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숙소(롱 낙쿤 호텔)→뷔페식조식→젓갈마을→GM건강식품판매소→남능강 탕원 유원지선상중식→왓(호) 파께우 박물관→왕 시사켓 사원→왓 시므앙 사원→빠뚜사이(승리의 문)→탓 루앙 사원→(주)산들바람(히노끼=편백나무 이야기)판매장→석식(한국식당)→비엔티안국제공항→베트남의 하노이공항
“라오스에서 맞는 아침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우리생전에 또 라오스를 찾을 수 있을까?”
“난 그 경비로 못 가본 다른 나라를 더 여행하고 싶어요. 하지만 한국화 같은 저 평화로운 풍경은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고장 난 TV, 의자 없는 화장대, 쭈그러진 옷걸이들, 어제의 하수구 막힘으로 흠뻑 젖은 발 닦이, 썩어 곰팡이 핀 소쿠리, 시대에 맞지 않는 순간온수기여, 영원히 안녕!’ 대충 가방을 정리하고, 마당에서 거행된 스님들의 공양식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식당으로 내려갔다.
볶음밥, 미음, 야채로 간단히 마치고, 룸으로 올라갔다.
“용이하게 사용했던 베트남 모자를 가져갈까요? 아님 둘까요?”
“집에 가져가봐야 사용할 기회가 있겠어? 모자도 많은데? 짐만 되고? 청소하는 사람들이라도 사용하게 두고 가지.”
가방을 챙겨 시각에 맞춰 로비로 내려갔다.
두 대의 트럭(툭툭이)에 24명이 나눠 타고,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넓은 터까지 갔다. ‘방비엥도 안녕!’ 작별의 아쉬움에 거리를 향해 계속 셔터를 눌렀다. 버스에 오르긴 전, 사방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지금부터 약4시간 소요하여 비엔티엔으로 이동하는데 방비엥으로 가실 때와 길이 다릅니다. 라오스에서는 벼농사를 4모작까지 가능한데 가뭄 때는 불가능하므로 2모작만 합니다. 평균수명은 53세로 출산율이 3.14명 정도이고, 문자해독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빠르면 13, 14세 때도 결혼하여 25, 26세 때 할머니 되는 여자도 있습니다. 참고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라오스말로 ‘싸바이 디’, ‘감사합니다.’는 ‘컵짜이’, ‘대단히 감사합니다.’는 ‘컵짜이 라이라이’, 물건을 흥정할 때 ‘이것은 얼마입니까?’는 ‘타오 다이?’, ‘너무 비쌉니다.’는 ‘팽 라이’, ‘깎아주세요!’는 ‘코 롯 다이 버어!’, ‘실례합니다’는 ‘커 톳’, ‘재미있습니다.’는 ‘싸눅 디’, ‘맛있습니다.’는 ‘쎕’, ‘최고입니다, good’은 ‘딜라이’, ‘안녕히 계세요’는 ‘로구온’, ‘다시 만나요’는 쏙 디,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는 ‘짜오 마때 싸이?’,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는 ‘커이 뺀 콘 까올리’라 발음합니다.”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태국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의 시골마을을 지나며 귀는 가이드설명에, 눈은 창밖을, 손은 카메라에 댄 채 열심히 눌렀다.
“우선 남능댐 부근의 젓갈마을을 방문하실 겁니다. 방비엥으로 들어가는 여행객이나 방비엥을 출발하는 여행객들이 필히 들러보는 젓갈마을은 남능댐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염장하여 젓갈을 만들거나 건어물 아니면 훈제하여 팝니다. 그런데 바다가 없는 라오스에 젓갈마을이 있다는 게 이상하죠? 인공 댐인 남능댐을 건설하면서 수몰지역의 고산족들이 고기를 잡아 가공하여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남자들이 잡아온 고기를 여자들은 손질하여 젓갈을 만들거나 말리고, 훈제하여 팔았는데 털이 있는 가죽은 물소가죽으로 고기가 귀하다보니 소가죽도 염장하여 말려 먹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돼지껍데기를 구워먹듯 술안주로 최곱니다. 우리나라청평호의 17배되는 남능댐은 요즘 수개월 동안 비가 안와 물이 많이 줄었어요.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젓갈문화가 발달했지만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등 열대국가에서도 옛날부터 발달했습니다. 헌데 그곳상인들은 한국 손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쾌쾌한 냄새가 난다며 많이 구입하지 않거든요. 학교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어린이들도 거리에서 물건을 팔지만 귀찮게 굴지는 않습니다.”
대로양가에 늘어져있는 초라한 상점들은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찢어지거나 늘어진 천막으로 겨우 햇빛을 가리고, 긴 대나무에 건어물들을 매달아 팔고 있었다. 어느 상점에서는 시퍼런 바나나를 매달아놓기도 했다. 기념사진 몇 컷 찍고, 금방 버스에 올라탔다.
“방비엥은 마약, 대마초도시로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수를 함부로 마셨다간 큰일 납니다. 그리고 두리안을 호텔 안에서 먹었다가 침대시트나 수건을 물들이면 3일치 방값을 치르게 됩니다. 다행히 우리손님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지요. 라오스라는 나라는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한마디로 매우 가난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6, 70년대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가이드로 일하는 저 역시 가난하여 힘겹습니다. 제가 필요하여 한국에서 갖고 온 물건들을 나눠주지 않고, 배길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베트남의 하노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실 텐데 혹시 필요 없는 물건들이 있으시면 제게 주고가세요. 어떤 물건이든지. 여자, 어린이들 옷이나 신발도 괜찮습니다. 필요로 하는 라오스주민들이 아주 많거든요. 제가 일하기 힘들고, 괴롭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점입니다. 가난한 라오스주민들을 돕기 위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계속 했다. 정말 그렇다. 비록 짧은 기간의 거친 여정을 통해 순간적이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오기 전에 주변사람들이나 집에서 쓸모없는 옷, 신발, 가정용품 등 어떤 물건들이건 챙겨올걸.’ 부족한 지식이 원망스러웠다.
산촌과 농촌을 번갈아 거치자 호젓한 마을로 들어섰다.
“자, 잠시 내리셔서 한국교민이 운영하는 건강식품판매소를 구경해보시지요.”
허름한 외벽에 GM이란 글씨만 달랑 있는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실내에 질서정연하게 전시한 각종상품들의 품목은 건강식품 외에도 말린 과일, 머플러, 가방 등 다양했다. 나눠준 킹담 주와 음료를 마시며 상황버섯, 흑 생강 등 건강과 관련된 상식들을 사장님으로부터 들었다.
“구입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게 어려워!”
“여행할 때마다 거금 들여 구입한 건강식품들이 집에 얼마나 많은데?”
“여행초창기엔 앞뒤 가리지도 않고, 호기심에 무조건 다 구입했지만 이젠 하도 여러 군데 다니다 보니 호기심도 없고, 구입할 마음도 시들어졌네. 우선 제대로 먹지 않아 실패했고.”
“수고하는 가이드 미안해서 괜히 돈만 썼지, 모두 쓸데없는 짓만 했어!”
의자에서 일어나 한 바퀴 돌아 나오며 여기저기서 쑤군쑤군 댔다. 남편은 빈손으로 나오기 미안하다며 공동경비잔액으로 말린 과일을 구입, 셋이 나눴다.
“가이드노릇하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여행자들이 늘어나는 건 좋은데 워낙 경제사정이 어렵다보니 물품구입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죠. 솔직히 가이드들은 약한 월급보다 물건구입소개비로 먹고사는데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 주머니가 빌 수밖에요. 그건 그렇고,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석가모니입적 후 100년을 전후해 구분됩니다. 석가모니가 소승과 대승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전이 존재하지 않고, 열소한 수레라는 뜻인 소승불교는 석가모니입적이전의 실천보다 특정교리를 연구하고, 보다 학구적으로 융성한 시기를 말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들은 말씀을 외우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성불, 지식을 축적하며 깨달았지요. 즉 재래불교로 부처육성을 들으면서 가르침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가르침이 곧 불경인 셈입니다. 국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라오스 등지에서 부처님이 남긴 경율론을 전승하기 위해 남방불교로 분류되어 그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석가입멸 후 500년경 인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으로 삼론종,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진언종, 율종, 선종 등이 속합니다. 대승의 어원은 ‘많은 사람을 구제해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의 제도를 목표로 부처님당시의 지혜와 자비의 실천적 불교정신을 되살리자는 운동입니다. 여러 파로 갈라져 자파의 주장만이 최상이라고 고집하여 온 불교자세를 맹렬히 비판하고, 재래불교를 소승이라 폄하하면서 이타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발하고,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시대에 맞게 사상을 전개한 해설서를 이용해 대중을 교화하며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가한 승려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석가세존에게만 한정했던 보살이란 개념을 넓혀 일체중생의 성불가능성을 인정함으로 일체중생모두 보살로 보고, 한 개인만의 구제보다 이타를 지향하는 보살의 역할을 이상으로 삼고, 광범위한 종교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형식화된 전통불교에 대해 일어난 혁신운동인 셈이죠. 이로써 석가모니세존의 존재를 받들면서 많은 부처와 불보살 등 여러 존자 상을 갖춰 한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고 우리나라, 몽골, 티베트, 일본 등 대중부계통인 북방불교의 주류를 이루며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문자왕 때, 용수의 ‘중관론’ 등 삼론을 비롯한 천태, 열반 등의 교법으로 수용돼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 및 교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삼론을 바탕으로 삼론종을 개종하는 등 독자적 노력으로 발전하고, 이는 삼론종,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진언종, 율종, 선종 등 20여개 부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종단을 막론하고 거의 대승불교형태로 사찰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국가의 빈민촌, 시뻘건 흙으로 뒤집어 쓴 상점들, 빈집 같은 주택들, 가구마다 모신 개인사당, 주변 환경과 맞지 않게 호화롭기 그지없는 넓은 절들, 평화로운 논과 밭, 산과 들, 손님 없는 노점, 흙먼지 뒤집어쓰며 덮개 없는 트럭을 탄 어린이와 어른들 등 창밖풍경을 계속 찍으며 한참 달렸다.
“잠시 후에 도착하여 현지 식으로 특별한 점심식사를 하실 곳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 북쪽에 위치한 대표적 관광지이자 라오스최대유원지입니다. 메콩강 지류인 아름다운 남능강의 탕원 유원지인데 조용한 선상카페와 식당들이 많습니다. 주말이면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없는 탕원 유원지는 경제력 있는 내국인과 외국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데 단체관광객이나 모임을 위한 10~4, 50인승의 넓은 배와 연인들을 위한 2인승짜리 배 등이 수십 척 있습니다. 꺄뇨우라고 하는 대나무찹쌀밥과 라오스 식 음식들이 나옵니다. 왕복 4, 50분정도 유람하며 식사하시는데 태국 칸차나 부리에 있는 콰이강의 다리를 닮은 철교가 있습니다. 강의 폭이나 다리 모양, 크기, 탕원 유원지의 카페나 식당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나무부교를 건너 예약식당으로 갔다. 움직임이 전혀 없어 물위에 떠있는 것 같지 않았고, 땅위에 있는 일반식당 같았다. 화장실이 갖춰져 있고, 발동기가 보이는 배의 선주가 아들인 듯 아이를 옆에 세우고, 시동을 걸으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탕, 새우튀김, 돼지고기볶음, 닭요리, 샐러드, 계란, 나물, 과일 등 이름 모를 갖가지 음식들이 한가득 차려져있었다. 대나무찹쌀밥은 씹을수록 고소했는데 다른 음식들도 먹을 만했다. 배가 어느 정도 차자 강 주변의 풍경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이곳에서 소금을?’ 염전 같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자와 헤엄치는 남자가 보였다.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을 벗 삼아 남능강 위 선상에서 즐기는 이국적 정취는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아, 저 철교가 그것?’ 초록지붕의 넓은 선상카페들과 식당 등 크기가 다양한 배들과 같이 사진기에 담았다. 30분 정도 갔다가 다시 뒤돌아 출발지점으로 오는 행로 중 술 한잔 걸친 남편이 가수 김성환의 ‘묻지 마세요’ 노래를 시작으로 유흥시간을 벌여 일행 모두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체국에 근무한다는 자매 중 동생도 신이 많은 듯 시종일관 분위기를 업 시켜주었다. 소박하고, 정성스런 음식들을 맛보며 남능강만의 멋스런 분위기에 도취하는 특별 식사시간여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에서 내려 화장실을 들렀는데 변기 뒤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큰 개 때문에 깜짝 놀라 볼일도 못 보고, 그냥 나왔다.
“라오스역사는 8세기이후, 라오족이 중국남부에서 라오스로 옮겨와 여러 부족을 몰아내고, 13세기 무옹스와 공국을 지금의 루앙프라방에 세운 후 파응움 왕이 14세기 초에 크메르 앙코르왕의 도움을 받아 라오족국가인 란쌍왕국을 세운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버마통치기간인 1574년부터 1637년을 빼고, 란상 왕국이 1713년까지 라오스를 다스렸는데 그 뒤 란상은 비엔티안, 참파사크, 루앙프라방, 3개 왕국으로 나누어졌고, 18세기 시암의 제후국으로 떨어졌습니다. 18세기 중에 3개 라오스왕국의 통치자들은 시암의 통치자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제후가 되었습니다. 19세기에 비엔티안의 왕이었던 차오 아누가 자기왕국을 베트남과 합쳐 시암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실패하여 아누는 패배했고, 비엔티안은 시암의 주가 되었습니다. 19세기말, 프랑스가 시암을 침략하고, 20세기 초 라오스는 프랑스보호령이 되었는데 1945년 3월, 일본이 프랑스를 몰아내고, 라오스독립을 선언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종전 후 프랑스가 다시 지배했다가 1946년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아래 프랑스연방으로서 자치국으로 라오스를 승인하였습니다. 1950년대 초, 좌파인 파테트라오가 공산주의자는 라오스의 통치권을 놓고, 우파 및 중도파와 투쟁했고, 한 때 중립연립정부가 생겨났지만 1975년 파테트라오가 정권을 잡았고, 지하에 숨어 있던 라오스공산당이 모습을 드러내어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을 세웠습니다. 비엔 티엔 번화가는 반경1km안에 다 있어서 도보로 구경할 수 있습니다. 라오스 식 인사법은 우리의 합장으로 두 손을 모으는 방법입니다.”
놀고 있는 나대지, 흙먼지로 뒤덮인 상점과 주택들, 도로포장과 식수로 공사 중인 도로를 한참 달려오면서 ‘라오스에서는 사찰이 제일 화려하구나. 못살아도 개인사찰은 누구든 갖고 있구나!’ 알 수 있었다.
도심으로 접어들면서 깨끗하고, 넓은 관공서 같은 건물들이 자주 보이면서 도로도 포장, 말끔했다. 많은 차량들과 인파로 복잡한 거리를 달리니 이따금 막히기도 했다.
“비엔 티엔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제일먼저 왓(호) 파께우 박물관을 들르시겠습니다. 1565년, 세타티라트왕의 명령에 의해 건립되었고,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 티엔으로 천도할 때 에메랄드불상(파케오)을 옮겨 안치한 사원입니다. 에메랄드 색을 띠고 있지만 실제는 옥이랍니다. 원래는 왕이 기도를 올리는 장소로 건립된 사원이었지만 1779년 당시 시암왕국이었던 태국과의 전쟁에서 건물이 소실되어 1936년, 프랑스에서 시멘트로 복원해주었습니다. 계단에는 용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박물관주변에는 날렵한 사자 상, 비석들, 돌 거북이가 있습니다. 박물관 안에는 팔을 내린 불상 등 각지에서 모은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손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발까지 어루만진 후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상들을 자세히 보면 시암이 침략했을 때, 보석으로 만든 눈동자들과 머리에 있던 보석들을 모조리 파간 흔적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일제강점기 때도 전국에서 나오는 쌀들을 모두 빼앗아가고, 많은 문화재들도 갖고 갔듯이 태국도 에메랄드불상을 갖고 가서 현재 방콕의 왕궁(에메랄드)사원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안 앞에는 작은 불상들을, 뒤에는 큰 불상들을 안치시켜 놓았는데 불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어딘가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라오스남자들은 3개월의 단기출가를 해야 합니다.”
언뜻 보기에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같은 곳에 들어섰다.
“예전에는 사찰이었지만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이 공사 중이네요. ‘호’라는 말은 왕실사원에 붙이는 칭호로 호 파께우 박물관이라고도 하고, ‘왓’은 승려가 거주하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왓 파께우 박물관이라고도 합니다.”
사찰이었지만 보여주기 위한 박물관형태로 변형시킨 박물관건물이 공사 중이라 안을 구경하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멘트로 복원했다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돌 같았다. 프랑스지원으로 복원했다는 표시가 있었다.
“정원에 있는 이 불가사의한 돌 항아리의 쓰임새는 무엇이었을까요?”
“곡물 담아두는 항아리요?”
“돈 모아두는 금고요?”
“정확하지 않지만 시신을 넣어두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두발을 들어 항아리 안 바닥을 찍으니 지폐와 동전들이 들어있었다.
“앞뜰 담장너머로 보이는 것이 정식명칭이 Hor Kham인 대통령집무실로 집무만 하고, 숙소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시골의 군청처럼 흰색의 소박한 건물이었다.
“불상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왕 시사켓 사원에 왔습니다. 인구96%가 불교를 믿는 불교의 나라, 라오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스님들이 살고 있습니다. 1819년부터 1824년까지 라오스의 마지막 왕인 아노우봉 왕이 태국에 대항하여 민심통합을 위해 세웠는데 1935년에 재건축했습니다. 태국방식으로 건설했다는 이유 때문에 1828년, 시암 족과의 전쟁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일부가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에 파괴됐지만 사찰본당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원입구양쪽에 비엔 티엔 귀족들과 승려들의 납골묘가 있고, 본당안쪽에는 400년 전에 그려진 벽화가 있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은 금지입니다. 대법전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고 있는 회랑(종교건축이나 궁전건축 따위에서 건물의 중요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이 달린 복도)과 불상 뒤의 조그마한 공간 즉 감실(불교, 유교, 가톨릭 등등 종교에서 신위 및 작은 불상, 초상 또는 정체 등을 모셔둔 곳)에는 전쟁 때 훼손된 불상부터 좌대만 남은 불상까지 총6480개의 부처상이 있으며 조그마한 불상까지 포함하면 비공식적으로 10,036개의 불상이 있습니다. 발견 당시에 상태가 좋지 않았던 966개의 부서진 불상들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본전에는 뱀의 신 조형물이 지키고 있는데 라오스의 많은 불교신자들이 이 뱀의 신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18세기에 출판된 경전도 보관되어 있는데 지붕은 3단 혹은 5단의 라오스건축양식입니다. 뒤편에는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과 불상을 모시는 곳이 있습니다.”
대통령궁에서 왓 파께우 박물관으로 가기 전에 위치했기 때문에 걸어서 갔다. 역시 사원이라 복장제한이 있으므로 입구에서 복장재정비를 했다. 짧은 바지를 입은 대학생들은 입구에서 나눠준 긴 천을 허리에 두르고 입장했다.
대법전 안을 들여다보니 그림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라 ‘어차피 사진촬영도 못할 것을.’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회랑에는 많은 불상들이 질서정연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벽에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은제 또는 토기불상들을 보관했다.
신발을 벗고,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촬영을 이유로 맨 끝으로 들어갔다. 가이드설명을 간단히 듣고, 첫 번째로 나왔다.
정원에는 금색으로 장식된 탑들과 정자들로 금빛 찬란했는데 아름다운 조경을 배경으로 더욱 빛났다. 라오스인들의 불교에 대한 숭배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아하고 정교한 모습의 사원은 온통 금빛이라 군데군데 벗겨졌음에도 화려함을 잃지 않았다.
가이드가 시간이 없다며 재촉하는 바람에 되도록 멀리서 여러 곳을 한 컷에 담았다.
“버스로 7~10분정도 이동하시면 비엔 티엔 시내의 여러 대형사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차비와 입장료가 없는 왓 시므앙 사원에 도착하실 겁니다. 왜 없냐하면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다른 사원들에 비해 수입이 좋기 때문이죠. 라오스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왓 시므앙 사원은 1956년에 개화운동을 주도했던 즉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시므앙이라는 한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춘남여가 끝까지 사랑을 맹세했다는 전설이 더해져 젊은 연인들이 결혼 전 축복받기 위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본당건물오른쪽에 전설의 인물인 시(Si)라는 토착민소녀의 정령을 보호하며 모시는 제단이 있습니다. ‘임신 중이던 낭시라 하는 여인이 번제의 제물로 바쳐지자 절의 기둥이 가라앉았다.’ 하는 전설과 ‘절의 기둥이 땅속으로 가라앉을 때, 몸을 바쳐 절이 무너지는 것을 구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사원에는 독특한 명물의 새가 있습니다. 날지 않고, 한 곳에 가만히 있는 이 커다란 새는 50년 전 화재가 발생했을 때, 당시 불을 끄던 스님 한 분과 여성 한 분이 죽었다고 합니다. 라오스인들은 스님과 여성이 환생한 새라고 믿고 있답니다. 또 시므앙 여사가 환생하여 태어난 황새로 믿기도 하는데 실제로 보면 나이가 많아 날지 못하는데다가 황새하면 한 발로 서있어야 하는데 두 발로 서있어 환생의 꿈이 깨져버리곤 합니다. 그곳 법당 안에서는 라오스전통축복기원의식인 맏켄이라는 것이 있는데 맏은 ‘묶다’라는 의미의 라오스어로 스님이 실 팔찌를 묶어주는 행사입니다. 우리의 부적처럼 실을 묶어주면서 라오스어로 축복의 말씀을 해주는 의식이죠. 3일 동안 끊지 않고, 잘 유지하면 잡귀가 물러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3일 내로 떨어지면 귀신이 달라붙어 좋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각자 준비해온 물건을 바치거나 금잔화 한 송이를 정성껏 올리거나 돈으로 지불하거나 때로는 빈손이라도 상관없는데 축복을 공짜로 받는 사람은 없겠죠. 또 법당 안에는 우리의 남근석처럼 생긴 돌이 있는데 영험다고 믿어 돌을 번쩍 올리며 기원합니다. 사원 앞마당에 세워져있는 각양각색의 불상들이 많은데 아홉 개의 뱀 머리가 있는 불상이 가장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제를 올리죠? 이곳현지인들도 차를 몰고 와서 제사를 지냅니다. 한 번의 기복에 30~50달러를 지불하는데 라오스인들의 한 달 평균월급이 100달러라면 적지 않는 돈이죠. 우리가 고사지내고, 시주하고, 교회헌금 내는 것을 아깝지 않게 생각하듯 이곳사람들도 제사비용을 아깝지 않게 생각합니다.”
소문난 사원이 많은 만큼 거리양쪽에는 사원과 관련된 제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많았다.
입구에서 헌화를 팔고 있는 상인들을 지나 정문으로 들어갔다. 가이드가 좌측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보세요.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여 제사 지내고 있죠?”
자동차와 제단과 연결시킨 길고, 흰 실이 보이면서 두 손 모아 빌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영험하다고 소문난 사원인 만큼 예상치 못한 일로 불안하거나 고통스러울 때, 자신의 존재가 나약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자 많이 찾는 것 같았다. 빌고 또 빌면서 위안을 받고자.......
사진촬영이 가능하다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넓지 않아 웅장함은 없었지만 우선 정교함과 화려함에 놀랐다. 가이드와 대학생 중 한 명이 맏켄을 체험하는 동안 실내를 사진촬영 했다. 안쪽에 마련된 불상제단도 담았다. ‘저 여인이 시므앙 여사? 그 앞의 새는 시므앙 여사가 환생했다는 새?’ 돌고 돌아 방석 위에 올려져있는 남근모양의 돌을 발견했다. 칠한 금색이 벗겨져 돌의 정체가 드러나 있었다. ‘이 돌은 대체 어느 정도의 좋은 팔자를 갖고 태어났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을까?’ 생명이 없는 존재임에도 부러웠다.
영험하다는 코끼리의 엉덩이 상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는 신들의 조각상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불상들 외에 특이한 모습들이 많았다. 시간을 재촉하는 가이드바람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구경하고, 나왔다.
“비엔티안은 유럽과 아시아문화가 적절하게 어우러져있는 도시인데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볼거리가 중심가에 몰려있기 때문에 반나절이면 충분히 볼 수 있죠.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빠뚜사이는 ‘승리의 문’이라 불리는 독립기념문으로 1958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사회주의정부수립이전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파리의 개선문디자인을 모방하여 만든 시멘트건축물입니다. 라오스의 상징건축물로 란쌍거리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약7층 건물의 높이입니다. 영어표기로 승리의 문(Victory Gate)이라는 뜻으로 미국에서 공항건설원조로 준 시멘트를 이용하여 세워 수직 활주로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모양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닮았지만 장식이나 건축기법은 라오스문화가 담겨있습니다. 건물 위로 올라가면 붉은 지붕의 공산당당사건물 등 비엔티안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어제 본 라오스거리풍경과 판이하게 다른, 산뜻하면서도 복잡한 도심의 거리를 달렸다. 삼성간판이 많은 광고물 속에서 빛나는 대로도 달렸고, 자가용인지, 대중교통 용인지 알 수 없는, 오토바이에 소형툭툭이를 매단 교통수단을 흔히 볼 수 있는 거리도 지났다. ‘저게 무슨 과일인가?’ 언뜻 보기에 감 같았다.
넓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파리의 개선문처럼 생긴 건축물이 보였다. 도심 속 넓은 공원 내에서 휴식중인 분수를 지나 우뚝 서있는 빠뚜사이로 갔다. 프랑스양식을 많이 닮아 ‘어? 개선문이 어째 여기에?’ 놀랄 정도였다. 웅장한 모습으로 뽐내고 서있는 사각형의 개선문 정 가운데 서서 천정에 새겨진 문양을 사진기로 찍었다. 주어진 자유 시간 내에 되도록 많은 사진을 담기 위해 가이드가 안내해준 통로로 갔다. 실내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층마다 기념품만매 숍들이 있어 발길을 잡았지만 바쁜 마음에 그냥 지나쳤다. 한층, 한층 올라설 때마다 밖의 풍경을 계속 찍었다. 거무스름하게 변한 시멘트색깔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 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의 공원, 파리의 샹젤리제거리를 연상시키는 넓은 거리, 깨끗한 공산당당사건물 등 한눈에 보이는 조망들을 향해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내려와서도 사방을 배경삼아 인물사진 담느라 바빴다.
“라오스국가문장에도 들어있는 대표적 상징물이자 비엔티안의 대표관광지, 랜드 마크로 부처님가슴뼈사리와 유발이 모셔진 탓 루앙 사원은 1566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셋타티랏 왕에 의해 세워졌고, 위대한 불탑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1935년에 복원한 탑으로 높이는 45미터에 이르며 시내중심에서 북쪽으로 3km지점, 독립기념탑동북쪽으로 약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오스불교의 최고사원으로 타 지역라오스인들조차 이곳에서 공양드리는 것이 소원일정도이며 명절이면 전 국민이 다녀가는 곳입니다. 원래는 진짜황금으로 색칠하여 황금사원이라고도 불리는데 샴 국의 점령으로 강탈당해 지금은 시멘트 위의 페인트칠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각 면이 85m인 바깥회랑에는 다양한 불상들이 세워져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인도에서 온 아쇼카의 전도사들이 BC3세기경에 부처님의 가슴뼈 한 조각을 봉인하고, 불탑(황금대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사원벽체창문에는 부처를 받들고 있는 원숭이 상이 조각되어 있고, 사원담벼락을 따라 늘어서있는 작은 탑들은 망자의 사진이나 명패를 붙여놓은 것입니다. 최고승려가 거주하는 사원은 흰색의 삼각형이 네 겹으로 있는 붉은 지붕건물입니다. 탓 루앙사원주변에 원래 4개의 사원이 있었으나 현재 북쪽의 왓 루앙 느아와 남쪽의 왓 루앙 따이만 남았습니다. 북쪽의 루앙 느아 사원에 있는 거대한 와불(누워있는 불상)은 2012년에 새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와블 발바닥에 법륜이 새겨져 있습니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불교유적지로 매년 11월초에 개최되는 탓 루앙 축제기간에는 승려들이 왓 씨므앙에서 탓 우랑까지의 거리에 길게 늘어서며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집니다. 사원 앞에서 새장에 새를 넣어 파는 장사꾼들이 있는데 ‘괴롭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새를 구입하여 방생하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일이 잘 풀린다.’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라오스에서는 탓 루앙사원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잠시 이동한 버스에서 내렸다.
건축 재료로 이용되었다는 금들을 침략한 샴 국에 모두 빼앗긴 건 라오스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안타까운 사연이다. 사원으로 들어서니 복장단속이 있어 두 여자대학생들은 관리소에서 내준 천으로 허리를 둘렀다.
“점심식사 후에 버스에서 긴 바지로 갈아입길 잘했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정사각형의 황금빛대탑이 웅장하면서 찬란하게 빛났다.
“사원 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기 좋은 곳이 여기에요. 팀별로 서세요.”
가이드는 여러 팀이 서는 대로 셔터를 눌러주었다.
조그마한 창문이 있는 회랑이 높은 황금대탑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회랑에는 담겨진 뜻을 알 수 없는 많은 돌들이 단위에 올려있었다. 반 바퀴 돌다가 넓은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다. 천정과 벽이 화려해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조명이 어두워 사진촬영을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원답게 다른 사원보다 관람객들이 많았다. 촛불 대가 놓여있는 계단이 보였다. 잎을 돌려 만든 곳에 황색 꽃을 꽂아 만든 공양 꽃이 인상적이었는데 지폐도 걸려있었다. 기도 올릴 사람들은 계단아래에 신발을 벗어놓고, 올라가 예를 올렸다. 라오스주권을 상징할 수 있는 곳으로 불탑 앞에 셋타티랏 왕 동상이 황금사원의 수호신처럼 세워져있어 사원정면을 지키고 있었다. 검고, 흉측하게 벗겨진 곳곳의 흔적들은 긴 세월의 흐름을 말없이 보여주었다.
사원에서 나와 광장을 지나 전용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시멘트로 포장된 4차선도로양가 2층 주택들이 깨끗했다.
“다음에는 300년에서 1,000년 이상의 최고급 만요히노끼를 엄선하여 원목상태를 숙련된 장인들의 100%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제품만 취급하는 판매점을 들르신 후 식당으로 가시겠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곧장 비엔티안국제공항으로 가실 겁니다.”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인 ‘SAM SUNG, HYUN DAI’와 흰 바탕에 빨간 글씨인 ‘KIA MOTORS’간판은 어딜 가나 눈에 띄었고, 반가웠다. 자동차판매소, 기관건물들을 지나 (주)산들바람라오스지사로 들어갔다. 편백나무향이 코를 찔렀다. 젊은 지사장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음이온, 히노끼, 장미 목 전문기업체인 산들바람을 소개하는데 본사가 김포 월곶면 군하리에 있다는 말에 우선 친근감이 생겼다. 그런데 판매하는 상품의 값을 보니 보통 비싼 게 아니었다. 주걱이 14,000원, 치약이 72,000원, 비누가 43,000원, 히노끼 오일 50ml가 172,000원, 100ml가 286,000원, 도마가 143,000원, 베게가 143,000원. 그것도 30% 할인 값이란다. 모두 너무 고액이라 설명도 귀담아 듣지 않고, 전시사진만 사진기에 담았다. ‘정 필요하면 김포본사에서 구입하지.’ 나오려는데 남편이 불렀다. 오일과 도마구입을 정해놓고, 날보고 흥정하라는 것이다. 아예 구입할 생각이 없던 나로선 황당할 수밖에. 한참 옥식각신 하다가 고집 센 남편에게 져 서비스차원에서 별도 준비한 듯 보이는 젓가락 몇 개 더 얻고, 카드를 긁었다. 어느 땐 돈 천원, 백 원 갖고도 따지는 사람이 간 크게 히노끼 오일 50ml를 172,000원에, 143,000원짜리 도마를 구입하다니! ‘남들 눈을 의식하기 잘하는 자존심이 또 일었군.’ 물건을 챙기건 말건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즐거워야 할 외국여행에서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판매점 들르는 코스다. 하지만 외국여행대부분이 그런 코스가 꼭 들어있다. ‘판매점 들르는 코스가 없는 외국여행상품은 없나? 지금까지는 기분 좋았었는데. 그나마 이번 여행의 제일 마지막 코스인 게 다행이네.’ 신비스럽고, 즐거웠던 기분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물건은 한국본사에서 택배로 보내준대.”
‘진짜로 보내주든, 가짜로 보내주든, 오거나 말거나.’ 가슴이 벌렁벌렁, 얼굴이 화끈, 화끈거렸다.
“생각보다 많이 팔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라오스에서 일하는 가이드들은 정말로 가난합니다. 주머니가 늘 비어있어요........”
가이드들의 월급 외의 수입을 호소 비슷하게 솔직히 말하는 가이드설명을 듣고, ‘그래, 내가 손해 보면 그만큼 이득 보는 남이 있겠지. 사기 당한 것보다는 훨씬 낫지.’ 스스로 위로하며 차창 밖 풍경들을 열심히 담았다. ‘베트남처럼 얼기설기 복잡한 전선줄은 밉지만 어느 나라꽃이건 모든 꽃들은 아름답고 예뻐.’ 마음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내리셔서 한국식당으로 들어가세요.”
비빔밥과 미역국, 예쁜 반찬들로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먹었지만 크게 났던 화의 여운으로 맛있는 줄 모르겠다. ‘집에 가서 쩨쩨하게 굴기만 해봐!’ 시장기만 없앨 정도로 3분의 1을 남기고 일어섰다.
“라오스에서 마지막 식사한 한국식당을 배경으로 우리 기념사진을 남겨야하지 않을까요?”
장난기 섞인 제부의 제안에 사진을 찍어주고, 찍혔다.
‘웬 결혼식자동차가 저녁에? 라오스에서도 결혼식 올리는 시각이 낮으로 한정되지 않았구나!’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 검은 자가용이 버스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엔티안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와 작별인사,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20시 반쯤, 1, 2게이트에서 베트남의 하노이 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오렌지와 포도주스를 주문하여 마신 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하노이공항에 도착했다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짐 가방은 자동 이동되므로 몸에 걸친 가방만 챙기고, 하노이에서 인천으로 가는 28게이트 비행기(VN416)탑승구로 갔다. 여행일정에는 23시 45분에 하노이공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는데 지연이유를 방송조차 하지 않아 무작정 기다렸다.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렸다. 남편과 제부는 기다림에 지쳐 운동하며 잊었고, 다른 일행들 중 몇 사람은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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