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은 깨끗하다는 착각으로 前정권·비판세력에 가혹한 잣대
내편 네편 나뉜 강퍅한 나라… 일 잘하는 정부가 긴요한 때
박제균 논설주간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된 1심 판결을 보면서 안철수를 떠올렸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선거일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바짝 따라붙었다. 2017년 4월 첫째와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후보를 오차범위 내인 3%포인트 차까지 추격했다. 문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보수 표심의 막판 쏠림 현상 덕이 컸다.그러다 4월 둘째 주인 13일에 시작된 TV 토론을 계기로 상승세가 꺾여 셋째 주부터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4월 23일 열린 3차 TV 토론에서 안 후보가 “내가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냐”고 문 후보에게 따질 때, 이미 승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였다. TV를 본 많은 사람들은 안 후보가 왜 뜬금없이 그걸 물고 늘어져 자충수를 뒀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MB 아바타가 아니라고 목청을 높이면 외려 MB 아바타로 각인되는, 정치 선전술의 기본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이번 김 지사 판결을 보면서 안 후보 입장에선 뜬금없는 문제 제기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지지율 급락 원인이 인터넷에 창궐한 ‘MB 아바타’ 등 부정 여론 탓이란 생각에 꽂혀 헤어나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안철수의 지지율 하락이 댓글 조작 때문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안 후보가 TV 토론 등에서 보여준 깜냥은 나라를 맡기기엔 부족했다. 또 댓글 조작이 지난 대선의 판도를 갈랐다고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문재인은 대선이 본격화된 2016년 하반기 이후부터 출마 후보 가운데 부동의 1위였다.
그럼에도 1심 판결에서 드러난 댓글 조작 혐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12월∼2018년 3월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의 기사 약 8만 개에 댓글 8840만여 건을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확정 판결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이 391개의 트위터 계정으로 29만5636차례에 걸쳐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2124회 댓글을 단 것으로 나왔다. 국가기관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국정원 사건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볼 수 있지만, 수법으로 치면 정부 아마추어들의 수공업 생산과 민간 프로들의 기계공업 대량생산에 비교될 정도다.
착각은 자유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들만 깨끗하다, 아니 DNA 자체가 다르다는 착각을 이전 정권 관여자나 현 정부 비판 세력을 ‘적폐’로 몰아 가혹하게 다루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크다. 착각 속에서 자신과 남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내로남불 아니고 뭔가.
국민은 깨끗한 정부를 원한다. 그러나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이 엄혹한 시기에 국민이 더욱 필요로 하는 건 일 잘하는 정부다. 시장경제를 흔들고 안보 불안을 부추겨 민생을 고단하게 하면서도 ‘우리는 태생부터 다르니 괜찮다’는 선민의식에 빠진 정부가 아니다. 집권세력의 그런 착각과 선민의식이야말로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고, 대한민국을 전직 대통령 2명에 대법원장 출신까지 감옥에 가두는 강퍅한 나라로 몰아간다. 집권 2년이 다 돼 가는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착각의 덫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