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자금성(紫禁城)
최근 며칠 사이 갑작스레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북경의 온도는 뚝 떨어져 이제는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에 달하는 매서운 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영향인지 실제 체감온도는 더 추운 것 같네요. 이제야 진정한 겨울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눈이라도 내렸으면...
오늘은 올해 유난히도 맑았던 가을 어느 날, 푸른 하늘의 상쾌한 가을 내음을 만끽하며 둘러보았던 “쯔진청(紫禁城 - 자금성)” 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쯔진청(紫禁城 - 자금성)” 은 옛 명칭으로, 현재는 일반적으로 “꾸꿍(故宮 - 고궁)” 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중국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북경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금성(紫禁城)의 유래를 살펴보면, ‘자금(紫禁)’ 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紫禁星)이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말로, 1406년(明나라 永樂4年)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420년(永樂十八年)에 완공을 하게 되며, 明나라와 淸나라에 걸쳐 24명의 황제(皇帝)가 기거했던 황궁(皇宮)입니다.
자금성(紫禁城)은 정방형(正方形)의 구조로 되어 있고, 전체 면적은 약 72만 평방미터로, 자금성(紫禁城)의 성곽은 10미터의 높이로 그 길이가 약 4km에 달하고 성곽을 따라 폭 52m의 해자(垓字)가 둘러져 있습니다. 성곽의 동서남북으로 궁문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남쪽에는 오문(午門), 동쪽에는 동화문(東華門), 서쪽에는 서화문(西華門), 북쪽에는 신무문(神武門)이 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자금성(紫禁城)에는 9999.5 칸의 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0.5칸으로 계산된 방은 어떤 형태의 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잘못한 궁녀나 왕자들을 벌주던 ‘냉궁’ 이라는 설과, 또한 1만 개를 채우지 않는 여백의 미(美)라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8천 7백 여 칸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 블로그 부부가 전에 중국 노인 어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 할까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 자금성을 지키는 관리인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저녁, 관리인은 손전등을 들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득 한 켠의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더랍니다. 관리인은 의아해 하며 다가가 문틈으로 내부를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안에서는 옛날 복장을 한 궁녀들이 춤을 추고 있더랍니다. 그것도 밤 12시에... 관리인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였고, 그 다음날 직속상관도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사실 미신을 배척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 싶네요. 이 이야기를 해주신 중국 어른의 말씀에 의하면, 한(恨) 많은 궁녀들의 원혼이 자금성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하하~~
자~ 그럼 사진과 함께 자금성(紫禁城)을 둘러보겠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단체로 북경 여행을 오셨던 분이라면 기억나실 겁니다. 대부분이 천안문 광장을 통해 남문(午門 - 오문)으로 입장을 하셔서, 자금성을 관람하고 북문(神武門 - 신무문)을 통해 나오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희는 그와 반대로 북문으로 입장하여 남문으로 나오는 방향을 선택 하였답니다.
그래서 위의 사진은 자금성(紫禁城) 북문(神武門 - 신무문)의 맞은편에 위치한 “징샨꽁위엔(景山公園 - 경산공원)” 입니다.
자금성(紫禁城)을 둘러싸고 있는 “후청허(護城河 - 해자)” 입니다.
해자(垓字)의 폭은 약 52m이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금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랍니다. 자세히 보시면 오른쪽에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서는 낚시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렇게 몰래 낚시를 하고 있네요.
고궁의 평면 배치도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운데 동선(動線)에 있는 건물을 위주로 관람을 하게 됩니다. 주변으로 아직 관람객에게 개방되지 않은 별궁들이 상당히 많답니다.
예전에 저희 블로그 부부는 아는 선생님의 배려로 “꽌시(關係 - 일종의 빽입니다. 하하~)” 를 빙자해 대외 개방이 되지 않은 “쯔닝꿍(慈寧宮 - 자녕궁. 아마도 后妃가 묵었던 곳 같습니다)” 을 관람한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대외적으로 개방된 곳과는 정 반대로 건물 곳곳에 피어난 무성한 잡초들을 보고 있노라면,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과거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무색케 할 정도였답니다.
건청궁(乾淸宮) 전경.
중국의 옛 건축물을 살펴보면, 황제(皇帝)가 머무는 궁궐이나 별장은 모두 기와가 황금색(황색)으로 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옛날 아무리 권세가 높은 양반이라도 자신의 집에 황금색(황색)을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황제의 건축물(특히 지붕의 기와)에만 황금색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결국 황금색(황색)이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인 셈이지요.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황색은 과거와 달리 색정(色情)을 나타내는 야한(?)의미의 색깔로 폄하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명, “황써피엔(黃色片 - 황색편)” 은 야한(?) 영화를 나타내는 말이지요.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상반된 의미로 변해 버린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청문(乾淸門)에서 바라본 보화전(保和殿) 뒷모습.
보화전(保和殿)의 계단 가운데 새겨져 있는 조각상.
보화전(保和殿)에서 내려다본 봉선전(奉先殿)을 위시한 주변의 건축물 전경.
보화전(保和殿)의 정면 전경.
옆에 있는 건축물들은 이렇게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답니다. 강렬한 태양에 비친 황금색의 지붕이 정말 눈이 부시네요.
또 다른 한쪽에서는 벽에 칠을 하기 전에 앞서 먼저 초벌로 벽 칠을 하고 있네요.
참고로 현재 자금성(紫禁城)의 보수공사에 사용되는 페인트는 치열한 수주 경쟁을 거쳐 오랜 세월에도 색이 바래지 않고 내구성이 뛰어난 한국의 모(某) 페인트 회사의 것으로 낙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금성을 둘러싼 검붉은 색깔은 '한국의 페인트' 라고 보시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중국을 대표하고 가장 상징적인 옛 건축물에 한국의 멋이 첨가되었다고 생각해 보니,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네요.
보화전(保和殿)앞의 층층으로 장식되어 있는 난간들.
자금성(紫禁城)의 중심에 있으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태화전(太和殿) 전경.
앗, 멀리 앞쪽에 검은 복장의 대머리 무사(?)들이 출현했네요...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무사(武士)가 아니라 일본 승려(僧侶)들이었답니다. 아직 중일(中日)관계가 그다지 좋아지지는 않은 듯 싶은데, 이렇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네요.
뒤이어, 또 다른 복장을 한 노승(老僧)들이 보이네요.
다름이 아닌 저 멀리 청장고원(靑藏高原)을 넘어 오신 티벳의 라마승려들이랍니다. 연세도 지긋하신 것 같은데, 참 먼 곳까지 구경을 오셨네요. 아무튼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라마승의 뒤를 이어, 역시 티벳에서 온 귀여운 꼬마들입니다.
티벳의 전통복장을 개량한 옷을 입고 있네요. 혹 무슨 공연을 하기 위해 북경을 방문한 공연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천안문(天安門)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 “내이웨이(內衛 - 근위대)”.
북경의 중심부를 지키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수려하네요.
마지막으로 천안문(天安門)을 나서면 앞에 확 트인 천안문 광장과 광장 앞에는 중국의 오성기(五星旗)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고대 건축물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자금성(紫禁城)은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을 계기로 황궁(皇宮)의 역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한 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화려한 무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신(新) 중국의 새로운 상징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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