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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진화의 길을 헤쳐온 인류
(2) 인류의 진화
1982년 12월, 충청북도 청주군 문의면 두루봉 일대에서 석회석 채굴을 위해 산을 뒤지던 광산회사 소장 김흥수는 석회동굴을 발견했다. 그런데 석회동굴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그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동굴 안을 둘러보던 그의 눈에 사람 유골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뼈들이 예사 유골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고고학자들에게 발견 사실을 알렸다.
조사한 결과 동굴의 유골은 무려 4만 년 전 어린아이의 화석이었다. 놀라운 것은 아이 가슴 부근의 흙을 분석해 보니 국화꽃가루가 다량으로 나온 것으로 봐서 장례를 치른 흔적이 있었다.
▲ 충북 청주 두루봉 동굴 유적에서 발굴된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를 살았던 ‘흥수아이’ 화석.
학계에서는 김흥수가 발견한 공을 기리기 위해 우리나라 처음으로 사람 이름을 유적에 붙여 동굴은 ‘흥수굴’, 아이의 이름은 ‘흥수아이’라고 했다.
흥수아이 이외에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장례 관습을 보여주는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있지만, 국사편찬위원회는 흥수아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장례법을 보여줬다고 인정하고 있다.
흥수아이는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4만 년이란 시간은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어림잡기 힘든 기간이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수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흥수아이 화석과 같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서 하나씩 맞춰가야 한다.
두 발로 일어선 인류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인 토마스 헉슬리는 1893년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출간하여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이 해부학적으로 인간의 골격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주장은 인간 창조에 대한 종교적 관념을 넘어서 지질학, 생물학 같은 전문 과학 분야가 체계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렇게 전문 분야로 체계화된 각 집단은 인류 진화과정을 밝히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러한 인류 기원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2001년 아프리카 차드에서 ‘삶의 희망’이라는 뜻의 ‘투마이’라는 이름을 붙인 영장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되었다. 연구를 통해 투마이 화석은 현재까지 인류의 진화 첫 단계이며, 침팬지와 사람의 중간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분자(진화)시계’ 등을 이용한 분석 결과 투마이인은 약 6~7백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화석의 연구를 통해 인류와 유인원이 분리된 시점을 약 6백만 년 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일러스트 김나래
이렇게 인간과 유인원을 나누는 근거 기준은 바로 ‘직립 보행’ 여부이다. 지금까지 두 발로 서서 생활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1863년 찰스 라이엘은 《옛인류》에서 언젠가는 인류와 유인원을 연결하는 중간형의 존재가 발견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처럼 화석으로 최초의 직립 보행하였다는 증거를 지닌 ‘투마이 원인(猿人)’이 인류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직립 보행을 한 이유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인원이 두 발로 걸은 흔적인 발자국과 뼈 화석이 발견되어 인류의 기원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화석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 500~600만 년 전 나무 위에 살던 유인원이 땅으로 내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 이들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인류로 진화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인원을 두 발로 걷게 하였을까? 약 1천만 년 전, 지각 변동으로 아프리카 지구대가 생겨났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 중앙의 밀림에서 발생한 습한 대기가 동쪽에 솟은 지구대의 경계에 부딪히면서 경계지역에 비를 내린 후, 습기를 잃은 건조한 바람으로 바뀌어 지구대 쪽으로 불었다.
이런 과정이 오랫동안 계속되자 이 지역은 점차 건조해졌으며, 오늘날과 같은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였다.
그 때문에 숲이 점점 사라지면서 초기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먹이를 찾아 먼 거리까지 자주 걷다 보니, 네 발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두 발로 걷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숲이 무성한 곳의 유인원은 살던 대로 변화 없이 생존하였고, 바뀐 기후에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유인원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인류로 진화의 길을 나섰다.
호모(Homo)라는 이름
이렇게 초기 인류가 직립 보행을 시작하자 앞발은 두 손으로 변하였다. 그렇게 생긴 손으로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류학적으로 사람에 대한 분류를 요약하면 사람은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 사람종(학명:Homo Sapiens)’이다.
학계에서는 두 손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초기 인류에게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Homo)’라는 명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최초로 이름을 갖게 된 초기 인류가 ‘호모 하빌리스(손을 쓴 사람)’이다.
호모 하빌리스는 250~160만 년 전에 살았고, 키는 침팬지처럼 1m가 조금 넘었다. 하지만 ‘남방 원숭이’라는 뜻인 초기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400cc 정도의 뇌 용량을 가진데 비해, 호모 하빌리스의 뇌는 700~800cc 정도로 두 배 이상이었다. 이들은 뇌도 발달하였지만, 특히 엄지손가락이 넓적하여 ‘하빌리스(손을 쓴 사람)’라는 이름처럼 물건을 잡기 좋고 도구를 다룰 수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 때 뇌 용량이 급속도로 커진 이유도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고 손을 쓰면서 지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약 170~30만 년 전 살았던 화석인류로 ‘똑바로 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 에렉투스’가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유럽, 아시아 등으로 삶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자바원인, 북경원인, 하이델베르크인 등이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똑바로 선 사람’이란 명칭이 붙여진 이유는, 더 오래전에 직립 보행을 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화석이 먼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을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철이 있는 온대지방까지 분포하게 되었다. 뇌용량은 850∼1,200cc로 호모 하빌리스보다 2배 정도 더 컸다.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호모 에렉투스 이후에 등장한 ‘옛인류(舊人)’는 약 20만∼2만5000년 전에 존재하였다. 이 옛사람들은 추운 빙하 지역까지 삶의 범위를 넓혔다. 그 대표적인 인종이 네안데르탈인이다.
1856년 독일 네안데르계곡에서 발견된 화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알려졌고, 그들 뇌의 크기는 1,200~1,600cc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 이들에게는 시체를 매장하거나 채색을 하는 등 장례문화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동굴에 살았으며, 돌칼, 돌도끼 등의 석기도 제작하였다.
이어서 3만 년 전부터 살았던 상동인, 그리말디인, 크로마뇽인 등과 우리를 가리켜 ‘현생인류(新人)’라고 한다. 1868년 프랑스 남부 크로마뇽 지방에서 화석이 발견된 크로마뇽인은 오늘날 북부 유럽인과 외모, 두뇌 크기가 비슷하다. 이들의 특징은 타제석기를 사용하였으며, 라스코 동굴벽화 같은 예술적 활동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옛인류와 현생인류는 전혀 별개의 인종으로 여겼던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2010년 5월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파보가 이끄는 연구팀이 옛인류와 현생인류 사이에 이종교배를 하였다는 연구 논문을 소개하였다. 스반테 파보 연구팀은 그 증거로 우리의 유전체(게놈)에 1~4% 정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음을 제시했다.
이는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후, 유럽인과 아시아인으로 나뉘기 전에 네안데르탈인과 이종교배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유럽인과 아시아인과 다르게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류 진화 과정으로 볼 때, 우리나라 충청도 청주지방의 두루봉 동굴에서 4만 년 전에 살았던 ‘흥수아이’는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시기를 살았다.
지금까지 흥수아이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 직계조상이 아닌 ‘옛인류(舊人)’로 보았다. 하지만 우리 몸속에 흥수아이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사실로 보아 그들도 지금 우리와 같은 땅에서 살다간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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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월상고랑이 뭐야?
초기 원시인류와 현재 우리의 뇌는 크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하다. 아주 작은 차이점은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위치이다. 두뇌에서는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뒤쪽에 있다.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영역 경계선이 마치 초승달이나 반달의 생김새 같다고 하여, ‘월상(月相)’이란 말을 써서 ‘월상고랑’이라고 한다.
월상고랑은 두뇌 표면이 아치형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침팬지 같은 유인원은 월상고랑이 뇌의 앞쪽에 위치하여 같은 크기라도 두뇌가 인간보다 작다. 대신 유인원은 월상고랑이 뇌의 앞쪽으로 나와 넓어진 뇌의 뒷부분 시각 영역만큼 시력은 인간보다 뛰어나다.
오스트랄로피테킨이기도한 340만 년 전의 ‘셀람(<책과삶> 3월호 ‘삶은책’ 팟캐스트 참조)’은 침팬지 뇌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월상고랑은 현재 인류처럼 뇌의 뒤쪽에 있다. 이렇게 인류와 유인원은 수백만 년 전부터 생김새는 비슷하더라도 뇌는 달랐다. 이것은 초기 인류의 두뇌가 이미 현재 인류와 같은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독서신문 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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