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정감록’ 연재도 막바지라 맺음말이 없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예언문화를 다각도로 다루려 노력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화제는 조선후기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정감록’이 등..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정감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주제를 40개 정도로 나눠 일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예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이다. 그 중엔 그냥 버려두기 아까운 것..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역사를 보면 기성세력이 예언의 힘을 빌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할 때,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예언서를 끄집어내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 나왔다.‘정감록’이 주로 권..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8)정치적 야심가들과 ‘정감록-허균과 유효립’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8)정치적 야심가들과 ‘정감록-허균과 유효립’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정감록’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 기원은 실로 오래됐다. 신라 말 풍수예언의 대가 도선국사가 고려태조의 아버지에게..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입으로 전해오던 정치적 예언 7세기 후반 문자로 드러나다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6) ’정감록’ 도꾼 문양해의 정신세계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6) ’정감록’ 도꾼 문양해의 정신세계 조선후기 ‘정감록’ 사건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정감록’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道) 꾼들의 종교성이 드러난..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정조9년(1785) 봄이었다. 그 무렵 서울에서는 천주교인 수십 명이 오늘날의 명동천주교회를 결성했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이른바 을사박해가 일어났다. 마침 전국적인 지하조직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된 또 한 번의 ‘정감록’ 사건까..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큰선비 복권 빌미로 양반·평민들 반란 꿈꿔 정조7년(1783) 1월15일, 인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정감록’을 되뇌이던 역적들을 일망타진하게 된 사실을 기뻐하며 국왕에게 축하인사를 올렸다. 난리가 토벌되면 되풀이되는 하나의 관..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3) 眞人의 四柱가 만들어지기까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3) 眞人의 四柱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이유에선가 ‘정감록’은 말해와 양해에 아주 특별한 경사가 일어나리라고 예언한다. 보다 정확히는 ‘무학비결’에 “진사(辰巳)년에 그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오년과 미년엔 즐거움이 크리라.”고 했다. 이미 태종 14년..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2) 파자법(破字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2) 파자법(破字法) 한 개의 글자를 부숴 여럿으로 나누거나, 역으로 여러 글자를 조합해 하나로 만들어 비밀스러운 뜻을 알아내는 것이 파자법이다. 한자 문화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암호 생산기술이다. 이미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귀곡자(鬼谷子)라..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정감록’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음양오행설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양과 오행은 별개다. 사전에서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 삼라만상을 음과 양이 자라나고 없어지는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음양설이다. 음양설의 영..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8) 천문은 ‘정감록’의 기둥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8) 천문은 ‘정감록’의 기둥 예언서 ‘정감록’을 한 채의 기와집에 비유하면, 정면 기둥은 풍수지리와 미륵신앙이 아닐까 한다. 얼핏 눈에 잘 띄진 않으나 집의 뒷면에도 기둥은 있는 법이다. 천문과 역법이 그에 해당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풍수와 미륵에 ..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7) ‘고구려비기’ 에서 만난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7) ‘고구려비기’ 에서 만난 ‘정감록’ ‘정감록’의 일부인 ‘감결’에는 역대 왕조의 수명을 논한 대목이 있다.“곤륜산의 내맥(來脈)이 백두산에 이르고, 그 원기가 평양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은 이미 천년의 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으로 옮겨졌다. 송..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6)미륵부처의 환생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6)미륵부처의 환생과 ‘정감록’ 이금 “나무에 곡식 열린다” 민중들 유혹 영조 19년(1743) 은진미륵불로 유명한 충남 은진의 관촉사에 세워진 사적비에 이런 구절이 있다.“은진미륵불은 국가가 태평하면 온몸에 광채가 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어린다. 그..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5) 고대의 비결 ‘고경참’은 ‘정감록’의 모태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5) 고대의 비결 ‘고경참’은 ‘정감록’의 모태 서기 10세기경이 되자 천년을 버텨온 신라 왕조도 명이 다했던지 온갖 문제가 터져 나왔다. 국정은 기강을 잃었고 각지에는 호족들이 들고 일어나 국토가 분할되었다. 생산에 종사하던 대다수 민중의 마음도 신라..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4)김위제로 소급되는 ‘정감록’의 기원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4)김위제로 소급되는 ‘정감록’의 기원 “삼각산이 명당… 도읍 정하면 반역없다” ‘정감록’은 어디서 왔을까? 그 뿌리를 한참 파다 보면, 역사의 삽질이 고려 숙종 때에 부딪힌다. 술관 김위제(金謂 )가 문제의 인물이다. 그는 풍수지리의 대가로 예언에 능..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3)묘청은 ‘정감록’의 숨은 뿌리였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3)묘청은 ‘정감록’의 숨은 뿌리였다 조선 광해군 때였다. 술관 이의신이 상소하여, 경기도 교하현(현재는 파주군 교하)으로 서울을 옮기자고 주장했다. 한양의 지기가 쇠했기 때문이라 했다. 당파싸움과 청나라 세력의 등장으로 골치아파하던 광해군은 이의신..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한번은 영조 임금이 대신들에게 “도대체 남사고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살아생전 그는 미관말직에 종사한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후 200여년 뒤 조정에서 그 학식과 인품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인물이었..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1)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1)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정감록’엔 중국인 술사 두사총(杜師聰)이 썼다는 ‘두사총비결’(杜師聰秘訣)이 포함돼 있다. 외국인의 이름을 빌린 예언서란 점에서 이채를 띤다. 자세히 알고 보면, 때로 중국 술사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적이 없지 않았..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에 관한 조선시대 일반 민중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대사는 절간에 몸을 매어두고 있었지만 국란을 당하자 창칼을 들고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그래서 국왕의 총..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9)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정감록’에 수록된 예언서의 저자들 중에도 비교적 낯선 인물이 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계 역시 조선시대엔 상당히 유명한 예언가였다. 서계가 살던 16세기는 우리 ..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8) 토정 이지함과 ‘토정가장결’ ‘토정비결’(土亭秘訣)을 굳게 믿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해가 바뀔 때마다 자기 자신의 일년 신수는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새해운수도 일일이 챙겨준다. 실은 그 친구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엔 그런 이들이 참 많다. 토정(..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7)무학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7)무학대사와 ‘정감록’ 조선왕조엔 세번의 위험 닥친다는 ‘三絶運’ 무학은 조선의 수명 연장하려 선바위서 기도 무학의 풍수·예언능력은 술사들이 부풀린것 ‘정감록’엔 이른바 삼절운(三絶運)이 예언돼 있다. 조선왕조의 운수가 세 번 끊길 위험에 처한..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6)북창 정렴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6)북창 정렴과 ‘정감록’ ‘북창비결’은 조선 명종 때 도사(道士)로 유명한 북창(北窓) 정렴(鄭 1506-1549)이 썼다고 하는 비결인데, 난해한 부분이 많다. 이 예언서는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때부터 줄곧 ‘정감록’의 일부가 ..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5) 한국 최고의 예언가 도선과 정감록 ‘정감록’엔 ‘도선비결’(道詵 訣)이 포함돼 있다. 한국 풍수지리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신라말의 선승(禪僧) 도선의 저작이란 이야기인데, 도선(827∼898)의 스승이라는 중국 당나라의 고승 일행(一行)이 한국의 미래를 예..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언제 누가 무슨 예언으로 세상을 움직였을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언자의 계보도 많이 달라졌다.20세기 초엔 손병희를 비롯한 신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정감록’을 근거로 ‘후천개벽’을 예언했다. 그에 앞서 조선 후기에는 풍수지리와..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정감록’ 때문에 민중이 울었다. 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이용해 자기 한 몸의 안락과 치부(致富)를 꾀하는 못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감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지배층의 평가는 늘 부..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2) 정감록과 천주교의 대화 정감록은 조선후기 한국에 전파된 천주교와도 만났다? 서쪽에서 들어온 새 학문이라 당시엔 서학(西學)으로 불린 천주교와 정감록의 관계에 관심을 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천주교와 정감록의.. 08 鄭監錄 산책 2015.08.11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1) 숨은 키워드‘궁궁을을’(弓弓乙乙)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1) 숨은 키워드‘궁궁을을’(弓弓乙乙) 1894년 4월27일, 전주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전봉준은 휘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특명을 내렸다. 궁을(弓乙)이란 부적을 불살라 동학농민군들에게 먹이라는 것이었다.“궁을부는 신통력이 있다. 비 오듯 쏟아지는 관군의 총탄.. 08 鄭監錄 산책 201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