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이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이주한 인류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옛 인류 500여 명의 게놈(생명체가 지닌 DNA의 총합·유전체) 해독 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농업혁명을 이뤄내며 수준 높은 도시 문명을 이룩했지만, 기후변화로 뿔뿔이 흩어져 동남아시아 및 유럽 유목민과 섞여 지금의 남아시아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라이시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은 약 8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살던 사람 523명의 유골에서 게놈을 해독해 남아시아인의 이주 및 문명 진화 경로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셀’ 6일자에 각각 발표됐다.
인더스 문명은 약 4500∼3500년 전 인도 북서부와 파키스탄 지역에서 번성한 고대 문명이다. 농업이 발달하고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같은 배수로를 갖춘 인구 수만 명의 계획도시가 건설됐다. 메소포타미아 등 다른 문명과의 무역도 활발했다. 하지만 약 3500년 전 기후변화로 이 지역이 급격히 건조해지면서 인구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문명은 붕괴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 문명 중 하나지만, 덥고 습했던 옛 기후 때문에 유골에서 DNA를 채취하기 어려워 이들의 이동 경로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이주하면서 현지에서 만난 다른 인류와 유전자를 교류하게 돼 섞인 유전자의 비율을 추적해 이동 경로를 밝힐 수 있었다.
라이시 교수팀은 인도 연구팀과 함께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걸쳐 약 8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인류 523명의 유골로부터 게놈을 채취하고 해독해 긴 시간에 걸친 인류의 이주 경로를 밝혔다. 또 인더스 문명의 대표 도시 중 하나인 라키가리에서 발굴한 61구의 유골에서 시료를 채취해 당시 인류의 정체도 파악했다. 라이시 교수는 “더위와 습기로 파괴돼 개개인의 게놈은 해독할 수 없었지만, 61명의 부분별 DNA를 모아 전체 집단의 게놈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인더스 문명을 이끈 사람들의 조상은 지금의 이란 지역에 살던 고대 이란인으로 나타났다. 고대 이란인의 조상은 그보다 더 서쪽에 위치한 지금의 터키 북동부 지역에 살던 인류로 확인됐다. 비유하자면, 인더스인의 어머니는 고대 이란인, 할머니는 터키 북동부 지역 인류인 셈이다.
한편 인더스 문명이 붕괴된 뒤 인더스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과 섞였다. 러시아 모스크바 남쪽 부근 초원지대(스텝)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목민 얌나야족과도 섞였다. 이렇게 형성된 혼혈 인더스인들이 지금의 인도 등 남아시아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영어 등 유럽어와 인도어, 이란어, 러시아어 등 세계 30억 명이 쓰는 언어군인 ‘인도유럽어’가 유라시아에 퍼졌다고 밝혔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