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숙소(RIVERSIDE HANOI HOTEL)→하노이공항→라오스의 비엔티안국제공항→중식(서상궁)→왓 씨앙쿠앙(부처공원)→재래시장→주유소휴게소→미스터치킨하우스(석식식당)→롱 낙쿤 호텔(라오스숙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이 들었나 보다. 깜깜한 밤인데 에어컨이 약하게 돌아가 적당히 시원했다. 거실침대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깊은 호흡소리가 적막을 깼다. 머리맡 손목시계를 보니 3시 10분.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눈이 떠진 것이다. ‘컴퓨터가 없으니 할 일도 없고. 다시 자야하는데.’ 1부터 100, 1,000까지 세고, 또 세어도 정신만 점점 맑아졌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헛되게 시간만 보내니 허리서부터 등, 머리, 전신이 아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누워서 시간 보내는 수밖에.’ 결국 다시 잠들지 못하고, 5시 반까지 지겹게 억지로 겨우 버텼다.
롯데시네마와 쇼핑몰이 입점해있다는 롯데빌딩을 중심으로 하노이야경을 사진기에 담고, 원목느낌이 나는 거실을 통과하여 HARONG PALACE HOTEL보다 훨씬 넓고 깨끗한 화장실로 들어갔다. 몸이 무거워 반신욕을 하고 싶었지만 어젯밤 남편이 샤워할 때 굉음을 내며 사방에서 센물이 나와 놀랐던 기억이 나서 참았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전경이 깨끗해보였다.
“관광하는 동안엔 날씨가 좋았는데 떠나려하니 비가 오네요.”
6시쯤 식당으로 내려갔다. 드래곤후르츠라는 밋밋한 용과, 쌀국수, 계란프라이 등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한 끼 먹기엔 괜찮았다.
“베트남에 왔으니 김치랑 베트남쌀국수나 실컷 먹어야겠네.”
‘향신료가 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며 남편이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한바탕 웃었다.
과일로 조식을 마무리하고, 룸으로 올라가 외출준비를 했다.
“아직 라오스관광이 남았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모르겠네.”
라오스 행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꼼꼼한 남편은 둘째아들한테 빌린 큰 가방 챙기는 것에 신경을 썼다. 가방한쪽에 굵은 선으로 금이 생긴 것을 어제저녁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텔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먼저 로비로 내려왔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별4개로 로비 등 규모는 작았지만 깨끗했다. 로비한구석의 미니향단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함께 돋보였다. 바 한 구석에는 쉴 수 있는 공간과 인터넷공간이 설치되어있었다. 어느새 멈춘 비로 인해 젖은 2차선도로건너하천 쪽에 리버사이드하노이호텔의 멋진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호텔 옆 가방가게에서는 늘어난 짐 때문에 큰 가방을 구입하려는 한국관광객들로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전용버스가 도착하자 가방을 맨 끝으로 실으려는 남편모습에 속으로 혼자 웃었다.
“학생들, 다음에 또 외국 여행할 때는 그런 무지한 행동을 하면 절대 안돼요! 아무사고가 없길 다행이지, 만약에 납치라도 되었다면 어찌할 뻔 했어요?”
갑자기 무슨? 간밤에 우리가 모르는 사건이라도? 버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뒤에 앉은 두 여대학생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아, 저 아가씨들이 해서는 안 될 어떤 행동을 저질렀구나!’ 직감했다. 앞에 앉은 다른 일행이 물어 가이드가 간단히 답하는 것을 들었다.
“어젯밤 늦게 둘이서 호엔 키엠 호수를 갔다 왔대요.”
“호텔에 말도 안하고요?”
“아니죠. 호텔로비직원한테는 허락받았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튼 이 시각에 함께 있으니 다행이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낯선 외국 더구나 반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 어찌 젊은 여학생 둘이서만 겁도 없이 개별행동을 했을까? 나이 먹은 우리들도 감히 생각도 못하는데? 겁도 없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이드는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마이크를 잡고, 이것저것 베트남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의무교육인 초등5년 과정을 거치면 중4년, 고등3년 후에 대학과정이 있는데 불합격하면 군대생활 2, 3년을 거쳐야 해요. 다행히 대학입학하면 군대 안가도 됩니다. 메콩 강 남부 삼각주나 호치민에서는 지금도 3모작합니다. 베트남국민들 거의가 날씬한 이유는 안남미를 주식으로 먹기 때문인데 탄수화물이 없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습니다. 먹으면서 다이어트하실 분들은 안남미로 밥해서 드시면 되겠죠?”
시선은 창밖, 귀로 가이드설명을 들었다. ‘와! 또 오토바이부대들의 공격이 시작되는구나!’ 요란한 크락숀이 계속 들렸다.
“오늘이 월요일인데다가 출근시간과 맞물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죠.”
고급자동차들보다도 우리의 마티즈가 흔하게 보이는 대로는 오토바이천국이었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오토바이소리가 시끄럽고, 요리조리 기교 부리면서 자동차사이를 누비며 다니는 복잡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접촉사고를 일으켜 경찰의 조사를 받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희한하다. 정체로 버스가 멈춰서있을 때, 바짝 서있는 흑인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더니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면서 두 손을 머리위로 올려 크게 흔들었다. 오토바이전용 옷, 2인용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오토바이들이 자가용을 호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가용이 오토바이들 속에 갇혀있는 것 같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길거리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택시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두에 정장차림을 한 여성은 자가용격인 오토바이로 직장에 출근하는 거죠. 하노이교민은 5만, 호치민 교민은 10만 명 정도 됩니다. 지금 경전철공사가 한창이라 3, 4년 후에는 이용이 가능할 것 같아요.”
어느 오토바이에는 네 명이나 탔다. 사진을 찍다가 동영상으로 돌렸다.
‘와! 이 더운 여름에 저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열사병이라도 얻으면 어쩌려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가이드가 작별인사를 했다. 한 달에 여러 번,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 인사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완연히 다른 표정으로 매우 진지했다. 가이드라는 직업은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겪을수록 좋겠지만 아무튼 헤어짐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여러모로 협조해주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이드님도 수고 많이 하셨어요.”
박수로 마무리 지을 때, 한 시간쯤 달린 전용버스는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노이공항으로 힘차게 들어서고 있었다.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려는 가이드의 안내로 빠른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기약 없는 이별을 악수로 대신하고, 박문수 베트남현지가이드와 헤어졌다.
깨끗하고, 넓은 하노이공항 21게이트로 걸어가면서 웅장한 규모야 우리의 인천국제공항을 감히 따를 수 없지만 면세점과 화장실, 의자 등 모든 면에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냄새가 물씬 풍겨 낯설지 않았다. 면세점에서 구수하고, 내게 잘 맞는 베트남믹서커피를 사려고 했지만 너무 값이 비싸 구매욕을 억제시켰다.
VN 921기가 하노이국제공항을 10시 반(원래는 10시)쯤 이륙하기까지 사진을 찍거나 잡담을 즐겼다. 받침 없이 날렵하게 생긴 변기가 특이했다.
“학생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베트남가이드로부터 주의를 들었어?”
제부가 가까이 앉아있는 두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처음엔 쭈뼛쭈뼛, 망설이더니 부끄러운 듯 조신하게 입을 열었다.
“호엔 키엠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어젯밤 10시쯤, 호텔로비직원과 베트남가이드허락을 받고, 외출했어요. 택시를 불러서 호수구경을 잘 했는데 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그 택시기사를 찾았더니 그 사이에 술을 마신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죠.”
“잘 했네. 그런데 뭐가 문제였어?”
“오토바이 값을 어처구니없이 너무 많이 달라는 거예요. 한화로 4만원이나! 갈 때는 5천원밖에 안줬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호텔직원한테 손짓발짓해가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말이 통해야죠? 베트남한국인가이드에게 전화해도 안 받고. 그래서 호텔직원이 아는 다른 한국가이드와 통화해서 5천원 주고, 보냈어요. 그 베트남오토바이택시기사가 외국인이라고 8배나 비싸게 부르는 거예요.”
“5천원 주고, 잘 해결했으니 천만다행이네. 그런데 학생들! 만약에 그 오토바이택시기사가 흑심을 풀고, 학생들을 엉뚱한 곳으로 데려갔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만약 사창가에라도 팔아넘겼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정말 잘되었지만.......”
제부가 하는 그 뒤의 말을 옆에서 듣는 나도 상상조차 끔찍했다. 두 여학생이 호텔로 돌아오지 않는 사건이 생겼다면 두 가족은 물론 호텔과 여행사, 가이드, 우리 등 그야말로 신문에 날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든 학생들을 호텔까지 잘 데려다준 그 오토바이택시기사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해.”
제부에 이어 나도 위로 겸 안심의 한마디 했다.
“낮에 호엔 키엠 호수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해서 또다시 가보고 싶었구나. 나 역시 아쉬움이 컸었거든. 야경이 참 멋졌겠네?”
“네, 참 좋았어요.”
그때까지 잔뜩 굳어있던 두 여학생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튼 베트남에서 생애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하나를 쌓았네. 하지만 다음 외국여행 땐 절대 조심해야해. 개별행동 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네!”
3, 통로, 3의 라오스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동시간 1시간 5분 후, 라오스수도인 비엔티안국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34D좌석에 앉아 부족한 잠과 통증이 심한 눈의 피로를 위해 ‘눈 좀 붙일까?’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오렌지주스 한잔을 주문하여 마셨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참, 어제저녁에 먹다 남은 망고를 마저 먹어치워야지?”
남편과 먹으며 세무사님 부부를 보니 약속이나 한 듯 그들도 신나게 망고를 잡숫는 중이었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와 남편 폰을 보니 현지시각 11시 18분, 한국시각 오후1시 18분, 두 곳의 시각이 동시에 나타났다.
“참 좋은 세상이야. 모든 게 자동으로 바뀌다니!”
곧 도착하겠다는 기내방송이 나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창밖풍경을 찍었다.
한 시간 만에 드디어 비엔티안국제공항에 안착, 라오스 땅을 밟았다. 날씨 맑아 햇볕 쨍쨍. 베트남 못지않게 더웠다. 비행기에서 먼저 내린 사람들이 이동버스탑승 후 출발, 다음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긴 소매로 정복한 공항여직원이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남편과 뒤를 바짝 쫒아갔다. 1분? 2분도 안 되어 이동버스가 정차한 곳에 도착했다.
“이렇게 짧은 거리인데 왜 버스를 타? 탑승과 하차하는 시간보다 걷는 게 훨씬 빠르네. 하하하”
언뜻 보기에도 작고, 초라한 공항외모다. 라오스입국 인들이 많지 않은데다가 성격 급한 남편 덕분에 12시쯤, 제일먼저 흰 와이셔츠차림의 남자한국인현지가이드와 여자라오스가이드를 만났다.
“아직 다 나오지 않으셨는데 기다리시는 동안 썬 크림을 바르세요. 햇빛이 강합니다.”
얼굴을 내맡긴 채 서있는 제부와 열심히 발라주는 계선이의 모습을 찍었다. 우리부부는 베트남에서 갖고 온 모자로 햇빛을 가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대기하고 있던 빨간색전용버스에 올라탔다. 베트남버스보다 의자간의 폭이 넓어 편했다.
“라오스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이형기 가이드로 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할 여자가이드는 라오스인으로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데 내가 혹시 일정과 다른 곳으로 안내하거나 규칙과 어긋난 행동을 할까봐 동행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나를 감시하면서 보조역할 해주는 거죠. 라오스는 14세기에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루었지만 이후 타이의 속국, 프랑스지배, 일본의 군사점령 등을 거쳐 현재의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라오스수도인 비엔티안 이름은 '달이 멈춘 도시'라는 뜻으로 메콩 강 북동쪽평야에 위치했는데 주변에서 쌀을 집약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 등 중요중심지입니다. ‘메콩강변을 지나던 달이 도시의 매력에 취해 잠시 멈추었다’하여 부르게 되었답니다. 달도 홀릴 만큼 매혹적인 도시를 의미하겠죠.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공항과 버스노선이 발달해 라오스배낭여행자들의 발길이 시작되는 곳이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라오스의 현재를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도시입니다. 열대계절풍기후대라 낮 평균기온은 1년 내내 27℃이상이고, 연간강우량의 80%이상이 5~9월에 내립니다. 16세기중엽엔 루앙프라방이 라오왕국의 수도였지만 13세기말에 비엔 티엔으로 바뀌었습니다. 1778년 샴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1828년 라오스 왕이 반란을 일으키자 약탈과 파괴를 당했습니다. 일본에 잠시 점령당했던 1945년을 제외하고, 1899~1953년 프랑스총독의 주재지로서 프랑스령라오스의 행정중심지역할을 했습니다. ‘꽃보다 청춘’ 예능프로그램방영이후 한국관광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수도라는 비엔티안은 동남아시아? 아니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가장 조용한 수도로 고층은 고사하고, 10층 이상의 빌딩들도 없는 것 같았다. 베트남시내외곽정도로 한적한 소도시에 온 것 같았다. 건축이나 도로 등 한창 공사 중인 베트남보다 모든 면에서 더 뒤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늘어진 전깃줄은 베트남과 똑같았다. '여울한식'한글간판이 반가웠다.
“근대적 공업으로 양조업, 목재가공업, 벽돌, 타일, 직물, 담배, 성냥, 합성세제, 플라스틱 가방, 고무샌들, 철, 강철제조업 등이며 라오스저지대의 라오족농부들은 쌀, 옥수수를 재배하며 가축을 기릅니다. 1975년까지 가축의 선적, 도살중심지였는데 교역국이 베트남에서 타이로 바뀐 후에는 남동쪽에 있는 팍세가 주요수입항이 되었습니다. 비엔티안에는 농학, 예술, 교육, 임학, 관개, 의학 등 여러 학부를 둔 시사방봉대학교가 있고, 부속기구로 파응굼대학, 리세비엔티안, 공과대학과 팔리어연구소, 산스크리트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또 호파케오 국립박물관, 동사팡메우크 도서관, 국립도서관도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1566년경에 지은 타트루앙 사원인데 프랑스식민지시대 펫사라트 왕자가 라오족공무원들을 지휘해서 복구했습니다. 라오스의 종교는 불교죠.”
‘아무리 불교국가라 해도 절이 저리도 많아?’ 화려한 불교관련건물들이 도로가에 너무도 흔했다. 달리는 트럭 위 짐에 걸터앉아있는 두 젊은 남자, 메콩호텔, 트럭에 여행 가방을 싣고, 활짝 웃는 여인 등 차창 밖 풍경들을 열심히 사진기에 담았다. 많은 전깃줄들이 관공서, 호텔건물외관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라오스는 열대몬순기후로 우기와 건기로 나눕니다. 우기는 보통 5월부터 10일까지며 밤에 장대비가 내리다가 그친 후 금방 갭니다. 낮에도 소나기가 두 어 시간 내리다가 맑게 갭니다. 한마디로 변덕스런 날씨죠. 우기엔 매우 덥고, 습하며 비가 많이 내립니다. 우산이나 우비, 샌달을 준비하면 좋겠지요. 건기는 11월부터 5월 초순까지며 11월부터 2월까지는 약간 서늘한 건기, 3월부터 5월 초순까지는 더운 건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더울 땐 40도까지 올라가고, 가장 추울 때는 15~20도 정도 됩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11월부터 4월 사이로 22~31℃입니다. 북쪽은 온도가 매우 낮아 춥기 때문에 겉옷과 얇은 외투를 꼭 준비해야합니다. 4월은 덥지만 중순의 라오새해축제(삐 마이) 등 많은 축제를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대형퍼레이드행사가 있고, 5월 초엔 지역별로 로켓발사축제가 있습니다. 옷은 땀을 잘 흡수할 수 있는 면 종류의 여름옷이 좋은데 사원방문 일정이 있다면 긴 바지나 치마가 필요합니다. 7월말쯤에도 비가 자주 내려서 약간 선선하지만 매우 습합니다. 라오스는 못살아서 2차 산업이 없으므로 모든 물가가 비쌉니다. 우리는 라오스에서 제일 비싼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라오스가이드는 가난해서 여유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환전하기위해 일인당가이드 팁 30불씩 미리 받겠습니다.”
버스를 세우고, 가이드는 환전소에 다녀왔다.
베트남보다 오토바이숫자는 훨씬 적지만 정지선에서 자가용 앞에 버젓이 서있는 모습이 우리와 달라 이상해보였다.
“어머나! 이 뜨거운 햇볕아래 저 양철지붕이 얼마나 뜨거울까?”
우리의 50년? 60년대를 뒤돌아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베트남보다 훨씬 못사는구나! 베트남도 못 산다 했는데 라오스보다 분명 앞섰네. 그리고 개발하는 중으로 발전도상 국가이고.’ 이웃인 베트남과 자꾸 비교되었다. 라오스는 절만 부자인 것 같았다. 보이는 절마다 규모가 컸고, 외관도 매우 깨끗하면서 보통건물들에 비해 특별히 화려했다.베트남주택옆면은 거의 칠하지 않았는데 라오스는 앞면처럼 칠한 곳이 많았다.
20여 분쯤 흘렀을 때, 서상궁이라는 한글간판이 보였다. ‘왜 하필 서상궁이라 지었을까?’ 궁금했다.
“내리세요. 돼지삼겹살을 맛있게 양념하여 갖가지 상추에 싸서 드실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수도 셀 수 없는 한글사인으로 도배한 식당내부 벽에 모든 시선이 꽂혔다.
“와!”
미리 차려진 식탁을 대하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고추장 양념한 돼지고기와 양파, 콩나물들을 보니 침이 절로 나왔다. 푸른 쌈들이 매우 싱싱해보였다. 우선 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은 후, 콩나물과 양파, 밥을 비벼 먹었다.
“너무 맛있으니까 배를 쓸어내리면서 차곡차곡 쌓아야해. 하하하”
비빔의 달인인 남편이 능숙하게 손을 놀리며 웃겼다. 계선이는 남은 상추를 적당히 손으로 잘라 넣었다. 구수한 들기름을 첨가하니 맛이 최고, 꿀맛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남편이 속삭였다.
“우리도 라오스에 왔는데 뭔가 흔적을 남겨야하지 않겠어?”
남편이 빠른 속도로 벽에 ‘신택수 이계옥과 함께’라 적었다. ‘최고, 최고!’ 엄지를 들어 보인 후 사진기에 담았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식당 앞에서 두 아가씨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마이크 잡은 이형기 가이드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라오스수도인 비엔티안을 떠나 방비엥으로 약4시간동안 이동할 겁니다. 대부분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을 거쳐 루앙프라방코스로 여행일정으로 계획하지만 상당수여행객들은 방비엥에 눌러 앉습니다. 그만큼 방비엥이 좋다는 거죠. 비엔 티엔 주의 작은 관광마을로 비엔티안과 약150km정도 떨어진 곳인데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을 잇는 거점으로 1353년에 형성되었습니다. 본래지명은 무앙송이었으나 프랑스점령기이던 1890년대에 현재의 지명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중국의 계림을 닮았다고 하여 소계림이라 불리는 방비엥은 돌아보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시골마을로 주변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라오스에서 유명합니다. 실제마을을 관통해 흐르는 송강을 따라 특이한 모양의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있고, 그 사이 골짜기에는 소소한 볼거리를 간직한 카르스트동굴들이 있습니다. 각국에서 온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한껏 자신의 자유와 여유를 누리고 가는 곳이 방비엥입니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물가도 상당히 저렴해 배낭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힐링 도시입니다. 예전에는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을 오가며 잠시 거쳤는데 요즘은 방비엥의 매력에 빠져 더 오래 머물곤 합니다. 방비엥에는 푸른 산호초라 불리는 낭만적인 에메랄드 빛 천연호수 블루라군이 있는데 브룩 쉴즈 주연의 영화 '블루라군'으로 유명합니다. 앞으로 40분쯤 후 불교와 힌두교가 결합된 여래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불상공원에 들를 겁니다. 부다 파크 왓 씨앙쿠앙은 말 그대로 불상을 전시해 놓은 공원입니다. 태국과 라오스국경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데 거대한 와블을 비롯해서 인도의 시바신도 볼 수 있습니다. 1958년에 라오스 계 태국조각가인 루앙 푸 분레우아 술리앗이라는 사람이 두 나라의 우대관계를 기원하며 메콩강변에 조성했습니다. 조소전문인이 아닌 그가 주재료인 시멘트로 불교, 힌두교와 관련된 조각상들로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지요. 200여개의 불상이 전체적인 스토리를 갖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의 단위가 특정장면이나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특히 라오스에서는 누워있는 와불상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공원에서 가장 큰 와불상의 길이가 40m입니다. 천국과 지옥, 현세를 묘사한 항아리모양의 사리탑도 있는데 위에 올라가면 공원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불상의 형식이지만 도인풍의 석상이나 그리스로마신화의 형식을 딴 석상들로 다양한 신화가 섞여있습니다. 라오스관광을 하시다보면 무료화장실과 유료화장실이 있는 데 앞으로 무료화장실을 공립, 유료화장실을 사립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철판지붕의 상점들이 계속 이어지고, 차도마저 한적하여 기분이 씁쓸했는데 깨끗한 단독주택과 불공제단공장이 나타나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의 한강물은 맑은데 송강 물은 흙색이었다.
“자, 부처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거목이 울창한 입구를 지나 우측으로 도니 구멍 난 호박모양의 사리탑이 눈길을 끌었다.
“하노이 출발하는 라오스 행 여객기가 많이 지연되는 바람에 자유 시간을 넉넉히 드릴 수가 없으니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시고, 버스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 늦음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한테 많은 피해준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시면서 시간엄수하세요!”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거무스름한 색상들의 조각상들이 많았다. 사리탑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길이가 40m라는 누워있는 불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누워있는 와불상은 사진기 한 컷에 담기 힘들 정도로 매우 길었다. 팔이 여덟 개 달린 요상한 조각부터 괴기스럽고, 리얼한 불상 등 갖가지 조각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워져있었는데 많은 시간이 흘러서일까? 석상들 여러 곳이 깨어져 철골을 드러내고 있거나 검게 부식되었다.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조각들을 사진기에 담으며 돌아보면서 시멘트로 세심하게 조각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반적인 사원이나 불교성지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남아양식의 불상이라서인지 친근감이 갔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힌두교석상들이 많아 의아심이 생기기도 했다.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표현에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데도 지루한 줄 몰랐다. 뜨거운 땀줄기가 등을 타고 계속 내렸다.
언뜻 보기에 손잡이 있는 항아리모양의 높은 탑으로 올라가려면 크게 벌리고 있는 무서운 형상의 입으로 들어가야 했다. 황토굴방? 안쪽표면을 흙으로 바른 사리탑 안으로 들어가니 어둠침침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현실, 지옥, 천당의 테마를 표현했다는데 드문드문 좁게 생긴 네모난 구멍을 통해 탑 안쪽을 들여다보니 컴컴한 곳에 지옥을 형상하는 조각들이 마구 흩어져 있어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3층까지 겨우 올라가니 계단식으로 비탈져 매우 위험했다. 탑 꼭대기가 보였는데 ‘우주와 교신이라도 하려나?’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엉거주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한 바퀴를 돌면서 기념사진을 몇 컷 남겼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한국에서 이번 여행의 동행인들 중 불교신자가 없나? 공원안의 일행들이 보이지 않아 급히 내려왔다. 계단이 매우 좁고 경사도가 심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몸집이 큰 남자는 구경도 못할 곳이다. 안에도 분명 들어가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자유 시간이 적어 폰을 겨우 안으로 밀어 넣어 몇 컷만 담고 나와 아쉬움이 컸다.
“직접 들어가 찍었어야 내 직성이 풀릴 것을.......”
“1시간 조금 더 가면 비엔티안에서 북동쪽으로 23km 떨어진 콕싸앗이라는 소금마을에 도착합니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내륙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곳이죠. 지하120m 퇴적암층의 짠 물에 열을 가해 소금이라는 암염을 얻는데 볕이 좋을 때에는 염전을 통해서, 겨울에는 물을 끓여서 얻죠. 원래 천일염은 일제 때 소금증산을 위해 이식해 놓은 체계로 이물질이 많고, 알갱이가 큽니다. 장작불로 끓여 얻는 소금은 식용으로 이용하고요. 우리의 전통방식은 끓이는 방법으로 과거기록에 보면 소금생산지에서는 소금을 얻기 위해 끓이는 수증기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소금산지는 지역특색을 살릴 수 있는 곳이라 어떤 소금은 단맛이 난다고 해요. 라오스에는 소금마을이 세 개 있는데 우리가 가는 곳이 제일 크고, 국가에서 운영합니다. 하루 100톤 정도 생산하는데 더운 나라, 더운 불 앞에서 한 달 내내 일해도 150~200불 정도밖에 못 받습니다. 지하 암염층의 염분이 지하수에 녹은 것을 관정을 뚫어 퍼 올리는데 염분수치는 25%로 바닷물의 7배라 조금만 끓여도 많은 소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과거 소금은 귀해서 화폐로 이용하기도 했죠.”
시야에서 강이 사라지자 넓고, 푸른 들판이 나타났다. 논에는 벼를 다 베었는지 깨끗했다. 베트남처럼 물이 흔하지 않았고, 소나 오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택지붕은 철판에서 기와로 변하는 시기인 것 같았다. 또다시 화려한 절이 보이는가 싶더니 붉은 흙의 넓은 길이 나타났다.
“소금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분홍원피스차림의 두 여자아이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눈망울은 크고, 맑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철판지붕의 소금공장들이 길게 서있는 곳을 향해 빨간 황톳길을 걸었다. 소금이 높게 담겨져 있는 광주리가 보여 가까이 가는데 더 늘어난 아이들이 떼 지어 따르며 계속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부르짖었다. 손 벌려 구걸은 안하더라도 뭔가 달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진촬영도구만 있을 뿐 돈이나 사탕 등 딱히 줄 게 없어 애매한 사진기만 이용했다. 계선이가 백에서 사탕 여러 개를 꺼내어 나눠주었다.
“넌 어떻게 알고 사탕을 많이 갖고 왔니? 이런 곳에 올 줄 알았으면 나도 봉지로 구입할 것을!”
“나도 몰랐어. 차안에서 지루할 때 입에 넣으려고 몇 개 갖고 온 것을 주는 거야.”
장작불에 끓는 소금물 옆에 앉으니 찜질방에 온 느낌이었다. 머리와 등에서 계속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시추 탑이 있는 염전 쪽으로 가서 동영상을 찍었다.
“저쪽으로 가면 소금창고가 있는데 소금부대들만 쌓여있어요. 시간이 없으니 공립학교에 얼른 다녀오세요!”
‘신발을 신지 않은 어른들은 왜일까?’ 화장실에서 버스까지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해 정말 미안했다. 다른 일행들도 사탕을 나눠주었는데 하나도 받지 못한 아이는 찡그린 표정으로 실망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1950년대 나의 어렸을 적 모습도 저랬을까?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미군트럭! 그 뒤를 쫒아 뛰다가 미군들이 던져주는 미제 껌을 받고서 좋아했던 우리들! 그때 그 시절의 우리들 모습이 바로 저랬을 거야.’ 한없이 측은해보였다. 상황이 가능하다면 입고 있는 옷, 신발,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몽땅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늘에서 쉬고 있는 아낙들은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현 생활에 만족하니 마음이 편하다는 표정들이었다.
“방문 기념으로 소금 한 봉지씩 주네요. 우리는 계속 방비엥으로 향합니다.”
들판을 지나 철물점, 옷가게 등이 보였는데 상점지붕이나 앞, 유리, 굳게 닫힌 셔터 문사이사이에 시뻘건 흙들이 쌓여있었다.
“와! 저 뻘건 먼지들을 그대로 다 마시면서 사는 이곳주민들의 건강상태는 괜찮은가?”
길가의 공장 벽, 주유소, 잡풀들, 인적 없는 낮은 철판지붕의 재래시장도 붉은 흙먼지로 덮여있었다. 군데군데 사당 같은 것들이 자주 보였다.
“라오스동쪽은 베트남, 서쪽엔 태국과 미얀마, 남쪽으로는 캄보디아, 북쪽으로는 중국과 접해 있죠.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늦는데 한국에서 라오스까지 아직 직항 편이 없습니다. 통화는 킵(kip)을 사용하는데 태국의 바트와 미국달러도 사용합니다. 기기묘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방비엥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비엔티안근교의 자그마한 마을에 불과했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이 급증하여 현지인보다 이방인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석회암카르스트지형으로 마을한 바퀴 돌아보는데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중심가에는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 바 등이 있어 낮에는 한적하지만 밤이면 화려해지고, 떠들썩합니다. 여행자들의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려 젊은이들의 천국입니다.”
얼마쯤 달렸을까? 흙색이 정상적인 마을로 접어드니 주택들이 깨끗했다. 철판지붕 옆 삼성영어간판이 돋보였다. 신축중인 새 건물들과 도로포장공사가 한창인 것으로 보아 1970년 초, 우리농촌의 현대화를 위해 범국가적으로 시행된 새마을운동 중인 것 같다. 절은 어디든 화려했다.
“방비엥에서 약400km 떨어진 고대도시, 루앙프라방은 영국여행 잡지에서 선정한 2014최고관광도시1위를 차지한 곳으로 8시간 걸립니다. 버스로 험준한 북부고산지대를 넘어야하는데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는 순간 고생스러움은 경이로움으로 바뀝니다. ‘위대한 불상의 도시’라는 뜻으로 라오스 제2의 도시이자 라오스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역사, 문화, 불교의 중심지입니다. 1353년부터 18세기까지 라오스수도여서 왕궁과 수많은 불상으로 가득한 동굴사원, 황금빛사원으로 가득 차 도시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1995년 12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길모퉁이마다 자리한 사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원, 왕궁, 전통민가,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의상과 풍습은 물론 1930~1940년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 등을 후세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종합평가 받았습니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자유로움과 순진함, 종교적인 경건함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규모가 큰,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의 하나로 꼽히는 왓시앵통 사원은 시내한가운데 자리했는데 루앙프라방의 옛 영화를 보여줍니다. 1560년에 세워졌는데 붉은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루고, 현재4명의 승려와 75명의 학승이 머물러 있습니다. 사원의 세 겹 지붕이 특이하고, 벽면장식도 아름답습니다. 메콩강변의 켐콩 거리나 여행자를 위한 식당,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 있는 씨싸왕웡 거리에서 먹고 마시며 라오스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툭툭이나 점보 같은 오토바이택시와 소형트럭의 엔진소음이 없다면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로 프랑스식민지 풍 건물과 라오스전통양식의 집, 수많은 사원들이 어우러졌고, 승려와 아이들, 배낭여행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상징은 우리말로 ‘탁발’이라하는 딱밧인데 승려들이 음식공양 받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출가수행자들이 엄격히 지켜야하는 규율로 출가 후에는 어떠한 생산 활동도 할 수 없으므로 매일아침 딱밧을 통해 욕심을 비우고, 가진 것을 나누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보통오전6시에서 7시 사이에 행해지는데 각각의 사원을 출발해 정해진 구역을 한 바퀴 돌기 때문에 사원근처로 가면 구경할 수 있습니다. 새벽6시전부터 길가에는 무릎 꿇은 채 승려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라오스사람들은 딱밧으로 공덕을 쌓아야 건강하고, 복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죠. 비엔티안에서는 1년에 한두 번 정도 볼 수 있지만 루앙프라방에서는 매일새벽 탁발행렬이 이어집니다. 각 사원의 승려들 수백 명이 마을을 돌며 아침거리를 공양하는데 매우 장엄하여 감동적입니다. 가장 나이 많은 승려들이 앞장서고 서열에 따라 한 줄로 뒤를 따르는데 시주들 앞을 지나가며 바리때 뚜껑만 반쯤 엽니다. 시주들은 미리 준비한 음식물 등을 바리때에 넣죠. 승려들은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혀 답례하는 일이 없습니다. 당연한 듯 다음시주를 향해 빠르게 지나칩니다. 루앙프라방승려들은 아침과 점심 두 끼밖에 먹지 않는데다가 소식하여 바리때에 담긴 음식이 남으면 아침탁발행렬에 공양하기위해 나온 주민들 끝의 걸인들에게 나눠줍니다. 탁발음식의 재분배 때문에 루앙프라방에는 구걸하는 걸인이 없습니다. 루앙프라방에서 메콩 강40km북쪽 즉 메콩 강과 남오우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팍오 동굴은 30분쯤 돌아보면 될 작은 규모인데 4000여 개의 불상 등 세계 여느 거대한 동굴 못지않은 깊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강변선착장에서 긴 나무배로 약2시간정도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커다란 입처럼 생긴 동굴과 빽빽하게 놓여 있는 불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400년 전, 포티사랏 왕자가 치앙마이공주와 백년가약을 맺고, 메콩 강을 거슬러가다가 동굴발견 후 성역화되었다고 합니다. 동굴 안 불상들은 지난400년 간 주민들이 1년에 한 개씩 모셔온 것이랍니다. 탁발행렬 후 아침시장을 것이 좋은데 강변의 포티사랏 거리와 푸와오 거리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우리재래시장모습과 비슷하여 좌판에 인근에서 생산된 과일, 채소, 육류, 생필품들을 놓고 팝니다. 우체국북쪽의 메콩강변에도 열대과일상과 야채가게가 몰려 있는데 남색전통복장에 머리띠를 한 고산족들도 볼 수 있습니다. 야시장은 어둠이 몰려오는 무렵, 시사방봉거리에 열리는데 산속의 소수민족들이 여행자들에게 팔 기념품을 들고 나옵니다. 라오스전통문양을 새겨놓은 옷감과 지갑, 종이로 만든 실내등, 촉감 좋은 실크스카프, 맥주상표를 그려 넣은 갖가지 색깔의 티셔츠, 나무로 만든 코끼리조각, 직접 재배한 차 등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하는 푸시탑은 배낭여행자들이 노을을 보기 위해 즐겨 찾는 곳으로 루앙프라방전망대이기도 합니다. 루앙프라방을 여행 잘하는 방법은 최대한 게을러지면서 시간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내버려 두는 것. 여행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재래시장구경을 잠시 하시죠?”
공동경비로 계선이와 남편이 과일을 구입할 동안 시장 안 깊숙이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갖가지생활용품, 신발, 꼬치구이, 금은방 등 겉에서 보는 것 보다 넓었고, 상품도 다양했다. 생전처음 보는 과일들과 오토바이주차장을 사진기에 담았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신발을 털어주세요.’ 한글로 써 있는 버스계단을 올라 자리에 앉으니 다른 팀 여자가 사과를 주었다.
“단단하면서 크지는 않은데 참 맛있네요.”
“지금까지 라오스와 우리가 가는 방비엥 그리고 가지 않는 루앙프라방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드렸습니다. 앞으로 가는 도로는 지금까지 달려온 도로보다 더 울퉁불퉁하고, 험준한 고개도 넘어야하니 창밖구경으로 대신하면서 조용히 가시겠습니다.”
너른 초원과 야자수가 높이 솟은 울창한 숲을 한참 지나니 다시 시뻘건 흙 마을이 나타났다. 가면 갈수록 개발의 손길이 아직 뻗치지 못한 지역으로 철판지붕이 많이 보였다. 다시 깨끗한 마을로 들어섰다. 베트남보다는 약하지만 여러 겹의 전선이 복잡하게 걸려있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휴게소인데 라오스의 저녁바람도 쏘일 겸 공립학교가 있으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완전재래식이 아닌, 올라앉는 반 재래식변기를 이용하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쏟아 부었다. 옷가게와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소문난 파래 광천김이 있어 반가웠다. 그 외에도 낯익은 과자봉지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두 여자대학생들이 과자를 잔뜩 안고, 계산대로 갔다.
“그동안 못한 군것질을 오늘밤에 실컷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호호호”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니까 CCTV를 설치했겠지?’ 밖으로 나오니 개인사당과 한글로 쓴 임대상점이라는 플랜카드가 보였다. 야자껍질을 벗겨 냉장고에 보관시킨 것을 보니 마시고 싶었지만 앞으로 더 가야한다는 가이드 말에 참았다.
양쪽으로 울창한 산림만 보였다. 이따금 층계 논이 보였지만 완전산길이었다. 그 깊은 산중에도 개인사당이 모셔져있어 라오스국민들의 불교신앙심을 알 수 있었다. 해는 서산을 넘어 점점 어둠이 깊었다. 어디쯤인지 깜깜한 산속에 옹기종기 모여 이룬 자그마한 마을에서 희끄무레한 불빛이 아련히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 덜컹덜컹 거리는 버스의 개구쟁이 짓 때문에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야?’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다 왔습니다. 버스는 이곳까지만 운행할 수 있습니다. 내려서 제 뒤를 잘 따라오세요!”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광장? 멀리서 비치는 네온의 힘을 빌려 조심스럽게 걸었다. 많은 빨래가 길게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개인주택인 것 같은데 불빛도 없이 컴컴했다. 드라마 ‘꽃보다 청춘’플랜카드를 이용한 체험광고가 걸려있는 상점도 주인은 없고, 어둠침침했다. 좌측으로 돌리니 대로가 나타나면서 음악소리가 요란하고, 밝은 네온불빛들이 줄지었다. ‘아, 여기가 젊은 여행객들의 천국이라는 거구나!’ 젊은 남녀서양여행객들이 크게 떠들며 떼 지어 지나갔다. 미스터치킨하우스 한글간판식당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자, 두 줄로 길게 앉아서 맛있게 식사하세요!”
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 연한 상추에 싸서 먹으니 털털거리며 소화시켜준 버스로 인해 허기졌던 뱃속이 차츰차츰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계란부침과 배추김치, 된장찌개가 일품이었다. 맥주 두 병을 주문하여 라오스관광기념을 위해 ‘브라보!’했다.
“반찬이 모두 맛있어요!”
중앙우체국에 근무한다는 자매 중 동생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뚱뚱한 체구에 걸맞게 시원스런 성격의 여주인 훌륭한 음식솜씨 때문에 가이드도 이 식당을 자주 이용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각 테이블마다 제일먼저 떨어진 계란부침이 서비스로 계속 나왔다.
“시장기가 반찬이지요!”
상추쌈도 계속 리플 되어 한국인의 후한 인심은 라오스에서도 맥을 잇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입구에 있는 우리 속의 두 마리 원숭이들 재롱을 구경했다.
“우리 안에 있다고, 가까이 가거나 약 올리지 마세요. 언젠가 손을 길게 내뻗어서 여자관광객이 다쳤거든요. 이렇게 먹을 것을 주면 절대 해치지 않아요.”
얼굴을 확실히 익힌 원숭이들을 친구로 삼았다는 가이드가 시범을 보였다.
“와! 도마뱀이닷!”
벽을 기어오르는 도마뱀을 향해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자, 이제 숙소로 가십니다. 한5분정도 걸어야하니 잘 따라오세요!”
걸을수록 어둠침침했다가 밝아진 거리양가로 길게 상점들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반찬,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한국여행객들임을 알고, ‘안녕하세요, 1달라!’를 외쳤다
롱 낙쿤 호텔에 도착, 가이드가 룸 배정할 동안 세계시각을 알려주는 시계들이 걸려있는 호텔로비를 돌아보았다. 개인사당과 망고스틴이용주의표지가 특이했다.
1103호실로 들어섰다. 순간온수기를 이용한 샤워시설, 좁은 세면대, 평범한 침대가 두 개, 고장 난 소형텔레비전, 소형냉장고, 커튼이 걸려있는 거울, 소형물통과 헐렁한 휴지, 테이블 겸 화장대, 모든 부족함을 때우려는 듯 예쁘게 접어 침대위에 올려놓은 타월!
대충 짐정리를 마치고, 샤워 후 계선이 룸으로 모였다.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과일을 안주로 맥주 한잔 하자는 세 남자의 의견모음이었다. 반잔 마신 맥주의 힘으로 눕자마자 라오스에서의 첫 번째 깊은 꿈나라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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