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5일 목요일
베트남의 하노이공항→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집
이런저런 잡담으로 대화 나누고 있는데 베트남어로 방송이 나오자 주변사람들이 일어나 줄을 섰다. 인천국제공항 행 기내로 들어가 28E 좌석을 찾아 앉았다. 남편의 좌석과 떨어져있었지만 동행인이 없는 옆 사람의 양해를 구해 바꿔 앉았다.
남편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걱정되었다. 이번 여행이 체력에 무리가 된 듯싶다.
“그래서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나 봐요.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눈 감고, 푹 쉬어요.”
나도 눈에 안약을 넣고, 잠을 청했다.
“식사 뭐로 하시겠습니까?”
“우리 각각 다른 것으로 주문해요. 베트남 갈 때는 달리 주문했어도 한 가지가 떨어졌다면서 같은 음식을 주었는데 이번에도 일단은 다른 메뉴로 주문해봅시다!”
다행히 두 가지음식이 나왔다. 별로 시장기가 없어 반만 먹고, 나머지는 남편이 처리해주었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칫솔질을 하고, 또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잠을 보충하기 위해 그리고 안구건조증으로 오는 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손님들의 깊은 수면을 위해 조명을 꺼서 기내를 어둡게 해주니 매우 고마웠다.
눈은 감았지만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 베트남과 라오스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게 됨이 매우 감사했다. 날짜를 잡는데 있어서 양보해주신 제부와 세무사님 부부가 고맙고, 적극협조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뉴욕 타임즈에서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여행지로 선정된 바 있는 라오스는 고요한 평화와 활기 찬 액티비티가 공존하는 곳. 라오스는 이미 개발된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 환경 속에서 낙후된 생활을 해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무궁무진으로 개발시켜야 할 나라이다. 우리나라6, 70년대 모습을 보여준 나라로 앞서 들른 베트남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 비해 라오스의 비엔티안은 매우 한적하면서 조용했고, 낮은 건물이 많아 우리나라의 중소도시 같았다. 오토바이숫자가 적어 소음과 매연이 덜했지만 비포장도로에 낡은 건물들이 많아 흙먼지를 절로 많이 마시게 되어 호흡기와 관련된 환자들이 많을 것 같았다. 베트남과 라오스거리풍경에서 오토바이문화의 차이를 가장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베트남은 헬멧을 꼭 착용해야하며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볼 수 있지만 라오스에서는 헬멧을 쓰지 않은 폭주족들이 가끔 보이면서 질서가 없었다. 값도 베트남이나 태국보다 비쌌고, 우리가 가보지 않은 루앙프라방은 더 비싸다고 한다. 불교국가가 많은 동남아지역 중 라오스가 가장 사원이 흔한데 모양은 거의 비슷한데도 대부분 입장료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태국(유명한 화이트사원 등)은 받는 곳이 거의 없다. 라오스의 대부분관광지는 오후4시 이후나 점심시간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므로 되도록 그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이드설명에 의하면 베트남과 라오스의 가장 큰 차이는 국립박물관의 규모에 있다고. 하노이의 호치민 박물관은 대규모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데 비엔티안의 국립박물관은 매우 작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단다. 그 이유는 호치민과 베트남역사에 대해 자긍심이 큰 베트남국민들의 생각과 자세에서 나온 것 같다. 베트남의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낮지만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단계이고, 라오스는 캄보디아와 미얀마와 더불어 더 낮으면서 성장속도도 느리다고 한다. 음식은 바다가 없는 이유에서인지 캄보디아나 라오스, 베트남이 거의 비슷했다.
아무튼 바쁜 생활 속에서도 틈내어 베트남과 라오스를 다녀온 이번 여행은 참으로 뜻 깊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라오스에서의 별다른 체험은 앞으로 또 되돌릴 수 없는 귀한 시간들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다. 제부도 감격에 겨워 말했었다.
“형님,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보았지만 라오스여행이 제일 좋았고,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잠이 오질 않아 폰을 이용해 인터넷으로 천년고도베트남의 숨겨진 대표여행지를 알아보았다. 북부의 하노이, 하롱베이, 갓바, 하이퐁, 닌빈, 사파, 중부의 달락, 다낭, 후에, 호이안, 남부의 호치민, 나트랑(낫짱), 무이네, 푸궉, 꼰다오, 메콩 등 매력이 무궁무진한데 최근 다낭이나 나트랑이 휴양도시로 면모를 갖추고, 새로운 베트남의 여행지로 떠오른다는 것을 알았다. 중남부와 북부의 이미지가 상반되는 베트남은 반도에 자리한 지정학적 이유로 곳곳에 배어있는 문화가 너무도 다양하며 신비롭다고. 각자 개성과 문화가 매우 뚜렷하여 마치 두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바로 베트남이란다.
베트남은 천 년 전까지 천 여 년 동안 중국의 속국으로 지내 발음은 다르지만 언어대부분이 한자에서 나왔다. 그 후, 1840년대부터 85년 동안 프랑스지배를 받아 공산국가였던 나라다. 그 당시 한 프랑스인에 의하여 어려운 한자대신 알파벳으로 지금의 베트남문자를 고안했다. 현재베트남 사람들은 한자를 전혀 모르며 우리의 한의학이나 고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공부한다. 호찌민(Ho Chi Minh)도 한자를 배웠고, 옥중에서 한자로 옥중서신을 지어 유명하다.
[북부의 하노이(한자: 河內, 베트남 말: 하노이, 중국말: 허내이)]
호수가 많은 조용한 도시로 물이 많으며 도시곳곳에 성당(성 죠셉 성당)건물이 눈에 자주 띈다. 돈의 문제인지 고색창연한 자태가 좋아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외벽에는 오염된 잿빛의 물때가 지저분해 보인다. 밤에는 신호등 없는 거리에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엉켜 각자 알아서 건너간다. 기아차의 모닝이 시내택시로 자주 눈에 띈다. 베트남대표적음식인 쌀국수는 국내베트남요리음식점과 다른 허브 향이 가득한 오리지널 맛이다. 시내 가볼 만한 곳은 호찌민의 사망당시모습을 밀랍하여 그대로 볼 수 있는 호찌민 묘(월, 금요일은 개방안하며 그 외 평일은 무료로 오전8~11시까지만 개방), 호찌민의 주석궁, 호찌민박물관이 있다. 근교에 흐엉사(Chua Huong)라는 사원도 당일로 가볼만하다. 베트남아가씨가 노 젖는, 쇠로 만든 배를 타고 가서 산행한 후, 동굴 속에 있는 사원을 돌아보는 여정이다.
[북부의 하롱베이]
베트남여행광고지에 항상 등장하는 곳. 수도인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180㎞지점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자연적 볼거리가 많다. 3천여 개의 기암괴석과 섬들로 이뤄진 만으로 '바다의 구이린(桂林)'으로 불리며 1994년,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거대한 숲 같은 섬들과 환상적인 동굴, 기후나 태양의 빛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자아내는 독특한 풍경 때문이다. 섬 대부분은 무인도로 다양한 종류의 포유동물, 파충류, 조류와 식물이 있고, 바다에는 1,000종 이상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도심에서는 무단 횡단하는 차와 오토바이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없지만 시내를 벗어나면 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아직은 교통인프라가 열악하여 하노이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4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지만 앞으로 공항이 들어설 계획이며 이곳저곳에서 개발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인 곳이 많다. 우리의 해상국립공원인 통영과 여수를 연상시킬 수 있으며 기암절벽의 동굴투어가 있는데 삼척의 환선굴보다 규모가 작다. 카약과 나룻배, 보트를 즐길 수 있고, 수상동굴을 통과하면서 편안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가족여행으로 유람선을 타고, 하루관광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북부의 갓바(Cat ba)]
해상국립공원으로 유명하며 서양관광객들이 많다. 2004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선착장에서 본 일출모습과 거북이 모습을 닮았다는 거북바위해상가옥들, 베트남 다금바리와 우럭 등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가두리양식장이 유명하다. 백사장모래가 곱고, 완만하여 물놀이를 즐기기에 아주 좋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백사장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스파 형식의 리조트들도 많아 미리 예약하고 가면 좋다. 갓바에 도착하면 시내까지 버스로 40여분정도 걸린다. 베트남전통담배대인 대나무담배(투억 라오)를 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북부의 하이퐁(Hai Phong)]
베트남직할시 중 세 번째 큰 도시로 북부 연해지역의 경제발전, 과학, 종합기술의 중심도시다. 15개 행정구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북부의 최대항구도시다.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00km, 택시로 약2시간정도거리에 위치했으며 하이퐁의 하이(Hai)는 바다 해, 퐁(phong)은 바람을 의미하여 바닷바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베트남북부에서는 하노이다음으로 큰 제2도시. 16개의 강류로 인해 형성된 도시로 여름에는 평균섭씨29도, 겨울에는 섭씨16도이다. 연중강우량이 1,700mm, 여름에는 매일 비가 오는 우기다. 10월부터 4월까지는 건기이며 6월에서 9월까지는 태풍의 영향을 받는다. 봄에는 프랑스풍의 건물이 많은 이국적인 거리를 따라서 화염수(花炎樹)가 새빨간 꽃을 피워 도시전체를 빨갛게 물들인다. 하롱베이로 가는 중간경유지이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다. 하롱베이처럼 뛰어난 풍경은 없지만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아깝기 때문이다. 도시중심은 디엔비엔푸거리이며 주변에 호텔과 박물관, 은행과 레스토랑이 모여 있다.
[북부의 호알루(Hoa Lu)]
10세기경 베트남의 수도로 오래된 성곽과 사원, 예전에 왕들이 사용했던 가마와 그늘막 등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제법 화려해 보이는 것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북부의 땀꼭(Tam Coc. Ninh Binh. 닌빈)]
한국단체여행객들이 가끔 들르는 곳으로 하롱베이의 풍경과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하롱베이는 바다위의 풍경이지만 닌빈은 논, 습지위의 산풍경이다. 특이한 모양의 산들과 동굴로 에워싸여 있는, 폭이 좁은 샛강과 호수로 되어있다. 강줄기를 따라 뱃사공이 양발로 각각의 노를 젓는 모습이 독특하다. 나룻배는 머리가 닿을락말락한 낮은 높이의 캄캄한 동굴 서 너 곳을 통과하는데 스릴이 넘친다. 조명이라고는 뱃사공의 머리에 장착된 희미한 헤드랜턴하나가 전부다. 내부는 칠흑같이 캄캄하고, 평균길이도 100m 더 된다. 평화스러워 보이는 마을풍경과 갈대밭이 정겹다.
[북부의 사파]
베트남북부의 고산지대로 베트남53개의 소수민족 중 몇 소수민족이 사는 오지다. 프랑스점령당시 그들의 휴양도시로 개발한 해발1,600여m에 조성된 마을로 3,143m높이의 판시판산이 눈앞에 전개된다.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3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예전에는 8시간 기차를 타고 라오까이역(중국국경근처)까지 가서 다시 로컬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정도 달렸는데 관광객이 점점 늘어나자 지난12월에 고속도로(우리나라국도수준)를 개통했다. 사파아래평지까지 버스로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그 후부터는 대관령옛길 같은 50km 길을 꼬불꼬불 올라야 사파에 도착한다. 산을 좋아하는 전문등산객들이 종종 등정하는데 아래를 바라보면 아찔하다. 사파마을진입부에 위치한 조그만 호수는 새벽산책하기에 매우 좋고, 호숫가를 거닐며 안개 낀 새벽풍경을 담기에 최적이다. 고산지대에 사는 화몽족 여인들의 키는 140cm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다. 화몽족은 다른 부족들과 천 여 년 동안 전쟁을 해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해 이런 오지까지 쫓겨 왔다고. 수공예품을 짜서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판다. 산이 깊고, 물이 풍부해서인지 안개가 자주 낀다. 라오차이마을의 다랑이논밭과 그네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 산위에 마을이 있는가 하면 고산지대라 계단식다랑이 논으로 경작할 수밖에 없으며 봄에 모내기할 때, 경치가 좋다. 고산지대임에도 각각의 논밭에 물을 끌어다 대는 지혜가 참으로 뛰어나다. 말고기를 먹어볼 수 있다. 눈이 없는 베트남에서 대부분 평생 눈을 보지 못하는데 사파에서는 유일하게 고산지대라 눈이 내리기도 한다.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므로 독특한 의상을 접할 수 있고, 시장에 가면 그들만의 생활상을 엿볼 수가 있다.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문자를 가진 민족도 있다. 고산족민속마을 내에 있는 옛날시골집모습, 폭포의 정기, 휴게소 겸 민속공예품매점, 판자로 된 지붕, 습기가 많은 고산지역만의 나무들 특징, 우리의 부채춤과 비슷한 함롱(용의 턱)산 고산족민속공연장, 해발3,142m로 동남아최고봉인 팡시팡산의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할 수 있다.
[중부의 달랏(Da Lat)]
서쪽고원지대에 위치. 베트남북부는 겨울에도 우리의 늦가을 추운날씨정도이며 남쪽은 항상 더운 날씨다. 고로 더운 여름에 예전에는 왕족을 비롯하여 귀족들의 휴식처로서 각광을 받은 곳이다. 달랏까지 올라가는 여정의 풍경이 어느 외국의 멋진 풍경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더운 여름에는 선선하여 며칠 묵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중부의 다낭(Da Nang)]
Hue에서 100km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베트남중부동해안에 위치한 휴양지로 특별겨울철해외여행지(겨울기온이 23도를 오르내림)로 좋은 다낭이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국적기들이 취항하면서 더욱 가까워진, 4번째로 큰 도시다. 참고로 베트남 큰 도시순서는 호찌민(옛 사이곤), 하노이, 하이퐁항구 그리고 다낭이다. 인구는 100여 만 명 되는 아주 깨끗한 도시. 크게 볼 것은 없으나 조용하고, 다른 도시에 비해 아주 깨끗한 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특히 하얀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를 입은 여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베트남의 아오자이는 아름답다. 베트남의 대표여행지인 호치민이나 하노이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아 다른 곳에 비해 항공권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1/3정도로 적은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아 볼거리가 많고, 자연과 잘 어우러진 여행지다. 아시아에서 제일 긴, 20km에 이르는 백사장이 인상적인 미케 해변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데 해변을 따라 대형리조트들이 많아 숙소를 잡을 수 있어 물놀이와 휴양을 즐기며 여행할 수 있다. 겨울에도 우리나라의 추운 날씨를 잊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휴양을 즐기며 동시에 다양한 관광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손오공의 스토리배경이 되는 오행산(물, 나무, 금, 땅, 불을 상징하는 5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 바나힐도 가까이 있어 관광이 가능하다. 오행산은 전체가 대리석이기에 마블마운틴이라고 불리며 입구에는 대리석가공제품을 파는 대형 상점이 있다. 베트남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히며 북쪽으로 하노이, 남쪽으로 호치민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불린다. 베트남의 숨겨진 진주라 불릴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을 뽐내고, 문화유적의 역사적 향취와 느긋한 휴양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떠오르는 베트남대표여행지다. 100년이 채 안 되는 역사를 갖고 있지만 무질서하고, 복잡한 베트남대도시들과는 명확히 다른 안락함과 따뜻함을 가진 곳이다. 인근지역 곳곳이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문화관광을 즐기기에도 좋고,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멈추지 않는 ‘힐링’ 열풍에 걸맞은 곳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은 다소 깃발부대처럼 보이는 패키지여행을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인데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시내에서 약1시간정도 걸리는 베트남국립공원은 꼭 들리는 명소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등재되면서 유명해졌는데 지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케이블카다. 바나산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폭포는 정말 웅장하며 멋지다. 올라가는 내내 너무 높다보니 정말 아찔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위로 올라가면 성 같은 리조트가 있는데 놀이시설도 무료로 탈수 있고,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으로 다녀오기에 좋은 곳이다. 베트남전쟁 전에는 월맹의 사이공으로 불릴 만큼 경제적으로 번창, 베트남전쟁 중에는 미군기지가 있었다.
[중부의 후에(Hue)]
후에와 다낭은 베트남전쟁 때 남북의 경계선에 가까운 도시로 전쟁의 흔적들이 많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마지막왕조가 있었던, 약150년 간 베트남의 수도역할을 한 도시로 일대에는 왕궁과 역대왕릉 등 베트남왕조시대의 유적지가 산재해있다. 이후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월남전을 치르면서 왕궁을 포함한 수많은 유적이 파괴되고, 재정의 어려움과 여러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지금은 폐허에 가까운 수준으로 역시 부국강병의 소중함을 느끼지만 아직까지 수많은 왕의 무덤과 사원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다. 1993년 베트남최초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이며 왕릉들마다 왕들의 생전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명소로는 뜨득 황제, 민망황제, 지아롱, 응우옌왕조의 왕릉, 황제가 실제 묻혀있는 카이딘 왕릉,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아픈 역사가 묻어있는 후에성 등이 있다. 또한 붉은 벽돌로 된 21미터의 7층 팔각 탑, 티엔무 사원도 후에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다. 중국의 고궁(자금성)을 본 따서 크기도 같게 왕궁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폐허인 곳이 대부분이다. 남북전쟁(설 공세: 우리는 구정공세라고 하지만 베트남은 구정이란 말이 없음)때 많이 파괴되어 볼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무덤이 육면체 돌로 되어 있다. 예전에 한 스님이 전쟁에 대한 반대로 분신하는 장면이 있는데 차가 옆에 있고, 스님이 분신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당시는 이 사진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가운데 흐르는 흐엉강을 따라 왕릉들이 배치되어 있고, 관광객을 태운 배와 골재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눈에 자주 띈다. 우리나라한강규모의 큰 강이다. 배를 대절하여 흐엉강과 왕릉을 둘러볼 수 있다. 전쟁 중에 떨어진 포탄자국의 성벽은 왕릉과 사원보호를 위하여 조성된 Hazard로 고색창연한 옛정취가 느껴진다. 하나 같이 칙칙한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왕릉의 시설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유적지관리노력에 비해 왕릉곳곳마다 입장료를 받는 것이 의아스럽다. 왕릉으로 진입하는 용모양의 계단 난간대는 옛날의 화려했던 영화를 느끼게끔 한다. 반면에 낡아서 부스러질 것 같은 돌계단을 바라보면 안타깝다. 흐응 강변 바로 옆에 위치한 파고다사원의 주 탑도 유명하다. 참고로 베트남사람들의 성씨 중에 Nguyen(위엔)이란 성이 50%를 넘는데 우리의 김씨도 여러 김씨가 있는 것처럼 베트남도 마찬가지로 성이 여러 가지다. 구엔 반 티우 남베트남대통령도 Nguyen성인데 발음을 우리는 '구엔'이라고 하지만 위엔이 더 가까운 발음이다.
[중부의 호이안(Hoi An)]
호치민에서 비행기로 1시간 15분 거리.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내려가면 도착하는 2,200년 전 고대로부터 생성된 도시. 고대로부터 무역상들의 발길이 잦았던 항구도시다. 베트남전쟁 때 남북의 경계선에 가까운 도시로 전쟁의 흔적들이 많다. 미군의 휴양지로서 각광을 받을 만큼 바닷가경관이 아주 좋다. 태국의 파타야, 푸켓과도 흡사하다. 중국 윈난성의 리장고성처럼 호이안구시가지도시전체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프랑스식민지시절의 역사, 17세기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때 일본인무역상들이 1,000여명이나 거주했다는 일본인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유명명소로는 일본인거리와 중국인거리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는, 일본인들이 축성했다는 다리(일본 내 원교)가 있으며 특히 밤이 되면 옛 건물들이 하나 둘씩 호화로운 등불을 밝혀 등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형형색색의 등불이 아름다운 곳으로 등을 파는 가게가 눈에 많이 띈다. 떤끼 조상의 초상화로 200여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는 떤끼의 집, 광동인들의 개척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곳인 광동회관 등을 관광할 수 있다. 조그만 종이배에 촛불을 켜서 샛강에 띄우고, 소원을 비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상업항구로 번영한 역사를 자랑하며 프랑스식민지시절의 흔적이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남아 있어 동서양의 오묘한 향기가 젖어있는 지역이다. 호이안거리는 시장분위기로 사람들의 살아가는 삶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재래시장과도 비슷한 면모를 갖췄다. 옷감이 유명하여 호이안에서 나오는 베트남의류는 아주 좋다고 하여 옷을 맞추는 여행객들이 많다. 규모가 작고, 아담하여 도시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욱 알차며 베트남의 과거를 잘 느낄 수 있다. 일몰순간부터 도시의 매력이 더욱 살아난다. 해변을 끼고 있는 링엄사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대표적여행지로 유명하며 링엄사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은 에메랄드빛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남부의 호치민(Ho Chi Minh City. 옛 사이곤: Saigon)]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한 베트남제일의 도시, 베트남최대의 도시다. 베트남전쟁이후 이름이 사이공에서 호치민으로 바뀌고, 수도의 지위도 하노이에 건네주었지만 여전히 호치민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도시다. 지금도 예전의 자본주의적인 색체가 강하며 우리의 서울과 같은 분위기를 가진 도시다. 규모뿐 아니라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기 때문이다. 베트남특유의 문화적 기틀 위에 프랑스식서구문화가 덧씌워져 아주 특별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볼거리로는 노틀 담 성당, 중앙우체국, 전쟁박물관, 옛 북베트남군이 파놓은 땅굴인 구치터널 등이 있으며 구치터널은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지하요새로 하루 일정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시내는 그저 시내의 요소를 가진 곳이며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이들의 종교인 까오다이(Cao Dai)사원을 방문하는 정도의 볼거리가 있다. 또 한 가지 추가한다면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베트남 식 만찬이다. 사이공 강 크루즈나 도심의 레스토랑 등에서 즐길 수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현지인들은 부담스러워하나 여행객들이 한껏 기분을 내보는 데는 그만이다.*모험적이고 풍부한 문화유산과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현장을 체험하고 싶다면 호치민, 호이안, 후에가 자리한 중남부지역을 추천한다.
[남부의 나트랑(낫짱. Nha Trang)]
영어식으로는 나트랑, 베트남발음으로는 냐짱이다. 베트남수도인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330㎞ 떨어진 나트랑은 프랑스의 식민지시절 때부터 사랑받아온 커다란 매력을 가진 휴양지로서 베트남왕실의 휴양지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풍광과 여유로움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휴양지인 만큼 가족여행으로 자유여행으로 적합하다. 비치가 유명하며 바다와 어우러진 나트랑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용산사가 있는데 베트남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운 스님을 상징하는 14m높이의 불상이 유명하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지중해성기후로 선선하고, 화창한 날씨가 연중300일 이상 지속돼 언제 찾아도 쾌적하다. 또한 참파왕조의 유적지인 포나가르 사원이 위치해 있다. 최고의 매력은 남북으로 6㎞가량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이다. 길게 뻗은 비치와 바다를 보는 순간 가슴이 시원해지고, 따뜻한 바닷물에서 해수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나트랑 시내는 택시를 이용하기가 편리하고, 베트남전통 시클러를 이용할 수도 있다. 시내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 많아 편안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현재 나트랑까지 KE직항이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5시간 남짓. 웬만한 동남아보다 가깝다. 일정에 따라 3박5일과 4박6일 스케줄을 선택하면 된다. 나트랑의 자랑인 머드온천에 들려서 피로도 풀고, 나트랑의 맛 집을 탐방해도 좋다. 젊은 층이라면 나트랑 비치의 최고 물 좋은 클럽인 비치클럽에서 낯선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남부 판티엣(Phan Thiet)의 무이네(Mui Ne)]
바람과 모래와 햇볕의 땅인 판티엣! 고요하고, 평온한 해변의 경관이 뛰어나다. 판티엣 시에 속한 작은 마을인 무이네까지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있다. 특산물은 생선소스인 느억맘이다. 생선을 발효시켜 만들며 베트남음식요리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중요한 조미료다. 판티엣 중앙시장에서는 다채로운 식자재가 거래되며 주전부리로 적당한 과일도 구입할 수 있다. 사탕수수를 갈아주는 느억미아, 코코넛주스, 바게트에 고기와 채소를 넣은 샌드위치, 반미 등 길거리음식도 맛볼 수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곳으로 비치가 역시 대단한 장관을 이룬다. 바닷가와 면한 풍경과 경치가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 인상적이다.
무이네에는 접안시설이 없어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바구니배로 생선을 옮긴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어시장에서 활찬 생동감을 경험할 수 있고, 모래사장에서 싱싱한 생선과 새우, 게, 바다가재 등을 놓고 신경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우 건조한 지역으로 ‘요정의 샘’은 매우 척박한 협곡사이를 흐르는 좁은 물줄기이며 맨발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광대한 사막을 연상시키는 사구는 모래빛깔에 따라 화이트 샌드 둔과 예로 샌드 둔으로 불리는 레드 샌드 둔으로 나뉜다. 넓이와 미려함에서 화이트는 레드를 압도한다. 바람이 만들어놓은 모래물결을 아침 일찍 볼 수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사구를 힘겹게 걸어 봉긋한 꼭대기에 오르면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과 대비되어 탄성이 터져 나온다. 마을에서 약5km 떨어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참파왕국의 유적인 포사누 참 탑이 있다. 힌두교 시바 신을 위해 세워졌다.
[남부의 푸궉(Phu Quoc)]
캄보디아국경에서 1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베트남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섬. 2014년 허핑턴 포스트에서 ‘유명해지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선정했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2014 최고의 겨울여행지 3위’에 꼽았다. 베트남정부나 현지인에게 자연휴양지로 통했던 곳이 해외에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투자유치를 위해 섬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순박한 섬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생물보존지역이다. 북동쪽대부분을 차지하는 푸궉 국립공원에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밀림이 펼쳐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사암들이 99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으며 가장 높은 쭈아산도 국립공원 안에 있다. 인적 드문 해변과 야생희귀종동물들이 서식하는 밀림이 가득하지만 아직 일반여행객이 갈 수 있는 길은 5km의 트랙이 전부다. 중심가는 섬의 남쪽에 자리해 있다. 지난 2012년에 완공된 푸궉 국제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즈엉동(Duong Dong)’이라 부르는 시내에는 볼거리가 제법 있다.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진까우(Dinh Cau)야시장. 해질 무렵부터 바빠지며 100여 개의 노점들이 늘어서고, 푸궉에서만 나오는 점박이바다고둥과 관자, 왕새우, 가재 등 풍부한 해산물을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야시장 안에는 진주로 만든 목걸이와 반지를 파는 액세서리노점도 많다. 조개가 자라기 좋은 바다에서는 진주조개양식이 흔하고, 동남아에서 가장 싸고, 질 좋은 진주를 판다. 특산품으로는 멸치로 만드는 생선소스와 후추. 현지에서 ‘느억맘’이라 불리는 생선소스는 베트남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데 그 생산지다. 기골 찬 남정네의 섬으로 우리의 제주도에 비유할 수 있어 언제나 활기에 넘쳐 있다. 해변역시 장대하면서 시원시원하다. 섬이지만 고립의 이미지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의 빛깔과 향기로 넘쳐난다.
[남부의 꼰다오(Con Dao)]
남동부 바리아 - 붕따우 성에 위치한(Vung Tau)지역에 속하는 섬. 붕따우(Vung Tau)에서 18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16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군도로 꼰손(Con Son)이 제일 크다. 공항이 있는 꼬옹(Co ong)은 꼰다오의 중심이자 나그네를 위한 시설이 마련된 타운(Thi Tran), 벤담항구(Cang Ben Dam)로 나눠진다. 벤담은 그리 규모가 큰 항구는 아니다. 그러나 해상 실크로드의 교역지이었기에 역사적 의미는 사뭇 크다. 푸궉(Phu Quoc)과 함께 베트남남쪽 먼 바다를 대표하는 곳.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푸궉과 달리 아직 사람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아 개발이 덜 되어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 원시미를 간직하고 있다. 대양 위로 불쑥 솟아오른 육지, 그 육지를 떠받히고 있는 바다, 갖가지 산호와 물고기를 품고 있는 바다의 속살도 아름답다. 아기자기하면서 섬세한 새색시, 울릉도인 셈으로 고요하며 여기저기에 자그마한 크기로 숨어 있다. 그야말로 순수의 땅이요, 자연이 지배하는 곳이며,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는 밝은 비취색, 그 자체다. 내밀한 속살을 훤히 내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마치 대륙에서 아득히 벗어난 외딴섬에 도달한 느낌이다. 기암절벽을 양 옆으로 거느린 자그맣고도 아름답고, 편안한 해변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늑하다. 2010년에 '론리 플래닛 매거진'선정 10대 해양휴양지에 포함, 하롱베이와 꼰 다오 섬이 세계관광객들에 의해 가장 멋진 해양휴양지로 선정됐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당시 반 식민항쟁을 주도했던 베트남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수형생활을 한 곳으로 한때 '동남아의 앨커트래즈(Alcatraz)'로 불렸던 곳이다. 공항에서 타운까지의 길이 특히 절경이다. 해안 절벽에 기댄 채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만나면 내처 달리지 않길 권한다. 잠시 멈춰 길에서 바다를 굽어보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벽, 파도가 만들어놓은 기암, 수면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고깃배의 어울림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타운에서 벤담까지 길도 주목할 만하다. 12킬로미터에 달하는 언덕길이 한적하기 그지없어 자전거 여행에 적합하다. 꼰손의 중앙에는 해발5백 미터의 산이 밀림으로 이뤄져 있다. 이 밀림을 중심으로 꼰 다오의 80%가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안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숱한 동식물들이 산재해 있다. 뭍과 일찌감치 분리된 탓. 144종의 희귀한 동식물이 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함부로 열림 우림 속으로 뛰어드는 건 곤란하다. 그만큼 밀림이 깊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3월부터 11월이 적기이다. 등반을 하다 보면 아프리카에만 서식한다는 macaque 원숭이, 검은색 다람쥐 및 작은 동물 등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바다에는 세계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두 종의 거북이가 있다. 녹색거북이, 점박이거북이로, 1995년부터 세계자연기금(WWF)의 지원으로 체계적인 감시와 장기적인 프로그램에 따른 보호를 하고 있다. 거북이의 산란기는 3월에서 9월이다. 이때가 되면 특별관리 구역이 되어 거북이알을 보호한다. 밤에 모래사장에서 산란하는 거북이를 부화장으로 옮긴다. 부화되어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어린 거북이를 바다로 돌려보낸다.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꼰다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산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듯 섬 밖에서 섬 안쪽을 들여다봐야 한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인데 어선 한 척을 대절하여 섬 일주를 해 봄직하다. 한나절이면 일주가 가능하지만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으므로 하루를 꼬박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양각색의 산호와 산호 사이를 유영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 수면을 바라보면 풍덩 빠져들고 싶을 만큼 투명하다. 산호의 모양새도 다양하고, 빛깔이 곱다. 거북이와 함께 꼰다오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진귀한 동물인 듀공(Dugong, sew cow)은 해우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 새끼를 가슴에 안고, 젖을 먹여 인어라고도 불린다. 대략2미터의 몸길이에 몸무게는 4백 킬로그램인데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하루에 먹어치우는 해초만도 25킬로그램에 달하며 수생식물을 주식으로 삼기에 난바다가 아닌 뭍에 가까이 접근해 있다. 그만큼 사람의 남획에 노출된 셈으로 현재 개체 수마저 정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고 있다. 필리핀(Philippine)에서도 듀공을 보면 큰 행운을 만나게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베트남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꼰다오는 가장 참혹하고도 고단했던 역사의 현장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숨어 있다. 신이 빚은 선함과 아름다움,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악과 추함이 공존하여 동전의 양면을 한몫에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프랑스식민지시절, 숱한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했고, 상당수가 체포되어 열악한 시설의 꼰다오 형무소에서 유형생활을 했다. 참혹한 고문 속에서 베트남의 광명을 그리워하며 죽어가야 했다. 딘비엔푸(Dien Bien Phu)전투로 독립을 획득한 이후에도 남베트남정부는 반체제인사를 가두고, 고문하는 장소로 계속 이용하였다. 신이 지상에 허락한 아름다움이 인공을 외면한 채 자연그대로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한 성지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을 위한 성지이기도 하다. 베트남인들에게는 성스러운 땅으로 독립을 위해 산화해 간 혁명가를 향한 추모의 땅이다. 베트남에서 첫손꼽을 수 있는 훌륭한 다이빙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꼰다오에서 가 볼만한 해변>
*바이 녓(Bai Nhat): 섬 서편에 위치. 썰물 때에만 모래사장을 드러내는 매우 아름다운 해변이다. 모래입자가 부드럽고 완만한 수심을 갖고 있어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벤 담(Ben Dam): 꼰 손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 외지에서 온 대형어선과 꼰다오의 대부분 어선이 정박해 있는 어항. 어항임에도 물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부두에서 내려다보면 수 백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어항의 맞은편에는 섬에서 유일한 사우나, 마사지, 가라오케가 있는 Seaman’s Club이 있다. 반드시 어부들의 초대가 있어야만 이곳에 출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 2km정도 더 가면 마지막으로 길이 끝나는 지점이 나온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모습이 장관이다.
*바이 덧 족(Bai Dat Doc): 코끼리를 닮은 산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해변. 해초가 자라는 해저층이 고루 발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듀공의 서식처로 알려져 있으며 운이 따른다면 실제로 듀공(Dugong)을 볼 수 있는 곳.
*바이깐 섬(Hon Bay Canh): 꼰 손의 동쪽앞바다에 있는 섬. 맑고 깨끗한 해변과 정글, 산호초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매력적인 섬. 산호의 종류도 다양할 뿐 아니라 산호의 층도 잘 발달되어 있고, 색도 대단히 다양하다.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아 보존도 완벽에 가깝다.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다보면 바다거북이의 유영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바이 담 짜우(Bai Dam Trau): 꼰다오의 여러 해변 중 매우 인상적인 곳. 섬의 북동쪽, 꼬옹 공항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해변길이는 대략1.5킬로미터에 달한다. 산자락이 흘러내려 해변을 양분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양분된 작은 해변을 바이 뇨(Bai Nho)로 부르기도 한다. 바이 뇨는 흘러내린 산자락과 수중암초로 인해 대단히 아름답다. 낚시 포인트로도 손색이 없다.
<꼰다오의 역사와 비극을 볼 수 있는 장소>
*혁명박물관: 베트남인들의 프랑스에 대한 반식민지저항운동관련사진과 기록이 있다. 또한 꼰다오 섬에서의 베트남전당시, 남베트남의 공산주의자 및 정치범들에 대한 가혹행위에 관련한 사진, 박제된 동물들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월요일~토요일: 7am~11pm, 1:30pm~5pm
*항 즈엉 묘지(Hang Duong): 꼰다오에는 2곳의 프랑스식민치하와 베트남전 희생자 묘역이 있다. 두 곳 중에서 가 볼만한 묘역이 항 즈엉 묘지다. 프랑스식민치하와 베트남전으로 20,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꼰다오 곳곳에 있는 형무소와 포로수용소에서 숨져갔다. 1994기의 희생자들 묘지가 있다. 이중 신원이 밝혀진 희생자는 700 기뿐. 묘역의 우측입구에는 당시상황을 묘사한 기념비가 서있다. 베트남에서 매우 유명한 여성영웅, 보 티 싸우(Vo Thi Sau 1933~52)의 묘역이 있다. 프랑스정부에 의해 총살로 처형된 첫 여성으로 혁명박물관에는 당시의 장면을 그린 그림과 그녀의 사진이 있다.
*푸 하이 형무소(Tu Lao Phu Hai): 11개의 형무소 중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장 큰 곳. 1862년에 건설된 이곳에는 여러 개의 대형옥사가 있다. 그 중 한 옥사에는 150여 개의 마네킹으로 수용당시의 충격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또한 별도의 독방들과 교회, 간수들을 위한 바와 식당, 성당 등의 시설이 있다.
*호랑이우리(Lao Ho, Chuong Cop): 1940대에 프랑스인들이 만든 것, 1957년부터 1961년까지 2,000여명의 정치범들이 항시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천장과 지붕 사이에는 쇠로 만든 창살이 있어, 창살을 통하여 간수들이 죄수를 감시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호랑이우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호랑이우리로 표현하고 있다. 호랑이우리가 120여 개, 지붕이 없는 방 60여 개가 있다.
*푸 빈 캠프(Can Cu Phu Binh): 일반인들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 형무소. 1971년에 미국이 지은 포로수용소로 제7캠프(Can Cu 7)로 불렸다. 총 384개의 감방이 있으며 비인간적인 고문이 이루어졌다. 포로들에 대한 고문이 이루어진 것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면서 1973년에 폐쇄되었다. 1973년 파리조약이후에 푸 빈 캠프로 명칭을 변경했다.
<꼰 다오에서의 레저>
*낚시: 꼰 다오 바닷가곳곳에는 갯바위가 많이 발달되어 있어 낚시할 장소들이 많다. 각종 돔 종류의 어류와 열대어, 작은 상어종류를 낚시로 잡을 수 있다.
*자전거하이킹
아름답고 적당한 코스가 제법 많다. 첫 번째 코스는 해변뒤쪽에 있는 마을로 경사가 없고, 주민들의 생활상과 농어촌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두 번째 코스는 톤 득 탕(Ton Duc Thang)거리에서 시작해 바이 녓(Bai Nhat)을 거쳐 어항이 있는 벤 담(Ben Dam)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이 코스는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16Km의 멋진 코스이지만 어린 아이들이 참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어항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2km정도 더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닷가로 걸어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나타난다. 꼰 다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레인보우다이버(Rainbow Diver Vietnam: snorkelling+scuba diving): 베트남최고의 스킨스쿠버다이빙네트워크를 구축한 레인보우다이버(5 스타, PADI)가 스쿠버다이빙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꼰다오 섬의 다이빙코스는 환상적이다. 천혜의 다이빙과 스노클링 포인트를 가진 꼰다오 군도의 곳곳을 안전하고, 흥미롭게 안내하여 준다. 바다 속에는 1,300여종의 바다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등반
자그마한 섬과는 어울리지 않게 꼰 손(Con Son)에는 훌륭한 산악등반코스가, 바이 깐(Hon Bay Canh)에는 아름다운 산책코스가 있다.
[남부의 메콩 강 삼각주]
남부지역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메콩 강 삼각주는 해발3m이하의 저지대. 베트남주민의 절반이상이 살고 있는 주요농업지대다. 베트남민족은 17세기에 들어와서 선주민인 크메르족을 쫓아내고, 이 미래의 곡창지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껀터는 베트남남부의 메콩 강 삼각주최대의 도시. 강 위에서 사는 사람도 많고, 강 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수상시장이 껀터에서 가장 유명하다. 껀터를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수상시장을 아침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베트남사람들은 하루시작을 보통 새벽5시에 하기 때문. 상인이 물건을 실은 작은 배를 타고, 우리 배에 다가와 물건을 판다.
중심에 있는 IRIS Hotel 꼭대기의 Sky Bar에 가면 도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껀터의 일몰은 매우 아름답다. 높은 아파트가 거의 없고, 주택이 대부분이라 아기자기한 면도 있으며 옆으로 이어지는 메콩 강 때문에 더욱더 인상적이다. 물가도 싸고, 가볍게 여행하기 좋은 도시다. 메콩 강이 발원하는 지역은 중국의 티벳 고원으로 알려져 있다. 라오스와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을 최종기착지로 하는 메콩 강의 총길이는 4020km. 베트남에서 마지막 220km를 흐른다. 메콩델타에서는 벼3모작이 가능하다. 메콩델타크루즈는 모터달린 배를 타고, 수로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코스. 갖가지 농장, 많은 오리 떼, 작은 쪽배를 타고 학교를 갔다 오는 아이들, 배 위에 물건을 잔뜩 실어 마을마다 다니며 파는 아저씨, 배 위에 바를 차려놓고 술파는 아저씨, 주렁주렁 망고들을 볼 수 있다. 옛 부터 미토지역은 코코넛으로 유명, 여러 상품 중에 코코넛캔디가 현지인 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코코넛캔디를 만드는 제조과정과 갓 만들어 놓은 캔디를 시식해 볼 수 있다.
‘와! 되돌아가고 싶다. 시간 등 모든 상황이 허락된다면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가 북부서부터 남부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상상으로 여행해보는 방법도 좋지만 이왕 현지에 가서 실감나는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괜히 인터넷을 뒤져보았나?’ 후회될 정도였다. ‘우리의 겨울에 베트남의 중남부여행을 계획해보자!’ 곧 마음을 추슬러 피곤해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 신경이 라오스를 향해 멈추지 않았고, 관심이 계속 갔다. 또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아주 유용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라오스]
유럽관광교역이사회(ECTT: European Council on Tourism and Trade)가 ‘2013 세계최고여행지’로 라오스를 매력적인 여행지로 선정했다. 통싱 라오스총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사회대표단과 라오스고위공무원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ECTT는 ‘라오스, 관광과 문화의 천국이기에 2013 세계최고여행지로 선정되다’라는 보고서에서 라오스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새로운 개념의 여행지, 멸종위기동물과 생물다양성에 해를 가하지 않는 자연친화적인 여행지, 역사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여행지이기 때문에 라오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8년,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올해에 가면 좋을 세계 53개 여행지’에서 이미 1위로 선정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라오스관광산업이 주요수입원 2위에 등극, 지속적인 성장 중이며 라오스관광키워드는 ‘힐링’으로 우리기업의 투자, 관광 상품개발이 기대된다.
<라오스관광산업현황과 특징>
라오스관광청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관광수입은 약5억1400만 달러로 2011년 관광수입대비 26.5% 증가한 규모. 관광객 수도 200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2년 관광객 수는 330만 명에 달함. 2011년 라오스방문관광객 수 상위10개국은 태국, 베트남, 중국, 미국, 프랑스, 일본, 영국, 한국, 호주, 독일. 이에 라오스관광청은 ‘관광객유치우선지역’(Priority Market For Tourism in Laos)을 선정했으며 유럽, 아시아태평양지역, 미 대륙 3곳임.
라오스는 내륙국가라는 특성상 주변국가에서 육로로 방문하는 관광객비율이 높음. 2011년 관광객의 62%가 태국국경을 통해 방문한 것을 볼 때 상당수관광객이 주변국가와 연계해 찾는 것을 알 수 있음. 관광산업은 라오스주요수입원 중 광산업 다음으로 2위에 해당함(라오스주요성장 동력인 수력발전은 2010년부터 관광산업에 밀려 3위). 정부에서도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2012년을 ‘라오스방문의 해’로 지정해 관광객유치에 힘썼음.
<라오스관광의 키워드는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힐링’>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여행지이자 자연을 경험하고, 소수민족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여행지.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는 에코트레킹(Eco trekking), 카약 킹(Kayaking)등이 있음.
*에코트레킹
라오스는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국토의 70%이상이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최적의 트레킹장소. 대표적인 트레킹지역으로는 라오스최대 국립보호구역인 남하(NPA. Nam ha National Protected Area)가 있음. 남하(NPA)는 자연과 지역문화를 훼손하지 않는 에코트레킹의 원칙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지켜지는 지역 중 하나로 라오스가 ‘2013 세계최고여행지’로 선정되는 중요한 이유가 됨. 열대우림트레킹, 전통가옥에서의 홈스테이 등의 활동은 환경과 생태계에 최소한의 피해만 있도록 운영됨. 또한 에코트레킹을 통한 수익은 자연환경보존, 소수민족마을지원 등에 사용됨.
*카약 킹
동남아의 젖줄인 메콩 강 4200㎞ 중 1898㎞가 라오스를 관류하기 때문에 라오스에는 많은 강이 흐르고 있어 카약을 즐기기 좋음. 카약 킹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방비엥이 있음. 방비엥은 석회암지역으로 중국 유명관광지인 계림과 비슷해 ‘소 계림’으로 불림. 쏭 강에서 카약을 타고, 흐르는 강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산세와 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순수한 라오스인을 만날 수 있음.
<증가하는 한국인관광>
2011년 12월, 국내항공사인 진 에어(JIN AIR)가 인천 - 비엔티안직항노선을 개설한 이후 한국인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 2012년 라오스를 방문한 한국관광객 수는 53,829명으로 2011년 대비 55% 증가한 수치임. 현재 진에어가 인천 - 비엔티안직항노선을 주4회(화, 수, 금, 토)운행하고, 라오스국적기인 라오항공(Lao Airlines)또한 인천 - 비엔티안직항노선을 주3회(화, 목, 토)운행함.
<라오스관광산업, 투자규정은 어떠한가?>
라오스정부는 관광산업이 문화교류, 교역촉진, 일자리창출 등 사회, 경제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인식해 다른 산업에 비해 외국인의 관광산업투자에 관대한 입장임. 라오스가 2013년 2월 2일 WTO가입 후, 서비스시장을 단계적으로 개방함에 따라 관광업규제가 수정됨. 게스트하우스와 소규모의 숙박업소의 경우 라오스내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투자자의 투자는 금지되며 외국인의 숙박업소투자는 별3개 이상의 시설로 제한됨. 레스토랑은 100%외국인단독소유를 허용하는 반면 여행사는 외국인투자자는 내국인투자자와 합작으로 투자해야 하며 외국인투자자의 출자금액을 70%로 제한함.
*라오스관광산업한국인투자사업
현재 ‘반콘 - 돈뎃 철도복원 및 관광사업’이라는 한국, 라오스합작투자가 진행 중으로 짬빠삭 주에 소재한 시판돈(‘4000개의 섬’이라는 뜻의 지역) 중 반콘 - 돈뎃 2개 섬에 자연친화적 관광코스개발, 숙박시설건설, 철도복원 등의 관광지개발을 골자로 함. 관광지개발 사업은 FTI development co, ITD라는 현지법인에 의해 진행 중이며 이 회사는 짬빠삭 주가 토지, 철도복원자재 등의 현물을 출자하고, 한국인투자자가 자본금을 투자해 운영되는 합자회사임. 사업은 크게 입장료사업과 부대사업으로 나뉨. 입장료사업에는 왕복도선, 버스, 기차, 폭포, 민속마을, 낙조관람이 포함되며 부대사업으로는 방갈로, 식당, 커피숍과 같은 시설이 포함돼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라오스의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함.
<라오스관광산업, 투자 유망할까?>
‘관광을 하려면 태국을 가고, 유적지를 보려면 미얀마를 가고, 사람을 만나려면 라오스로 가라’는 말이 있다. 라오스는 관광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거나 화려한 유적지가 있는 나라는 아니다. 라오스의 가장 큰 관광자원은 순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다. ‘2013 세계최고여행지’선정을 통해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자연을 닮은 순수한 사람들이 더욱 알려져 많은 관광객이 라오스를 찾을 것으로 예상됨. 그러나 라오스의 관광 상품은 주변국가의 관광 상품과 유사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광 상품 개발이 필요할 것. 정부는 관광인프라개발과 전문인력양성에 힘쓰겠다고 밝힘. 이에 따라 ‘반콘 – 돈뎃 철도복원 및 관광사업’과 같이 정부와 민간 기업이 합작한 형태의 관광자원개발사업 또는 관광인프라구축사업추진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 또한 관광산업의 성장인 한국인관광객을 기반으로 태국, 베트남, 중국인관광객, 유럽, 북미관광객을 주요대상으로 한 호텔, 레스토랑분야에 대한 투자가 유망할 것으로 전망됨. 2012년 라오스관광수입은 2012년 캄보디아관광수입의 1/4수준으로 라오스관광산업은 주변동남아국가에 비해 작은 규모임. 그러나 라오스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중국,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주변국가와 여행상품연계를 통해 동남아관광의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있음.
*자료 원: 2011 Statistical Report on Tourism in Laos(라오스 관광청), Vientiane Times, 라오스 WTO 가입서비스시장 양허안, KOTRA 비엔티안 무역관자료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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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라오스의 이모저모를 찾아보았다.
*국화: 벼
*꽃말: 풍요
*학명: Oryza sativa Linnaeus
*과명: 벼과
*영명: Rice
*국명: 라오 인민민주주의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위치: 동쪽으로 베트남, 남쪽으로 캄보디아, 서쪽으로 타이, 북서쪽으로 미얀마, 북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한다.
*면적: 23만6800㎢(한반도의 1.1배)
*인구: 567만 7000명(2003)
*인구밀도: 23.9명/㎢(2003)
*정체: 공화제
*통화: 키프(KN)
*1인당 국민총생산: 300$(2003)
*기후: 고온 다습한 열대 몬순 기후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주요도시: Savannaket, Pakse, Luang prabang
*종족: 라오룸, 라오숭족 및 소수민족(68종족)
*종교: 소승불교(95%),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소수
1. 자연
라오스국토는 북, 동쪽이 높고, 남, 서쪽으로 낮아지며 대부분 밀림으로 덮인 산악지대(54%). 북부는 산지가 뒤섞였지만 중앙부에는 평탄한 자르평원의 고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안남산맥이 뻗어 베트남과 경계를 이루며 볼로방 고원이 있다. 대부분 타이와 국경을 이루는 메콩 강의 본류 및 그 지류유역에 형성된 주요농경지이다. 열대몬순의 영향을 받아 고온다습하며 남서풍이 부는 5∼10월의 우계와 북동풍이 부는 11∼4월의 건계로 나뉜다. 전국평균연강수량은 1,300∼2,300mm, 볼로방 고원에서는 4,100mm며 전량이 우계에 내린다. 연간기온변화는 12∼2월인 한랭기가 16∼21℃, 우계직전인 3∼4월이 32℃이상, 우계가 27℃정도다. 국토대부분이 열대성수림으로 덮여있고, 농경지는 3%로 적다.
2. 주민
인종에 따라 생활환경이 다르다. 타이계에 속하는 라오족은 총인구의 약68%를 차지하는데 메콩 강 연안저지대에 살면서 주로 논농사에 종사한다. 흑 타이, 적 타이 등의 타이계종족이 고지에 살면서 주로 밭벼를 경작한다. 카 족으로 불렀고, 라오텡으로 총칭되는 원 말레이계종족은 주로 남부해발고도500∼1,000m의 산지에 살고 있다. 북부산악지대의 해발고도1,000m이상의 고지를 중심으로 티베트미얀마 계 종족과 먀오족, 야오족 등 중국으로부터 이주하여 온 종족을 포함한 약30여 종족이 화전 농업으로 밭벼, 옥수수 등을 경작하고 있다. 외국인으로는 중국인, 베트남인 및 유럽인이 도시지역에 살고 있다.
라오어에는 동라오어와 북 라오어가 있는데 현재 라오스 내에서 사용되는 것은 동라오어이고, 북 라오어는 타이북부와 동부에 살고 있는 라오족이 사용하는 언어다. 관계, 경제계 등에서는 공용어인 라오어 외에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라오스에는 정해진 국교가 없으며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 국민의 대부분(95%)이 테라바다불교(소승불교)를 믿으며 사찰은 시내와 부락 안에, 전통적으로 촌락생활의 중심역할을 하고, 승려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계층이다. 승려가 되기 위해 지방행정기관과 라오인민혁명청년동맹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며 수도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에 승려사범학교가 있다. 나머지는 샤머니즘을 신봉하며 산악지대주민들 가운데 특히 중국남부에서 이주해온 주민들 중에는 불교와 애니미즘, 유교를 동시에 신봉하는 사람이 많다. 1975년 공산정권수립 때까지 전국에 가톨릭, 프로테스탄트의 선교사들이 있었으나 현재 그리스도교도는 5만6000여 명에 불과하다. 도시와 북동부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은 불교와 유교가 혼합된 특수한 종교를 믿고 있다. 정부는 산아제한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중국, 베트남, 타이사이에 인구의 유출입이 빈번하다.
3. 역사
14세기중엽 중국의 윈난 지방에서 남하한 라오족에 의해 건국되었다. 크메르(캄보디아)의 원조를 받은 파눔이 1353년에 루앙프라방에서 왕위에 올라 란상 왕국을 세움으로써 라오스역사가 시작되었고, 시암(타이)과 전쟁을 벌여 현재의 타이북부, 북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번영을 지속하여 17세기말엽의 술리나봉사 왕의 통치를 받으면서 라오스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694년에 술리나봉사 왕이 죽자 왕위계승분쟁이 일어나 1707년에는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의 두 왕국, 다시 1713년에는 참파사크 왕국이 생겨나 1893년 프랑스침략 때까지 세 왕국의 분열, 대립이 지속되었다. 그동안 시암, 베트남의 간섭과 지배도 받았다. 19세기후반 프랑스는 베트남, 캄보디아를 지배한 뒤 1893년, 라오스를 보호령으로 하였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왕국을 1개국으로 통합하여 프랑스령인도차이나연방에 편입시키고, 프랑스 밑에 루앙프라방 왕을 둠으로써 라오스의 상징적 왕으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라오스가 프랑스공동체소속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자 참파사크 왕가의 붕 움공과 그 뒤를 이은 장군 푸미 노사반 및 비엔티안왕가의 이복형제인 수반나 푸마공과 수파누봉공이 대립, 항쟁하는 사태가 지속되었다. 붕 움은 우파세력을 대표하고, 수파누봉은 좌파세력인 파테트라오를 이끌었으며 수반나 푸마는 중립세력을 대표하였다. 푸마공은 1957년 중립파와 파테트라오가 합의한 연립정부 및 1962년에 3파가 합의한 연립정부 등에서 총리가 되어 혼란한 국내정세의 안정을 위해 진력하였고, 국제적으로도 동, 서 양진영으로부터 지지받는 정치인으로서 지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자 여세를 탄 파테트라오는 내전을 가열화 하는 한편 1975년 8월에 대규모시위를 벌여 지배권을 장악하고, 행정권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같은 해 12월 2일, 국왕을 폐위시키고,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4. 정치
1975년, 라오스인민혁명당이 유일하게 창설된 이래 그 집권 하에 있으며 당의장 카이손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체제가 유지되어왔다. 1989년 총선거 후, 최고인민의회는 1991년 8월의 신헌법제정을 포함한 법체계의 정비에 전념하였고, 1992년 11월 카이손이 사망하자 당의장 캄타이 시판돈, 전 대통령 누학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체제로 바뀌었다. 신헌법에 근거하여 1997년 12월에 제2회 국민의회총선거를 실시하였고, 1998년 2월 캄타이 시판돈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신헌법에 따르면 라오스의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이자 최고인민평의회 의장이다. 의회(국민의회)는 단원제로 임기5년의 의원99명으로 이루어지고, 라오스인민혁명당의 서기장이 총리직을 맡는다. 라오스인민혁명당은 정치국에 의해 통솔되는 중앙위원회에 의해 조직, 운영된다. 각 지방행정 단위에는 라오스인민혁명당중앙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인민혁명위원회가 있다. 옛 우파의 왕국군대는 왕제폐지와 더불어 해체되고, 파테트라오군을 모체로 하는 인민해방군이 구성되었다. 행정부의 주요장관 등이 현역계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병역은 형식상 지원제이나 사실상 징병제이며 복무연령은 17~26세이고, 기간은 18개월이다. 병력은 5만5150명이며 정규군, 지방군, 민병, 게릴라부대로 구성된 지상병력이 주 병력이고, 5개 사단으로 구성되었다. 외교는 비동맹을 원칙으로 하며 베트남과 유대가 밀접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으나 최근에는 긴밀해지고 있다.
5. 경제
1) 농업
라오스의 주요산업으로 국민의 90%이상이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으나 관개시설이 안 된 대부분의 논에서는 2기작이 불가능하고, 또 내전에 의해 농토가 황폐된 탓도 있어 식량자급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쌀 외에 고구마, 야채, 옥수수, 수수, 사탕수수, 잎담배, 목화가 약간씩 생산되고 있다. 1991년 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국제부흥개발은행 또는 세계은행)의 후원으로 연구소를 설립하여 커피 생산이 급증하였고, 수출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삼림지역에서는 티크, 흑단 등의 경재가 주요수출품이며 고무, 안식향, 생강 등이 생산, 또 볼로방 고원에서는 몇 개의 근대적인 대농원에서 커피가 재배되고 있다. 그밖에 먀오족 등 산악 민족에 의해 아편이 재배되는데 정확한 산출량은 알려져 있지 않고, 제조된 아편은 방콕으로 통하는 옛 도로 등을 통해 밀매매로 거래되고 있다. 거의 모든 농가에서 역축으로 소와 물소를 사육하고, 그밖에 돼지와 가축의 사육이 활발하다. 1975년 이래 공산주의정부는 산악지대의 화전민을 평야지대로 재배치하여 정착적인 벼농사로 전환하도록 장려하고 있으나 많은 산악지대주민들이 정부시책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1999년 현재농업은 국내총생산의 51%를 차지한다.
2) 광업
라오스에는 석탄, 철, 구리, 납, 금, 주석, 보석 등 다양한 광물이 국내각지에 매장되어 있으나 본격적인 개발을 하고 있는 것은 주석뿐이고, 그 밖의 지하자원은 원시적, 비능률적인 방법에 의해 채굴되고 있다. 석고, 암염은 상업상 필요한 양만 채굴한다. 퐁티우, 농순 두 광산에서 연간 약1,000t의 주석원광이 산출되고 있으나 매장량은 제한되어 있다.
3) 공업
근대공업은 발전초기단계이고, 오랜 내전으로 기존시설들도 파괴되어 공업의 발달은 극히 미미하다. 벽돌, 도자기류, 성냥, 담배, 음료수, 맥주, 고무신, 직물, 플라스틱가방 등이 소규모로 생산될 뿐이다.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하여 수력발전소건설을 통한 대 타이전력수출을 통해 경제개발추진 및 이를 위한 외자유치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1998년 총 전력생산량은 13억4000만kWh이고, 그중 수력발전이 97.01%를 차지하는데 7억8200만kWh를 수출하였다.
4) 무역재정
라오스의 2000년 수출은 3억9300만 달러, 수입은 5억9100만 달러이며 주요수출품은 전력, 목재, 봉제품, 커피 등, 주요수입품은 연료, 일용품, 섬유원료 등인데 심한 수입초과가 계속되고 있다. 1970년대 초까지의 주요수출상대국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타이, 미국, 홍콩 등이었고, 주요수입상대국은 타이,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었다. 그러나 1975년 이후 무역상대국의 패턴이 바뀌어 타이, 베트남, 중국 및 유럽공산국가들과의 새로운 무역관계가 형성되었다. 1975년까지 라오스경제 및 재정을 지탱해온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의 원조가 중단되면서 인플레이션이 고조되고, 암거래가 성행하자 정부는 1976년 6월에 킵 화폐를 평가 절하하여 사태를 수습하였다. 그 뒤 중국, 베트남 및 일부서방국의 원조로 경제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라오스의 당면시책은 농업개발에 의한 식량자급, 지하자원의 개발과 공업의 근대화 등이다. 1994년 의회는 외국투자법과 노동법개정안을 채택하였고,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조세법, 기업 법, 파산법 등을 신설 개정해 시장경제이행의지를 보였다. 아시아경제위기 때는 고율의 인플레 및 환율하락으로 고전하였으나 최근에는 점차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
5) 교통
주요교통로는 하천, 도로이고, 항공로도 개설되었다. 메콩 강과 그 지류는 남과 북을 잇는 가장 중요교통로인데 라오스인들은 약7명의 인원과 0.5t정도의 짐을 실을 수 있는 길이7.5∼10.5m의 거룻배를 이용하고, 산지주민들은 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이용한다. 수로 총연장은 4,587km이다. 기본적인 도로망은 프랑스통치시대에 건설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간선도로가 호치민~루앙프라방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그밖에 1960년대에 미국원조로 건설된 비엔티안~루앙프라방 간 전천후 도로가 있다. 도로총연장은 2만1716km로 그중 포장도로는 9673.5km이다(1998). 동부에는 베트남전쟁 때 북베트남에 의해 군수물자수송용으로 건설된 소도로가 있다. 철도시설은 없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비엔티안에 국제공항이 열려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사이에 정규항공노선이 개설되었다. 1999년 현재공항은 52개가 있다.
6. 사회
11학년제로 초등교육5년, 중, 고등교육6년, 초등5년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취학률은 72.4%, 수료 율은 41%이다. 종래 중등이상의 교육은 프랑스원조에 크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교육문호가 넓지 못했고, 국민교육열도 일반적으로 높지 않았다. 1975년 이후 정부는 학교증설, 교사양성 등 교육기회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교는 종합대학, 의과대학, 공과대학이 1개교씩 있다. 15세 이상 문맹률은 43%이다(1999). 2000년 인구증가율은 2.5%, 출생률은 1,000명당 38.29명, 사망률은 13.35명, 영아사망률은 94.8명이다. 평균수명은 59세이다. 의료 면에서는 인구1,510명당 의사1인, 633명당 병상1개가 있고 비위생적생활습관으로 발병률이 높은 편. 국영TV방송국 2개, 라디오방송국(국영)1개가 있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타이방송을 많이 시청한다.
7. 문화
라오스는 많은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그들 국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남부에서는 캄보디아, 북부에서는 미얀마, 타이의 영향을 받아 불교사찰의 건축양식 등에 남아 있다. 또 소승불교는 14세기에 캄보디아에서 전래되었는데 불교는 오늘날의 라오스인의 생활을 강력히 지배하고 있다. 연중 많은 종교의식이나 제사가 있어 그때마다 사람들은 마을의 사찰경내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전통적인 윤무를 춘다. 음악은 악보 없이 기억에 의해 연주되며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라오스의 여러 악기 중 대나무관악기인 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무용은 오락의 형태라기보다 직업이 되고 있어 직업적인 무용단은 종교의식이나 경축행사 때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연한다. 이 직업적인 무용가들은 모두 남자들이고, 여자 역은 젊은 남자나 어린 소년들이 분장해서 담당한다. 주요주제는 인도의 서사시에서 따온 것들. 라오스의 문학 역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여 불교전설에 관한 것을 많이 다루고, 대중적인 시나 노래는 풍자적이다. 직조, 바구니 짜기, 나무와 상아조각, 금, 은세공 같은 다양한 민속예술이 있다. 라오스에는 몇 개 신문이 있는데 집권당의 기관지인 시앙 파사송(민중의 소리)이 1만 8000부로 가장 많이 발행된다. 국립라디오방송국은 라오어 외에 프랑스어, 영어, 캄보디아어, 타이어, 베트남어방송도 한다. TV방송국은 주로 뉴스, 다큐멘터리 등을 다루며 오후 7시부터 3시간만 방영한다. 방송국은 정부가 감독, 운영한다.
이번에 다녀오지 못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 대해 계속 찾아보았다. 매일 아침 일찍 스님들의 신성한 탁발공양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루앙프라방은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역사유적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사원의 도시이다. 수 천 개의 불상으로 가득한 동굴과 30개가 넘는 금빛사원 등이 곳곳에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증명한다. 루앙프라방의 루앙은 '크다'를, 프라방은 '성스러운 상(불상)'을 의미하는데 라오스국가자체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왓씨엣통 사원'이 유명하다. 부드러운 곡선의 지붕이 4겹으로 겹쳐 쌓여 있으며 고요하고 한적함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다. 왕궁박물관은 라오스왕조의 마지막 왕가가 지내던 곳으로 1975년 박물관으로 전환, 1976년 일반에 개방된 곳이다. 과거라오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유물, 왕궁에서 사용한 물품, 외국에서 보내온 선물 등이 전시되어 있고, 왕의 접견실벽에는 루앙프라방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한 거대한 벽화가 4면에 있어 인상적이다. 카메라를 갖고 갈수 없어 내부사진을 찍을 수 없다.
루앙프라방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면 이른 새벽거리로 나가야 한다. 새벽5시에 기상, 해가 뜨기 전에 메인스트리트로 향하면 곳곳에 현지인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돗자리 하나씩 깔고 앉아 있다. 현지여자들이 바구니 통을 하나두개씩 들고 나와 관광객들에게 사라고 권한다. 주황색장삼을 걸친 맨발의 승려가 하나 둘씩 걸어오는 탁발이 시작된다. 승려의 행렬과 공양하러 나온 신도들, 공양에 참여하거나 구경 나온 여행자들로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시작된다. 무릎을 꿇고 앉아 승려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공손히 음식을 공양사발에 넣는다.
소승불교는 자신스스로 공덕 쌓는 것을 중요시하며 대승불교에 비해 더 보수적이고, 계율이 엄하며 경실에 충실하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한다. 라오스남성은 보통 9살 무렵에 몇 주에서 몇 년까지 승려생활을 한다.
루앙프라방인근의 쾅시폭포는 자연이 만들어준 멋진 선물로 굉장히 웅장하다. 콸콸 쏟아지는 폭포소리를 들으며 에메랄드빛의 재미있는 물놀이를 할 수 있다.
낮에는 시장이 열리고, 해가지면 메인스트리트 쪽에 하나둘씩 천막을 치며 열리는 나이트바자도 유명하다. 하나둘씩 예쁜 전등이 켜지면서 나이트바자가 완전히 열리면 모든 차량이 통제되며 거리엔 온통 천막들이 들어선다. 주로 라오스전통직물로 만든 옷, 침대시트, 가방, 전통 액세서리, 기념품, 라오스커피 등을 판매한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어디서든 흥정은 필수. 둘러보는데 1시간 더 걸린다.
보석의 원석 같은 라오스는 매력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남부지방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무 오염지대, 때 묻지 않은 야생그대로의 자태다. 우리의 5, 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나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량들로 인해 마구 날리는 흙먼지들을 모두 뒤집어쓰며 살아도 아무 불평할 줄 모르는 순수한 국민들이다. 군인트럭에 탄 미군들이 던져주는 미제 껌을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뿌연 먼지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바짝 뒤따르던 어릴 적 생각이 나면서 검게 그을린 피부의 라오스어린이들이 큰 눈망울을 굴리며 ‘혹시 뭐라도 주지 않을까!’ 원하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앞으로 주변의 누군가 라오스를 여행하겠다고 한다면 자주 입지 않은 옷과 작아서 못 입는 옷들, 양말, 신발, 가재용품 등을 현지인들에게 직접 전해주라며 모아주고 싶다.
올해는 한국과 라오스가 국교수립20년을 맞는 뜻 깊은 해. 자연그대로 보존되고, 블루라군으로 유명한 방비엥에서 동굴탐험과 튜브래프팅을 즐기며 일상생활속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이번 여행은 남보다 앞섰다는 점과 실제체험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깊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문화유산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나라, 라오스에 직항항공노선이 생긴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다.
라오스여행 시 주의해야할 점은 외국인관광객들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강도, 소매치기, 오토바이를 이용한 날치기사고가 늘어나는 추세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의 라오스방문객수는 2012년의 약5만4000명으로 2008년보다 약299% 늘었다. 연예인 지성-박보영 부부가 신혼여행을 다녀가 관심도가 상승했다. 또 도로에서도 차량, 오토바이, 택시의 일종인 삼륜차 툭툭이 등이 혼잡하게 돌아다니니 교통사고에도 주의해야 한다.
가장 동남아다웠던 하노이에서 인천공항까지의 거리는 약2800km. 2015년 06월 25일 목요일 7시 거의 다되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여 뉴스를 접하니 완전히 잊었던 메르스 사태로 계속 시끌시끌, 김포시에서 A씨(남)는 안타깝게도 사망했고, 다른 두 사람은 완치되어 퇴원했단다.
2006년 10월, 11월에 걸쳐 찾았던 베트남 첫 번째 여행은 남편이 25년간 근무했던 제일화재영업부직원모임의 총무인 임용국씨 전화로 이루어졌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이번여행은 제부의 주선으로 갑자기 이루어졌고. 코스가 약간 달랐지만 예전과 똑같은 코스를 찾을지라도 내 나이가 늘었고, 동행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분위기와 느낌이 달랐다.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마음이 설레고, 여행하는 내내 새로운 발견에 내 자신의 반응도 달랐다. 집에 무사히 도착한 후의 감사하는 심정도 더 깊이가 있어 완연한 차이가 있었다. ‘좋은 여행지와 좋은 음식, 편안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곳으로의 떠남, 그 자체와 여행을 함께 하는 자들과의 새로운 생활, 새로운 느낌이 여행으로부터 얻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여행! ‘여행’이라는 두 글자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희망이 샘솟는다는 건 아직도 내가 젊었다는 징조일까? ‘집에만 들어오면 약 먹은 쥐처럼 맥없어 하다가도 여행만 떠났다하면 남보다 두 배, 세배 뛰어다니며 사진 찍는 기운이 어디서 나는지 몰라?’ 베트남, 라오스여행경비를 정리하던 남편의 비웃음 아닌 격려의 말이 또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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