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창건후 천안문 앞 좌우에 관람대를 증설하고 그 앞에 화단을 만들어 놓았다.매년 봄 가을이면, 이 곳은 갖가지 꽃들로 오색찬란하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매우 벅적벅적하다.관람대 앞은 금수하로서 그위에 5개의 한백옥석 다리가 가로 놓여 있으며, 다리 난간에는 아름답고 정교한 도안과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천안문 성루 앞이 천안문 광장이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 주석은 천안문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선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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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紫禁)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 베이징의 내성(內城) 중앙에 위치한다.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하였다. 그후 명·청 시대를 통하여 궁전과 궁문을 여러 차례 보수·개축하였으며 명칭도 바뀌었다. 남북 약 1,000m, 동서 약 760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1구획으로 둘레에 도랑을 파놓았다. 성벽 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으로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東華門), 서쪽을 서화문(西華門), 북쪽은 신무문(神武門)이라 부르며 네 모퉁이에 각루(角樓)가 서 있다.
성내는 남쪽과 북쪽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으며, 남쪽은 공적(公的)인 장소의 바깥부분으로 오문에서부터 북쪽으로 태화문(太和門)·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文華殿)·무영전(武英殿) 등의 전각(殿閣)이 배치되어 있다. 그 중 태화전은 남북 약 33m, 동서 60m의 당당한 건물로서 자금성의 정전(正殿)이며, 중요한 의식장으로 사용되었다.
바깥부분, 즉 외조(外朝)의 북쪽은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내정(內廷)으로서 보화전 북쪽에 있는 건청문(乾淸門)으로부터 건청궁(乾淸宮)·교태전(交泰殿)·곤녕궁(坤寧宮) 등이 한 줄로 늘어서 있으며, 그 좌경(左京)에 많은 건물이 있다. 내정은 1925년 이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중국 문화재의 전당이 되고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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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이라는 이름은'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 과 같은 금지 구역과 같다'는 데에서 연유되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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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天安门夜景 천안문광장의 야경은 낮에 보는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주므로 저녁에 꼭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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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앞 화표 고대 중국에서는 화표를 대부분 다리, 궁전, 성벽 앞에 세워 장식과 표징으로 삼았다. 천안문 앞뒤의 화표는 옹근한 백옥석을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조형이 아름답고 정교하며, 무늬가 생동하여 화표중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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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영웅기념비 이 기념비는 1840년 이래 중화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기념비 높이 37.94m 부지 3000평방미터, 기념비 정면은 천안문을 향하고 위에 모택동이 친필로 쓴 "인민영웅은 길이 빛나라."라는 금을 도금한 여덟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은 주은래가 쓴 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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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박물관 인민대회당과 서로 대칭대는 건축물로서 총면적 6만 9000평방미터이다.박물관 내에는 170만년전의 원인유적부터 1840년 전까지의 문화재 30만점이 수장, 진열되어 있다. 그 중 대부분은 1949년 후의 고고발굴품으로서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와 에술적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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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회당 전국인민대표대회 청사로서 만인대회당,5000인 연희홀,전인대 상무위 오피스 3개 부분으로 구성, 총면적 17만여평방미터이다.정문 처마 부위에 중화인민공화국 국장이 상감되어 있다. 건축이 웅장하고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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