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참고자료58 : 天符經 천부경 해설 / 벽운 이경숙]
* 천부경은 9000년전 한인 천제께서
우리 민족의 시원을 연 때부터 전해져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으뜸인 경전이다.
우주생성의 원리가 담겨 있으며 인간중심의 사고 또한 천부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대의 유불선 삼교가 모두 천부경을 모태로 탄생하게 된다.
천부경은 수천년 동안 그 뜻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경전으로 알려져왔다.
단순한 한문 지식 으로만 풀리지 않는 글이다.
天 符 經 천부경 (구름 이경숙님 해설)
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민족의 삼대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그리고 삼일신고의 세가지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동양의 경전이며, 세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여든한 글자의 천부경이다.
이 여든 한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 때에
최치원의 학식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천부경을 가지고 책을 써낸 사기꾼들이 워낙 많아서
서점에 가보면 한 20종이 넘는 천부경 어쩌고 하는 맹랑한 책들이 팔리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얄구진 그림들에다가 황당무계한 숫자들을
잔뜩 늘어 논 것들이라 얼핏 보면 고등학교 수학책인 줄 착각할 정도이다.
그래놓고서 이 작자들은 꼭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놓는다. 천부경의 진리는
워낙 심오한 것이어서 풀이자체가 난해할 수 밖에 없단다. 어렵고 난해해야만
진리인줄 착각하는 바보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렵다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천부경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글이다.
추측이나 가설의 여지가 없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동공자는 허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만년 동안 풀지 못했던 천부경의 비밀을 구름이 풀어드리겠다.
그리고 이 천부경을 통해서 숨겨진 세계사의 비밀을 알려드리겠다.
천부경의 전문을 먼저 올려드린다. 대개의 경우 이 천부경은
끊어 읽는 단락부터가 틀리고 있다.
옛 환인 천제 시대의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이 천부경을 계송하여 낭독해 왔겄마는
단락구분조차 틀리니 이걸 노래로 운률에 맞추어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름이 아래 적은 끊어 읽기가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래야 운률이 맞는 계송이 되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
天 符 經 천부경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니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이고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이니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니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하고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 환오칠하니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일묘연 만왕만래라
用 變 不 動 本 용변 부동본이요
本 心 本 太 陽 본심 본태양이니
昻 明 人 中 天 地 一 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이니라
자 이제 천부경의 첫문장부터 그 뜻을 알아보자.
♣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보면 "일은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일이며"라는 뜻이다.
이 일(一)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온갖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시중 책들에 나열한 것만 해도 십여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몽땅 다 틀린 것이 전부다.
지맘대로 추측해서 쓰기 때문이다. 이 일(一)이 무엇인가는
지레짐작할 필요도 없이 천부경의 다음 문장에나와 있다.
즉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라고
천부경에서 밝히고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이문장의 뜻은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된다.
황당무계한 학설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하늘(天)의 수는 일일(一一)이요,
땅(地)의 수는일이(一二)요,
사람(人)의 수는 일삼(一三)이다." 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즉 일(一)은 하늘을 뜻하는 수이다.
천부경에서 사용된 모든 일(一)이란 수는 하늘이고
이(二)란 수는 땅이며 삼(三)이란 수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한문을 아는 중학생도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진 것이 천부경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후학들이 황당한 장난을 친 탓에
마치 난해한 기문둔갑술의 주문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첫째문장 <일시무시일>의 뜻은?
어려울 것도 없다. 글자그대로,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니."라는 뜻이다.
이런 문장이 해석 이 안되어서 어려울게 뭐 있노 이말다.
이거 못 읽는다 하면 빙신들이다. 이 천부경은 최치원이 한문으로 번역할 때
싯적인 멋을 조금 부린데가 있다. 즉, 당시의 한시의 형태를 따서
시종대귀법을 사용했다. 첫장과 종장을 댓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위한 목적에서는 천부경의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
♣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자 설명 안해도 총명한 사람은 이말의 뜻을 알 것이다.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하고
이 우주의 생성원리를 한마디로 짤라서 말하고 있다.
천부경의 첫문장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요, 결론이요, 정의이다.
천부경의 이 여섯글자가 바로 전체 동양의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시작이 없는 우주, 끝이 없는 우주.
이것이 고대의 우리 선인들이 이미 밝혀 놓은 우주의 실체이다.
스티븐 호킹은 일만년 이 지난 지금에사 이 우주는 시작이 있을 수 없다,
고로 우주의 종말은 없다카고 마치 지가 처음 발견한 진리인 것처럼
책 팔아묵고 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훗날 석가의 우주관이 여기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저 문장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불가의 반어법이 천부경에서 나왔음이다.
석가는 이 문장을 바꾸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말했고,
"이 세상은 나는 곳이 없으므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가장 큰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고, 영원은 찰나와 같으니라."
불가의 비장의 보도인 반어법은 모두 천부경에서 베낀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가 이 천부경을 알고 있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유불선이 천부경에서 비롯된 내막들을 설명할 차례이다.
재밌는지 몰겄네요? 이 쉬운 문장이 왜 해석이 안 되었을까요?
이해가 안되시죠? 콜롬부스의 달걀이에요. 심안이 떠지지 않은 탓에
장님처럼 글자만 더듬어왔기 때문이지요. 계속해 드릴께요
내가 일전에 자게옥에 "반야심경 해설"을 연재할 때 말씀드렸지만 불경을 보면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기 전에 얼마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왔는지
불경을 읽다보면 그 서두가 지리해서 부처님 말씀 나오기도 전에
졸게된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는 무량겁의 과거세로부터,
무량광의 온 우주에 있는 부처와 보살과 천신과 나한들이
부처님의 설 법을 경하하기 위하여 자리에 함께해서
그 설법에 원력과 위광을 보태주고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자리를 빛내준 여러 부처, 천신들의 면면을 보면
그 설법의 중요도 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반야심경이나 법화경, 화엄경 같은 지극 히 공덕이 높은 설법의 자리라야
참석하는 천신이 있는데 이이가 바로 환인 천제시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 설법자리에 납시어 지켜보는 환인천제를 확인할 수 있다.
불경에 왜 환인이 나오는가? 그것도 아미타불, 미륵불, 관세음 보살, 지장보살, 천수보살,
제석천왕, 도솔천왕과 같이 VIP로 귀빈석에 폼 잡고 앉아 계시는가 말이다.
부처님의 설법에 자리를 빛내는 들러리로 초빙되어 온 이 귀빈들은 모두
실제로 왔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원력이 화신되어 그 자리를 함께했다는 뜻이다.
즉 부처님은 모든 하늘나라의 끗발있고 쟁쟁한 실세들을 모두
경복궁 33경비단에 모으시고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삼아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전두환이 청와대로 가는데 바로 갈 수 없는 법, 공수여단장, 청와대 경비단장,
수경사령관, 보안사령관을 차례로 거쳐야 했듯이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량겁의 과거세를 통해서 공덕을 쌓는 과정에
여러 부처의 생애를 보냈고 한 때는 도솔천에서 오야를 하기도 했고,
자리를 옮겨 제석천에서 사바세계의 감독관일도 하셨는데,
한 때는 천계에서 환인천제로 직접 중생의 세계에 신정을 펼쳐주시기도 했는데
역대 환인 중의 석제임 환인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공덕 중의 하나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석씨성을 가지고 마침내 해탈하여 우주궁극의 원력을 보이는
석가모니부처가 되셨음이다. 이 과정은 내가 "개천록"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 부분인데
인연이 있다면 이상한나라에 "개천록"의 진본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머나먼 남국 인도에서 하고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신라에 공주를 보내어
부처님의 사리를 전했겠는가? 다 부처님의 전생 인연에 의한 귀향이었다.
이 넓은 지구 위에서 신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문양이
오직 인도와 바이칼호 부근에서만 발견되겠는가?
천계와 한민족과 불교의 혈연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석가모니 자신의 혈통이 아리안이 아니었고, 동이족이었다.
모든 초상화의 특징이 그것을 보여준다. 천부경을 만든 환인천제의 인연이 그대로
불가로 전해졌음이다. 천부경은 불경보다 5천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족히 자신의 뿌리를 찾는 날 개벽이 있으리로다. 그럼 다음 문장을 보자.
♣ 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
이 문장은 학자들이 대충 3극 = 3태극 = 음양중 = 천지인의 뜻으로
눈치 때려갖고 3태극의 원리다.카고 겐또를 치고 있다.
여기서 쓰인 삼(三)은 사람(人)의 상징이 아닌 석삼(三)의 뜻이다.
이 문장은 여기에서 말하는 세가지의 극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 밑 의 문장을 먼저 해석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해하기 좋다.
잠깐 보류해두고 다음 문장으로 SKIP하자.
♣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이 문장은 앞에서 설명했지만 천부경이 사용할 수에 대한 정의를 내려 놓은 문장이다.
하늘을 일이라는 수로, 땅을 이라는 수로 사람을 삼이라는 수로 대치해서
설법하겠노라 하는 말이다. 그냥 그대로 받아 들이면 된다.
그런데 왜 천지인에 각각 일이라는 수 가 하나씩 더 들어갔느냐 하면
여기에 천부경의 기막힌 압축법(즉 여든한 글자를 가지고 우주를 설명하는 놀라운 비결)의
요체가 있다. 이 극도의 압축을 시도한 천부경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들은
첫째 줄, 두째 줄 까지는 어찌 어찌 겐또를 치다가 여기서부터는 기냥 오리야 기리 야다.
황당한 궤변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얘기 했지만
천부경은 댓귀법을 쓰고 있으므로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찾아 한 꺼번에 보지 않으면
뜻이 숨어서 안 나타난다. 이 문장과 같은 형태의 문 장을 찾아보면
바로 네번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 그것이다.
일시무시일과 일종무종일을 붙여서 읽고 해석하듯이 이 두문장도 붙여서 해석해야 한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같은 형태의 두 문장을
나란히 붙여 놓으면 무언가 보일 것이다.
천지인에 각각 네개씩의 숫자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천(天)에 사용된 수 : 일일이삼
땅(地)에 사용된 수 : 일이이삼
인(人)에 사용된 수 : 일이삼삼
천지인은 각각 자기 고유의 수를 두개씩 가지고 있다.
천은 일을 두개 가지고 있고, 지는 이를 두개 가지고 있고,
인은 삼을 두개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천지인은 자신의 고유수외에
나머지 둘의 고유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즉 하늘은 땅의 수 이와 인의 수 삼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땅은 하늘의 수 일과 사람의 수 삼을,
사람은 하늘의 수일과 땅의 수 이를 가지고 있다.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지만
각각은 나머지의 성질을 부분적으로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이고 사람이요.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뭔가 번쩍하고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천지인의 삼극(三極)에 음(陰)과 양(暘)과 중(中)을 대입시켜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이것이 음양학의 제일 원리이고 기본 법칙이다.
이런 이야기는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재밌을텐데
그렇지 못한 분들한데는 머리아픈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나라에서 삼청궁 선녀를 만났을 때가 아니면 죽어도 못 듣는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한테서도, 어떤 책에서도 이건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면 좋겠다.
천부경에 숫자가 사용된 이유는 난해한 주문이거나
뜻을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단어로 설명해야할 것을
극도로 압축 하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각각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천지인은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하면
아마 수십페이지는 족히 필요할 것을 단 두문장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넘어갔던 앞의 문장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으로 돌아 가자.
한자 뜻으로 풀어보면 "세극을 나누어도 그 본은 다하지 않는다"라 는 뜻이다.
여기서의 삼극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신(三神)을 뜻한다.
이 천부경에서 나온 한 단어 "삼극"에서 한사상의 삼신사상이 나왔고,
하늘을 양, 땅을 음, 사람을 중으로 보는 음양사상이 나왔다.
무진본은 무진장과 같은 뜻의 단어이다.
엄청나게 많아서 결코 마르지 않는, 다하지 않는, 다함이 없는 그런 뜻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 뉘어도 궁극적인 근본은 다함이 없다. (변함이 없다)의 뜻이다.
천지인과 음양중의 삼극이 비롯되는 이 다하지 않는 본(本)을 우리는 태극(太極)이라 부른다.
불가의 진아일여(眞我一如). 우리 한사상이 지향하는 삼신합일(三神合一)의 상태가
우주본래의 자리, 그대로의 본모습인 태극이다. 곧 무진본(無盡本)인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천부경에서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한 구절과 만나게 된다.
♣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
이제는 여러분도 한자의 뜻만 알면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대로 풀이하면 "일이 쌓여서 십이되는데 상자가 없어서 삼으로 변한다" 이다.
일이란 하늘이다. 삼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해석된 뜻은? 하늘의 정기가 쌓이고 충만해지는데
그것을 담을 상자(궤)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동양사상의 오직 하나의 외침이 나온다. !!!!!
인간은 하늘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
동학에서 주장한 인내천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하라 했던 유교의 인본주의사상이 여기서 발원되었음이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불가의 자재불성, 중생이 곧 부처란 사상이 여기서 나왔음이다.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변한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궁극의 가르 침이었다.
이것이 일만년전 고대인의 종교관이었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우리민족의 종교적 차원은 태양신을 섬기거나 창조주를 찾던
타민족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민큼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유불선을 포함한 동양사상을 단 하나로 압축하면 바로 "인간"이란 두글자 가 된다.
하늘의 기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혹은 생명 이란 말로 대치해도 되겠다)으로 화한다는 이말은
이 우주에서 생명이 모습을 드러 내는 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현대과학이 생명의 탄생을 밝히게 되는 날,
과학자들이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 놓은 그릇(상자)이다.>
그 그릇을 함부로 하고 가벼이 대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인 것이다.
서양이 신본주의라면 동양은 인본주의이다.
서양의 신과 인간이 대립관계요 종속관계라면 동양은 일체관계요 수평관계이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있겠는가? 천부경의 전체 문장은
그 뜻이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이 한귀절도 없다.
모든 것을 가장 명료하게 분명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경전이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셔요?
그래도 이 천부경이 해석이 불가능한 난해 한 괴기문으로 보이세요?
이제 우리는 천부경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하나의 흥미로운 수수께끼와 마주친다.
바로 이문장이다.
♣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
대삼합육은 글자 그대로 큰세개를 더하면 육이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큰 세개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천지인의 삼극이다.
즉 천의 수 일과, 지의 수 이와, 인의 수 삼을 합하면
육이 된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덧셈을 왜 하고 있을까?
앞에서 하늘의 수가 네 가지였다. 일일이삼, 땅의 수는 일이이삼,
사람의 수는 일이삼삼, 여기에서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수 하나씩을 빼면
1+2+3은 모두 6으로 같다는 말이다.
즉, 천지인은 동본이상(同本異象)이다 이말이다.
하늘의 수도 6이요, 땅의 수도 6이요, 사람의 수도 6이다.
따라서 천지인의 삼극이 모여있는 합일된 상태인 태극의 수가 바로 <666>이다.
삼극이 한자리에 모인 대삼의 수인 것이다.
천부경 여든한글자를 세개의 숫자로 압축하면 <666>이란 수가 나온다.
많이 본것 같은 수일 것이다. 맞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짐승의 수로 지칭했던 바로 그 숫자이다.
동양사상을 숫자로 상징하면 <666>이 나오는데
환상을 보고 있던 요한 의 혼돈된 뇌리에 왜 이 숫자가 떠올랐을까?
그렇다, 말세에 기독교의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동양의 정신이라는 것을
요한은 예언적인 환각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기독교를 붕괴시키고, 멸절시킬 거대한 힘의 상징을 이 숫자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은 그 정체를 사탄을 추종하는 짐승으로 적었던 것이다.
이 요한의 묵시록과 우리 한민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개의 대립되는 예언서 요한계시록과 정감록을 대조 분석하면
미래세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정다운 스님의 정감록해설은 모두 틀렸다.
정감록의 뜻은 그렇게 푸는 것이 아니다.
이 <666>이란 수자에 얽힌 동서양 이대문명의 충돌과
그 종말을 천부경 해설이 끝나는 대로 구름이 해 드리겠다.
그건 일단 뒤로 미루고, 뒷 구절을 보자.
생칠팔구(生七八九), 칠팔구가 생긴다고 했는데,
이 칠팔구를 더하면 천하의 절기가 스물네개이다.
일년의 운행이 24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물론 훗날에 하루의 시간 역시 24로 나뉘어진다.
삼극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운행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지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666>이란 수자를 본 김에 잠깐만 옆길로 새자.
경문 풀이만 하니까 지루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잠깐 분위기 바꾸는거다.
물론 천부경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독교의 최후의 적을 <666>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신으로 보았고
그 화신인 짐승들로 보았는데, 그 짐승들은 누구이겠는가?
천부경으로 이어진 한사상의 아들들,
그 옛날 환인이 통치하던 천계의 후손들 ... 바로 우리민족이다.
배달민족의 이마에는 이 한사상이 지울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들의 이마에는 <666>의 표상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누구도 지우지 못한다. 설사 그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
하더라도 그의 영혼은 한사상이 출렁 거리는 삼신의 세계이다.
요한에 비견되는 우리의 대예언가 천표율사의 심안에 반대로 그들은 무엇으로 보였을까?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보였다. 그것은 푸른원숭이었다.
정다운스님이 정감록인가 하는 책 속에서 손도 못대고,
강의할 때 횡설 수설했던 정감록의 비문이 무엇이었나?
이 양반이 책 선전하면서 광고카피로 사용했던 구절이 이것이다.
정도령을 예언한 구절이다.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내가 정다운스님을 만났을 때, 스님이 이 귀절의 뜻을 풀이해서 구름이를 한참 웃겼다.
세상에 이렇게 푸는 것이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남쪽에서 온다는 것은
바로 승복을 입은 사람인데 고향이 남쪽지방 사람이다.
이 양반이 중이고, 고향이 전라도 남쪽이다.
성주위에 푸른원숭이가 바다처럼 무수하게 깍깍거린다.
깍깍거리는 것은 비웃는다는 뜻인데 정도령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비웃는 다는 말이다.
아마 정다운 스님은 자기가 욕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생각 하나보다.
중은 중인데 중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땡초라는 뜻이다.
정다운스님은 자기가 땡초인줄 잘 알고 있었다.
그람 스님이 정도령이네? 하고 까르르 웃고 말았다.
요즘 우편으로 사주팔자 봐주면서 돈을 솔솔히 벌고 있단다.
천부경을 난문괴서로 만든 사람들... 정감록을 만화로 만든 사람들...
구름이가 바로잡으려 한다. 연약한 소녀의 몸이라 하나 만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름은.
청의자남래(靑依者南來)하니 성청원창해(城靑猿滄海)하고 사승즉비승(似僧卽非僧)이라.
청의, 즉 푸른 옷이 상징하는건 고래로 군인이었다.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노래가사에도 푸른 옷은 군인이다.
옛날의 포졸들 옷도 푸른색이었다. 즉, 정도령은 군인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장군이라는 뜻이다. 다음 귀절의 첫 글자인 성(城)이 이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은 군인 에게 필요한 것이지 스님들한테는 필요없는 것이다.
원래는 보루나 요새를 말하는 명사이지만 여기서는 막아낸다는 뜻의 동사로 쓰이고 있다.
너른 바다에 가득찬 푸른 원숭이를 막아낸다는 뜻이다.
바다에서 깍깍 거리는 원숭이가 어딨노?
뒤에 중은 중인데 중이 아니고, 라는 문장을 사족으로 달아 놓은 이유는
혹시 후대에 우매한 사람들이 청의자를 군인이라고 해서
무과급제나, 육사 출신의 오리지날 군바리로 착각할까봐 염려되어 붙여논 구절이다.
즉, 박대통령이나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군바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정도령의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너른 바다에 꽉찬 푸른 원숭이를 막아내는 일. 즉 서양의 그릇된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우리의 찬란한 정신세계를 지켜 나가는 것이 장차 올 정도령의 할 일이고
정도령은 그것 때문에 오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말세", 천표율사가 말한 "개벽"의 순간에
푸른 원숭이로 상징되는 서양문명의 공급자 유대민족과
666의 짐승인 동양정신의 승계자 한민족 사이에 아마겟돈이 있을 것이고
이때 우리 쪽의 지휘자가 되는 분이 정도령이다.
우리가 승리해서 동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개벽"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이겨서 서양정신이 세계정신이 되는 날 "말세"가 올 것이다.
"개벽"이냐 "말세"냐가 인류의 두 적자인 유대민족과 한민족에 의해서 판 가름 날 것이다.
이 승부가 인류사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앞으로 이 아마겟돈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구름은 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인간만의 전쟁이 아니라 천상의 모든 신들이 참가 하는 전쟁이다.
온 우주의 전쟁이다. 밤의 도시에 휘황하게 늘어선 십자가의 행렬이
푸른 원숭이들의 깃발들이다.
그들은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도 그 도도한 진군을 막을 자 없어 보인다.
저 십자가가 한민족의 하늘을 모두 덮는 날 그들은 승리의 나팔을 불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저들의 빛나는 승리도 이미 예언된 바였다.
그들의 참담한 최종적인 패배와 함께.... 이쯤하고,
정감록의 상세한 해설은 천부경 이후로 미룬다.
구름의 글이 끝날 때 쯤이면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정도령이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진도나가자. 다음 구절을 보자.
♣ 運三四成環五七(운삼사성 환오칠) ♣
한자 그대로 읽으면 삼이 움직여 사를 이루고, 오와 칠을 덮는다. 이다.
삼이 움직인다는 것은 석삼극, 즉 천지인 또는 음양중의 3극으로 나누어
진 태극은 고정되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상생 상극하며 돌게 되는데
이것은 천지의 운행이고 음양의 회전이다. 삼극은 움직인다 (運).
이 삼극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成) 것이 사(四)다.
이 사가 바로 기 (氣)이다.
기의 부실함은 바로 삼극의 움직임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기가 오와 칠을 둘러싼다(環).
오(五)는 오행(五行) 즉 모든 물질 과 제반 현상이고,
칠(七)을 칠기(七氣) 즉, 칠정(七情)인 마음이다.
태극이 나뉘어 삼극(삼신)이 되고
이 삼극이 조화로 운행하면 기가 생기며
이가 몸(물질)과 마음(정신)을 같이 둘러싼다고 하는
음양오행의 이론적 시원이 여기서 나왔다.
이후 문장들은 한자를 아는 중학생이면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평이한 문장들이다.
♣ 一妙衍萬往萬來(일묘행 만왕만래) ♣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고도 묘하여라.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도다.
♣ 用變不動本(용변 부동본)♣
세상만물이 그 쓰임(형태, 모습)이 변해도 근본자리는 바뀌지 않음이니.
♣ 本心本太陽(본심 본태양)♣
근본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그리고 이 다음에 천부경의 결론이 되는 구절이 나온다.
♣ 昻明人 中天地一(앙명인 중천지일)♣
사람을 우르러 비추어라. 천지중에 으뜸이니라.
이 지구상에 이보다 더 인간을 존중하는 종교나 사상은 찾아볼 수 없음 이다.
해서 석가는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표효했다. 한 생명이 우주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문장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하지만
천부경 이야기는 끝이 안 났다. 휴, 겨우 천부경 여든한글자의 글자플이를 끝냈다.
내일부텀 이틀동안 어디 다녀와야하기 때문에 여기 못들어올 것 같아서 서둘러 쳐 올렸다.
이제 천부경은 글자대로의 해석만 끝낸 참이다. 해설도 해야한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끌고가면 재미가 별로 없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다른 스토리들을 잠깐씩 끼워 넣는다.
천부경의 해설 중간에 중간에 삼청궁 선녀가 아는 세계사의 비밀을 흘려 나갈 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어느 민족이었을까?
많은 주연들이 무대위에서 조명을 받고 활약을 보이다가는 사라져 갔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은 중간에 사라지거나 나중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등장해서 영화 끝날때까지 나오는게 진짜 주인공이다.
물론 마지막에 죽는 수는 있지만. 그건 영화가 끝나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중간에 죽어버리는 영화는 아직 못 봤다.
그렇다면 희랍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로마도 잠시동안의 주역이었지
진정한 주인공은 아니었다. 시황제의 진도 그렇고
진기스칸의 몽고도 마찬 가지다. 사라센도 대영제국도 미국도 모두 아니다.
세계사의 처음부터 등장하여 최후까지 남으면서
인류사라는 영화의 줄거리의 중심에 서있는 두 주인공이 있다.
화면에는 석양의 노을빛이 흐르고 두 주인공이 황야에 마주서 있다.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흐르고 두 주인공은 총을 뺀다.
둘중에 하나가 말을 타고 황야 저멀리 사라지면 영화는 끝이다.
인류사라는 서부극에서 이 두 주인공의 이름은 유대민족과 한민족이다.
엥! 무슨 황당한 소리?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정해진 신의 계획이다. 두 민족은 주인공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완전히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두 민족은 지구상에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류였다.
이 과정의 비밀은 다음에 "선천기"를 올릴 때 상세히 들려 드리겠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이 두 민족으로부터 뻗어나간 방계가족들이다.
물론 상고시대에 이 두 민족은 지구의 지배자였다.
한쪽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대서양을 지배했고, 한쪽은 아시아 전체의 지배자였다.
두 민족은 거의 같은 시기에 그들의 방계인 민족들의 강성 함에 눌려
역사의 조연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대민족은 이집트와 로마
배달민족은 황하유역의 황토인들에게 일시 그 주인공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액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꼭 악당들에게 잡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비참함에 빠진다. 그러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로 해서 스토리가 이어져 가야 한다.
두 주인공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건 복수를 위해 주인공이 잠깐 도피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세계사는 그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여나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이 세계는 그들 두 민족이 움직여 온 역사이다.
유대민족의 기독교가 지구의 절반쪽 역사를 결정지었고,
배달민족의 한사상이 나머지 절반을 유불선으로 움직였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앞세운 주인공들은 반짝 연기로 사라졌지만
이 두 주인공의 힘은 시종일관 세계를 움직였다.
두 주인공민족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 두개의 축이었던 것이다.
양대민족은 종교적으로 "선민사상"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의식은 이 두 민족만이 보이는 특질이다.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의 신이고 모세의 신인데 반해
우리의 신은 환인이요, 환웅이며 단군으로 이어졌다.
이 두 민족만이 신이 지정해준 땅을 가지고 있는 시오니즘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의 신이 지정해 준 땅은 가나안이요,
우리의 환인(하늘님) 이 지정해 준 땅이 신시로부터 발원한 한반도였다.
이 두 민족만이 상고시대부터 바꾸지 않는 유일한 가치를 유지시켜 왔다.
유대사상과 한사상이다.
이 두 민족만이 고등한 이념과 교리의 체제를 담고 있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바이블과 삼대성서(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가 그것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예언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것은 구약과 모든 세기이며 우리의 것은 신지와 정감록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류사의 마지막에 대한 개념과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말론을 "말세"라 하고 우리의 것을 "개벽"이라 한다.
그들과 우리는 비슷한 기간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 왔다.
그들은 땅을 잃은 채 역사(바이블)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고,
우리는 역사를 잃은 채 땅(한반도)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다.
이 두 주인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직전에
최후의 위기를 똑같이 맞는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말살의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왜인들에게 말살의 위협에 직면했다.
두 민족은 똑 같이 최후의 시련을 견뎌냈으며
이제 악당들에게 빼앗겼던 그들의 무기를 찾고 있다. 유대인들은 잃었던 땅을 찾았고,
우리는 잃었던 역사를 찾고 있다.
<땅을 잃고 영혼만으로 대지를 방랑하는 자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을 잃고 땅에 뿌리박혀 울던 자가 영혼을 찾으면 그것이 개벽의 시작이리라>고 한
신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바야흐로 두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단 둘이 마주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쪽이 정의이며, 어느 쪽이 불의일까? 다음 역사가 그것으로 결정되리라.
유대민족에서 발원된 기독교정신,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씨앗으로해서
마침내 열매를 맺은 서양의 문화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나는 그것을 <자유와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유의 정신은
근세 이후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꽃피었다.
평등의 사상은 필연에 따라 사회주의를 잉태하여 공산주의를 낳고,
반세기 에 걸쳐 평등의 아들이 지구의 반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초기 아담스미스를 비롯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창시자들이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음과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맑스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부경으로 시작된 한사상이 모든 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동양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화와 질서>였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질서의 전쟁이고, 평등과 조화의 전쟁이다.
<자유와 평등>이 승리하면 말세요, <조화와 질서>가 승리하면 개벽이 될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남녀가 조화하는 사회간의 전쟁이요,
아버지와 아들이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지간의 질서가 엄정한 사회간의 전쟁이다.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계와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간의 전쟁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유로운 문명과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문명 간의 충돌이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와 질서> 이 둘 중에
앞으로의 인류가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종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인류를 몰락으로 인도할 것이고,
<조화와 질서>가 인류를 질곡에서 끌어내는 구원의 밧줄이 될 것이다.
다음 세기의 개벽은 인류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음이 양을 지배하여 둘로 가르면 후천개벽의 징조이다."
신지의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하는가?
음의 인류, 서양인들이 양의 인류의 적자인 한민족을 지배해서 둘로 갈라 놓는다는 말이다.
오늘의 분단상황이다. 반은 평등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자유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다.
"양이 음을 초극하여 하나가 될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이 예언은 통일한국이
남쪽의 천민자본주의와 북쪽의 교조사회주의를 동시에 극복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에 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와 평등에 따른 강제행복의 공산주의, 어느 쪽도 아닌
<조화와 질서>에 바탕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국가의 형태가 후천사의 세계인류의 따라오는 바가 될 것이다.
타골이 말한 동양의 횃불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감록이 말하고 있는 "개벽"의 요체이다.
우리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다음의 세기는 찬란한 동양정신, 한사상의 세기이다.
한민족은 인류사의 주인공으로 찬란하게 복귀하게 될 것이다.
다시 천부경으로 돌아가자.
천부경은 그 내용이 길지 않으면서도 우주와 신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불교의 8만대장경을 200여글자로 압축한 것이 <반야심경>이다.
이 <반야심경>의 내용을 여든한글자로 압축하면
천부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반야심경을 한글자로 줄이면 <心>이다.
천부경을 한글자로 줄이면 <人>이다.
천부경의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우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 현재 우주물리학은 시작이 있는 세계,
즉 "빅뱅"이라 말하는 대폭발이론 으로부터 그게 전부가 아니다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즉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폭발설 이후에 거품우주, 다원우주이론 등이 폭 넓은 지지를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현대 우주물리학은 결론의 가닥을 "시종이 없는 우주" 쪽으로 잡아가고 있다.
천부경이 대개 종교적인 경전으로 생각하는데, 이 천부경에 신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불교의 가르침도 신은 종속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내세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구원의 희망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하늘, 즉 우주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이 없이 영원하는 우주이다.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태양과, 달과, 염소와, 독수리와, 뱀을 신으로 받들고,
신들의 기쁨을 위해서 인간의 심장을 바쳤던 때에
한민족은 이러한 졸렬 유치한 종교관이나,
신관으로 부터 훨씬 높은 차원에 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민족은 우상을 세우지 않았던 민족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 에 불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성한 장소인 소도는 그저 평평한 마당에 작대기 하나(솟대) 세워 놓은 것이었다.
그 제사의 성격은 신에게 봉행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늘님을 모시고
산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잔치였다. 인간을 벌하는 신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모든 민족은 신앞에 죄의식에 사로잡힌채 두려운 심정으로 나아갔다.
한민족은 원래 신앞에서 더욱 명랑한 민족이었다. 신을 공경했지(敬天),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에 대한 공경은 인간에 대한 사랑(愛人)의 다른 방법이었다.
敬天愛人의 밝은 마음이 우리민족의 종교관을 형성한 것은
환인천제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져온 천부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신(그것이 우주건 사람이던 간에), 질투하는 신, 시험(test)하는 신,
분노하는 신, 복수하는 신, 편드는 신, 파괴하는 신, 벌주는 신이란 개념은
우리 민족에게는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었다. 우리 민족이 알고있는 신은
그렇게 촐삭거리는 신이 아닌 것이다.
우주의 본질 다음으로 천부경이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하늘의 기가 형상으로 나타난 것, 이것이 인간이다.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이라 말하고 있다. 인간을 신을 위해 봉사하는
피조물로 여기는 대부분의 종교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천부경으로 시작된 하늘의 개념이 지배한 고대동양에서는
신을 위한 건축물을 짓지 않았다.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교의 사원이나 탑들은 부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들이다.
부처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쁘기 위한 것들이다.
신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삼신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천지인의 삼신사상이다. 삼일신고야 말로 종교적인 모든 경전의
윗자리에 놓일만 하다. 하나님을 흙 빚는 도자기 공으로 만들어버린
구약을 어찌 고결한 한 사상에 비할 것인가?
<최종정리>
♣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이니
♣ 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 뉘어도 근본은 변함이 없고
♣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
하늘 땅 사람은 모습은 다르되 근본은 같으니라
♣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
하늘의 정기가 충만해지건만 담을 상자 없어 사람으로 변하노라
♣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
삼극이 돌고돌아 24절기를 만들고
♣ 運三四成環五七(운삼사성 환오칠) ♣
삼극의 조화로 기가 몸과 마음을 감싸노니
♣ 一妙衍萬往萬來(일묘연 만왕만래) ♣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도다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구나
♣ 用變不動本(용변 부동본)♣
만물의 쓰임은 변해도 근본은 변치않고
♣ 本心本太陽(본심 본태양)♣
근본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 昻明人 中天地一(앙명인 중천지일)♣
사람을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간에 으뜸이니라.
♣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는 우주이니라."
"천부경 해석 논란, 이제 종지부를 찍자"(상)
<기고>벽운 이경숙이 전하는 천부경의 올바른 이해<상>
"천부경에 사용된 숫자는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명확"
<천부경>은 신시(神市) 시대에 환웅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그보다 더 앞선 환인의 가르침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확인할 길이 없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천부경>은 통일신라시대에 최치원이 백두산 인근에서
옛글자로 새겨진 비석을 발견하고 한자로 이를 옮긴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도 정사(正史)에 기록된 것은 아니고 몇몇 야사의 기록에 전하는 것이다.
<천부경>의 저자와 기원, 유래에 대하여는 더 이상 밝힐 방도나 연구의 단서가 없고,
다만 과제로 남은 것은 이 경전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천부경>은 아주 짧은 경으로 최치원이 한자로 옮겼다는 내용은 글
자 수가 여든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한문으로 읽어 뜻을 알 수 있는 구절도 있지만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숫자로 이루어진 구절들은 한 눈에 뜻이 잡히지 않는다.
이 숫자로 된 구절들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이론이 분분해서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 틀리고,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지금까지 천부경의 해석이라고 내놓은 책만도 수십 종이 넘고,
인터넷에 나도는 해석도 가히 수백 종에 달한다.
천부경을 선가수행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이도 있고,
하도와 낙서에서 기원을 구하는 이도 있고, 역과 오행에 끌어다 붙여 푸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해석도 논리의 비약이 심하고
각자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는 억지 이론이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논쟁거리도 못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천부경>의 의미를
<천부경>의 밖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자 81글자로 쓰여진 <천부경>의 원문에 담긴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읽으려고 하지 않고, <천부경>과 전혀 관계없는
동양의 신비로운 학설이나 추상적인 이론으로 풀려고 들었다는 것이다.
<천부경>의 원문은 많은 부분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로 되어 있어서
원문은 읽을 수가 없다고 포기하고 숫자의 의미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려고 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천부경> 연구의 주된 흐름이었다.
때문에 천부경에 쓰여진 숫자들은 어떤 방법이나 이론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증명할 길이 없고,
또 해석에 동원한 다른 학설과 이론들부터가 증명되지 않은 학설들이기 때문에
'이미 참이라고 증명된 명제를 전제로 하여 증명한다'고 하는
논리의 틀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역이나, 하도, 낙서와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해석에 동원한 이론들부터 정설이 없고 논리적인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그런 것들을 근거로 하여 해석한 <천부경>이
논리적인 방어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부경>에 대하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천부경> 81글자가 자체적으로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면
가치 있는 고고학적 유물로서 <천부경> 당대의 해석이 발견되기 전에는
'해석 불가능한 암호문'으로 덮어놓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천부경>이 81글자 자체로는
아무 뜻도 읽어낼 수 없는 내용인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천부경에 사용된 숫자들이 <천부경> 밖의 이론이나 학설과 결부해야만
의미가 살아나는 것인가 아니면 자체적으로 해석 가능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먼저 내린다면
<천부경>은 읽을 수 없는 난해하고 신비로운 암호가 아니라
극히 평이한 문장이며 그 의미가 대단히 명료하다는 점이다.
다만 서술문으로 기술하게 되면 대단히 길어질 내용을
수자를 이용하여 극단적으로 압축하여 기술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숫자로 이루어진
암호문처럼 보인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아주 명료한 문장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천부경>의 해석에는 어떤 외부의 이론이나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사상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천부경>을 가지고 이토록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안개 속을 더듬고 있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천부경>의 원문에 대한 해석은 이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왜냐 하면 <천부경>의 원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고
<천부경>의 독법(讀法)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외의 어떤 독법이 달리 나올 수가 없는 오직 하나의 독법이기 때문에
그것을 소개하고 천부경 원문에 대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
우선 천부경의 전문(全文)을 먼저 보자. .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析三極, 無盡本(석삼극 무진본)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一積十鉅, 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大三合六, 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運三四成, 環五七(운삼사성, 환오칠)
一妙衍, 萬往萬來(일묘연, 만왕만래)
用變, 不動本(용변, 부동본)
本心本太陽, 昻明(본심본태양, 앙명)
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첫 구절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이라는 다섯 글자다.
첫 구절부터 숫자가 나오기 때문에 첫 발짝을 떼기도 전에 막혀버리게 된다.
물론 일(一)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미루어놓고 문장을 그대로 읽을 수는 있다.
'1은 시작되었으나 시작되지 않은 1이다'라고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1'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면 이 문장은 암호이다. 만약에 수사기관이
간첩들 간의 통신을 감청했는데 '1을 죽여라'라는 지시문이었다고 하자,
이때 '1이 누구라는 것을 모른다면 '1을 죽여라'라는 지시문은
정보로서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수사기관은 총력을 다해
지시문 속의 '1'이 누구인가를 알아내야 그 사람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천부경>의 해석은 과연 '1'이 무엇이냐?를 밝히는 노력들이었다.
간첩의 통신문 속에 '1'이 누구라는 것이 들어있지 않다면
수사관들은 통신문 외의 첩보에서 '1'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청한 통신문의 다음 구절에 '1'이 누군가가 지칭되어 있다면
수사관들이 '1'이 누군가를 알아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통신문의 뒤 구절을 보지도 않고 첫 구절만 읽고 뛰어나가
'1'이 누군지 알아내려고 헤매고 다닌다면 이건 코메디에 가깝다.
<천부경>은 바로 다음 구절에 '1'이 무엇인지 바로 밝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부경>의 '1'이 무엇인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2'도 마찬가지고 '3'도 역시 그러하다.
<천부경>에 사용된 모든 숫자는 <천부경> 내에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명확하기 때문에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모든 <천부경> 해석자들은 숫자들의 지칭하는 바를
<천부경>이 말하는 그대로 읽지 않고 불필요할 뿐 아니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여러 학문과 신비론들에 결부시켜 억지춘향식의 해석을 해왔다는 것이다.
과연 <천부경>은 다음 구절에서 이 '1'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중)으로 계속 [이경숙 구름타운 대표]
"1만년전 우리 조상이 밝힌 우주의 실체"(중)
<기고>벽운 이경숙이 전하는 천부경의 올바른 이해<중>
"一始無始一, 천부경이 전하는 동양적 우주론의 핵심"
다음 구절은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이다.
여기서도 숫자가 나온다. 바로 '3'이다.
이 구절의 '3'은 무언가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부사나 수사로 쓰였다.
즉 셋으로 나눈다는 구절이다. 전체적인 의미는
'극을 셋으로 나누어도 본은 다하지 않는다'
혹은 '3극을 나누어도 본은 다함이 없다'로 읽을 수 있다.
이 문장에서도 '3'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음 구절을 더 보자.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다.
비로소 뜻이 명료한 문장이 나왔다. 이 문장의 해석은 어려울 게 없다.
그대로 읽으면 된다. 즉 하늘은 숫자로 표하면 '11'이고,
땅은 숫자로 표하면 '12'이고, 사람은 숫자로 나타내면 '13'이라는 말이다.
이 구절을 이것 말고 다른 뜻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직 한 가지 번역뿐이다.
'하늘은 일일(11)이요, 땅은 일이(12)요, 사람은 일삼(13)이다'라는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우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 수다.
11, 12, 13, 각각 하늘과 땅과 사람을 지칭한다.
여기서 '1'은 세 가지에 모두 들어있는 공통수이다.
이 공통수를 빼면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고유수가 1과 2와 3이 된다.
즉 <천부경>은 이 문장에서 앞으로 하늘과 땅과 사람을
1과 2와 3이라는 수로 표현하겠노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천부경>의 숫자를 가지고 헤맬 이유가 없다.
1은 하늘이요, 2는 땅이요, 3은 사람을 가리키는 수다.
이걸 알고 나면 의미를 몰랐던 첫 구절이 풀어진다.
'1'을 '하늘'로 읽으면 첫 구절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은
'하늘은 시작되었으나 시작되지 않았다'라고 읽을 수 있다.
이 문장에서 하늘을 우주라는 말로 바꾸면 그야말로 현대 우주물리학의 결론이 된다.
'우주는 존재하지만 시작은 없다.'
빅뱅을 우주의 시작으로 보는 우주물리학의 관점은 근래 들어 변하고 있다.
빅뱅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더 이상 생각지 않는다.
빅뱅조차 무엇인가 선행하는 것이 있다고 본다.
우리 우주 외에 공존하는 여러 우주가 있다는 가설이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때문에 이 우주는 본시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인 우주관이 수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경전에
이토록 소름끼치게 명료한 표현으로 담겨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첫 구절과 시종대구(始終對句)의 관계에 있는 마지막 구절을 같이 보면
뜻이 한층 명확해 진다. <천부경>의 마지막 구절은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이다.
따라서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은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라는
우주에 대한 직관이다. 바로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요, 결론이고, 정의이다.
천부경의 이 여섯 글자가 바로 동양적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시작이 없는 우주, 끝이 없는 우주. 이것이 1만년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밝혀 놓은 우주의 실체라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서양의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훗날 불가(佛家)의 세계관이 여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불교의 모순적(矛盾的) 설명인 반어법(反語法)의 유래를 이에서 찾을 수 있음이다.
반야심경의 핵심이 되는 유명한 구절인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같은 표현법인 것이다.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구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은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라는 불교의 통찰과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하늘, 끝나지도 않고 끝난 하늘'이란 천부경의 가르침은 의미뿐만
아니라 표현의 수사법적(修辭法的)인 기법까지도 쌍둥이처럼 닮은 것을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반어법에 의하지 않고는
석가모니도 이 세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광대무변한 우주가
한 알갱이의 티끌과 같다'는 말이나 '영겁의 세월이 찰나와 같다'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세계의 실상은 모순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그러한 모순의 토대 위에 서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짐에 따라,
환단시대의 우주관이 얼마나 무서운 통찰력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 끝남이 없이 끝나는 우주'는
오늘날의 우주물리학이 내릴 수 있는 결론과 다르지 않다.
과학은 우주에 대해서 이것과 다른 어떤 결론도 끌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우주의 생성 이유로 꼽는 대폭발(빅뱅)도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폭발의 원인이 되는 우주 알의 이전(以前)이 가정되지 않고서는
빅뱅에 의한 우주의 탄생도 있을 수가 없고, 중력에 의한 우주의 최후도
모든 것의 최종적인 마지막, 최후의 최후는 아닐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이것은 현대 우주물리학의
결론임과 동시에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양적 우주관의 근본이었다.
다음 구절을 보자.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이다.
여기서도 숫자가 두 개 나온다. '1'과 '3'이다. 뜻은 미루어놓고
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면, '1을 열겹으로 쌓는데(포개거나 겹치는 것),
상자가 없어서 3으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1'이라는 것을
열 번을 겹쳐 쌓았는데 그것(1)을 담을 상자가 없기 때문에 3으로 변해 버렸다는 소리다.
그런데 우리가 앞 구절에서 알게 된 '1'과 '3'의 의미를 대입하면
너무나 명료한 문장이 된다. 즉 '1' 대신에 하늘을, '3' 대신에 사람을 넣고 읽어보라.
'하늘을 열 번 쌓아도 담을 상자가 없으므로 사람으로 화한다'는 소리다.
조금 풀어서 말하면 '사람은 하늘의 기운을 겹겹이 쌓고 다진 것이다'라는 말이다.
하늘의 기운이 변해서 사람으로 화했다는 <천부경>의 천인관이다.
사람은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이 이미
<천부경>에 담겨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다음 구절은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지이삼인이삼)'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방법대로 읽으면 '하늘의 수는 23이요,
땅의 수도 23이요, 사람의 수도 23이다'가 된다.
여기서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대신하는 수가 전부 '23'으로 동일하다. 무슨 뜻일까?
먼저 나온 같은 구조의 문장인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과
나란히 놓고 보면 어렵지 않게 그 뜻이 잡힌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천지인 각각에 4개씩의 숫자가 쓰였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천(天)에 사용된 수 : 일일이삼(一一二三)
땅(地)에 사용된 수 : 일이이삼(一二二三)
인(人)에 사용된 수 : 일이삼삼(一二三三)
천지인은 각각 자기 고유의 수(천=1, 지=2, 인=3)를 두개씩 가지고 있고
자기 외의 두 가지 수를 하나씩 갖고 있다.
천(天)을 예로 들면, 천의 고유수인 '1'이 두 개이고,
땅의 고유수인 '2'와 사람의 고유수인 '3'을 하나씩 갖고 있다.
지(地)는 땅의 고유수 '2'를 두 개, 하늘과 사람의 수인 '1'과 '3'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고유수 '3'을 두 개,
천과 지의 고유수 '1'과 '2'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수로 표현된 위의 두 구절을 뜻으로 읽으면 이런 문장이 된다.
"하늘, 땅, 사람은 고유수 '1', '2', '3'이 서로 다른 수이듯이 각각 달라 보인다.
그러나 기실에 있어서 천, 지, 인은 근본이 같은 것이다.
각자의 고유수를 두 개씩 가지고 있으면서
나머지 두 가지의 고유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과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땅은 땅이면서 하늘과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과 땅의 본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설명해야 뜻이 통할 이야기를
<천부경>은 숫자를 사용해서 단지 12글자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장문의 설명도 사실 12개의 수를 이용한 <천부경>의 두 구절보다
적절한 표현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로 계속 [이경숙 구름타운 대표]
"동양정신의 모든 것이 바로 천부경"(하)
<기고>벽운 이경숙이 전하는 천부경의 올바른 이해<하>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이제 건너뛰었던 앞의 문장, 析三極無盡本(석삼극무진본)을 돌아보면 뜻을 알 수 있다.
"세 개의 극이 나뉘었어도 그 본은 다함이 없다(변함이 없다)"란 뜻이다.
이 문장에서의 3극(三極)은 바로 우주의 본체가 천지인으로 나뉜 것을 의미한다.
나뉘기 전에 합일된 상태의 우주가
진여(眞如), 실상(實相), 무극(無極) 등으로 말해지는 본(本)이다.
본이 세 개로 나누어진 것이 천지인의 삼신(三神)이다.
주역으로 말하자면 적청황(赤靑黃)의 삼태극(三太極)이다.
<천부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늘과 땅과 사람은
'1'과 '2'와 '3'이라는 숫자와 같이 각기 달라 보이지만
그 본성은 '1123', '1223', '1233'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면 <천부경>의 진의를 알 수 있다.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생칠팔구)'
큰 3을 합하면 6이 되고 7과 8과 9가 나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삼(大三)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가리키는 세 수인 1과 2와 3이다.
이 세 숫자를 합하면 모두 6이 된다. 때문에 합일된 상태로 말하면
하늘도 6이요, 땅도 6이요, 사람도 6이다.
<천부경>에서 천지인의 삼신을 수로 나타내면 '666'이라는 수가 된다.
이 역시 천지인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의 근본인 천인합일이 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7과 8과 9는 무엇일까?
문장의 전개상 이 숫자들은 각각이 특정한 사물을 지칭한다기보다
천지인이라는 삼신이 합일하여 이루게 되는
삼라만상을 숫자로 표현한 것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7,8,9는 천지인이 조화를 이룸에 따라 드러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이것은 무극이 음양과 중의 셋으로 나뉘면서 사상과 팔괘로 분화되어
만물이 생겨나는 동양의 우주생성론을 단 한 구절로 압축하여 표현한 문장이다.
이제 10개의 수 중에 1,2,3,6,7,8,9가 설명되었고 남은 것은 4와 5라는 숫자이다.
다음 구절에 이 두 수가 나온다. '運三四成環五七(운삼사성환오칠)'
3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구절의 전반부는 사람이 움직여 4를 이룬다는 뜻이 된다.
4라는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 역사 등이 4가 지칭하는 의미일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환오칠(環五七)은?
환(環)은 둥근 고리를 뜻하는 글자다. 싸고 도는 형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장을 번역해보면 '사람(3)이 움직여 문명과 역사(4)를 만드는데
그것을 5와 7이 둘러싼다'가 된다.
5와 7의 사이에는 6이 있고, 7, 8, 9는 삼라만상이다.
5와 7은 천지인 3신과 우주의 결합부분이 된다.
우주의 본이 천지인으로 나뉘면서 삼라만상이 있게 되고,
이 모든 우주는 천지인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수로서 도식한 모형이다.
그러니까 우주가 천지인만으로 된 것은 아니며
천지인(1,2,3)과 인간의 문명(4)과 나머지 부분(5,7,8,9)가 있으며
이것들이 대삼(6)을 사이에 둔 5와 7라는 수로서 결합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마치 둥근 고리처럼 천지인을 싸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모형이 도식화된 것이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다음 구절들은 읽기가 어렵지 않다.
'一妙衍萬往萬來(일묘연만왕만래)'
연(衍)은 넘칠 연이다. 그래서 하늘의 묘함이 넘쳐서 만 가지가 오고 간다는 문장이다.
여기서 오고 간다는 것은 '생겼다가 없어진다'는 뜻의 생멸(生滅)로 대치해도 무방하다.
'用變不動本(용변부동본)'
쓰임은 변해도 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말은 만물이 모두 하늘의 묘함이 넘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각기 모습이 다르고 쓰임이 다를지라도 그 근본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의 부연이다.
'本心本太陽昻明(본심본태양앙명)'
본마음과 본태양이 밝게 솟아오르니(~면)
'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천지인으로 나뉘어진 삼극이 다시 하나로 합일되는 과정이다.
사람의 본래 마음은 본래 태양이므로 이것(인간의 본성)이 밝게 솟아오르면
그 본성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는 외침이다.
마지막 문장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은
'하늘은 끝남이 없이 끝난다'이다.
첫구절인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과 댓구를 이룬다.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천부경> 81글자 중에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구절은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과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의 두 구절이다.
사람은 하늘의 기운이 변한 것이라고 한 인본주의 사상과
사람의 본심은 본태양과 같아서(自在佛性) 인간의 본성이 밝게 솟아오르면
하늘과 땅이 그 속에 실현된다고 하는 천인합일의 사상이 <천부경>의 핵심이다.
바로 동양정신의 모든 것이다.
비록 81글자의 짧은 경전이지만
그 속에 포함된 사상은 유불선의 정수 중의 정수이며
사서삼경과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이 압축된 위대한 경전이다.
<천부경>은 그 뜻을 읽는데 다른 이론과 학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보다시피 극히 명료하고 분명한 문장으로 쓰인 경전이다.
다만 후세인들이 읽을 줄을 몰랐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읽은 <천부경>을 한글로 옮겨보자.
최치원이 고문자를 한자로 옮긴 이래 실로 천년 만에 <천부경>을 한글로 옮긴다.
<한글 천부경>
하늘(1)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니
셋(1,2,3)으로 나뉘어도 본은 다함이 없어라.
삼신(천지인)은 본래 하나로써 서로 다르지 않으니
하늘(1)의 기운이 쌓여 사람(3)이 되도다.
천지인(1,2,3)이 합일하여 삼라만상(7,8,9: 물질세계)이 생하며
사람(3)이 애써 문명(4: 인간이 이룬 실존세계)을 이루면
신(5: 인간의 정신세계)이 이를 둘러싸나니
천지인의 합일(6: 인간이 이룬 물질적 정신적 성과의 총합)이
우주의 정신(1,2,3)과 물질(7,8,9)을 이어 세계를 이루도다.
하늘의 묘한 기운이 넘쳐 삼라만상이 생멸하고
각기 쓰임이 달라도 그 본은 하나로서 움직이지 않는도다.
본래 마음은 밝은 태양이니
인간이 본성을 솟구쳐 밝히면 하늘과 땅이 그 속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늘은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
반야심경은 글자 수가 260여자에 불과하지만 불법의 정수를 담고 있다.
8만 대장경의 방대한 내용을 260글자로 담아놓은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반야심경에 함축된 불교의 교리를 서술하여 설명하고자 하면
8만의 대장경이 필요해진다는 이야기다.
<천부경>은 비록 81글자이지만 그 내용은 동양정신의 에센스다.
유불선의 모든 사상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통찰의 철리가 이 속에 있다.
<천부경> 81글자에 담겨 있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풀어내면
사서삼경과 팔만의 대장경이 나오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하는 우주의 비밀이 나오게 되고,
인간의 가치와 존엄의 근원을 알게 된다.
전능한 조물주와 나약한 피조물로 이분되는 서양의 신관과 뚜렷이 대비되는
인내천의 위대한 외침이 이 속에 있다.
석가세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인간의 마음이 본래 태양과 같은 것이라고 갈파하고 있으며
이 본성은 바로 하늘과 인간이 같기 때문이며,
인간이 그 본성을 밝힐 때 인간의 내면 속에서 하늘과 땅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선도와 수련의 지고한 목표와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런 <천부경>의 숭고한 의미가 온갖 억측과 견강부회 속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갑론을박할 이유가 없음을 말하고 싶다.
<천부경>이 서로 다르지 않은 삼신의 모습을 말하는 수자는 ‘6’이다.
천지인이 합일된 상태를 수자로 표현하면 ‘666’이다.
이 숫자는 요한이 환몽 중에 목도한 짐승의 수다.
반그리스도의 이마에 찍힌 수를 요한은 ‘666’으로 보았다. 그
것은 바로 기독교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요, 상대인
동양정신을 상징하는 수인 것이다. 그
들이 말하기를 짐승의 수라 하나,
이는 바로 하늘민족의 수이며, 동양정신의 상징수인 것이다.
전능하신 조물주를 받들고 사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늘과 같은 존엄자로서의 인간이 우리들이다.
<천부경>을 가르친 환인과 환웅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바는
바로 우리가 곧 하늘이니 그 본성을 밝히라는 것이다.
이에서 우리는 모든 선도와 수련과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본래 태양인 우리의 마음을 앙명(昻明)하는 것,
밝게 치솟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임을 자각할 때
천신족인 한민족의 미래가 밝게 열릴 것이다.
<천부경>의 지고한 정신세계는 바로 한민족의 영성이며,
미래세계의 주인공임을 증거하는 신표이다.
2010년 정월에
창원의 서원에서 벽운 이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