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의 낙조
- 부제 : 탐라시조기행초 / 월하 이태극, 1957 / <꽃과 여인>(1957) -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圓球)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남아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더니
아차차, 채운(彩雲)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삼월은
- 1984 중학교 교과서 수록 / 월하 이태극 -
진달래 망울 부퍼 발돋움 서성이고
쌓은 눈도 슬어 토끼도 잠든 산 속
삼월은 어머님 품으로 다사로움 더 겨워.
멀리 흰 산이마 문득 다금 언젤런고
구렁에 물 소리가 몸에 감겨 스며드는
삼월은 젖먹이로세, 재롱만이 더 늘어
산딸기
- 등단 시조 / 월하 이태극 / 1955.9.26. 동방산방 -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가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삼춘(三春)을 숨어 살아
되약볕 이 산 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 지이다.
짝은 떠나고
- 월하 이태극 / 1991.7.10 하계우사에서 -
팔순 한 평생을 사는 듯 살도 못하고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떠나간 그대 모습
봉긋한 무덤에 누워 부슬비에 젖는가
피려던 열여덟에 귀밑머리 풀고 와서
어렵사리 살림살일 말없이 꾸려주고
사남맬 키워 키워서 보란 듯이 세웠고
회한은 비바람 되어 문득 문득 감겨온다
아침 저녁 상머리에 앉은 듯 어리는데
그 미소 안개 속으로 아스라이 숨는다
자화상(自畵像)
- 월하 이태극, 2000 -
내 삶의 나래를 펴 구름 속에 안겨 본다.
대현(大絃)의 저변(底邊)에서 자현(子絃)의 끝까지
희한이 가락지으며 뭉게뭉게 떠돌 뿐.
내 육신을 추수리어 바람 속에 띄어 본다.
남루도 겨웁게 한낱 가랑잎인걸.
뒤돌아 자취를 밟으며 바라보는 십자탑(十字塔)
내 마음 덩이채로 물결에 휑궈본다.
쥐어짠 굽이굽이 역겨울 뿐인 것을
조각난 거울 앞에서 모아 보는 이 모습.
시조송(時調頌)
- 월하 이태극 / 1955.4.20. 동망산방 -
시조가 하도 좋아 나도 얽어 보던 것이
그 벌써 한 20년 어제론 듯 흘렀구료
오늘 또 한 수 얻고서 아이인 양 들레오
이루 다 못 푼 정 그려도 보고파서
옛 가락 그 그릇에 삶의 소리 얹어 보니
새로움 더욱 더 솟아 내 못 잊고 살으오
묶는 듯 율의 자윤 내일 바라 벋어나고
부풀어 말의 자랑 갈수록 되살아나
이 노래 청사를 감넘어 보람쩍게 크리라
월하 이태극 선생님 별세
- 월하 이태극, 1957 -
월하 이태극 선생님의
부음에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4/26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시조시인 李泰極씨(1913-2003) 별세 - [조선일보](2003. 4. 25)
"수평선 너머로 돌아간'낙조(落照)'의 시인"
“서해상의 낙조”의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분당 보바스 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이씨는 4년 전 뇌경색으로 입원한 후 집에서 요양해왔으나 병세가 악화돼 지난해 말 재입원했다.
강원도 화천 출생인 이씨는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 전문부를 수학하고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씨는 25년간(1953∼1978) 교수로 재직한 이화여대에서 지난 74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씨는 1955년 한국일보에 <산딸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60년 [시조문학]을 창간해 시조운동을 펼쳤으며,
1965년 창립된 한국시조작가협회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후 한국시조시인협회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부회장,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 노계 박인로의 조선시대 시가에서부터
가람 이병기, 일석 이희승, 노산 이은상까지 근대 시조에 이르는 전통을 계승하여
문학계에 시조의 지위를 고양하는데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꽃과 여인> <노고지리> <소리 소리 소리> <자하산사 이후> 등 네권의 시조집을 남겼다.
3년 전엔 시선집 <진달래 연가>가 출간됐다. 그의 시조는 ‘대부분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를 소박하게 다루면서’ 감흥을 자아냈다.
동시에 인간의 삶을 자연을 통해 반추하는 관조적 예술세계를 보여줬다.
<서해상의 낙조>를 비롯해 <삼월은> <산딸기> 등은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화천댐 근처에 시비 ‘산딸기’가 세워져 있다.
그는 시조집 외에 수필집 <저 창가의 하얀 그림자>, 문학이론서 <시조개론>,
<고전문학연구논고> 등 다수의 저술을 남겼고, 노산문학상, 동곡문학상, 외솔상, 중앙시조대상,
육당시조학술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한민국 문화훈장(보관장) 등을 받았다.
시조 시인인 이태극은 강원도 화천군 출신으로, 자연과 이간의 공존을 추구하는 시조를 보여주었다.
대표 시조로는 감각적인 시어로 표현된 '三月은'과 '山딸기'가 있다. 강원도 화천군에는 이태극의 문
화 세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태극 문학관'이 있다. 강원도 화천군의 시조 시인으로 이태극이 있
다. 호는 월하(月河)다. 이태극은 1913년 7월 16일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에서 출생했다. 1928
년 양구보통학교, 1933년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34년 4월까지 강원도청 농무과에서
근무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통신교육으로 와세다 대학 전문부에서 수학했다. 1934년 5월부터
1945년 10월까지 강원도 춘천, 홍천, 인제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47년 서울대학교 국어국
문학과에 편입, 1950년에 졸업했다. 동덕여자초급대학 강사,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이화여대 교수
를 역임했다. 1953년 『시조연구』에 시조 「갈매기」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시
조전문지 『시조문학』 창간, 1965년 한국시조작가협회를 창립했으며 1966년 한국문인협회 산하에 시
조 분과를 창설했다. 동곡문화상(1978), 외솔상(1983), 중앙시조대상(1985), 육당시조상(1986), 대한
민국문화예술대상(1990), 대한민국 문화훈장(1994)을 수상했다. 2003년 4월 24일 사망했다. 이태극의
시조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추구하거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운율 안에
현대적인 감각을 담은 이태극의 시조는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태극은 창작활동 뿐만 아니라 이론
연구를 통해 시조가 서구의 시와 다르지 않음을 밝히면서 시조 형식의 유연함을 강조하고 시조의 음
악성, 곧 창(昌)을 회복하여 대중성을 획득할 것을 제안하며 시조 문학의 발전과 부흥을 시도했다.
또한 시조전문지를 창간하거나 한국시조작가협회, 한국문인협회 시조 분과를 창립하는 등 시조 문학
의 입지를 다지고자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했다. 이태극은 『현대시조선집』(이병기 공편, 1958),
『시조개론』(1959), 『시조연구논총』(1965), 『고전문학연구논고』(1973) 등의 연구서와 『꽃과 여
인』(1970), 『노고지리』(1976), 『소리‧소리‧소리』(1982), 『날빛은 저기에』(1990) 등의 시조집을
발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해상의 낙조」, 「삼월은」, 「산딸기」, 「갈매기」, 「교차로」, 「인간가도」
등이 있다.
산딸기(이태극) / 시조 창(동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