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성안길17(수어장대 전나무) –
이서가 온조대왕 곁에서 지키듯이
산성을 아우르는 서장대 호위하는
사계절 푸르고 곧아 살아있는 수호신.
배달9222/개천5923/단기4358/서기2025/04/11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숭렬전(崇烈殿) 전설 :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BC 18~AD 28)과 1624년(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 당
시 책임자였던 수어사 이서(李曙, 1580년~1637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인조
가 남한산성으로 옮겨와 청나라 군사와 맞서 싸울 때였다. 그날도 인조는 밤이 깊도록 청나라 군사
와 대치하면서 우리 군사들을 돌보다가 몹시 피곤하여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웬 사람이 나
타나“적이 높은 사다리를 타고 북쪽 성을 오르는데 어째서 막지 않는가" 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
다. 난데없는 사람의 출현에 놀란 인조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는 성주 온조대왕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인조는 꿈에서 들은 대로 즉시 북쪽 성 근처를 살펴보게 했다.
그랬더니 과연 꿈속에서의 예시와 같이 청나라 군사가 북쪽 성벽을 오르는 것이었다. 인조는 즉시 군
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몰래 성벽을 오르던 청나라 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온조대왕의 은
혜를 입은 인조는 병자호란이 끝나 서울로 돌아온 이후, 남한산성에 온조대왕의 사당을 짓고 봄·가
을로 정성껏 제사를 올렸다. 인조가 제사를 지낸지 며칠 안 되어 온조대왕이 다시 꿈에 나타났다. 그
리고 "대왕이 내 사당을 지으시니 진실로 감사하오. 그러나 혼자 있기 몹시 외로우니 대왕의 신하 중
에서 명망 있는 신하 한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시오"라고 말했다. 아침에 잠에서 깐 인조는 이 꿈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뜻 밖에도 간밤에 남한산성의 총융사로 성을 쌓는데 공을 세운 이서가 죽었
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인조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여기고, 이서를 온조대왕 묘에 함께 모시도
록 했다. 온조대왕이 이서를 선택해 데려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
자인 이서를 같이 모시게 했다고 한다.
덧붙임)
성안길17(수어장대 전나무)
(1)
본 까페를 자주 찾아주시는 조재국 선생님이
수어장대의 우남 이박사님이 식수하신 전나무의 안부를 물었을 때
사실 유심히 보지 못해 오늘 잘 살펴보러 오른 산성길.
우남(雩南)의 남한산성 사랑은 어디서 연유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기에 기념식수를 하시고
우남의 80세 생신에 맞추어 송수(頌壽)를 기념하는 송수탑까지 있었고
수원에서 출발하여 송수탑까지 도착하는 76.5km의
우남 생신일에 매년 개최하는 마라톤 대회까지 있었다는 자료를 보면
이박사님은 병자호란에 청군이 성안에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한
남한산성의 역사를 잘 알고 계셨을 것이 틀림없었다고 사료.
(2)
남한산성하면
금림조합을 주민 자치로 결성,
보호하여 가꾸어온 소나무가 대표수인데
우남은 왜 기념식수로 전나무를 택했을까?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는 송수탑 터에 같은 수령의 전나무가 있고
山下의 남한산성 초등학교 정문의 웅장한 2그루의 전나무가 있는걸 보면
당시에는 구불구불한 소나무 보다는 곧아서 절개를 상징하고
키가 커서 웅장하고 비슷한 한국특산 구상나무보다 저지대에 잘 적응하고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하는 전나무를 기념식수로 애용했음을 짐작하겠다.
배달9222/개천5923/단기4358/서기2025/04/11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행궁의 아침(06:55)
2) 침괘정에서 내려다 보는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07:00)
3) 개별꽃
4) 올괴불나무 새순과 열매
5) 영조27년(1751) 유수 이기진 복층, 헌종2년(1836) 박주수 글씨 守禦將臺(07:35)
6) 이승만박사가 1953. 9. 6 기념식수한 전나무(植樹 당시 5년생이었다면 대략 수령80년)
6_1) 1912년 개교, 해공 신익희 母校인 유서 깊은 남한산초등학교 정문의 전나무(23/07/20 촬영)
6_2) 송수탑지의 전나무(25/04/13 촬영)
7) 표지석 앞면("리대통령 각하 행차기념식수"), 뒷면("단기四二八六년九월六일")
8) 無忘樓무망루 : 조선 영조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廣州留守李箕鎭)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內便)문루로서 그 편액(扁額)이 2층누각에 있어 1989년 전각을 건립하고 이 안에 현판(懸板)을
새로 설치, 일반인이 볼 수 있게 하였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
양(瀋陽)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北伐)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
에서 영조가 이름지은 것이다.
9) 동남 축성 책임자였던 이회와 그 부인, 서북성을 쌓은 벽암 스님을 모신 사당인 淸凉堂청량당
10) 國淸寺국청사 발굴중(07:50)
11) 서문 앞 진달래
12) 아침햇살이 비치는 재정비한 북문(08:20)
13) 북문에서 내려다 보는 북측 稅米세미길
14) 개관 박두한 남한산성역사문화관
15) 돌아온 행궁(08:30)
16) 흰색(25/04/11, 행궁-침괘정-수어장대-서문-북문-행궁) 청색(25/04/13, 행궁-송수탑-국청사-행궁)
You and me / Day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