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 정완영 / <채춘보>(1969) -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 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鶴)처럼만 여위느냐.
가을아내
- 정완영 / <채춘보>(1969) -
한 잔 술 등불 아래 못 달랠 건 정일레라
세월이란 푸섶 속에 팔베게로 지쳐 누운
당신은 귀뚜리던가 내 가슴에 울어쌓네
저 몸에 목숨 있으면 얼마나를 남았으랴
내 눈길 가다 멎은 갈잎 같은 손을 두고
생각이 시름에 미쳐 길피 못 잡겠고나
젊음은 아예 무거워 형기처럼 마쳤느니
이제는 풀어 인 회포 용서 같은 백발 앞에
아내여 남은 날들을 서로 비쳐 보잔다
고쳐보니 임자가 늙어 어머님을 닮았구려
가난도 눈물에 실으면 비파일시 분명한데
둥글어 허전한 달이 이 밤 홀로 떠간다
설화조(說話調)
- 정완영 / <채춘보>(1969) -
내 만약 한 천년 전 그 세상에 태어 났다면
뉘 모를 이 좋은 가을 날 너 하나를 훔쳐 업고
깊은 산 첩첩한 골로 짐승처럼 숨을 걸 그랬다
구름도 단풍에 닿아 화닥화닥 불타는 산을
나는 널 업고 올라 묏돌처럼 숨이 달고
너는 또 내품에 안겨 달처럼 잠들 걸 그랬다
나는 범 좇는 장한(壯漢) 횃불 들고 산을 건너고
너는 온유의 여신 일월에나 기름 부며
한백년 꿈을 누리어 청산에나 살걸 그랬다
나무는
- 정완영 / <채춘보>(1969) -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한 겹씩 자꾸 벗어 내립니다
다 벗고 더 넓고 높은 하늘을 얻어 입고 섰습니다.
애모(愛慕)
- 정완영 -
서리 까마귀 울고 간 북천은 아득하고
수척한 산과 들은 네 생각에 잠겼는데
내 마음 나뭇가지에 깃 사린 새 한 마리
고독이 연륜마냥 감겨오는 둘레 가에
국화 향기 말라 시절은 저물고
오늘은 어느 우물가 고달픔을 긷는가
일찍이 너와 더불어 푸르렀던 나의 산하
애석한 날과 달이 낙엽 지는 영마루에
불러도 대답 없어라 흘러만 간 강물이여
애모(정완영) / 노래(테너 임응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