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에 관한 조선시대 일반 민중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대사는 절간에 몸을 매어두고 있었지만 국란을 당하자 창칼을 들고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그래서 국왕의 총..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정감록’에 수록된 예언서의 저자들 중에도 비교적 낯선 인물이 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계 역시 조선시대엔 상당히 유명한 예언가였다. 서계가 살던 16세기는 우리 ..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7)무학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7)무학대사와 ‘정감록’ 조선왕조엔 세번의 위험 닥친다는 ‘三絶運’ 무학은 조선의 수명 연장하려 선바위서 기도 무학의 풍수·예언능력은 술사들이 부풀린것 ‘정감록’엔 이른바 삼절운(三絶運)이 예언돼 있다. 조선왕조의 운수가 세 번 끊길 위험에 처한..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6)북창 정렴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6)북창 정렴과 ‘정감록’ ‘북창비결’은 조선 명종 때 도사(道士)로 유명한 북창(北窓) 정렴(鄭 1506-1549)이 썼다고 하는 비결인데, 난해한 부분이 많다. 이 예언서는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때부터 줄곧 ‘정감록’의 일부가 ..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정감록’엔 ‘도선비결’(道詵 訣)이 포함돼 있다. 한국 풍수지리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신라말의 선승(禪僧) 도선의 저작이란 이야기인데, 도선(827∼898)의 스승이라는 중국 당나라의 고승 일행(一行)이 한국의 미래를 예..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언제 누가 무슨 예언으로 세상을 움직였을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언자의 계보도 많이 달라졌다.20세기 초엔 손병희를 비롯한 신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정감록’을 근거로 ‘후천개벽’을 예언했다. 그에 앞서 조선 후기에는 풍수지리와..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정감록’ 때문에 민중이 울었다. 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이용해 자기 한 몸의 안락과 치부(致富)를 꾀하는 못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감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지배층의 평가는 늘 부..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정감록은 조선후기 한국에 전파된 천주교와도 만났다? 서쪽에서 들어온 새 학문이라 당시엔 서학(西學)으로 불린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에 관심을 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1) 숨은 키워드‘궁궁을을’(弓弓乙乙)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1) 숨은 키워드‘궁궁을을’(弓弓乙乙) 1894년 4월27일, 전주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전봉준은 휘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특명을 내렸다. 궁을(弓乙)이란 부적을 불살라 동학농민군들에게 먹이라는 것이었다.“궁을부는 신통력이 있다. 비 오듯 쏟아지는 관군의 총탄.. 08 鄭監錄 산책 201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