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정설을 뒤집은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유적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4대 문명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신들의 고향이라고 일컸는 이라크의 메소포타 문명을 나름 다른 문명들 보다 오래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들 보다 약 4 ~ 5,000년이나 앞선 문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사실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괴베클리 테베(Göbekli Tepe) 위치
터키 동남부 시리아와 국경 지역인 샤늘르우르파(Sanliurfa: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에 고향)에서 북으로 14키로 지점에 터키인들은 이곳을 배불뚝이 언덕이라고 말하는 곳에 약 30,000평 정도의 방대한 유적을 발견한 것이다. 발견된 유물을 탄소연대 측정 결과 장장 11,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유적이 발견된 곳은 괴베클리 테베(Göbekli Tepe)이다. 이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역사를 다시 배워야한다. 글로 기록된 역사 이전에 기록들도 다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11,500년이 얼마나 오래 되었냐고 하면.. 증빙할 실체는 하나도 없고 말로만 오래(있다고) 되었다고 주장을 하는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과 대조해 보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있다.
우리의 시조인 단군 이전 시대인 즉 환웅시대.. 이것도 건너 환인시대에 초기와 가깝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시조라고 하는 떠돌이 선지자 아브라함(BC 2,166~BC 1,991)도 시대별로는 단군시대(BC 2,333년에 신시(神市)인 아사달을 세웠다.)와 비슷한데.. "괴베클리 테베(Göbekli Tepe)" 유적을... 이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가?
더 재미있는 것은 영국이 자랑하는 고대 석조물인 스톤헨지(Stonehenge)도 BC 3,000년 쯤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집트 피라밋 등 거대 석조물도 가장 오래된 것이 BC 3,500년 정도이다. "괴베클리 테베(Göbekli Tepe)"에 비하면 세워진 연도를 비교하자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는 것이다.
이 유적은 1995년, 독일 고고학 연구소(German Archaeological Institute)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tt) 와 터키 샤늘르 우르파 박물관(Şanlıurfa Museum)과의 공동 발굴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괴베클리 테베(Göbekli Tepe) 유적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보호하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올해(2016년) 세계 경제 포럼에 있어 터키의 기업인 Dogus社는 미 내쇼널 지오그래픽 협회와 제휴하여 금후 20년에 걸쳐 1,500만 달러를 새로운 프로젝트에 제공할 것을 발표했다.
본격적 발굴을 시작한 1995년... 이곳 터키의 남동부에 위치하는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은 문명의 기원에 관해 고고학계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정교한 모양이 조각된 거석들과 독특한 T자 형의 석주(石柱)가 있는 원형의 건조물은 아직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약 12,000년 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구 지질 역사상 홍적세(洪績世: 지질시대(地質時代) 구분에서, 신생대(新生代) 제4기의 전반기. 빙하시대(氷河時代)가 이에 해당한다.) 이후 최근에 있었던 빙하시대는 약 4천만년 전에 시작되어 플라이스토세인 3백만년 전부터 북반구에 빙하가 확장하면서 본격적인 빙하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수백만년 동안에는 4만년을 주기로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하고 있으며 근래는 10만년 단위로 빙하가 확장하고 후퇴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마지막 빙하기는 약 12,000년 ~ 10,000년 전에 끝났다.
빙하기가 끝나자 마자 당시 인류들이 바로 농업을 시작하였을까?
당시 인류들은 수렵(사냥)과 식물 채집을 우선으로 하였다. 이들이 한곳에 정주하게 되면서 농경생활(공동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들로 인해 생긴 잉여 작물들을 공동 창고에 보관을 하였고, 이로 인해 여러가지 도구들이 생기기 시작한 덕에 인류의 사회 구성이 가능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 농사를 지은 작물들인 보리나 밀 등은 술을 만드는데 사용을 하였고, 보통 사냥을 해온 물고기나 동물을들 주식으로 삼았고 술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창고를 만들어 보리와 밀 등을 보관을 해두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분업이 생기게 되었다.
한 무리는 사냥과 수렵을 또 한 무리는 보리와 밀 등을 키우는데 농사일을 이렇게 먹을 것에 대한 분업에 눈을 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든 것이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베(Göbekli Tepe)에 유적을 발견함으로써 모든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들은 빙하기가 끝 날쯤이 시대에 이러한 유적을 만들었다. 석조물 하나에 무게가 15톤이나 나갔고 당시는 석기시대이다. 이러한 석조물을 옮길 바퀴(BC 2,200년 경 쯤에 사용)는 아직 인류가 발명도 하기 오래 전에 이야기고, 이때는 아직 인류가 동물과 같이 생활을 하지 않았든 시기다.
석조물에 조각을 하고, 옮기고.. 이러한 일을 분명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곳을 발견한 유적팀들은 당시 인류가 이곳에서 생활을 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식수원 조차도 없었고, 불을 이용하여 음식을 해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이 유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머리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이 유적을 발견한 독일에 클라우스 슈미트 (Klaus Schmitt)는 2014년에 사망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 온 인류학에 정설을 뒤 엎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신전 건설에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던 까닭에 노동자를 위한 식료와 음료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농경(農耕)을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이론이다.
농경 -> 정착 -> 종교 -> 도시화(부족화)라고 알고 있든 지식을..
종교 -> 농경 -> 정착 -> 부족화(도시화) 라고 순서를 바꿔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유적은 종교 시설이 확실한가?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유적의 출토품은 문명이 농경의 발명의 계기가 되었다는 슈미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각 원형 유적의 써클들 중심에는 높이가 큰 T자 형의 석주(石柱)가 2개씩 서있고 도안화된 사람의 팔이나 손 등이 조각되어 있다. 최대의 석주는 무게가 16톤 이상이 된다고 한다. 거석에 조각을 하고 가까운 채석장으로 운반해 오는 등, 엄청난 대 공사로 인한 수백명의 노동력과 그들에게 먹일 음식물과 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도 맞다고 할 수 없다.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유적으로부터는 사람들의 정주(정착해 산)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다른 학자들은 최근에는 이 장소는 지역의 집회장이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유적은 건기에 언덕 위에 세워졌고 주위의 산들과 남쪽으로 펼쳐져 있는 평야를 전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당시,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다른 유전자 집단들이 교류를 가지는 등. 정보 교환하기 위해, 모일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가설을 세우는 사람은 독일 고고학 연구소의 고고학자 옌스 박사이다. 그는 덭붙히기를 "우연히 라는 것은 없다"
실제,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로부터 규모가 작은 원형 유적이 약 200Km 떨어진 거주지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대성당으로 그 이외의 장소이거나 정착지에서 발견된 것은 교회 정도의 규모였던 것이다.
수렵, 채집민은 멀리서 부터 이 신전에 와서 예식을 올리고 노동력을 제공하여 새로운 건조물을 세우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는 자신들의 풍족함을 나타낸 일종의 과시였던 것이다. "당시 맛있는 음식은 노동력을 집결시키는데 가장 간단한 유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이 건축물을 세웠을까? 다시 이러한 의문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유물을 발견 할 수록 더욱 더 큰 의문만 남지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사실을 토대로 궁금증들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언덕을 더욱 파고 들어가면 음식이 대접된 듯 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원형 시설은 사용하는 동안에 모래와 돌, 동물의 뼈들로 주변이 어지러워졌다. 몇세기인가 흘러 오래된 원형 시설들은 흙에 묻히고, 그 위에 새로운 원형 시설을 또 건축했다. 가젤과 멸종된 야생의 소의 뼈가 발견되고 있다. 그위에 고대의 맥주를 150L이나 넣을 수 있는 거대한 돌 용기도 발굴 되었다.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관광객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차에 흔들려가며 언덕위에 올라 갈 수 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매일 몇차례나 오는 관광버스와 몇백명의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터키 관광문화성도 이 유적 관광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산물이라던가 주차장도 만들어져 샤늘르우르파의 근처에는 최근 터키 최대의 고고학 박물관이 오픈했다고 한다.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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