11.04 07:48

[최순실의 국정 농단]

노태우 정부 민정수석실의 '최태민 보고서' 보니

'최태민, 박근혜 수시접촉하며 재단 운영에 개입했다'고 적어
崔, 외부에 '박근혜 후견인' 소개… 생필품 제공하며 관계 지속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0년대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최순실씨의 부친 최태민씨와 관련된 의혹을 집중 조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입수한 노태우 정부의 최태민 관련 조사 보고서에 나타난 최씨의 행태는 최근 제기된 최순실씨 국정 농단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1989년 10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한 최태민 관련 보고서.
1989년 10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한 최태민 관련 보고서.
보고서는 최씨가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1979년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 곁에 머물며 각종 육영·추모 사업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당시 시중 유언비어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89년 10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보고서는 최씨가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과 한국문화재단에 따로 사무실을 두고 박 대통령과 수시로 접촉하며 재단 운영에 개입했다고 했다. 최씨가 측근을 재단 간부와 비서·경호원 등으로 근무하도록 해 박 대통령의 활동을 일일이 수집하는 식으로 재단 운영을 배후 조종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은 당시 최씨가 박 대통령 이동 시에 경호차까지 붙였다며 박 대통령이 탄 차를 뒤에서 따라가며 경호하는 차량 사진까지 첨부했다. 보고서는 또 "최씨는 재단 내부에서 '최 회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외부에는 '박근혜씨의 후견인'이라 소개하고, (최씨의) 처(妻)로 하여금 박근혜씨의 생필품을 제공하게 하는 식으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챙기며 국정에까지 개입한 것과 흡사하다.

보고서에는 동생 박지만씨가 "누나가 최태민의 꾐에 빠져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아 사전 약속 없이는 집에서도 만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지만씨의 접촉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 후 근령·지만씨 두 동생을 청와대에 부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동생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에는 "최씨가 박근혜씨에게 '신의 계시로 몇 년만 참고 기다리면 여왕이 될 것이므로 친·인척 등 외부인을 만나면 부정을 타게 되니 접촉을 피하라'라고 했다거나 '세계 정세가 여성 총리가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영국의 대처 총리,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가 탄생했는데 199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에도 여성 총리가 나오게 되는데 그 인물이 박근혜'라고 예언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민정수석실은 또 "박근혜씨는 최태민씨가 신의 계시로 자신을 위해 헌신해 (최씨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모든 일을 그의 조언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최씨가 '박근혜씨에게 최면을 걸어 육영수 여사의 환상이 나타나게 해 환심을 사고 있다'는 유언비어와 '박근혜씨가 근화봉사단 조직이 완료되면 차기 대통령에 출마할 꿈을 꾸고 있다'는 등의 설(說)이 시중에 유포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정수석실은 보고서에서 "최씨가 각종 재단 운영에 관여하면서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동생인 근령·지만씨는 1990년 8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최씨가 육영 사업(육영재단), 문화재단(한국문화재단) 등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식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990년 동생 근령씨와 벌인 육영재단 분쟁 당시 "내가 누구한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고, 최태민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선 "반대 세력의 악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 참여한 한 인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연이어 맡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영애(令愛) 시절이었을 때부터 최태민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집권 직후 전직 대통령 유족 보호 차원에서 최씨를 박 대통령에게서 떼어놓으려 했지만 잘 안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단독] 최태민 “큰 영애께서…” 전화 돌려 재벌 돈 뜯는 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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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종교·이단 전문가 탁명환씨 생전에 쓴 최태민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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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21일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최태민 총재(왼쪽에서 둘째)와 큰 영애 박근혜 명예총재가 참석했다. [중앙포토]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이후 청와대에는 냉기가 돌았다. 안주인을 잃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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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명환

최태민(1912~94)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신흥종교·이단문제 전문가 탁명환(1937~94)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은 “난데없는 장문의 편지가 근혜양에게 발송되었다. 그것은 모친을 잃은 근혜양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글이었고, 구구절절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적인 입장의 글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도 이에 대한 루머가 있었다. 탁 소장은 “그런 인연으로 최씨는 근혜양을 만나게 되었고 일설에는 최씨가 육 여사를 근혜양의 꿈에서 만나게 해준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고 밝혔다.

이때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최태민의 거취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세하게 보고했다. 가급적이면 접촉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희망하는 방향으로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한다. 이즈음부터 최태민은 청와대를 무단출입하기 시작했다. 탁 소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에서는 최태민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있었다”고 했다. 탁 소장이 최태민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자 중앙정보부의 모 과장이 찾아와 “그 사건을 파헤치면 신상에 좋지 않다. 영애가 관련된 일이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신상에 유리하다”고 협박한 뒤 돌아갔다. 그래서 탁 소장은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중앙정보부의 다른 파트에서 찾아와 “최태민씨를 조사하게 됐으니 자료를 좀 넘겨달라”고 탁 소장에게 요청했다. 탁 소장은 거절했다. “언제는 재미없다고 협박하더니, 이제는 때려잡겠다고 하는 의도가 뭔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그따위 수사 방침을 어떻게 내가 믿겠는가”라고 반박했다. 대신 최태민(원자경)의 교리 책인 『영세계의 칙사론』을 건네주었다. 그 책에는 ‘최태민이 영세계의 칙사로서 한국에 파견된 대사와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탁 소장은 “(정권 내부에서도) 최태민에 대한 의견이 갈렸지만, 근혜양의 의견을 지지하는 편이 우세하여 최씨는 계속 득세했다”고 기록했다.

74년은 엄혹한 유신 시절이었다. 당시 기독교계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저항 세력이었다. 최태민이 총재를 맡았던 대한구국십자군의 창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탁 소장은 “최태민이 박 대통령의 영애 근혜양을 만나면서부터 당시 저항 세력이었던 기독교계의 저항을 희석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대한구국십자군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던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기독교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차에 근혜양을 통해 최태민씨의 구국선교단 십자군사령부의 창설 건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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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2월 구국선교단 무료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최태민. [현대종교]


알려진 것처럼 박 대통령이 최태민을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체제 유지 차원에서 대한구국십자군을 활용한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최태민은 75년 4월 구국선교단을 창설한 뒤 총재가 됐다. 5월에는 멸공단합대회를 개최했다. 목사들을 선발해 집총군사훈련도 시켰다. 50기로 나누어 무려 5000명을 훈련시킬 계획이었다. 6월에는 서울 종로구 순화동에 있던 배재고등학교 교정에서 구국십자군을 창설했다. 창군식에는 큰 영애도 참석했다. 경호원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창군식이 거행됐다. 구국십자군은 최태민 총재와 박근혜 명예총재 등 임석상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이후에도 최태민이 주최하는 대회에는 각급 기관장들은 물론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손자에게 과자값 100만원 수표 쥐여줘”

탁 소장은 그 이유로 ‘큰 영애의 빠짐없는 참석’을 꼽았다. 탁 소장은 “그것이 후일 최태민씨가 도지사나 경찰국장에게 전화로 호통을 칠 정도로 세도를 부리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구국십자군은 전국적으로 20만 명을 목표로 했다”고 했다. 최태민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목에 힘을 준 최태민은 항상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탁 소장은 “고려 말 괴승 신돈처럼 홀연히 나타난 최태민 총재는 구국선교단과 구국여성봉사단을 운영하면서 돈을 물 쓰듯 했다”고 밝혔다. 당시 최태민의 아들이 인천에 살고 있었다. 최태민은 집도 사주고 돈도 풍족하게 주었다고 한다. 가끔 손주들에게 과자 값이라고 쥐여 주는 돈이 100만원짜리 수표일 때가 있어 지켜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탁 소장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그 당시(70년대 중반) 100만원은 10년 지난 지금(88년)으로 친다면 1000만원도 족히 넘는다. 이것이 사람들이 과장해서 하는 말이라고 친다 하더라도 얼마나 돈을 물 쓰듯 하면서 살았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최태민의 딸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는 경제계와 정부 관리 등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많은 하객이 몰렸다. 탁 소장은 “이것은 권력의 냄새만 피워도 쉬파리처럼 몰려드는 당시 권력형 종이호랑이의 단막극을 여실히 입증하는 생생한 표본”이라며 “최태민은 ‘구국’에는 구호뿐이지 사실은 축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재벌급 기업인들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 일과였다”고 증언했다. 그 대목을 탁 소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항상 검은 안경을 끼고서 오만하게 앉아 재벌들에게 전화질을 하면서 꼭 근혜양을 팔았다.” 이어서 탁 소장은 “(최태민이) ‘명예총재인 영애께서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협조 부탁한다’고 하면 상대편에서 꼼짝 못했다”고 밝혔다.

최태민의 사냥감은 대기업뿐만 아니었다. 탁 소장은 최태민의 측근으로 있다가 탈퇴한 간부의 증언을 빌려 “최태민이 건설 관계 회사에도 전화를 걸거나 찾아갔다. 공사 계약을 따내는 일이나 납품 등을 알선하고 커미션을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축재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최태민 주위에는 기독교 목회자들이 많이 몰렸다. 최태민 자신은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가짜 목사’였지만, 그의 주변에는 기성 교단에 소속된 ‘진짜 목사’가 꽤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소속 교단의 교단장까지 지낸 인물도 있다.

탁 소장은 그들의 명단을 일일이 기록했지만, 이름 석 자 중 가운데 글자는 ‘O(동그라미)’로 표기했다. 그러면서 탁 소장은 “비록 당사자들의 명예를 위해 성명을 밝히지 않으나 역사의 기록과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과 역사 앞에 권력의 시녀인 꼭두각시 놀음을 한 것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 사건이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 실명으로 기록될 때가 올 것이다”고 적었다.

“최씨 주변에 기성 교단 목사도 많아”

실제 최태민이 창설하고 총재를 맡은 대한구국선교단과 대한구국십자군의 서울본부 주요 간부 명단을 보면 예장합동·예장연합·기성·예장통합·오성·예감·침례교·감리교 등 기성 교단 소속의 목사들이 꽤 많았다. 그만큼 구국선교단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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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영수 여사 1주기 추모예배 순서지’. [현대종교]


75년 8월 14일에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묘소에서 ‘고(故) 육영수 여사 1주기 추모예배’가 열렸다. 탁 소장이 보관한 ‘고 육영수 여사 추모 예배 순서’지를 보면 행사의 주최가 다름 아닌 ‘대한구국선교단·대한구국십자군 총사령부·대한구국선교단여성후원회’로 돼 있다. 최태민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 당시 추모예배 현장에 대해 탁 소장은 “최태민은 목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기독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순서에서 제외되고 근혜양 주변에서 맴돌았다”고 서술했다.

최태민은 자신을 찾아오는 목사들에게 “교인들을 통해 돈이 될 만한 건수를 물어오면 그것을 해결하고 돈을 받아 선교회 사업에 쓰겠다”고 말했다. 권력을 이용해 민원을 해결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다. 탁 소장은 “실제 김모 목사가 1번 타자로 교인들에 수소문해 건수를 물고 들어갔다. 최태민은 그걸 해결하려고 여기저기에 로비 활동을 했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게 수월치만은 않은 법이다. 오히려 상대편에서 법적 소송을 걸고 나오자 불리해진 것을 알고 최태민은 재빨리 손을 뗐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김모 목사에게 떠넘겼다. 결국 김 목사는 구속됐다”고 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강모 전도사가 욕을 하며 “이 X새끼야, 건수 물어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불리하니까 오히려 상대방을 충동질해 목사를 구속시켜 버려. 빨리 빼내지 않으면 재미없다”며 길길이 날뛰어도 최태민은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강 전도사는 구국선교단을 탈퇴해 ‘최태민 타도’에 앞장섰다고 탁 소장은 전했다. 또 탁 소장은 “최태민은 돈이 되는 일이면 어디든지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10·26 사건이 터졌다. 최태민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당시 신촌과 청계천 호텔에 수사본부가 차려졌다. 그런데 최태민은 큰 영애를 ‘방패막이’로 삼았다. 탁 소장은 “수사본부에서 한 달간 수사를 했다. 거액의 행방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최태민은 예금통장 등 모든 걸 근혜양에게 책임을 돌리고 발뺌했다. 수사진은 대통령의 자녀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수사 결과도 발표하지 못하고 말았다”며 “최태민이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내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대 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이라도 발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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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명환 소장이 28년 전 『현대종교』에 최태민에 대해 쓴 글의 서두는 마치 ‘최순실 국정 농단 시국’을 겨냥한 것처럼 읽힌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군가 정권무상(政權無常)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이요, 허무한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가면 아무리 당대에 위세를 떨치고 나는 새라도 떨어뜨릴 듯싶던 권력도 쇠잔해 가게 마련이다.” 탁 소장은 “그런 무상한 정치 권력에 아부하고 야합하는 종이호랑이들”을 강하게 질타하며 ‘최태민의 정체’를 폭로했다. 정리=백성호 출처: 중앙일보]



김종필 전 총리 인터뷰 “5천만이 시위해도 박대통령 절대 안 물러날 것”

최태민 조사 말라며 울고불고하는 딸에 박정희 대통령도 두 손 들어…

쓴소리하면 무덤 속에 들어가서도 나를 원망할 사람

시사저널·정리=박혁진 기자 ㅣ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1.14(월) 13:02:04 | 1413호

김종필 前 국무총리  ⓒ 연합뉴스

김종필 前 국무총리  ⓒ 연합뉴스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사촌형부이기도 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입을 열었다. JP는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의 ‘영애(令愛)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다. 11월3일 서울 청구동 자택에서 시사저널 경영진 및 기자들을 만난 JP는 박근혜-최태민 두 사람에 대한 것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JP는 9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에피소드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거동이 불편한 JP였지만 총기(聰氣)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및 최태민 일가에 대한 JP의 술회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행간에는 박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난세에 대한 개탄과 나라 장래에 대한 우려도 마디마디 이어졌다. 

 

JP는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 회장과 시사저널 권대우 사장·박영철 편집국장 등의 1시간 반에 걸친 껄끄러운 질문에도 찡그리지 않고 소상하게 답변했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박정희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를 둘러싼 일화 등을 회고하는 JP에게선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거목(巨木)의 허심탄회한 증언이기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자리였다.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큰일이오. 저 지경을 만들어 놨으니….

 

JP 같은 나라의 어른들이 나서주셔야 하는데요.

다 소용없어. 누가 나선들…. 몸도 이래 가지고.

 

한광옥씨가 이번 개각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총리에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명되고요.

한광옥? 고르다 고르다가 야당 사람 옆에 데려다 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처제(박근혜 대통령) 좀 잘 좀 가르치시지 그랬습니까.

그거 뭐 내 말 들을 사람이오?

 

옛날부터 총재님 이야기를 전혀 안 들었나요. 

전혀 안 듣는 친구야.

 

박정희 대통령 서거 22주기 추도식(2001년 10월26일)에 참석한 JP(왼쪽)와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부총재).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이자 혁명동지인 JP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총리, 공화당 의장 등을 지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대통령이 주변 관리를 너무 잘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도 말하고 싶지도 않아. 뭘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상관하고 싶지 않고.

 

대통령 하야는 물론이고 탄핵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야(下野)? 죽어도 안 해. 그 고집을 꺾을 사람 하나도 없어. 남자 같으면 융통성도 있고 할 터인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도 못 꺾었다면서요.

박 대통령, 육영수 여사,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박 대통령에게 바른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총재밖에 없지 않습니까.

없어. 내 말 듣지도 않아. 옛날부터 그랬어요.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말도 안 들었어. 최태민이란 반 미친놈, 그놈하고 친해 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면 밖에 나오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최태민과 관련해 별의별 소문이 다 돈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침부터 깜깜할 때까지 뭔 얘기를 하고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지만 들어앉았으니 그렇지. 오죽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그 최태민이란 놈 조사 좀 해 봐. 뭐하는 놈인지’ 그랬을까. 김재규가 ‘아버지가 조사를 지시한 것’이라고 했더니 ‘근혜’는 ‘맘대로 해 보라’며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쳤어요. 아버지한테 찾아가서 울고불고 난리를 부렸지. 그랬던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다. 우습지 뭔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몰라 그 둘이 뭐하려고 접촉하는지 내가 알 턱이 없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어쨌든 최태민이 혈맹이니까 믿고 뭐 좀 부탁도 하고, 뒤에 가서는 박근혜 추켜대고 뭐 해 주고 하니까….

 

1975년 6월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나온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 © 연합뉴스

1975년 6월21일 서울 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구국십자군 창군식에 나온 박근혜 당시 영부인 대행과 최태민(왼쪽) © 연합뉴스


<대화가 JP 건강과 나이로 옮겨 가면서 유명한 점술가 백운학으로 이어졌다. 백씨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2개월 전 자신의 집을 찾아온 육군 중령 JP가 묻지도 않았는데 ‘혁명 성공’을 예언, JP를 놀라게 했었다. 백씨는 JP가 88세를 넘긴다고 예언한 바 있다.>

 

백운학이 총재께서 88세 이상 산다고 예언했다지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뭐라고 했습니까.

맞는 얘기네. 지금 내 나이 90을 넘겼으니. 내가 그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한참 눈 감고 있다가 그러더군. “말년에 험하십니다”라고. “몇 살이라고는 얘기 안 하지만 말년에 험합니다. 험해” 이렇게 말하더라고. 다 맞았지 뭐야.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 얘기(험하다)는 안 했어. 

 

백운학씨가 박근혜 대통령은 관상도 안 봐줬어요?

관상 봐줄 수 있나. 박근혜는 천하가 제 손아귀에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 신념화를 하게 한 게 최태민이야. 반 미쳤지 뭐. 지금 저러고 앉았는 거 그때 미친 거 그대로야.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애가 있으면서 무슨 정치를 하려고 하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얘기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데요.

(벌컥 역정을 내면서)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있나.

 

그런 말이 인터넷을 쳐보면 나옵니다. 

어디에 그런 게 있어. 누가 그랬어요? <배석했던 JP 특보가 “증권가에 나도는 찌라시 내용입니다. 이런 게 돌아다니기에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고, 고소를 하려 해도 누가 그런 내용을 처음 퍼뜨렸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퍼뜨린 자를 특정할 수가 없어서 고소를 할 수가 없고 인터넷에서 지울 수도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어떤 놈이 그런 허튼소리를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JP가 그랬다니까 진실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어떤 놈이 박근혜하고 내 사이를 끊어 놓으려고 그런 짓을 했구먼. 박근혜는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을 게야. 그러니 눈이 뒤집히게 됐지. 그런 얘기를 내가 할 턱이 있나. 사실도 아닌데. 최태민이란 자식이 미쳤거든. 하여튼 (당시 최태민은) 늙어서 애를 못 만들어. 활동할 때 이미 70세가 넘었으니 불가능해. 하여튼 고얀 놈이 얼마든지 있어. 

 

박(근혜) 대통령 고집이 원체 강해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게다. 그런 고집쟁이야. 고집부리면 누구도 손댈 수가 없어.

 

총재께서 지적하신 고집이라는 게 아버지 닮아서 그런가요.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고집이 없었어. 사실 박 대통령처럼 약한 사람이 없어. 내가 잘 알지. 약한 것을 강한 것처럼 가장한 거야. 혁명도 처음에는 내가 하자고 했어. 박 대통령은 처음에는 응하지 않았지. 오히려 ‘뭐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냈어. 그래서 ‘한 번 뒤집어 놓아야 나라가 될 텐데 선두에 서십시오’라고 했더니, 그제야 피식 웃으시더만. 한참 지난 뒤 ‘근데 나도 좀 혁명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데’라고 했고 내가 ‘그러면 합시다’라고 해서 혁명을 한 거야.


 5·16 다음 해인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만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 당시 김 부장 나이는 36세 © 연합뉴스

5·16 다음 해인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만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 당시 김 부장 나이는 36세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박정희 대통령) 단점을 닮았다고 하셨는데 단점이란 게 어떤 것인가요.

박(정희) 대통령에게 모자란 점이 몇 가지 있어. 약해. 알려진 것과 달라. 그렇게 약한 사람이 없어. 약하니 의심을 잘하고.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고집이 어머니 쪽을 닮았다는 말이 되는데요. 

육XX라고 알아? 그(육영수 여사)의 아버지(육종관씨)가 고향에서 육XX라고 그랬어. 욕심이 많다고. 그뿐이 아니야. 길러준 사람 고맙다고 하나. 동네 사람들이 그래서 붙인 별명이야. 그만하면 알 거 아닌가.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핀 분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데요.

얼마나 거시기했는지 얘기할까. 우리 집사람이 내가 미국 보병학교에 유학 갔을 때 딸(예리)을 낳았지. 돌봐주는 사람이 없고 쌀도 없으니 굶었대. 그걸 보다 못한 박종규(나중에 청와대 경호실장. JP가 하사관이던 그를 육군종합학교에 보내 소위로 임관)가 제 고향에 내려가 쌀 한 가마를 가져다줘 끼니를 때웠다는구먼. 그래 이게 될 법한 소리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육 여사가 애를 낳은 산모더러 밥 먹었냐고 물어보지도 않더래. 저쪽에선 숟가락,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벽에 걸린 부인 박 여사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날 붙들고 울고불고하잖아. 

 

어머니같이 온순한 분으로 아는데, 설마?

겉으로 보이는 모습 보고 해석하면 백번 틀려.

 

자애로운 국모로 알려져 있는데 그 부분은 정말 상상이 안 가네요.  

뭐라고? 오죽하면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서 난리를 폈겠어. 남도 아닌 당신네 조카딸 아니냐고. 자기는 밥 먹는 소리 내면서 애 낳고 굶고 있는 산모한테 그럴 수 있냐고 막말을 했어. 말 한마디 못하더군. 남에 대한 배려가 없어. (불우한 사람 돌본다는)그거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하는 것처럼 꾸민 거여.

 

육 여사 신화가 깨질까 봐 걱정됩니다. 화제를 돌리죠. 박정희 대통령 살아생전 견제를 받았는데… JP가 대통령 자리 빼앗을까 봐 그랬나요?

그런 (대통령의 의심이) 나를 늘 누르고 있었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파서 그만둬야 되겠다니까 안 된대. 내가 자기 옆에 있어야 한대. 그러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주치의 등 의사들도 내가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안 놓아줬어. 그래서 내게 병이 왔어. 의사들이 ‘정말 좋지 않으니 쉬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할 수 없지. 그렇게 나빠요? 멀쩡하던데’라면서 풀어주더라고. 박 대통령은 나를 옆에 놔두고 눌러야 할 사람으로 알았어. 자유롭게 놔두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경계했던 것이지. 그렇게 생각한 거야. 나는 조금도 다리를 펼 수가 없었어(운신 폭이 제한됐었다는 뜻). 내가 말을 안 했지만….

 

2001년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 예를 올리는 JP © 시사저널 임준선

2001년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 예를 올리는 JP © 시사저널 임준선


그 정도였습니까.

욕심 자꾸 나니 나를 의심하는 거야. 하도 의심하기에 하루는 ‘제가 나세르(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전 대통령)입니까? 왜 자꾸 의심하십니까’라고 대들었어. 무슨 소리냐 하면, 나세르는 자기가 쿠데타 일으킬 때 모셨던 윗사람(나기브 대통령) 모가지 비틀어서 대통령 됐거든. 내가 (당신)조카딸 남편이고, 그러면 내가 조카 아니냐고 했지. 절대 딴생각할 놈이 아닌데 왜 자꾸 의심하느냐고 대들었어. 그때 박 대통령이 ‘내가 좀 의심도 해’ 그렇게 말했어. ‘했어’가 아니라 ‘해’라고. (의심을)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하던가요?

쓴웃음만 짓더구먼. 말은 못하지. ‘이 자식이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알고 있구나’라고 여겼겠지. 그러니 쓴웃음밖에 안 나온 거지. 웬만하면 ‘내가 그런 생각할 리가 없잖아’라는 정도는 말할 텐데 아니었어. 그것도 안 해. 안색이 조금 변했을 뿐이야. 근데 내가 구렁이 같은 놈이라서 (상대의)속은 다 보고 있거든. 하지만 충청도 사람은 생각은 그래도 (동지를 배반하거나 윗사람을 해치는)행동은 안 해.

 

(JP 당신은)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찬성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습니까. 버틸 수 없었나요.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는데.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집무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거야. “임자, 혼자 살려고 그래? 혁명 거사 때는 함께 살고 함께 죽기로 서약하고 이제 와서 혼자만 살겠다는 거야?”하더군. 그 러니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알겠습니다”라고 했지. 청와대를 나와선 전국을 돌며 유세를 했지. 내가 말린다고 (3선 개헌이)멈출 상황이 아니었어.

 

 

올해 초 펴내신 회고록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해 안 좋은 내용은 없던데요. 

회고록이 아니고 증언록이야. 있던 일을 한 번 더 내가 확인하기 위해, 증언을 하겠다는 뜻에서 증언록이라고 했어. 거기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나쁜 소리는) 한마디도 안 했어. 나오면 인식이 달라질 정도여. 뭐 다 아는 한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지. 계집애 데려다 술 마시다가 제일 믿는 부하한테 총 맞았잖아. 그걸 뭐라고들 해석하느냐고. 그런 불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당하게끔 했다고.

 

물론 위대한 사람이야 틀림없지. 박 대통령 (시해)사건이 났을 때 그분을 모셔다가 수도육군병원에 뉘었어. 어쩌면 그리도 작게 보이던지…. 그때 내가 영어로 ‘He is not a big man, but  a big man’이라고 했어. 머리맡에 서서 그랬어. 박(정희) 대통령도 권력을 잡고 보니까 욕심이 자꾸 났고… 사람이 그래서 망하는 거지. 증언록에 그런 것들 썼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일절 박 대통령 관련은 건드리지 않았어. (증언록에) 한마디도 안 나오지. 국민들이 통 크고 이해력이 많고, 자기를 희생시키면서 나라 구한 분으로 기억하는 게 나을 거야. 그런 분을 제일 측근이 좋지 않은 말을 남겨 놓으면 안 좋다는 생각에서 박 대통령 (나쁜)얘기는 일절 안 했어. 기자들이 자꾸들 있을 거라고 물어보는데도 없다고 했어. 책에도 안 썼지.

 

 

대통령 물러나라고 많은 국민이 외치니 나라 앞날이 어떻게 될까요? 행적이 너무나 분명하고 거짓을 말하는 바람에 주워 담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근혜라는 여자는 국민 전부가 청와대 앞에 모여 내려오라고 해도 절대 내려갈 사람이 아니야. 그 엄청난 고집을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박근혜야. 육 여사의 이중적(二重的)….

 

박근혜 대통령이 민심을 거슬러 저렇게 고집을 피우면 본인도 불행하고 나라에도 불행한 사태가 계속될 텐데요. 

안 고치면 불행한 사태 계속되지. 지금의 엉터리 같은 나랏일이 계속되지. 하지만 (대통령직을)절대 그만두지 않습니다. 무슨 짓을 하든. 그 고집이 그래.

 

그 말 많은 최태민과 관련해 다른 얘기는 없나요. 

최태민이 제일 처음 왔을 때를 알고 있어. 최태민은 바지가 이만큼 올라가는 (JP는 바지 한쪽이 한 뼘 정도 찢겨 올라간 모양을 흉내 내며) 거지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났어. 최면술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근혜’는 그가 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하면서) 무슨 짓을 하고 이끌어 가는지 몰랐지. 극빈자 행색으로 처음 ‘근혜’를 만났는데 ‘근혜’는 연민의 정이 좀 생겼지. 그게 밀착한 원인이 되어 가지고… 지금 그 딸(최순실)이 몇 십억을 맘대로 쓰고 왔다 갔다 했으니.

 

여당이라는 새누리당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갈팡질팡입니다. 저들끼리 쌈질이나 하고. 어찌 될까요.

깨질 것 같아.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혼자 앉아 단식이나 한다질 않나… 그런 자가 대표랍시고 있잖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가 (청구동에)가끔 오지. 그런(새누리당과의 제휴 등 정치 관련) 얘긴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교환하는데 인간 안철수는 괜찮아. 정계 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안 전 대표가 아직 정치를 잘 모르는 거 아닙니까. 때는 묻지 않았을지 몰라도.

모르지. 내(JP 자신) 속엔 구렁이가 몇 개씩 들어 있지만 (안 전 대표에게)그거는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아. 퍽 담백하고 솔직해.

 

보수 계층의 기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쏠리는데. 반 총장하고는 어떻겠습니까.

반기문이는 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 있는 사람이고, 안철수는 아직 구렁이가 꽁지를 틀고 들어앉은 것 같지는 않아. 비교적 순수해… 가끔 오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아주 순수한 정치인이야.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누가 될 줄 (어찌) 알아.

 

누가 되면 좋으십니까.

그런 사람 없어. 문재인. 이름 그대로 문제야.

 

반 총장 같은 사람이 어떨까요.

반기문이 와서 나가겠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 거야.

 

5월2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서울 청구동 JP 자택을 예방했다. JP는 차기 대선에서 반 총장의 역할을 기대하며 지지를 공언했다. © 운정재단 제공

5월2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서울 청구동 JP 자택을 예방했다. JP는 차기 대선에서 반 총장의 역할을 기대하며 지지를 공언했다. © 운정재단 제공


안 전 대표도 괜찮게 보고 계시는데, 안이 출마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안철수는 지금 순수해요. 저보다 나은 사람이 나가면 그만둘 사람이야. 내가 확인했어. 서울시장도 양보했잖아. 어거지로 떼를 쓰면서 뭐를 하려고 하는 것이 없고. 도리를 찾아서 판단하더만 그래.

 

반 총장도 나오고 안 전 대표도 나오면요.

안철수는 반기문 나온다고 하면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왜 반기문 총장을 도우려 하십니까?

어쨌든 세계 정부에서 10년 동안 심부름한 사람 아닌가. 그러니까 보통 사람이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지. 그런 사람이 해 보겠다 하면 도와주는 것이 순리지. 이쁘고 밉고가 아니야. 나라 장래를 위해서야. 노무현이 그를 외무부 장관 시켰잖아. (반 총장)머릿속에는 다분히 (급진)진보주의가 박혀 있어. 그래서 본인에게 물었더니(JP가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그때만 해도 젊을 때입니다’ 이렇게 말하더라고. 쓸 만해.

 

국내 정치가 원체 험하잖습니까. 외교관 출신이 와서 감당할 수 있을까요.

험한 것은 박 대통령이 그만둬야 풀려, 조금이라도 풀려 그나마….

 

이처럼 어려우니 지금쯤 박 대통령이 총재께 자문을 구할 만도 한데요.

아이고, 나를 개똥으로 아는데 뭘. ‘니까짓 게 나이나 먹었지 뭘 아느냐’ 그 정도야. ‘저보다 더 잘 알고, 더 경험을 가지고 나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니 어쩌겠나. 막상 의지하고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텐데도 그래.

 

안 찾아와도 한마디 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자신을 고치도록. 나라를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이)찾아와야지. 그 동생 지만이나 근령이 내 옆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단단히 해 놔 말도 안 하는 사이가 됐는데 뭘…. 누가 고쳐, 본인이 고쳐야지.

 

대통령 출마 전엔 청구동에 왔었죠.

한 번 왔어. 아래층에서 만났어. 도와달라고 하더구먼.

 

호칭을 뭐라고 했습니까.

뭐 그대로 ‘총재님’.

 

그럴 때는 ‘형부’라고 불러야 마음이 통하는 거 아닐까요.

형부라고 부를 정도로 정서가 정돈된 여자가 아니야. 그냥 총재라고 불렀어. 아내가 죽었을 때도 왔어. 잠깐 묵념을 하더니 내가 이쪽 방에 있었는데, 말을 안 해. 그냥 와서 나를 보고는 앉았다가 갔어. 한마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야. 저 혼자만 똑똑하고 나머지는 다 병신들이야.

 

그래도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시죠. 간접적으로라도 들어가게.

싫어. 잘못 얘기하면 묘(墓) 속에 들어가서도 나를 미워할 거야. 그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야. 회복불능인 사람이야.

 

나라 앞날이 대단히 걱정스럽습니다.

자기 운명의 길을 걷겠지. 누가 뭐라고 해도. 고집스러운 성격에다… 더 나쁜 것은 저 위엔 없다고 생각하는 게야. 정상에 앉아서 모두 형편없는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뭔 얘기를 해. 

 

ⓒ 시사저널 미술팀

ⓒ 시사저널 미술팀



朴대통령, 정호성에 문자… "崔선생님에게 컨펌했나요"

  • 박상기 기자
  •       
  • 입력 : 2016.11.16 03:00 | 수정 : 2016.11.16 07:48   

[최순실의 국정 농단]

김수남 검찰총장 "대통령 직접조사 불가피"… 檢 "16일 안되면 17일 대면조사도 가능"

- 국정 좌지우지한 최순실
崔 "국무회의 하고 순방 가야" 정호성에게 전화로 독촉… 실제로 그후 국무회의 일정 잡혀
靑 보고서 '넣어라 빼라' 간섭도

검찰이 압수한 정호성(47·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60·구속)씨를 '최 선생님'으로 호칭한 문자메시지를 찾아낸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에게 일부 문건과 관련해 '(이거) 최 선생님에게 컨펌(confirm·확인)한 것이냐'고 묻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으며, 때로는 '빨리 확인을 받으라'는 취지의 문자도 보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문자메시지들이 박 대통령이 연설문이나 정부 인사(人事)를 비롯한 기밀 자료 등을 최씨에게 유출하도록 지시한 증거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최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국무회의 일정 등을 잡으라고 독촉하는 내용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도 확보했다고 한다. 이 통화 녹음 파일은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앞둔 시점에 녹음이 됐는데 최씨가 '국무회의를 하고 순방을 가는 게 낫겠다'며 대통령의 일정(日程)을 사실상 지시하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최씨가 말한 대로 국무회의 일정이 잡힌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 녹음 파일 가운데는 이 밖에도 최씨가 각종 청와대 보고서 등과 관련해 '이건 넣고' '저건 빼고' 하는 식으로 주문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고 한다.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對)국민 사과를 통해 "(최순실씨에게)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을 도움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정 전 비서관 등으로부터 확보한 증거물은 '단순히 도움을 받은 것 이상'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공무상 기밀 유출' 혐의와 관련한 수사는 상당 부분 진척이 돼 있으며, 헌법상 불소추 특권(내란·외환죄를 제외한 형사상 범죄 혐의로 기소되지 않는 특권)을 가진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인일 경우 기소가 가능한 정도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본부는 박 대통령이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제시한 '16일 대통령 조사' 일정을 늦춰달라며 "원칙적으로 서면(書面) 조사가 바람직하다"고 한 것과 관련해 "진상 규명을 위한 대면(對面)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16일 대면 조사가 어렵다면 17일이라도 가능하다"고 했다. 김수남 총장도 이날 퇴근길에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신속하게 조사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사 질문지 작성 등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준비를 거의 끝냈다고 한다. 질문지 작성에는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장)과 검사 5~6명이 참여했다. 검찰 관계자는 "질문을 간추리는 중"이라며 "최순실씨를 20일까지 기소해야 하는데 공소장(公訴狀)은 시험지 답안이랑 달라서 빈칸으로 둘 수 없다. 최씨 기소 전에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이 조사 시기와 방식을 들어 청와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지금까지 이뤄진 조사를 통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 돈 774억원을 모금한 것과 최순실씨에게 각종 청와대 문서가 유출된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각각 직권남용과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를 적용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선 이와 별개로 삼성전자가 최순실씨 모녀(母女)가 독일에 세운 코레스포츠로 지난해 9~10월 280만유로(당시 환율로 약 35억원)를 송금한 것이 박 대통령 조사의 막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송금이 이뤄지기 전인 지난해 5~7월 삼성은 지배 구조 개편 차원에서 추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가 걸려 있었다. 검찰에 선 이 사안과 280만유로를 송금하면서 삼성전자가 최씨 모녀를 도운 것 사이의 관련성을 집중 수사 중이다. 만약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를 지원한 대가로 정부의 지원 등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송금 문제는 결국 대통령을 조사해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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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2호] 2016.12.06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