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3일 화요일
숙소(롱 낙쿤 호텔)→탐쌍동굴→탐남동굴(튜브탐사)→10관문 짚 라인체험→중식(송강 야외식당의 현지 식)→송강 카약체험→버기카체험→블루라군(유럽인들의 최고인기휴양지, 천연수영장)체험→숙소(버기카체험 2)→석식(미스터치킨하우스)→숙소(롱 낙쿤 호텔)
“와! 한 폭의 멋진 그림이에요, 그림!”
새벽2시, 3시, 밤새 개구리울음소리 같은 소음에 시달리다가 5시쯤, 여명의 유혹에 베란다로 나갔다. 겹겹이 이어진 산봉우리와 그를 휘감은 구름들이 걸작이었다. 선계가 저런 곳일까? 소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조용한 시골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측옆방의 남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동자세로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샤워 후, 남편과 같이 내다본 풍경역시 구름만 약간 걷혀 선명해졌을 뿐 매우 아름다웠다.
“호텔 앞 경치는 좋은데 휴지는 물렁물렁, 화장대의자도 없네. TV는 폼이요, 컵도 하나뿐. 이렇게 녹슬고 휘어진 비닐옷걸이는 한국가정에선 사용하지도 않는데.”
어젯밤 늦게 주물러 널어놓은 세탁물들이 고장 난 에어컨덕분에 밤 열기로 꾸덕꾸덕 말랐다.
“수건이 하나밖에 없으니 빨아서 또 이용해야겠네?”
“수건도 너덜너덜해서 비누칠해 빡빡 밀면서 세탁하면 안 되고, 가볍게 헹궈야만 될 것 같아요.”
“슬리퍼도 일회용이 아닌 영구적용이야. 갖고 가지 못하게. 허허허”
더워서 기초화장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약간 시원한 것 같으면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정문 앞 마사지 숍과 마트지붕이 철판이었다. 숙소는 돈을 벌었는지 한 층을 증축하는 공사 중이었다.
탁발을 시작하려는 맨발의 스님들이 바리때를 메고, 정문으로 들어섰다. 연배 순으로 선다는데 어깨를 완전히 덮은 스님과 오른쪽어깨를 내놓은 두 모습으로 표정이 매우 편안하고 밝았다. 아침마다 스님들은 하루양식을 확보하기위해 시민들로 하여금 공양할 기회를 줘 내세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 감사표시로 인사도 없이 불경만 읊어주고, 다른 곳으로 갔다. 구걸이 아닌 하나의 수행과정인 탁발을 통해 아집과 야망을 없애고, 무욕과 무소유를 실천함이니 짧지만 경건했다. 한 가구당 일인씩 군대나 스님으로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이유에서인지 앳된 얼굴의 동자승, 청소년스님들이 많았다. 호텔주인과 어떤 관계가 되는지 곱게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 로비직원이 연신 굽신, 소녀부축을 받으며 떠났다. 탁발 때 사용할 나무의자들이 본관입구에 늘 배치되어 있었다.
조식시작시각이 6시 반부터인 호텔식당으로 들어갔다. 종류는 다양하지 않고, 소규모지만 볶음밥, 미음, 스프, 나물, 과일 등 기본적으로 갖출 메뉴는 다 있고, 입맛에 맞았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로비에 들러 직원과 룸으로 향했다. 에어컨을 고치는 동안 작동도 되지 않는 TV에 대해 물으니 간단히 ‘No!' 답하고, 나가버렸다.
“시설이나 서비스가 완전엉망이네요! 하하하”
화장을 하는데 밖에서 ‘부릉부릉’ 자동차시동 거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체험하기 위해 일찍 출발하는 팀들의 트럭소리였다.
“트럭 위에 카누를 실었어요. 아마 카누체험하려나 봐요.”
“우리도 오늘 할 걸?”
호기심, 궁금증을 잔뜩 품고, 한 줄에 6명씩 12명이 한대의 트럭(툭툭이)에 올라탔다. 우리와 함께 할 젊은 남자들은 툭툭이 뒤에 걸터앉거나 매달렸다.
“20대 초중반의 카약기사들인데 벌이가 좋아요.”
인도는 비포장, 차도만 포장한 대로를 한참 달렸다. 자동차들의 왕래가 복잡하지 않아서인지 대로엔 중간선도 없었다. 라오스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자유와 여유가 살아 숨 쉬는 방비엥의 풍경을 처음 타보는 트럭 위에서 계속 사진기에 담았다. 연달아 이어지는 높은 산들과 어우러진 신구주택들은 우리의 70년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해가 중천에 떴어도 떠날 줄 모르는 흰 구름들은 빼어난 산수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앞서 달리던 트럭이 멈추더니 가이드가 뭔가 나눠주는 것 같았다. 곧 우리에게도 두껍고, 무거운 비닐 백을 나눠주었다. 레저체험 시 중요물품들을 담아 보관시키는 가방이었다.
또 달리기 시작했다. 소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넓은 들판, 베트남주택과 완전히 다른 라오스의 주택들, 한 폭의 수채와 같은 산들의 비경은 자꾸 셔터를 누르게 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털털거리며 자갈길을 숨 가쁘게 달리더니 드디어 멈춰 섰다.“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합니다. 꼭 모자를 쓰시고, 소똥 밟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다리에도 사당을?’ 개인이 설치하여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방비엥 송강의 흔들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도니 소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소똥, 소똥!”
앞서가던 젊은 라오스남자가 어깨위에 짊어진 짐을 고쳐 메며 한국말로 소리 질렀다. 내 앞으로 10여 미터쯤 앞서 걷던 여자가 ‘에그, 깜짝이야. 더러워라!’ 놀라 뒷걸음치다가 뒤에 있던 소똥을 밟았다.
“아이구 이를 어째! 저 남자가 소리 지르지 않았으면 내가 알아서 잘 갔을 것을!”
친절을 베풀던 젊은 남자는 미안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던지 킥킥거리며 뒤돌아 잽싸게 뛰어갔다. 오만상으로 찡그리던 한국여자는 우리일행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아무 불만을 토하지 않고, 계속 직진했다.
'따라오라'는 라오스여자가이드안내로 우측 문을 통과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사원인 줄 알았더니 방비엥의 유명한 관광지인 탐쌍동굴이란다. 동굴 폭이 짧아 서늘하거나 어둠 컴컴하지 않았다.
“라오스언어로 ‘쌍’이란 코끼리를 뜻하여 코끼리사원이라고도 합니다. 좌측의 이 종은 라오스내전 때 사용되었던 포탄으로 만들었고, 누워있는 와블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죠.”
동굴안쪽평지에 평범한 불상과 제단이 있었는데 동굴우측 벽 중간쯤에 코끼리모양의 형상이 눈길을 끌었다. 인위적이 아닌 자연생성 된 형상이라 더욱 특별했다. 발길을 재촉하는 가이드명령에 동행인들과 같이 코끼리형상을 재빨리 사진기에 담았다.
싱싱한 야자수 아래로 난 흙길을 걸었다. 많은 외국여행객들이 다닐 길임에도 포장도 하지 않고, 자연그대로였다. 방목하여 키우는 닭과 소, 개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있었다. 이웃나라 태국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위성안테나가 이채로웠다.
“돌멩이들이 많은데 다치려면 어쩌려고? 가난해서 신발을 못 신은 건가요?”
“신발 아끼려고 놀 때는 신지 않는 거죠. 험한 놀이를 할 때 신으면 빨리 닳잖아요?”
‘어머나, 그렇구나. 우리선조들도 짚신을 신었던 때가 있었고, 딱딱한 검정고무신이라도 너무너무 좋아서 품에 안고 잤다던 부모님세대들도 있었다고 하지!’ 딱해 보였다. ‘라오스가 저토록 못사는 나라인 줄 알았다면 나이, 성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모아 갖고 올걸.’ 아쉬움이 컸다. 한국으로 가서 누군가 라오스로 여행한다고 하면 ‘무엇이든 나눠줄 물건을 잔뜩 갖고 가서 직접 나눠주라!’ 시켜야겠다. 울타리대신 나무와 철사로 엮어놓은 경계표시에 또 마음이 짠했다.
“그래도 방비엥의 주택들은 잘 사는 도시로 좋은 편이에요. 우리가 묵는 숙소도 동남아 다른 국가에 비해 형편없이 낙후된 시설이지만 4성급으로 고급호텔이고요. 하하하”
나무를 엮어 만든 건널목을 조심조심, 네발을 사용해야 할 때는 우리자비로라도 만들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의 바짝 마른 논밭 길을 지날 땐 ‘확실히 베트남이 물 많은 나라야.’ 자꾸 비교되었다. 개발할 곳이 너무 많은 방비엥은 자연그대로라 순수해서 좋다고 해야 할까? 때 묻지 않은 운치 있는 풍경을 바라보니 등에서 흐르는 육수도 상관치 않았다. 가볍지만 챙겨오기가 꽤 불편했던 베트남 모자를 쓰니 한결 얼굴은 시원했다.
“큰 돌 몇 개만 날라 계단식으로 만들면 될 것을 왜 나무로 오르내리기 불편하도록 엮어놓았을까?”
“라오스에 왔으니 이런 체험도 할 수 있지. 요즘 세상에 이런 체험을 어느 나라에서 할 수 있겠어? 안 그래? 허허허”
“맞아요. 이런 길은 오직 라오스밖에 없을 것 같아요. 호호호”
물댄 논에서 벼 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뒤 배경하고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툭툭이에서 내린지 20여분 후? 다오 투어라 쓴 한글간판이 걸린 나무천막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부터 모든 소지품을 방수 백에 넣어두고, 안경이나 선글라스도 한곳에 모아두십시오. 앞으로 체험하는 동안은 사진촬영이 불가능합니다. 곧 송강에 위치한 탐남동굴을 튜브 타고, 몸이 물에 반쯤 잠겨 들어가실 건데 원래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한 수중동굴이므로 입구가 물속에 있습니다. 컴컴하여 이마에 낀 헤드라이트로 구경하셔야 합니다. 수심이 깊지 않아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굴속에 설치해 놓은 줄과 튜브를 놓치면 당황하여 겁에 질리게 되고, 허둥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직원들이 있어서 곧 조치를 취해줄 겁니다.”
탐남동굴 탐사라인을 위해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끼고, 두꺼운 검은 색 튜브에 누웠다. 워낙 무더운 날씨라 차갑기보다는 시원한 느낌이었다. 가이드설명대로 밧줄을 잡았다. 겁이 났지만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줄만 놓치지 않으면 물에 빠질 염려는 없겠지.’ 단단히 마음먹었다. 제부, 계선이, 나, 남편순서대로 줄잡은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 굴속으로 진입했다. 입구는 넓어 환했는데 점점 들어가면서 컴컴해졌고, 좁아졌다. 이마의 헤드라이트가 자꾸 위로 올라가 벗어지려고 했다. 오른손은 줄을 잡고, 왼손으로는 아래로 내렸다. 동시에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으므로 입구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출발했는데 불안한 마음에서인지 손의 이동을 빨리하여 갈수록 간격이 좁아졌다.
“천천히, 천천히!”
앞뒤여기저기에서 계속 들렸다. 헤드라이트를 굴속곳곳을 비추며 천정과 벽을 구경해야하는데 밧줄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동하는데 신경을 더 썼다. 거기에 내가 탄 튜브가 앞뒤튜브나 바위벽에 부딪칠 때마다 몸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했다. 이따금 줄이 여러 개 있을 땐 안으로 늘어진 줄이 어느 것인지 빨리 캐치하여 일행과 떨어지지 말아야했다. 머리를 들면 나중에 고개가 아프고, 위험하다는 가이드 말이 생각나서 전신을 튜브에 맡기고, 튜브를 베게 삼아 누웠다. 잔뜩 긴장한 채 열심히 줄을 잡고, 굴 안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오던 남편이 갑자기 ‘푸우, 푸우!’ 물에 빠진 채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순간 사고가 났음을 직감했다.
“줄을 잡아요, 줄을!”
남편은 내가 탄 튜브를 잡기 위해 머리만 겨우 내놓고, 계속 두 팔을 움직이며 허둥거렸다. 남편이 탄 튜브는 벽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 여봐요!”
그때 어디선가 남자직원이 헤엄쳐 나타나 다른 튜브를 남편에게 갖다 주었다. 남편은 곧 줄을 잡고, 튜브에 올라탔다. ‘휴우!’ 자칫 큰일 날 뻔 했던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남편이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발이 닿지 않더라고.”
“줄을 놓지 말아요.”
그때 어디서인지 갑자기 환호성이 터지면서 물세례가 마구 퍼부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손을 빨리 움직여 그 자리를 피했다. 조금 더 가니 계선이가 소리 질렀다.
“언니, 여기가 끝이래. 다 왔대. 이젠 몸을 돌려서 들어오던 방향으로 뒤돌아 나가야해.”
‘뒤로, 뒤로, 뒤돌아나가요!’ 몸의 방향을 돌리는데 헤드라이트 줄이 끊어졌다. 얼른 왼손으로 잡고, 밧줄 잡은 손위에 포갰다.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천정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 짙은 회색의 울퉁불퉁한 표면이었는데 거친 것 같았다. 특이하고 기이한 종유석들이 많다는데 제대로 구경할 수 없어 매우 아쉬웠다.
“다른 팀이 안쪽으로 들어간다니까 여기서 잠시 멈추래요!”
“우리도 물세례 퍼부어야지!”
벽면에 붙어있던 우리 팀 중 누군가 물을 손바닥으로 치기 시작했다. 나도 왼손은 줄을 잡고, 오른손바닥으로 물을 쳐올렸다. 앞쪽에서 ‘와! 와! 빨리, 빨리 지나가자!’ 아우성이었다.
곧 우리는 동굴입구를 향해 다시 줄잡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어갈 때보다 심적 여유가 생겨 헤드라이트를 구석구석 비추며 구경하며 나왔다.
드디어 환한 밖으로 나와 생명과도 같았던 줄을 놓고, 튜브에서 일어났다.
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전신이 젖은 채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처음엔 무서웠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있더라!”
“튜브에서 균형 잡고, 줄 놓치지 않기 위해 동굴 속 구경은 하나도 못했어. 그래도 생전처음 해보는 체험이라 기분 좋았어!”
“와! 지금까지 많은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오늘 같은 체험은 처음이네. 10년만 일찍 왔더라면 더 기분 좋았을 것을!”
신기하고, 재미있는 동굴체험이었다. 하지만 체험사진이 없어 좀 서운했다. 동굴입구를 찍은 사진 두 컷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 모이셨죠? 다음엔 이 산위에 설치되어 있는 짚 라인을 체험하실 겁니다. 우선 짚 라인에 필요한 장비를 몸에 걸쳐야하니까 남자도우미 앞으로 가세요. 다 마친 분들은 짚 라인 연습장으로 오세요!”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처럼 비슷한 장비를 몸에 두르고, 머리엔 헬멧까지 착용했다. 생전처음 착용해보는 장비무게가 처음에는 불편하고, 무겁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다.
“자, 여기에 짚 라인이 짧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타는지 방법을 가르쳐드릴 테니까 잘 보세요.”
남자도우미가 시범으로 로프에 매달리는 방법과 브레이크 잡는 방법, 도착 시 발모양 등을 보여주었다.
“로프위의 검정색부분을 누르면 도르래가 멈추는데 너무 빨리 누르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멈출 수가 있습니다. 그때 절대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주면 남자도우미가 데리러 갈 겁니다. 아셨죠?”
“네!”
“또 너무 늦게 누르거나 안 누르면 빠른 속도로 끝까지 가므로 자칫 나무나 남자도우미, 먼저 도착한 일행들을 발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제때에 잘 눌러주시고, 두발을 벌리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네!”
“또 한 가지. 먼저 도착하신 분은 앞에 나가있지 말고, 나무뒤쪽에 서계시기 바랍니다. 아셨어요?”
“네!”
“짚 라인체험은 즐거우면서도 위험성이 뒤따르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항상 긴장하시고, 주의 또 주의하세요!”
“네!”
“사진기가 없으니 아무 것도 찍을 수가 없네. 우리의 이런 모습도 찍었으면 좋겠는데.”
그때 다른 팀의 한 여자 분이 ‘폰으로 찍어서 보내주겠다’하여 우리 여섯 명이 재빨리 모여섰다.
“고맙습니다!”
내 폰 번호를 가르쳐주고, 사진전달을 부탁했다.
라오스남자도우미를 따라 들판에 난 숲길을 걷다가 짚 라인 특성상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므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산위로, 위로 올라갔다. 허리와 다리통증으로 등산을 멀리한지 4, 5년쯤 되므로 가파르고, 좁은 길로 올라가는 일이 매우 힘겨웠다. ‘비싼 돈 들여 외국까지 와서 무슨 고생이람?’ 허탈감이 앞섰지만 지옥 같던 10여분 후, 큰 나무주변에 나무를 엮어 만든 곳으로 올라섰을 땐 ‘와! 정말로 못 올 곳에 왔구나!’ 겁이 더럭 났다. 거대한 나무와 나무사이에 로프를 설치하고, 도르래원리를 이용하여 로프를 타면서 이동하는 짚 라인이 어떤 체험인지 모른 채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기에 우리들 나이도 있으니 여럿이 골프의자에 앉거나 케이블카 비슷한 도구를 이용하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중 매달리기로 100m정도 혼자 가야하다니! 대기하고 있는 순간 ‘걸어서 그냥 내려가? 아님 용기 내어 외줄타기에 도전해봐?’ 두 생각이 마구 싸웠다. 가슴 속 고동소리가 귀까지 들릴 정도였지만 두려움, 공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하므로 결정은 지금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쩌지? 도전해봐? 포기해?’머릿속이 복잡할 때 앞에 서있던 분이 한마디 하셨다.
“내 나이 70넘게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해서 아프리카에도 가봤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인 걸?”
“어떻게, 자신 있으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해봐야하지 않겠어요? 생소한 체험이라 매우 신날 것 같은데요?”
‘74세라는 분도 맨 앞에 서서 도전하려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있어? 내 생애 지금까지 이런 기회도 없었고, 앞으로 또 있을까? 그래. 해보는 거야.’용기를 냈다. 나무 정거장마다 남자도우미들이 있어 세심하게 돌봐주고, 친절하게 대해준다니 한편 안심은 되었다. 로프가 팽팽해야 이동이 쉬우므로 나무와 나무간격이 너무 멀어도 안 될 것 같았다. 드디어 남자도우미가 앞의 분의 도르래장치를 로프에 연결시켰다.
“와!”
뒤에 선 우리들의 환호 속에서 다리를 오므린 채 잘 매달려가다가 건너편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광경을 보았다. 이번엔 내 차례다. 살짝 뛰어 도르래장치를 로프에 연결, 망설이면 더 무서울 것 같아 마치 여러 번 경험해본 사람처럼 두 발을 들어 조용히 몸을 날렸다. 뒤에서 남편과 다른 일행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다리를 벌리면서 로프위의 검은 손잡이를 잔뜩 오므렸다. 천천히 속도가 줄면서 가뿐히 나무 정류소에 안착했다. 평소 운동신경이 많은 남편도 뒤이어 곧 도착, 환희의 기쁜 마음을 ‘브라보!’ 외치며 엄지를 들었다가 ‘와우!’ 손바닥인사를 했다.
두 번째 줄을 타려는데 앞의 여자가 도르래장치를 로프에 낄 때와 뺄 때, 여러 번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 웃겼다. 키가 작은 자의 불편함이었다. 그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나는 쉽게 걸치거나 빼니 누가 보면 많은 경험자처럼 느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새 로프에 연결시킬 때마다 겁이 나면서 두려움이 앞섰다.
널빤지를 줄로 엮은 흔들다리를 건널 땐 아래로 보이는 정글 같은 우거진 숲에 더 무서웠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땅도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유격훈련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무사히 잘 건너 다음 나무 정류장에 올라섰다. 이젠 마음의 여유가 생겨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실망이 컸다.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손자손녀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텐데!”
“전속사진사가 있어서 라오스도착 직후부터 오늘의 체험모두를 촬영하여 비디오로 만들어 주면 돈벌이도 되고, 서로가 좋을 텐데 아직 그런 생각까지 못 미치고 있네. 아깝다!”
‘사진기를 갖고 왔다면 두 손을 이용해야하므로 나 자신은 찍지 못해도 남편을 먼저 가게 하여 내 모습을 간접적으로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매우 아쉬웠다. 남편 뒤의 어느 여자는 브레이크를 너무 빨리 눌러 도착5, 6m전쯤에 대롱대롱 매달리더니 뒤로 점점 후진하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기다리던 남자도우미가 도르래장치를 재빨리 로프에 걸치더니 가서 데리고 왔다. 또 어느 여자는 기다리고 있는 남자도우미를 격하게 껴안고, 떨어지질 않아 웃음을 선물해주었다.
“순간 어지러워서.......”
“그 핑계로 젊은 남자와 포옹해보는 것 아니겠어? 호호호”
또 어느 여자는 끝까지 브레이크를 누르지 않은 상태로 두 발을 모으고 빠른 상태로 달려와 남자도우미와 우리들이 ‘브레이크! 발 벌려!’ 외치며 겁나게 했다. 남자도우미란 수입은 좋겠지만 그만큼 높은 곳에서 위험성을 안고 일해야 하는 극한직업인 것 같다. 이따금 다음정류장에서 우리를 맞이하기 위한 남자도우미들이 먼저 출발했는데 원숭이가 줄에서 곡예 하듯 거꾸로 매달리거나 두 팔, 두 다리를 벌리는 등 몸을 자유자재로 놀렸다.
몇 번 해보니 도르래장치를 로프에 끼거나 빼는 일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 지루했다. 맨 마지막 10관문을 통과할 때는 튜브를 이용해 탐사했던 탐남동굴 물위를 날았는데 앞의 여자 등을 떠밀어 보낸 후 로프를 위아래로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물론 떨어질 염려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조용했던 분의 몸이 상하로 춤추면서 비명을 질렀다. 난 겁을 잔뜩 먹은 채 웃고 있는 남자도우미에게 부탁했다.
“노, 노! 허리디스크 때문에 노!”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를 만지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한대로 차분하게 마지막 짚 라인까지 모두 끝내고, 짐 있는 곳으로 갔다. 얼른 폰을 꺼내어 계선이와 제부, 세무사님 부부의 짚 라인체험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잠시 서서 찍는데 많은 개미들이 다리로 올라와 오래 서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앞에서 빨리, 너는 뒤에서 늦게 탔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어.”
많은 여행객들의 비명(?), 환성과 함께 시작하는 짚 라인체험! 결코 잊을 수 없는 스릴 넘치고, 활기찬 경험이었다.
시궁창에 빠진 생쥐처럼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몽땅 젖은 모습으로 볶음밥, 꼬치, 상추, 바게트 빵, 국수, 과일 등 푸짐하게 차려진 현지 식 식탁 앞에 앉았다. 아침식사를 배부르게 했는데도 두 가지 특별체험으로 잔뜩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위험한 체험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허기가 졌다. 베트남에서 실컷 먹었던 망고와 바나나, 한국에서는 뻣뻣하다는 이유로 잘 먹지 않았던 바게트 빵을 마치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뜯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좀 빡빡했지만 재료가 많이 들어간 볶음밥도 맛있었고, 특이한 향으로 먹지 못했던 중국에서의 꼬치와는 달리 부드럽고, 아무 향도 없어 한 줄을 다 먹었다. 배추김치와 고추장이 있어서 연한 상추에 흰밥을 싸서 먹어도 꿀맛 같았다. 수박 맛은 왜 그리도 단지 몇 끼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먹었다. 허겁지겁 이것저것 마구 먹다보니 배가 불러 나중에 나온 쌀국수는 건더기만 먹고, 국물은 거의 남겼다. 건드리지도 않은 볶음밥은 덮개를 덮어놓았다. 마을의 닭과 개, 개미들이 가까이 와서 사람들이 버린 음식들로 포식하고 있었다.
“와! 배가 부르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네!”
“우리 집사람은 짚 라인을 무서워서 못 탈 줄 알았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선뜻 출발하네. 정말 안 무서웠어?”
“왜 안 무서웠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요? 그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
배가 불러서야 짚 라인체험느낌을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무서웠거든? 군대에서 그런 무서운 훈련이 있는 날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졌던 나였는데 당신이 쉽게 응하니까 남자인 내가 망설일 수 없잖아? 그래서 나도 쉽사리 응할 수 있었어. 하하하”
“형님, 맨 나중에는 출발시키고, 줄을 위아래로 흔들더라구요. 난 그때가 제일 무서웠던 것 같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제대로 탔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두 손으로 줄을 꼭 잡고 탔었으니까.”
“맞아, 맞아요. 그때가 제일 스릴 있었어!”
여기저기서 팀끼리 모여 상기된 표정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가이드목소리가 들렸다.
“식사 다 하셨으면 짐과 안경, 선글라스 등 모든 짐을 챙기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잡풀로 다듬어지지 않은 평지 길을 5분쯤 걸었을까? 폭이 좁은 강가에 다다랐다. 우툴두툴 자갈이 깔린 그곳에는 우리가 탈 카약들과 남자도우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송강에서의 카약체험을 하실 건데요, 분명히 카약과 카누는 다릅니다. 카누와 카약를 구분하는 법은 외날패들을 사용하느냐, 양날패들을 사용하느냐로 정합니다. 캐나디언과 영국산으로 나뉘는 카누는 상판덮개가 없어 오픈되었고, 외날패들(한쪽 노, 브레이드가 한 개)을 사용합니다. 배의 폭이 넓어 안정성은 있지만 한쪽으로만 노를 저어야 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립니다. 보통 카누라 하면 캐나디언 카누로 캐나다원주민들이 호수나 강이 많은 지역에서 사용하는데 당시는 양날패들보다 외날패드를 대부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한쪽 날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카누는 무개차량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내린천 등 우리나라급류에서 사용하는 카누는 경기용 카누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2인승이나 3인승입니다. 가이드가 뒤에 한 명 타고, 두 명의 승선자가 탑니다. 가이드는 양패들을 사용하며 승선자들은 외패들을 사용합니다. 반면에 카약은 배의 폭이 좁고, 상판이 덮여있어 몸을 안으로 집어놓는데 양날패들(브레이드가 양쪽, 노가 두 개)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배 길이가 4, 5m정도로 날렵하고, 배 양쪽에 노가 달려있어 빠른 속도로 나갈 수 있습니다. 보통 경주용과 레저용이 있는데 경주용은 레저에 필요한 장치가 없어 속도만을 위하므로 속도에 중점을 둔 디자인으로 제작하여 안전성이 부족합니다. 레저용의 장점은 안전성과 속도로 장거리여행에 좋아 오지에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교통수단으로 많은 장비와 생필품을 많이 실을 수 있습니다. 카약도 경기용과 레저용이 전혀 다르게 제작되는데 캐나디언 카누는 보트덮개가 없고, 150kg까지 실을 수 있습니다. 경기용 카약은 평수용과 급류용으로 나뉘는데 주로 평수용이고, 급류용은 주로 회전이 잘 되면서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근래 경기용 카약이나 카누의 재질들은 주로 합성섬유로 어떤 충격에도 쉽게 훼손되지 않습니다. 래프팅코스를 타는 급류카누는 보통2~3명이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카약은 보통1인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남자가이드들이 뒤에서 노를 저어주므로 앞에서 노를 젓지 않아도 됩니다. 정 이용하고 싶으면 그냥 폼으로 흉내만 내세요. 뒤에서 남자도우미가 열심히 젓고 있는데 앞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저으면 자칫 배가 한쪽으로 기울 수가 있습니다.”
카약에 올라앉는 방법과 노 젓는 방법 등 10여 분간 안전교육을 간단히 배운 후 남편이 앞에, 나는 가운데, 남자도우미가 뒤에 탔다. 3인1조의 이 체험 역시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이므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로선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토시로 양팔을 가렸지만 지금까지 이용한 사진기와 디카, 폰이 혹시라도 물에 젖을까 싶어 비닐가방입구를 단단히 막은 뒤 두 팔로 꼭 감싸 안았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물에 빠져 죽을 염려는 없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에 임했다.
“와아! 드디어 출발이다!”
너른 바다와 달리 양가의 푸른 언덕과 나무들, 주택들, 카페들이 다정스럽게 지켜봐주는 송강에서의 카약을 타고 내려가는 래프팅체험!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타보는 카약을 라오스에서도 방비엥의 아열대강가휴양지인 송강에서 남편과 함께 겪어보는 것이다. 그것도 신비하게 생긴 바위들이 손짓하는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하면서....... 더구나 오전과 달리 약간 흐린 날씨라 카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하늘아래서....... 이따금 물살이 세지거나 다른 배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위험성에 잔뜩 긴장했지만 곧 잔잔한 강물 따라 은빛물살을 헤치며 유유히 여유를 누릴 수 있을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느 누가 시작했는지 앞뒤좌우로 손바닥과 노를 이용하여 물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앞에서 치면 뒤의 도우미까지 합세하여 앞의 두 사람은 눈 가리기에 바쁘고, 나중엔 도우미들의 장난으로 번져 체력싸움으로 바뀌었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물세례를 받을지 몰라 사방을 두리번거리지만 일단 한번 받기 시작하면 상대방이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우리일행이건 아니건, 친하거나 안 친하거나 능력껏 강물을 쳐서 반격하는 것이다. ‘이미 탐남동굴 튜브체험으로 한번 흠뻑 젖은 옷이니 또 젖은들 상관있을까?’ 의복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단지 강 양쪽에 있는 쉼터나 음식점들, 멋진 풍경들을 사진 찍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두 여자대학생들이 탄 배의 남자도우미는 사방에서 끊임없이 퍼붓는 물세례 때문에 계속 사방으로 반격하기 위해 고생해야했고, 두 아가씨들은 비명과 함께 고개 숙이느라 구경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젊음이어서 받는 환대이므로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그때 좌측 멀리서 수중카메라로 셔터를 누르는 일행의 다른 팀 여자가 있어 크게 소리 질렀다.
“우리도 좀 찍어주세요!”
‘좋다, 알았다!’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고맙다며 답례했다.
뒤에서 누군가 포크송으로 유명한 미국민요 ‘매기의 추억’을 구슬프게 부르더니 뒤이어 ‘클레멘타인’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약속이나 한 듯 아래로, 아래로 번지고 번져 많은 사람들도 따라 합창이 되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그렇지, 지금 같은 상황엔 빠른 곡조보다 느리고 차분한 템포노래가 더 어울리겠지.’ 같이 부르며 개발하지 못해 개방하지 못한 것 같은 동굴과 매우 불안해 보이는 여러 개의 목조다리를 지나갔다. 송강상류서부터 방비엥 시내까지 40여 분간의 편안하고, 즐거운 카약체험은 여유로워 좋았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혼자라도 남아 송강을 거닐며 병풍처럼 늘어서있는 특이한 모양의 산들과 그 골짜기의 카르스트동굴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꽃보다 청춘’프로에서 바로가 ‘루앙프라방 가지 말고, 방비엥에 더 있고 싶다’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남자가이드에게 팁을 주고,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를 뒤따르니 금방 우리의 숙소가 나타났다.
숙소마당에서 대기하고 있던 트럭을 타고, 방비엥에 도착하여 전용버스에서 내렸던 넓은 공터로 갔다. 두꺼운 바퀴가 네 개 달린, 생전 처음 보는 기계, 버기카들이 질서정연하게 일자로 세워져있었다. 가이드는 추가비용을 들이지 않는 팀들을 트럭에 태워 먼저 출발시켰다.
“이곳은 인도차이나전쟁당시 미군비행장활주로로 이용하던 곳인데 방비엥에서 블루라군까지 2인승버기카로 30여분 이동할 겁니다. 비포장도로로 흙길이므로 마스크착용이 필수입니다.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고, 2인1조로 타세요.”
가방에서 재빨리 폰을 꺼내어 시동 거는 방법과 액셀 밟는 방법, 시동 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남자도우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제부와 세무님 부부도 가리키며 셔터 좀 눌러주라고 했다.
쌍안경을 받아 낀 남편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켰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맨 앞 인도자가 가는 대로 뒤따라가면 되는 겁니다. 추월할 생각하지 마시고, 안전하게 운전하는데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출발!’ 신호에 맞춰 요란한 ‘부르릉!’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앞으로 나갔다. 비포장도로인데다가 자갈, 돌부리에 걸려 전신이 마구 흔들렸다. 햇빛가리개로 쓴 모자는 뒤로 ‘훌러덩’ 벗겨졌고, 위턱과 아래턱이 사정없이 부딪치기도 했다. 남편가방은 떨어지지 않도록 바닥에 눕혀놓고, 내 가방을 두 무릎사이에 꼭 낀 채 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송강위에 설치한 넓은 나무다리를 건널 때 양가풍경을 담았다. 물이 고인 냇물을 건널 때는 ‘혹시 깊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앞서 간 팀이 무사히 건너자 안심되었다. 계속되는 넓은 흙길을 달렸다. 도로가의 나무나 집들이 먼지로 뒤집어썼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동물들, 오토바이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승차감도 좋고, 기분은 최고지만 통행자나 현지인에게는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는 무적자들과 다름없군. 우리나라 같으면 소음과 먼지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며 분명 현지인들의 데모가 클 거야. 어쩌면 이곳주민들도 어떠한 보상이나 대책을 받았겠지.’ 씁쓰름한 생각을 하며 동영상을 찍었다. 너무나 많이 흔들려 영상에 손가락이 비추고, 심하게 흔들렸다. 개와 소들이 도로가를 혼자 걸어가는 모습이 생소했고, 한가롭게 풀 뜯고 있는 넓은 들판들이 한 폭의 수채와 같았다. 흔하지 않지만 카페나 특이한 동굴이정표도 보였다. 현지젊은이들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이나 여행객들은 버기카나 툭툭이를 이용함을 알 수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 완전시골길로 접어들자 높은 산들이 겹겹이 쌓인 풍경에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앞 팀들이 일으키는 흙먼지에 계속 감탄과 감동에 젖어있을 수만 없었다. 중간 중간 삼, 사거리에 버기카 탄 남자도우미들이 진로이탈을 막기 위해 지키고 있었다. 안전운전과 진행에 매우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넓은 빈터에 이르자 한쪽에 도착한 순서대로 주차시켰다. 앞서 달렸던 우리가 내려 동생과 세무사님 부부의 모습을 찍어주었다. 입었던 모자는 물론 옷의 주름과 흰 토시가 누렇게 변했고, 촬영할 때만 꺼냈던 카메라도 먼지투성이라 한참 닦아야했다.
“시동을 모두 끄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와우! 와아!’ 계속 함성이 터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났다. 큰 나무 아래 테이블에 가방들을 모아놓고, 편한 자세로 가이드설명을 들었다.
“이곳이 블루라군으로 방비엥의 대표적인 천연수영장이자 유럽인들의 최고인기휴양지입니다. 내륙국가인 라오스는 바다, 철도, 우체부, 공해가 없는데 바다대신 강이나 블루라군 같은 호수가 많아 수영장으로 활용합니다. 날씨에 따라 물색이 다른데 오늘은 매우 맑은 색입니다. 우리나라 겨울엔 동남아 쪽은 건기라서 물이 매우 파란데 우기엔 흙탕물이거든요. 물깊이가 5m정도 되기 때문에 수영 못하시는 분들은 튜브나 구명조끼를 꼭 착용하세요. 지금부터 자유 시간을 드릴 테니 마음껏 구경하시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에메랄드물빛을 자랑하는 천연수영장으로 갔다. 젊은이들이 수영하거나 다이빙할 수 있는 곳으로 현지인들은 물론 서양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천연다이빙대는 거목의 나뭇가지로 낮은 곳과 높은 곳, 두 개의 가지를 이용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흔적으로 ‘반들반들’ 미끄러울 것 같았다. 또 다른 나뭇가지에는 그네를 매달아 탈 수 있도록 했다.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무를 엮어 계단을 설치했다. 얼기설기 대충 만든 것 같아 ‘언젠가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 이왕 설치해놓으려면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지.’ 불안해보였다. 높은 곳에서 남자 넷이 다이빙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우!”
낮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한국아가씨 뒤로 높은 곳에서 ‘우리 여보, 소연아!’ 소리 짖은 후 ‘풍덩!’ 빠지는 40대쯤의 한국중년남자가 보였다. 어느 젊은 커플은 낮은 곳에서 손을 잡고, 같이 뛰어내리기도 했다. 나무계단 위 나뭇가지에 매단 줄을 잡고, 물속으로 빠지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끈이 미끄러워 일찍 놓치는 바람에 수영장 턱 돌에 부딪치는 일도 가끔 일어났다.
“멀리 나가 수영장 중간쯤에 떨어져야하는데 팔에 힘이 없거나 줄이 미끄러워 매달리자마자 떨어지면 큰일 나겠어. 자칫 머리가 돌이나 시멘트바닥에 부딪치면.”
그때 어디서 온 외국여자인지 사진을 찍기 위해 수영장가까이 서있던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진 후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땅위로 올라앉는 모습이 보였다.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많이 벗겨지진 않았지만 흰 피부의 시뻘건 색이 돋보였다. 줄에서 떨어지면서 물속의 돌 벽에 다리가 닿은 것 같았다. 그들은 태양이 직접 내리쬐는 풀밭으로 가더니 자리위에서 썬 텐을 즐기며 누워있었다. 썬 텐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현지인이나 한국인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주변을 돌아다보던 시선이 계단 중간쯤에서 줄을 잡고 있는 남편에게 꽂혔다. ‘아니 겁 많은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는 나도 떨렸다. 남편은 어떤 용기를 냈는지 ‘첨벙!’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개구리헤엄으로 나왔다. 제부도 다이빙이나 줄을 잡고, 낙하하는 체험을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더니 끝내 도전하지 못하고, 계단으로 다시 내려왔다. 짚 라인을 체험하려는지 복장을 갖춘 다른 팀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물에 발만 담근 채 구경하며 앉아있는데 남편이 불렀다. 자연과 어우러진 자연놀이터를 뒤로 하고, 버기카에 올라탔다. 앞에서 인솔하는 대로 굉음을 내면서 계속 줄지어 달렸다. 하지만 굉음을 내는 것도,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도 주변의 민가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신나지 않았다. 다만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픈 심정밖에 없었다. 남편은 운전대를 잡고 부지런히 운전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남겼다.
드디어 숙소마당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각 룸으로 들어가셔서 깨끗이 샤워하시고, 6시까지 1층 로비로 모이세요!”
숙소로 들어가 샤워하면서 황토먼지에 찌든 옷들을 세탁하는데 수압이 약한데도 물이 하수구로 빠져 나가지 못해 룸으로 흘러들어갔다. 먼저 샤워를 마친 남편이 로비로 내려가는 동안은 물도 끊겼다. 세탁을 멈추고, 룸으로 흐르는 물을 막느라 갖고 온 신문지와 휴지를 이용했다.
“목욕탕과 룸 사이 턱을 2센티만 높여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로비에 내려가니까 다른 사람들도 물 나오지 않는다,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난리들이야. 지금까지 외국여행 다녔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지? 허허허”
“그러게요. ‘요즘도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네요.”
대충 마치고, 시각에 맞춰 로비로 내려갔다. 대화의 주제는 역시 물이었다.
“그런 일은 보통 있는 일입니다. 룸의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잖아요? 에어컨 작동되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인 줄 아셔야합니다. 하하하....... 자, 어제 저녁식사 하셨던 식당으로 천천히 걸어가시지요.”
카약, 트래킹, 짚 라인, 불르라군 등 다양한 레저광고물을 설치한 상점과 절을 지나 미스터치킨하우스에 도착했다. 미리 차려놓은 테이블양가에 자리 잡아 앉았다. 동태찌개가 구수하게 차려져 있었다. 점심식사로 나온 음식을 미처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배불리 먹었는데도 찌개국물에 말아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소주와 맥주를 주문하여 소맥으로 적당히 취한 남편이 일어나 가수 김성환의 ‘묻지 마세요’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모두 손뼉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좋아했다.
“노래는 많이 아는데 가사가 생각인 안 나서 더 못 부르겠네요. 노래방기계만 있다면 오늘날밤 샐 수 있는데. 하하하”
“그럼 우리 노래방가요. 노래방에. 호호호”
“노래방도 없지만 피곤해서 안 됩니다. 내일의 여정을 생각하셔야지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가이드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어느 새 해는 꼬리를 감춰 암흑이 짙어졌다. 대로양가에 좌판을 설치하고, 라오스인들의 문화가 담긴 물건들과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품들을 파는 여인들이 ‘1달라, 천원! 예뻐요!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유혹했다.
우리는 숙소 가까운 슈퍼에서 한국과자와 맥주를 구입, 계선이네 방으로 갔다. 오늘하루의 체험담을 나누니 동심으로 돌아가 모두 신났다. 튜브 타며 동굴탐사 시 위험했던 남편이 당시상황을 말할 땐 약속이나 한 듯 숙연해졌다. 긴장하며 줄을 탄 탓인지 맥주 한 모금에 긴장이 풀려 전신이 노곤해지면서 눈꺼풀이 절로 덮였다.
자리에 눕자마자 누군가 업어갈 틈도 없이 꿈나라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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