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핀 마을
- 이호우 / <이호우 시조집>(1955) -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개화(開花)
- 이호우 / <이호우 시조집>(1955) -
꽃이 피네, 한 잎 두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석류(石榴)1
- 이호우 / <이호우 시조집>(1955) -
토장맛 덤덤히 밴
석새 베 툭진 태생
두견은 섧다지만
울 수라도 있쟎던가
말 없이 가슴앓이에
보라! 맺힌 핏방울
* 석새 베 : 석새삼베의 약어로 240올의 날실로 짠 베라는 뜻. 성글고 굵은 베를 이르는 말이다.
* 툭지다 : 굵어지거나 두꺼워지는 것을 말한다. 서러운 두견은 울 수라도 있지만 말없는 가슴앓이
석류는 울지 못하고 핏방울만 맺힌다는 것이다.
석류(石榴)2
- 이호우 / <이호우 시조집>(1955) -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속을
알 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정(秋睛)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 작품해설 : 석류는 예로부터 시나 그림으로 시인 묵객들이 즐겨 다루었던 소재이다. 초장은 그리
움, 중장은 고독, 종장은 애상의 이미지이다. 장지문을 열고 석류를 보고 있다. 알알이 익은 고독이
추정으로 터지고 한자락 가던 구름이 추녀 끝에 머물고 있다. 정운의 서정적 공간은 이렇듯 고요하고
아정하다.
달밤
- 이호우 / <문장>(1940) -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 고요하면서도 적막한 정서
* 금빛 노을 → 달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은유적으로 표현
* 돌아돌아 뵙니다 → 옛날을 회상하는 자아의 아쉬움과 그리움의 정서
* 정화된 초가집 → 속세의 더러움이 깨끗이 씻어진 초가집
* 조웅전 → 옛날 이야기, 우리나라 고전소설 작품
* 율 → 율시, 한시의 한 형태
* 온 세상 쉬는 숨결 → 온 세상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는 세계
* 이 밤 더디 새소서 → 환상의 세계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화자의 심정을 표출한 말
경북 청도군 청도읍 유천길 46 시조시인 이호우, 이영도 오누이 생가
바람벌
- 이호우 / 1955년 대구대학보(현 영남대) -
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
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삭막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보자고 아아 살아보자고
욕이 조상에 이르러도 깨달을 줄 모르는 우리
차라리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
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이 눈물겹다.
벗아 너마저 미치고 외로 선 바람벌에
찢어진 꿈의 기폭인양 날리는 옷자락
더불어 미쳐보지 못함이 내 도리어 섧구나.
단 하나인 목숨과 목숨 바쳤음도 남았음도
오직 조국의 밝음을 기약함에 아니던가
일찍이 믿음 아래 가신 이는 복되기도 했어라.
회상
- 이호우 / <문장>(1940) -
몹시 추운 밤이었다
나는 커피만 거듭하고
너는 말없이 자꾸
성냥개비를 꺾기만 했다
그것이 서로의 인생의
갈림길이었구나
* 이호우(李鎬雨, 1912~1970)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본명에서 취음하여 이호우(爾豪愚)라 하였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 아버
지는 이종수(李鐘洙), 어머니는 구봉래(具鳳來)이며, 누이동생 이영도(李永道)도 시조시인이다. 향리
의 의명학당(義明學堂)을 거쳐 밀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
나, 19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다. 1929년 일본 도쿄예술대학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 재
발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다음해 귀국하였다. 1934년에는 김해(金海) 김씨 김순남(金順南)과
혼인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52년 대구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1956년에는 대구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다. 한편으로는 시작
활동을 하여 지방문화 창달에 공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시작 활동은 1939년『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落葉)」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940년 『문장(文章)』 6·7호 합병호에 시조 「달
밤」이 이병기(李秉岐)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수상 : 1955년 제1회 경상북도
문화상, 경력 : 1968 영남시조문학회 설립, 1956 대구매일신문 편집국 국장, 논설위원, 1952 대구일
보 문화부 부장, 논설위원
1934년 김순남 여사와 결혼식 때의 모습
이호우의 「묘비명」
여기 한 사람이
이제야 잠 들었도다
뼈에 저리도록
인생을 울었나니
누구도 이러니 저러니
아예 말하지 말라
* 작품집으로는 첫 시조집 『이호우시조집(爾豪愚時調集)』이 1955년영웅출판사(英雄出版社)에서 간
행되었다. 이어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낸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
(休火山)』(1968)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호우시조집』 이후의 작품들을 모
아 엮은 시조집이다. 그의 시조관은 『이호우시조집』 후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여기서 한 민족,
한 국가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호흡인 국민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시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
다. 또한 국민시는 간결한 형(型)과 서민적이고 주변적이며 평명(平明)한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
였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추천 작품 「달밤」에는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아무 억지도, 꾸밈도, 구김도 없다.”는
선자(選者)의 말과도 같이 범상적인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범상적 제
재와 평이성이 초기 시조의 세계라면, 후기 시조 『휴화산』의 시편들은 인간 욕정의 승화와 안주하
는 경지를 보인 점이 특색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고전적 시조를 현대 감각이나 생활 정서로 전환시켜
독특한 시적 경지를 개척한 것이 시조 시단에 남긴 공적이라 할 수 있다. 편저로 『고금시조정해(古
今時調精解)』가 있다. 1972년 대구 앞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1955년 첫 작품집인 『이호우시조
집』으로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참고문헌>
「정형에의 향수와 일탈」(김창완,『한국현대시문학대계』22, 지식산업사, 1983)
「이호우론」(한춘섭,『시조문학』, 1976.12.)
「이호우론」(김윤식,『현대시학』, 1970.8.)
「이호우론」(김제현,『현대문학』, 1970.3.)
달밤(이호우) / 시낭송(김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