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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알 속 '1억년 전 공기' 분석해보니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18. 13:11

[최보식이 만난 사람] 8500만년 전 공룡

'코리아노사우루스' 복원한 공룡전문가 허민

  • 입력 : 2010.11.07 23:03 / 수정 : 2010.11.08 00:10

"공룡알 속 '1억년 전 공기' 분석해보니 산소량(함유율29%, 요즘 대기는 22%) 지금보다 많아"
최대 익룡 해남이크누스 등 과거 한반도는 '공룡 천국'…당시 韓·中·日은 붙어 있어
공룡은 6500만년 전 사라져…인간 나타난 건 300만년 전…생각하는 단위가 다른 연구


 

“진공플라스크에 공룡알을 넣고 불을 서서히 지폈다. 알 속의 공기를 빼내 분석하니, 산소 함량이 29%였다. 비가 와도 산불이 날 정도의 산소량이었다. 우리가 사는 대기 속 산소는 약 22%다. 나는 ‘1억년 전의 공기’를 처음 발견했다는 흥분에 싸였다.”

우리는 동갑의 나이였지만 서로 사용하는 시간 단위가 달랐다. ‘공룡전문가’로 통칭되는 허민 교수(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소장)는 수천만년 전·억년 전 단위에 익숙했다.
그는 8500만년 전의 한반도 공룡 ‘코리아노사우루스’를 지난주 실물로 복원해냈다. 견갑골·상완골·오훼골·흉골 좌우 한 쌍과 등골 8개, 갈비뼈 9개 등의 화석으로 말이다.

이 공룡은 2.4m 몸통으로
전남 보성군 득량면 호숫가에서 어슬렁거리며 나뭇잎을 뜯었다. 처음에는 초식공룡 ‘하드로사우루스’로 보였으나, 네 발 보행을 했던 전혀 다른 종이었다. 그는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두 발로 뛰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 꼬리를 흔들며 네 발로 왔다갔다했다”고 시연했다. 그래서 ‘코리아노사우루스’라는 새로운 학명을 얻었다고 했다.

나는 건조한 사람이라 그런 ‘공룡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는데, 점점 그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전남 보성에서 ‘코리아노사우루스’ 뼈와 함께 200여개의 공룡알 화석이 발굴됐다. 대부분 깨졌거나 퇴적물로 채워진 껍질이었다. 그런데 딱 한 개가 알 모습 그대로였다. 알 속에 든 물질, 부화하기 전의 공룡을 잘 하면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흔들어보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알 속의 성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지만 원형을 훼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공기를 빼보기로 한 것이다. 알 껍질에는 숨구멍이 있으니까. 그 실험에만 여섯 달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금방 의문을 드러냈다.

허민 교수는 "중생대 때 큰 호수였던 경상남북도와 남해안에서 공룡들이 놀고 있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공룡모형은 '코리아노사우루스' /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1억년 전 공룡알의 숨구멍이 제대로 작동할까?

“숨구멍이 막힌 곳도 많았다. 하지만 알 속 공기를 빼낼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백악기(1억3800만 년 전~6500만 년 전)의 공기’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 저널에 보냈다. 하지만 게재되지 못했다. ‘어떻게 이를 백악기의 공기라고 입증할 수 있는가’라는 회신이 왔다.”

―공룡알의 숨구멍으로 그 뒤의 공기도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바로 그 지적이었다. 문제는 연구소에서 그걸 분석하면서 공기를 모아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걸 보관했어야 하는데…. 천추의 한이었다. 그 뒤 공룡알 껍질의 성분을 분석하니, 거기서도 29% 산소가 나왔다.”

―그 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의 비밀은 못 풀었나?

“공기를 빼낸 뒤 CTS 촬영으로 내부를 들여다봤다. 전남대 병원에 ‘환자’로 등록해 알을 들고가서 몇 차례나 영상을 찍었다. 속은 비어 있었다. 다만 껍질 안쪽에 뭔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부화하기 전의 물질이 아닐까 기대했다. 결국 알을 잘랐다. 하지만 그건 뼈가 아니라 광물이었다.”

국내에서 발굴된 공룡 알의 평균 지름은 15~44cm다. 초식 공룡알은 축구공처럼 둥근 데 비해, 육식 공룡알은 럭비공처럼 타원형에 가깝다. 공룡은 한 둥지에 알을 20~30개 낳았다. 공룡알은 같은 간격으로 배열돼 있었다고 한다.

―공룡과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그 때문에 공룡은 우리에게 더욱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가?

“상상 속에 나오는 것은 용(龍)이다. 공룡은 ‘과학’이다. 실재하는 것이다. 비록 살아 있는 공룡을 만나지 못했으나, 공룡의 뼈와 알, 발자국이 나오고 실물이 복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공룡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정말 근거 있는 설인가?

“공룡은 지구에서 1억6000만년을 살았다. 무지무지하게 오랜 세월 동안 공룡은 지구 곳곳에 퍼져 있었다. 우리나라에만 많이 산 것이 아니다. 중생대 쥐라기(2억5000만년 전~1억3800만년 전) 때 크게 번성했다. 한반도에서는 그 뒤 백악기 때 많이 살았다. 공룡 전체로 보면 쇠퇴하던 시기였지만. 그때 지구는 하나의 ‘초(超)대륙’으로 이뤄져 있었다.
중국 한국 일본은 하나로 붙어 있었다. 국경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지금의 한반도 모습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해와 동해의 바다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다. 경상남북도는 하나의 큰 호수였다. 남해안 지역도 군데군데 호수였다. 호수가 있으니 식물이 번성했다. 공룡은 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놀았다.”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말한다.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

“중생대를 대표하는 바다 생물이 ‘암모나이트’다. 암모나이트 화석이 발견되는 지역은 중생대에 바다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암모나이트 화석이 발견된 적이 없다. 중생대 때 바다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상도와 남해안 일대에는 민물어류, 연체동물, 수생식물 등의 화석이 발견된다. 중생대 때 호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를 ‘공룡’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내세우는가?

“수도 없이 많은 공룡들이 지구 곳곳에 왔다갔다했지만, ‘공룡 발자국’ 흔적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경남 고성·전남 여수·보성 등 남해안 일대다. 스페인에도 조금씩 나오지만 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고성, 여수 등의 해안 절벽에는 켜켜이 쌓인 100여개 지층에 공룡 발자국이 들어 있다. 특히 여수에는 공룡 발자국들이 84m나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다가 공룡은 남해안에 그렇게 많은 발자국을 남겼을까?

“산과 모래, 뻘밭을 걸을 때 어디에 가장 흔적이 많이 남을까. 그때 우리나라에선 호수가 많아 그 근처 뻘밭에서 놀던 공룡·익룡들의 발자국이 남게 됐다. 일본도 당시 비슷한 환경이었지만 그 뒤로 격심한 지각 변동이 있었다.”

―공룡뼈도 아닌, 발자국 화석만으로 무엇을 말해줄 수가 있나?

“어쩌면 공룡뼈보다 발자국이 훨씬 많은 걸 말해준다. 발자국의 간격, 팬 깊이 등을 보면 그 공룡의 성격과 처한 환경 등을 추리할 수 있다. 공룡이 뛰어가는 것, 걸어가는 것, 걸어가다 멈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것이 발자국에 나와 있다. 익룡(翼龍)인 ‘해남이크누스’는 뼈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그 발자국만으로 새로운 종으로 공인받았다. 발자국으로 국제 학계에서 공인을 받은 경우는 처음이다.”

―사람도 저마다 발자국이 다르다. 발자국이 특별하다고 어떻게 새로운 종이 될 수 있을까?

“통상 익룡의 발자국은 10cm 안팎이다. 그런데 ‘해남이크누스’ 발자국은 30cm였다. 이로 미뤄 활짝 편 날개 길이는 13m가 된다. 이는 지구상에서 살았던 최대의 익룡이었다.”

―사람도 간혹 거인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종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드물게 한 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해남이크누스’는 집단으로 나왔다. 더욱이 이놈의 발가락 사이에서 물갈퀴가 발견됐다. 이 또한 새로운 것이었다.”

국내에서 발굴된 공룡 중에서 ‘부경고사우루스’도 새로운 종으로 인정된 경우다. 몸 길이 15m, 무게 20여t에 목길이만 10m가 되는 놈이었다. 경남 하동에서 발굴됐고, 학명은 발굴자 소속인 ‘부경대학’ 이름을 땄다.

―대체 공룡의 종류는 얼마나 많은가?

“공룡의 경우 크게 다른 것이 650속(屬) 발견됐다. 분류 기준은 형질의 변화다. 여기서 다시 하위분류인 종(種)으로 또 나눠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다른 종만 13개나 된다.”

그는 공룡학 박사 학위가 없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전공했다. 그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공룡’은 아직 본격적인 학문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80년대 초반 공룡뼈 하나, 공룡알 껍질, 발자국이 나온 적은 있었다. 하지만 공룡의 대중화는 훨씬 뒤에 이뤄졌다.

“90년대 초반 해남 바닷가에 학생들을 데리고 현장 학습을 했다. 그때 알 화석 한개를 발견했다. 미국의 저명한 공룡학자에게 사진 찍어 보내니, ‘공룡알’이라는 회신이 왔다. 그냥 보관해두고 있었다. 영국에 연수를 마치고 다시 그곳에 가보니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제방을 만들려는 중이었다. 전남지사에게 ‘공룡화석이 많이 나오는 곳이니 사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룡이 뭐냐’고 묻기에,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세계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고 관광상품으로 뛰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도의 지원을 받아 2년간 발굴했다. 그의 표현대로 ‘엄청나게 좋은 것들’인 공룡ㆍ익룡ㆍ새들의 발자국이 쏟아졌다. 하드루사우루스(오리주둥이 공룡)류가 남긴 1m 크기의 대형 발자국도 나왔다. 이 발굴 뒤로 그는 ‘공룡’에만 전념했다.

―어떤 지형을 외양으로만 봐서 공룡 화석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판단하는가?

“서울의 도봉산·관악산 같은 화강암 지형에는 화석이 없다. 화석은 대부분 퇴적암에만 있다. 그리고 그 지형이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 속하는가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도, 남해안 일대, 충북 영동, 경기도 시화호, 전북 전주 등이 중생대에 속한다. 강원도는 고생대 지형이다. 고생대 바다에 살았던 삼엽충 화석이 이곳에서 발견된다. 제주도, 울릉도, 경주, 포항, 백두산 등은 신생대 지형이다. 엄청난 지각 변동에 의해 융기와 함몰, 뒤틀림이 생겨 지층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1억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공룡의 자취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보통 조화가 아닌 것 같다.

“썩어 없어지지 않고, 생물을 이뤘던 것들이 자연 상태에서 광물화되는 게 화석이다. 화석으로 남으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할 것이다. 정말 자연의 신비를 느낄 때가 많다.”

―인간도 화석(化石)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뼈 조직에 인(燐)성분이 많아 광물화가 될 수 없다. 포유류는 대부분 썩어 없어진다.”

―건조한 고비사막에 죽어 누워 있어도 안 될까? 미라도 있지 않는가?

“미라처럼 내장을 다 없애고 수분을 빼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인위적인 것이다.”

―지구상에서 1억6000만년이나 번성했던 몸집 큰 공룡들이 어느 날 다 사라졌다는 것은 너무 미스터리다.

“외계 행성들의 충돌로 지구 환경이 바뀌어 멸종했을 것이라는 게 대략 정설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 서서히 사라졌을 것이다. 개체별 수명은 100~200년쯤이다. 공룡은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의 조상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300만년 전이었다.”

―이렇게 억년 단위의 ‘광대한’ 연구를 하면 실생활 숫자 개념이 떨어지지 않는가?

“간혹 100만년의 오차가 나도 ‘뭐, 100만년’ 이렇게 생각한다. 공룡 연구에는 아직 해결 안 된 게 너무나 많다. 그 시절로 가볼 수도 없고.”

뭐 바로 눈앞의 문제도 해결이 안 되는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