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인사 스타일은 영화감독, 김정은은 농구감독”
“김정은이 변덕스럽고 미숙하다는 건 편견, 김정일보다 똑똑해”
북한은 2010년 9월 노동당 제3차 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지위를 공식화했다. 국내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은 당시 나이(26세)와 인맥 등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이 이렇게 빨리 등장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전면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배력이 공고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직후에도 비슷한 이유로 장성택이 섭정하는 군부 집단지도 체제가 출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후 4개월 만에 당과 군부의 최고 직위에 올랐고, 2013년 말에는 실세 중의 실세라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박근혜 정부는 어리고 포악한 김정은의 공포 정치가 북한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며 급변사태에 대비한 시나리오 점검에 들어갔지만 헛다리를 짚었음이 곧 확인됐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군부의 영향력은 축소된 반면 당과 경제 엘리트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됐고 중국식 경제개혁으로 주민들 형편도 나아졌다. 20대 중반에 권력을 넘겨 받은 3대 세습 지도자의 영향력이 이토록 빠르게 막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정보수집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북한이 하루라도 빨리 무너졌으면 하는 희망적 사고를 갖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정보를 분석가들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청와대에서 북한 체제가 오래 못 갈 것 같은데 불안정한 징후들이 어떤 게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누가 감히 김정은이 의외로 권력을 효율적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보고할 수 있겠나.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정보맨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느라 왜곡된 정보가 끊임없이 올라가고 언론이 이를 무책임하게 받아쓰면서 김정은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보수정권이 북한을 흔들기 위해 김정은과 장성택의 갈등을 부추기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리기도 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북한 독재체제가 무너지면 큰 혼란 상태가 벌어진다는 것은 궤변 중의 궤변”이라고 했다. 수령 체제를 뒷받침하는 엘리트 그룹이 막강하다는 얘기인데.
“북한은 최고지도자 한 명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스탈린주의 체제다. 그럼에도 기본으로 깔고 있는 건 레닌주의 집단지도 체제 방식이다. 최고지도자가 독단적으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노동당, 정무국, 군부 등의 핵심 관계자로 구성된 통치 그룹과 상의하며 이끌어가는 구조다. 통치 그룹에 들어간 인사들은 충성심은 물론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능력과 리더십이 입증된 사람들이다.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하더라도 30명 안팎인 정치국 위원ㆍ후보위원이나 더 넓게는 200명 정도의 당 중앙위원회 그룹에서 후계자가 나오게 돼 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 사망 후 소련과 중국이 큰 혼란에 빠지지 않고 통치 그룹의 일원이던 흐루시초프와 덩샤오핑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한 게 대표적이다. 북한 체제를 이해하려면 최고지도자 한 명이 아닌 통치 엘리트 그룹 전체를 봐야 한다.”
-북한 엘리트 그룹이 왜 3대 세습이라는 무리수를 쓰며 김정은을 후계자로 옹립했을까.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회 위원 100명과 후보위원 100명이 30년 넘게 북한을 이끌어 온 핵심 통치 그룹이다. 이들 입장에선 3대 세습이 기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북한 내부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가 아닌 다른 간부가 최고지도자가 됐을 때 권력투쟁에서 밀려날 위험이 있다. 백두혈통인 김정일 아들이 후계자가 되면 계속 충성을 바침으로써 안정적으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정은 체제 엘리트 그룹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파격적인 인사가 2012년 4월 최룡해를 군부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한 거다. 최룡해는 군 출신이 아니고 노동당 엘리트다. 당시 한국에선 쿠데타 등 군부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군부를 개혁하기 위해 군과 이해관계가 없는 최룡해를 임명한 것이다. 김정일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던 1990년대 초 군부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해 수백 명의 간부에게 별을 달아줬다. 그 결과 군 상층부가 지나치게 고령화되고 비대해졌다. 김정일은 무조건 충성하는 군대를 원했으나 김정은은 군을 효율적인 전투조직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최룡해는 항일 빨치산 2세의 대표주자로 군부에서도 무시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가장 존경 받는 항일 빨치산 두 명을 꼽으라면 김일성과 최룡해의 부친 최현이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으로 있던 2년 동안 군 상층부가 대폭 축소됐고 당과 경제 엘리트 영향력이 커졌다. 김정은은 충성심만으론 만족하지 않았다.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실력 있는 간부를 원했다. 김정일 인사 스타일을 영화감독이라고 한다면, 김정은은 농구감독에 비교할 수 있다. 영화감독이 주연이나 조연 배우를 한번 결정하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농구감독은 선수가 실수를 하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경기 도중 수시로 교체한다. 김정은은 일을 못 하면 언제든지 교체하는 스타일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간부 교체가 잦으니 한국 정부에선 불안하다고 본 거다. 실제 북한 내부가 아닌 간부들 지위가 불안해진 거고, 이는 김정은이 확고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과거 김정일을 보는 시각으로 김정은을 이해하려다 보니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30, 40대 엘리트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데.
“나이가 어리고 서구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이 젊은 간부들을 선호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아직 파워 엘리트 그룹에 포진하고 있지는 않다. 30, 40대 중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에 들어간 경우는 김여정이 유일하다. 그래도 TF 등에 참여해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김정은이 2008년 말 후계자로 결정된 뒤 단기간에 대외 정책이 급변했는데, 젊은 엘리트들의 이해관계와 상황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은 고모 김경희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북한을 이끌어가는 30명 안팎의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다. 사실상 북한의 2인자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북한은 신분제 사회다. 맨 위에 백두혈통이 있고 이어 항일 빨치산 그룹, 일반 간부 순이다. 백두혈통은 공식 서열로 따지기 어려운 우월적 지위다. 더욱이 김여정이 2017년 10월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면서 김정은과 주석단에 같이 앉아 국정을 상의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사실상 북한의 2인자이자 핵심 실세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은둔형 지도자인 반면 김정은은 개방적 스타일인 듯하다.
“김정일의 정책 결정 스타일은 묘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흡사하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서진을 만나 토론하며 정책을 결정한 게 아니라, 청와대 관저에서 비서관들이 올린 보고서를 읽고 사인하는 식으로 했다. 김정일도 이런 방식이다 보니, 부서 간 정보 공유가 안 되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선이 생겼다. 김정일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이 일일이 서류를 검토하느라 결재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정책 결정이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김정은은 김일성을 닮았다. 간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통해 신속히 정책을 결정한다. 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선 담당 간부들에게 집행을 위임하고 결과에 대해 엄격히 책임을 묻는다. 간부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발 벗고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우리 사회에 김정일은 굉장히 똑똑한 반면 김정은은 변덕스럽고 미숙한 지도자라는 편견이 있지만 사실은 정 반대다.”
-김정은 체제 지도부에 당과 경제 엘리트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건 개혁과 실용주의에 방점을 둔다는 얘기인데.
“북한 엘리트 그룹에도 보수적인 인물과 개혁적 성향의 인물이 존재한다. 결국 최고지도자가 어떤 인물에게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총리직을 맡은 박봉주는 북한 테크노크라트 중 매우 드물게 개혁적인 인물이다. 학벌만 놓고 따지면 이른바 SKY에 들지 못하는 평남 덕천공업대학 출신이지만 추진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총리직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정은이 핵심 정치엘리트 그룹의 견제로 실각했던 박봉주를 다시 총리로 발탁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북한에선 기업이 자율성을 갖고 물건을 만들어 팔고 임금 격차가 커지는 등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과거 북한 시장에서 팔리던 물건 중 80%가 중국산이었다면 지금은 70% 정도가 북한산으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2017년 10월 6차 핵실험 후 정무국 간부들을 대폭 교체했다. 정무국은 김정일 시절 비서국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최고지도자를 포함해 10여명이 주요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기구다. 우리 청와대와 비슷한 조직이다. 경제와 과학 분야 엘리트가 정무국에 대거 진입하면서 인원도 9명에서 11명으로 늘어났다. 개혁ㆍ개방을 통한 경제 회복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 엘리트 그룹을 잘 활용해야겠다.
“그렇다. 특히 북한 내각을 이끌어 가는 박봉주 총리를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비핵화가 진전된다면, 기존 정상회담과 장관급 회담 말고 내각 총리 회담을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개혁 성향의 인물이 경제사령탑을 맡고 있다는 건 남북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언론과 전문가 그룹의 방북도 적극 허용해야 한다. 이들이 북한의 변화를 읽어내면 남북 협력 가속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남북 협상을 보면 우리는 사람이 자주 바뀌고 전문성도 뒤져 협상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북한 관료들의 전문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북한은 관료를 한 분야의 전문가로 키운다. 우리는 모든 분야를 두루뭉술하게 이해하는 인물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북한 관료는 남한이 과거 어떻게 협상에 임해왔고 어떤 얘기를 했는지 줄줄이 꿰고 있는데 우리는 전임자가 무슨 얘기 했는지도 잘 모른다. 분야별 전문가를 키울 필요가 있다.”
-정권에 따라 대북 정책이 오락가락 하니 남남 갈등이 갈수록 심해진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바뀌는 이유 중 하나가 초당적인 대북 정책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정권이 보수로 바뀌면 진보적인 전문가들이 소외되고 진보정권에선 보수적인 전문가들이 소외돼 장외에서 싸우기 일쑤다. 박근혜 정부 때 여야 의원이 참여한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게 있었으나 사실상 들러리 성격이었다. 외교 안보 통일 관련 여야 국회의원과 그들이 추천하는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대북 정책 기구를 만들어 관련 정책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장관급이 운영하는 가칭 ‘한반도평화발전위원회’와 같은 초당적 기구에서 정보 공유와 토론을 활발히 하면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