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이마
- 박용철 / 『시문학』 창간호, 1930.3 -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눈 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 몸은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려
파란 불이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한 즐검이랴
* 작품해설 : 이 시는 시적 자아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2행 1연의 전 3연의 간
결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연의 첫째 행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둘째 행은 그 외로움을 달
래기 위해 벗 삼고 싶은 대상을 보여 준다. ‘-라도 있으면(있다면)’이라는 표현은 화자의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는 것으로, 화자는 그 대상을 각각 ‘산꽃’·‘귀뚜라미’·‘별’이라는 평
범한 사물로 제시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
앗기는 듯한 외로움’이라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출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둠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그 속에서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2연에서는 1연과는 다른 방식인 비유적 표현으로 외로움이 나타나 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자신의 몸
이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처럼 느껴진다는 진술에서 그가 겪고 있는 외로움이 가히 짐작된다.
섬뜩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한 마리
‘귀뚜리’만 있으면 외로움을 이겨내는 큰 기쁨이 되리라고 한다.
3연에서 외로움은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으로 나타난다. ‘파란 불’, 즉
예민한 신경으로 인해 잠을 재촉하면 할수록 머리 속이 초롱초롱해지며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같이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말한다. 이럴 때,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큰 즐거움이겠냐고 화
자는 자문한다. 화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왜 어
둠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이 시는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지만, 그런 대로 이
시가 읽히는 것은 바로 화자의 진한 호소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저 간단히 일제 치라하는
시대 상황으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는 19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의 과잉’에 박용철의 기교가 결합된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나가는 배
- 박용철 / 『시문학』 창간호, 1930.3 -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 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 희살짓는다 : ‘헤살짓는다’의 전라도 방언. 훼방을 놓는다.
* 작품해설 : 박용철은 『시문학』·『문예월간』 등 문예지를 주재하며 활발한 시작 활동을 전개하
였지만, 그의 작품은 그의 의욕적인 문단 활동에 비추어 볼 때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는 젊은이가 암울한 일제 식민지 현실을 눈물로만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담은
것으로,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서글픈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주제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며 언어 구사가 명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 시는 「싸늘한 이마」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시적(詩的) 완성도가 높아서라기 보다는 나라를 빼앗
기고 설움에 잠겨 있던 당시의 민족적 분위기에 영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시는 1연에서 식민지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그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으며, 2연에서는 떠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차마 떠날 수 없다
는 감성적 행동 사이에서 RuR는 고뇌와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로 인
식하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항구를 ‘떠나가는 배’에 비유하여 괴로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
다. ‘앞 대일 언덕’이란 배를 정박할 항구를 ‘떠나가는 배’에 비유하여 괴로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앞 대일 언덕’이란 배를 정박할 항구를 뜻하는 것으로 목적지도 없이 망망대해로 떠나야 하
는 괴로운 심정을 잘 보여 준다. 4연은 1연을 반복함으로써 의미의 강조를 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나 두 야 가련다’고 하며 미래 지향적 태도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갈등과 고뇌가 깔려 있다. ‘나 두 야’라는 특이한 띄
어쓰기는 바로 화자가 현실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러므로 몇 번씩이나 자신에게 ‘젊은 나이를 눌물로야 보낼 거냐’며 강변하지만, 그 내면의 의지는
극복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안개같이 물 어린 눈’을 글썽이는 인간적 나약함을 보인다. 우
리는 이러한 시적 화자의 모습을 통하여 일제의 수탈을 피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당대 유랑인
들의 비애와 슬픔을, 한숨과 눈물로써 보내야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괴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용철(朴龍喆, 1904-1938)
1904년 전라남도 광주 출생
1911년 광주공립보통학교 입학
1920년 배재고보 자퇴
1923년 토코외국어학교 독문과 입학,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30년 김영랑과 시 동인지 『시문학』 창간, 편집과 재정을 맡음
1931년 종합 문예지 『문예월간』 창간
1933년 순문예지 『문학』 창간
1938년 사망
시집 : 『박용철 전집』(1939)
본관은 충주(忠州). 아호는 용아(龍兒). 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 아버지 박
하준(朴夏駿)과 어머니 고광고씨(高光高氏, 혹은 長澤高氏)의 4남매 중 장남이다. 1916년 광주공립보
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하였
다. 그러나 1920년 배재학당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 귀향하였다.
그 뒤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도쿄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하
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하
였으나 몇 달 만에 자퇴하였다. 16세 때 울산(蔚山) 김씨 김회숙(金會淑)과 혼인하였다가 1929년 이
혼하고, 1931년 5월 누이동생 박봉자(朴鳳子)의 이화여자전문학교 친구였던 임정희(林貞姬)와 재혼하
였다. 재학 중 수리과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사귄 김영랑(金永郎)과 교우로 관계하면서 비롯되었다. 문단 활동 이외의 경력은 전혀 없다. 1930년
대에는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詩文學)』 3권, 1931년에는 『문예월간(文藝月刊)』 4권,
1934년에는 『문학(文學)』 3권 등 도합 10권을 간행하였다. 또한 그가 주재하였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 같은 시문학동인이었던 정지용(鄭芝溶)의 『정지용시집』과 김영랑의 『영랑시집』을 간행하
였다. 문단 활동으로는 자신이 주축이 된 시문학동인 활동과 ‘해외문학파’, ‘극예술연구회’ 회원
으로 참여하여 입센(Ibsen,H.) 원작의 『인형의 집』 등 연극공연을 위한 몇 편의 희곡을 번역하였
다. 정지용 등과 시집과 문예지를 간행하는 등 문학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집은 내지 못하
고 1938년 서울에서 후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30년 3월『시문학』 창간호에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싸늘한 이마」·「비내리는 날」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뒤로
『문예월간』·『문학』 및 기타의 잡지에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발표되지 않고 유고
로 전하여지다가 뒤에 전집에 수록된 작품도 상당수에 달한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어딘가 정박지를 찾아 떠
나가는 ‘배’에다 인생을 비유한 작품이다. 즉, 인정과 고향을 되돌아보는 현실과 ‘삶’의 행정(行
程) 속에서 아무런 마련도 없이 또 다른 정박지를 향하여 떠나가는 이상과의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1938년『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에 발표된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는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서 그의 시작이론(詩作理論)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는 같은 시문학동인
인 정지용이나 김영랑의 시를 못 따르지만, 『시문학』·『문예월간』·『문학』 등 문예지를 간행하
였고, 방대한 역시편(譯詩篇) 등을 통하여 해외문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한국 근대문학
사에서 큰 공적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서구문학사조에 편향되어 혼류를 이루었던 1920년대 문단을
크게 전환시켜 ‘살’과 ‘피’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보다 높은 차원의 시창작, 즉 ‘민족언어의 완
성’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유해는 고향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우산리에 안장
되었고, 광주공원에 영랑의 시비와 함께 그의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시비에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의 한 절이 새겨져 있다. 유작집으로 『박용철전집』 2권이 각각 1939·1940년 동광당서점에서
간행되었고, 대표적 평론으로 「효과주의비평론강(效果主義批評論綱)」(1931)·「문예시평(文藝時
評)」(1931) 등이 있다.
떠나가는 배 / 소프라노 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