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속성 간파한 '동물농장'… 과거 청산·내로남불 판박이
권위주의 시절 운동권 세력, 우리를 다시 길들이려 한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러시아혁명에 이은 스탈린 전체주의를 낱낱이 까발려, 권력이 어떻게 부패하는가 통찰한 소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공 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은 모든 종류와 크기의 권력 속성을 기막히게 간파하고 있었다. 70년 전 작고한 오웰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았다.
반란을 앞둔 동물들의 비밀 회합에서 우두머리 돼지가 처음 던지는 질문은 "쥐는 우리의 동지인가"였다. 권력이 곧 바뀔 것을 간파한 쥐는 벌벌 떨지만, 돼지는 뜻밖에도 쥐를 동지로 받아들인다. 권력 쟁취를 위해 '인간의 적은 동물의 친구'라는 정치 구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을 쫓아낸 동물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과거 청산이다. 멍에와 마구, 재갈과 코뚜레, 갈기와 꼬리를 장식했던 댕기들도 모두 우물에 던져버린다. 어떤 동물이 "댕기는 달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돼지들은 "그 댕기가 바로 노예의 상징"이라고 혼쭐낸다. 좋든 나쁘든 과거 정권의 것들은 모두 적폐로 몰아 청산하는 데 몰두해 온 권력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최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촛불 시위 이후 가장 큰 정치적 방향 착오가 적폐 청산"이라며 "완전히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정치, 보수 진영을 궤멸시키려는 의지가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농장을 장악한 돼지들은 우유를 독차지한다. 암탉들이 "인간 주인은 우리 모이에 우유를 섞어주기도 했다"고 푸념하자 돼지들은 "우리는 우유가 좋아서 먹는 게 아니다. 우리가 건강해야 당신들을 돌볼 수 있다. 여러분을 위해 우유를 먹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현 정권의 수많은 '내로남불' 사례와 무엇이 다른가. 정의를 주창한 권력은 어떤 짓을 해도 정의롭다는 궤변이다. 최 교수 역시 "운동권 출신들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은 대의제 민주주의나 민주적 정부가 아니라 '인민의 권력'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물들은 인간 지배를 받던 시절보다 훨씬 열심히 일하지만 사는 건 그때만 못하다고 느낀다. 그럴 때면 돼지들이 나타나 무슨 수치가 몇 퍼센트 늘었다는 자료를 내밀며 좋아지고 있다고 윽박지른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따지려 하면 돼지들이 따로 사육한 개들이 나타나 으르렁거린다. 길들여진 양들은 그 옆에서 돼지 찬가를 목 놓아 부른다.
'동물농장'을 처음 접했을 때는 돼지 무리와 그에 빌붙은 동물들 위주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새로 발견한 동물은 말과 당나귀이다. 말은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내가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며 모든 일에 앞장선다. 그러나 결국 폐마업자에게 팔려간다. 당나귀는 "나는 오래 사는 동물"이라고 습관처럼 말하며 모든 일에 체념한다. 그는 "삶은 항상 나쁠 것이며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 중 상당수는 말이나 당나귀였다. 그때 개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들이 다시 우리를 말이나 당나귀로 길들이려 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교수들이 옛날처럼 언론 통제가 겁나는 게 아니라 집단의 공격이 무서워서 얘기를 '자체 검열'해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