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시담록

[박근혜5] 세월호 7시간의 진실

이름없는풀뿌리 2016. 11. 14. 18:15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어디 있었나…靑 "계속 집무 봐"

장소는 특정 안해…"유선 6회·서면 9회 보고받아"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 2016-11-14 09:39 송고 | 2016-11-14 10:23 최종수정


© News1 허경 기자

청와대는 14일 박근혜 대통령의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과 관련해 "집무를 계속 보고 계셨다"고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월호와 관련되지 않은 보고 사항도 있지 않겠나"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관저 혹은 집무실에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관저에도 집무실이 있고 본관에도 집무실이 있다"며 "어디에도 집무실이 있다"고 명확하게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다. 앞서 정 대변인은 지난 11일 "박 대통령은 당일 청와대에서 정상 집무를 봤으며 세월호 사고에 대해 지속적으로 15차례에 걸쳐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 등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30분부터 17시10분 사이 7시간 동안
오전 10시36분, 10시40분, 10시57분, 11시20분 ,11시23분, 11시28분,
오후 12시05분, 12시33분, 13시07분, 13시13분, 14시11분, 14시50분, 14시57분, 15분30분, 17시11분에 보고를 받았다.

아울러 당일 오후 12시50분 당시 고용복지수석이 기초연금법 관계로 박 대통령에게 10분 동안 전화로 보고를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에 관해 정 대변인은 "그때 제가 시간을 죽 나열한 것은 세월호 보고와 관련된 시간들이었다"며 "유선 6회, 서면 9회 이렇게 보고를 받았다는 거 아닌가"라고 언급했다.

한편 정 대변인은 서울 강남 차움의원 출신 의사 김모씨가 비밀리에 청와대를 출입하며 진료 기록도 남기지 않고 영양 주사 등을 처방했다는 의혹과 관련, "(청와대) 출입과 관련된 것은 검찰 수사 사안이니까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겠다"고만 언급했다.

이어 2014년 파문이 일었던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 관련 기록들이 있었으나 민정수석실에서 묵인했다는 의혹엔 "그 당시에 검찰에서 다 결론이 난 사안들이 아닌가. 그때 검찰에서 수사 사안이니까"라고 말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청와대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는 4가지


 |  작성자 곽상아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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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대별로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보여주는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4·16 세월호 사고 당일 시간대별 대통령 조치사항'이라는 이름의 이 문건을 보면 아래와 같은 4가지를 알 수 있다. 이 문건은 녹색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이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청와대가 제출한 것이다.

1. 특히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낮 12시 50분까지 2시간 20분 동안의 행적이 더욱 묘연하다. 이 시간 동안 대통령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로부터 '보고'(8차례)만 받고 '지시'는 단 한 차례도 내리지 않았다.


(이 시간은 세월호가 침몰하던 상황)

(8번의 보고도 오전 11시 23분 안보실 보고만 '구두보고'이고, 나머지 7번은 모두 '서면보고'.)

(세월호가 뱃머리 일부만 남기고 침몰하던 오전 11시 18분에도 안보실과 비서실에서 '보고'만 이뤄짐)

2. 대통령이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까지 세월호와 관련한 직접 지시는 6차례인데, 모두 '대면 지시'가 아니라 '전화 지시'다.


3. 4월 16일 안보실과 비서실은 대통령에게 18차례의 '보고'를 했으나 7차례는 '구두보고', 11차례는 '서면보고'로 '대면보고'는 단 한 건도 없다.

4. 대통령은 오후 3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준비를 지시했으나, 정작 대통령이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15분이다. 자동차로 5분 걸리는 거리인데 말이다.

한편,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당시 대통령이 관저에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11일 법조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 전 비서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문제의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관저에 계셨다”며 “사태가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중략)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박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 있는 ‘집무실’이 아닌 사적 공간에 가까운 ‘관저’에 있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논란의 소지가 크다. 또 박 대통령이 나중에야 상황이 급변한 것을 파악했다면 세월호 관련 보고를 실시간으로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최소한 상황인식이 안이했을 가능성이 있다.(경향신문 11월 12일)

 


 

 

 

김진명, 세월호 7시간 추론 “얼굴 문제일 수...밀회는 아냐”

  • 기사입력 2016-11-17 00:16
  • [헤럴드경제]소설 ‘킹메이커’를 통해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를 쓴 김진명 작가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16일 밤 방송된 TV조선 ‘강적들’에 게스트로 출연한 김진명 작가는 ‘대통령의 사라진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네가지 추론을 했다. 김진명 작가는 ‘사라진 7시간’에 대해 “세월호 참사 보고를 18차례 받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TV조선 ‘강적들’

    김진명 작가는 “어찌됐던 국가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타날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는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없는 얼굴을 가졌을 때다. 또 하나는 의식이 없을 때다. 마지막으로는 무엇으로도 침범을 받고 싶지 않은 종교의식을 가질 때다. 그런 것을 할 때 보통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대통령이 국가 재난보고를 받고도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며 마지막 가설을 덧붙였다. 그리고 사라진 7시간 동안 ‘정윤회와의 밀회’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보통 (밀회를 저지르는 사람은) 밀회 사실이 들키지 않기 위해 사고 현장에 빨리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7시간' 해명.."오보 따른 혼돈시간, 관저 집무실에 있었다"(종합)

    유기림 기자 입력 2016.11.20 00:18 수정 2016.11.20 00:30 댓글 1212

    "진짜 비극은 오보에 따른 혼돈..국민 혼란 가중"
    지난 11·14일 해명 이어 이날 집무 내용 공개
    (청와대 홈페이지). © News1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 청와대는 19일 갑작스럽게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해명했다. 주로 관저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홈페이지 '오보·괴담 바로잡기' 게시판에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 및 경내에서 당일 30여차례의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어제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게시판을 신설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 원인을 대통령의 7시간으로 몰아가는 악의적인 괴담과 언론 오보로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해명 경위를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는 데다 이날 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관련 내용이 방송돼 눈길이 쏠려 있는 만큼 파장을 우려해 미리 대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의혹이 재차 불거져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지난 11일과 14일에도 정연국 대변인을 통해 해명한 바 있다. 지난 11일엔 세월호 참사 당일 성형 시술 의혹을 부인했다. 정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당일 청와대에서 정상 집무를 봤으며 세월호 사고에 대해 지속적으로 (7시간 동안) 15차례에 걸쳐 국가안보실과 정무수석실 등으로부터 상황보고를 받았다"고 알렸다. 이후 지난 14일엔 보고 형식과 관련해 "유선 6회, 서면 9회 이렇게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더 나아가 당일 오전 9시24분부터 밤 10시9분까지 집무 내용을 다룬 그림 파일을 공개했다. 청와대 공식 블로그에선 이를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게 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공개했던 적이 없다"면서 당시 박 대통령 위치와 동선을 놓고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고, 유선 등으로 상황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지난 14일 "어디에도 집무실이 있다"고 명확하게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으나 이번엔 범위를 좁힌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에는 박 대통령이 받은 보고 내용과 지시가 담겨 있다. 여기엔 국방, 인도네시아 대통령 방한 시기 재조정 검토, 자율형 사립고, 기초연금법 국회 협상 진행 상황, 주한일본대사 오찬 결과 등 사고 수습과 관계 없는 현안 보고도 포함돼 있다.

    청와대의 이러한 해명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수습을 지휘하는 정부 '컨트롤 타워' 부재에 있었다는 지적때문에 박 대통령 당시 행적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인데 이번에 밝힌 일정에도 긴박한 상황 인식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날의 진짜 비극은 오보에 따른 혼돈"이라며 "이 같은 혼란은 오후까지 이어져 오후 1시13분에도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재난 상황 보고와 판단을 언론보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대통령은 계속 상황을 확인하였고, (국가)안보실장이 오후 2시50분 '190명 추가 구조가 잘못된 보고'라고 최종 확인하자 오후 3시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바로 지시하였다"고 알렸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에 중대본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해 재난 상황에 긴밀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 '朴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증언'…"선창 깨서라도 구하라" 지시

    입력 : 2016.11.28 17:06 | 수정 : 2016.11.28 17:28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 김장수 주중(駐中) 한국대사가 28일 “박 대통령과 6~7회 전화 통화를 했고, (대통령이)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현지 특파원들을 만나 “대통령이 ‘선실을 다 뒤져서라도, 유리창을 깨서라도 (피해자들을)구하라’라고 지시했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김 대사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김 대사의 이런 발언은 청와대가 지난 19일 홈페이지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 및 경내에서 30여 차례의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고 밝힌 것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김 대사는 “대통령이 심하게 질책을 했다”면서 “‘왜 구했다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통계의 불확실성에 대해 질책을 했다”고 말했다. 이 부분 역시 “박 대통령은 2시 57분에 안보실장에게 전화해 구조 인원 혼선에 대해 질책하고 오후 3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준비를 지시했다”는 청와대 발표와 일맥상통한다.

    김 대사는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당시 세월호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선체 내부에 있는 게 정확히 보고됐느냐’는 물음에 “보고가 됐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통화 중에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해라. 선실을 다 뒤져서라도 깨서라도 구해라’라는 말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했다.

    김 대사는 최초 보고가 서면이었는지, 유선으로 했는지는 정확한 언급을 피했다. 그는 “언론을 보니까 서면보고라고 돼 있더라. 청와대에 정확한 자료를 요청해보라. 내가 설명하기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사와의 일문일답.

    -대통령이 직접 유선보고 받았느냐.
    “물론이다. 내가 시간은 모른다. 직접 받았다.”

    -정상적으로 지시가 가능한 상황이었나.
    “그럼. VIP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지시도 했다.”

    -보고 때 전화를 받은 것도 대통령인가.
    “물론이다. 몇 번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건 것도 있고, 받은 것도 다 있다. 지시는 일반적인 것도 있고, 특정한 것도 있었다.”

    -첫 보고는 서면이었나.
    “언론에 보니까 서면보고라고 돼 있더라.”

    -첫 보고 당시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나.
    “집무실과 관저에 같이 (보고를) 띄운 것으로 생각한다.”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았나.
    “아니다.”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청와대 상황실이 너무 복잡해서 (대통령이)오더라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으로 가는 게 나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당시 유선 보고한 간격은.
    “6~7회는 했다. 걸든 받았든 통화를 했다. 청와대 발표 내용은 모르고, 최종적으로 오후 2시 몇분까지 하고 그 다음부터 안했다. 정무수석실에 사회안전비서관이 있어서 그쪽이 중대본하고 직접 상대하고 보고했다.”

    -마지막 보고는 전화로 했나.
    “전화로 했다. 두시 좀 넘어서까지. 정정보고도 했고, 대통령이 심하게 질책도 했다. 나는 대통령하고 정상적으로 통화했다.”

    -피해자들이 선체 내부에 있다는 부분 정확히 보고가 됐나.
    “보고가 됐겠지. 선체가 돌고 뒤집어졌지 않느냐. 대통령이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해라. 통화중에 선실을 다 뒤져서라도 깨서라도 구해라라는 말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현재 선체가 이렇게 기울었고, 학생들이 갇혀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냐.
    “상식적이라면 보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대통령이 중대본에서 '구명조끼 입었는데 왜 발견을 못하느냐'고 질문한 게 납득이 안 간다.
    “선창을 깨서라도 아이들을 구하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통화로 질책을 했다는데.
    “ 왜 구했다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통계의 불확실성에 대해 질책을 했다.”

    -세월호 관련 첫 보고를 왜 서면으로 했나.
    “그건 청와대에 한번 물어보라. 내가 답변 않겠다.”

    -청와대가 처음엔 ‘유선 보고했다’고 했다가 정정했는데.
    “청와대에 정확한 자료를 요청해보라. 내가 설명하기 부적합하다. 청와대에서 발표한 게 있을 것 아니냐.”



    "최순실은 나서는 사람 아니어서 秘線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재훈 기자 입력 2017.05.24. 03:11 댓글 1143


    [박 前대통령 검찰 진술]
    박근혜 前대통령 '5차례 검찰 진술 조서' 보니
    - 최순실과의 관계, 세월호 행적 논란
    "세월호 당일 피곤 쌓여 몸 안좋아 관저서 일하며 필요한 조치 했다"

    "피곤이 쌓여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 당일 특별한 일정이 없어 관저에서 조금 편하게 일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있었던 검찰 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청와대 관저(官邸)에 있었던 이유를 묻는 검사에게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도 집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건강을 고려해 업무 장소를 바꾼 것뿐"이라며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보고를 받고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참사 당일 관저에 누가 출입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상근 경호관과 행정관이 있었고, 미용실 관계자만 출입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나서는 사람이 아니어서 비선(秘線)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저의 말이 국민에게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말을 가다듬어주는 데 감각이 있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딸) 정유라는 아주 어렸을 때 만나보고 그 이후 본 사실도 없다"며 "정유라가 승마 선수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고, 이름도 정유연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동 자택을 최씨가 관리하고 매매계약도 체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고용한 오래된 사저 관리인이 (따로) 있었다"며 "그 사람들에게 월급도 제가 지불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최씨 모친인) 임선이씨가 나를 대신해 (삼성동 자택) 매매계약을 체결했을 수는 있지만 돈은 그전에 살던 서울 장충동 집을 팔아서 마련한 것"이라며 "(최씨가 챙겼던) 의상도 비용은 모두 내가 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차명폰'을 관련해서는 "비서에게 전화를 맡겨 놓고 쓰기 때문에 나는 전화번호도 모른다"며 "비서가 '보안폰'이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지 보안폰과 차명폰의 차이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 "최씨와는 주로 의상 문제로 통화했고, 다른 사적인 심부름 때문에 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호성 전 비서관이 최씨에게 정부 비밀문서를 유출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정호성이 그렇게 다량의 문건을 최순실에게 보낸 것을 알지 못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사가 '최씨의 지시를 정 전 비서관이 거부하지 못한 이유를 아느냐'고 묻자 "정호성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지 최순실이 정호성의 보스입니까"라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서로 친한 사이에서 이런저런 얘기는 할 수 있겠지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