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여행과산행길

수통골아! 잘 있었느냐? (2003/01/12)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13. 11:28

수통골아! 잘 있었느냐?


1. 숨어있는 山
수통골! 사람들은 흔히 동학사나 갑사를 중심으로 한 계룡산은 알아도 그 언저리에 있는 것 같지도 않게 얌전히 붙어있는 해발 500여m의 야트막한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이 골짜기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막상 그 말발굽형의 계곡 속에 들어가면 처녀림같이 울창한 숲과 설악의 울산바위를 연상케 하는 청룡의 날카로운 발톱 같은 위용을 지닌 벼랑을 보고 처음에 약간 놀라고, 그 위풍당당한 위세를 앞세워 당당히 국립공원 계룡산에 포함돼 있음을 알고 그 다음 놀라고, 산자수려하되 인적이 드물어 호젓한 대다가 무료입장임을 알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계룡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작 인파로 넘쳐나는 계룡산 심장부보다는 수통골, 향적산, 갑하산, 수정봉, 고청봉등 계룡산자락 주변을 찾게 되는데 수통골은 나도 한때 엔간히도 자주 찾았던 곳이다.


2. 어떻게 너와 마주하랴?
그런데 작년에는 몇 번 못 갔다. 계족산 달리기에 푹 빠진 탓이었다. 지난 토요일에도 혼자서 계족산을 한바퀴 달렸다. 일요일 아침에는 헬스클럽에서 트레드밀을 한 시간여 굴렸더니 장딴지가 당겨온다. 이럴 때 가벼운 산행을 하면 뭉쳐진 근육이 풀어지곤 하기도 하여 아내와 단둘이 모처럼 수통골을 찾았다. 수통(水桶)골이란 지명은 계룡의 줄기에서 스며든 물이 깊은 계곡에 갇혀 있다가 여기서 터져나온대서 붙여진 이름이며 학이 내려앉은 형국인 학하동(鶴下洞)을 지나는 건천(乾川)의 발원지가 바로 이 수통골이다. 이 건천은 갑천으로 들어가 종국에는 금강과 합수(合水)한다. 수통골에는 여러개의 등정 코스가 있지만, 오늘은 [주차장 - 도덕봉(道德峰, 534m) - 백운봉(白雲峰, 536m) - 금수봉(錦繡峰, 532m) - 빈계봉(牝鷄峰, 415m) -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수통골 4시간 종주 코스를 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내 기분대로 치닫지 말고 아내의 기분에 맞춰 산보하듯이 가볍게 하기로 한다.


3. 절벽을 넘어, 능선을 가로질러
① 주차장-도덕봉(13:00-14:00)
추위가 확 풀려버려 질척질척한 오솔길에는 아직 참나무 낙엽과 솔잎이 한데 어우러져 깔려있어 밟으면 묻어나는 솔잎 내음의 상큼함이 코끝을 자극한다. 숲 속 가득한 피톤치트향이 콧구멍의 잔털을 경유하여 휠터링되어 허파꽈리에서 실핏줄을 타고 온몸에 고루 잠입하니 등정 초입부터 오감(五感)의 촉수가 꿈틀거린다. 아내도 이제 제법 단련되었나 보다. 예전에는 이러한 경사지를 오를 때마다 얼마 못 가서 쉬곤 하였는데 오늘은 쉬자는 소리를 한마디도 안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30분만에 한번씩 5분 정도 숨을 고르며 쉬어가며 가는 게 좋다고 한다. 금강산 만물상 같은 도덕봉 정상 부근의 병풍절벽 아래에 도착하니 제법 땀이 난다. 동아줄을 잡고 천애(天涯)의 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포효하는 통쾌함! 무엇에 비기리요. 앞에 보이는 금수봉의 그늘진 북사면에는 흰눈이 수북히 쌓여 겨울 절경을 자랑한다. 몇 개의 절벽 모퉁이를 돌고 나서 다 올라왔나 했더니 웬걸? 아직도 큰 바위솔 이끼가 낀 벼랑길이 절벽 사이를 돌고 돌아 끝이 안보이니 긴장감을 조금도 늦추지 못하겠다. 하지만 저 멀리 발 아래로 보이는 대전시내, 한밭대, 유성골프장등의 오밀조밀한 인공구조물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욕망의 바다가 아스라하게 펼쳐진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는 맛은 산을 오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으리라. 문득 바라보니 바위틈에 서리서리 뿌리내린 용트림하는 청솔 하나가 아름드리 근육을 자랑한다. 빈약한 나무는 잎새부터 윤기가 없게 마련인데 이 소나무는 반질반질한 잎새하며 거북등처럼 갈라진 도타운 껍질 사이로 보이는 빨그스름한 속껍질은 건강함을 직감하게 한다. 덩치도 제법 우람하여 수령 100여 년은 족히 되었음직하다. 주위의 온갖 나무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홀딱 반하여 아내에게 나 죽으면 화장하여 유골단지를 이 소나무 아래에 묻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② 도덕봉-잘록이(14:00-14:20)
도덕봉은 계룡산 황적봉에서 내려온 지맥을 관암봉, 백운봉에서 전달받아 삽재를 지나 갑하봉, 우산봉, 성재봉으로 다시 전달해주는 중간에 있는 봉우리로 산이 항시 여유롭고 푸르름을 자랑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혹자는 절벽아래 도덕골에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하고 옛날 옛적 이 일대 계곡에 산적들의 소굴이 있어 도둑골로 불려지다 도덕골로 변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 절벽아래에는 큰 동굴 하나와 작은 동굴 하나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여기서 수도를 했다고 하며 역시 도덕굴 혹은 도둑굴로 불려진다. 영험한 동굴에는 지금도 박수와 무녀들이 무시로 찾는 애니미즘의 기도처로 항상 촛불이 밝혀져 있다. 이제 정상에 다 올라왔다. 빈계산까지 도달하기까지에는 물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일단 그 중에 한 개의 정상을 밟은 것이다. 인생여정에 조그만 목표를 성취한 느낌인 듯 뿌듯함에 온몸의 피로가 싸악 가신다. 여기서부터는 전체적으로 능선길이다. 이러한 완만한 능선을 만나면 그저 팔딱팔딱 뛰어보고 싶다. 오솔길에는 졸참나무, 떡갈나무, 활나무, 고로쇠나무들이 수해(樹海)를 이루고 있다. 능선 양옆의 수통골 계곡과 동월 계곡에서 맑은 공기를 휘몰아쳐 오는 여기를 지나노라면 온갖 죄스러움으로 더럽혀진 육신이 깨끗하게 세례 되는 느낌이다. 그렇듯 호젓한 길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알려졌는지 지나는 등산객이 제법 눈에 띈다.


③ 잘록이-절벽이(14:20-14:40)
잘록이에서 수통골을 내려다보니 계곡의 깊이가 한량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도덕봉, 백운봉, 금수봉, 빈계봉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이 직벽(直壁)으로 내리꽂인 계곡에 숲이 울창하여 깊이를 측량할 수 없게 한다. 골짜기에는 까마귀들이 까악! 까악! 울며 날고 있어 지옥 중에서도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까마귀를 우리는 흉조라 하지만 북한과 일본에서는 길조로 취급한다고 한다. 왜냐면 까마귀는 죽은 동물의 시체나 해충을 먹고살기 때문이요 오히려 까치는 농작물과 익충을 해치기에 흉조라 하여 박멸대상이라니 그도 그럴 듯 하다. 이 수통골에 까마귀가 서식함은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가 유지되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즉 죽은 동물들의 사체가 있을 만큼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말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물은 삼계(三界)를 돌고 도는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삼계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유교에서는 삼계를 천, 지, 인으로 말하고 카톨릭에서는 지옥, 연옥, 천당을 말하기도 한다. 불교의 삼계는 欲界(욕계), 色界(색계), 無色界(무색계)를 말하는데 욕계는 탐욕이 넘치는 물질이 지배하는 어리석은 세계요, 색계는 욕심은 적지만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세계요, 무색계는 모든 것을 초월했지만 아직 나(我)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 정신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세계를 말한다고 한다. 다시 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도솔천등으로 나눌 수 있고 색계, 무색계도 또한 여러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 지옥 하나만 보더라도 팔대지옥(八大地獄)이라 하여 무간(無間), 대초열(大焦熱), 초열(焦熱), 대규환(大叫喚), 규환(叫喚), 중합(衆合), 흑승(黑繩), 등활지옥(等活地獄)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무간지옥(無間地獄)이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이란다. 실로 인도 사람들은 내세와 우주를 심오하게 연구한 것 같다. 풍륜과 수륜에 떠 있는 섬부주와 수미산의 세계를 상정한 인도 사람들의 우주와 내세관은 마치 입체적인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다 이승에서 선행의 공덕을 쌓으라는 의미로 그리 생각했을 게다. 까마귀가 나는 이 수통골의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며 어찌하여 이 순간에 무간지옥을 생각했단 말인가?


④ 절벽이-457봉-백운봉(14:40-15:00)
무간지옥의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혹은 팔딱팔딱 뛰어가다 보니 어느덧 백운봉 언저리다. 잠시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보니 계룡산 천황봉(845.1m)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관음봉(816m), 쌀개봉(827.8m), 천왕봉(605m), 미륵봉, 마안봉, 황적봉(664m), 치개봉으로 내려앉았다가는 일어서며 밀목재에 다다라서는 그만 주저앉았는가 하였더니 관암봉(525m)에서 다시 팔딱 일어서서는 시루봉(445m), 백운봉(536m)으로 이어져 오다가 한 가닥은 금수봉(532m), 빈계산(415m)으로, 또 한 가닥은 457봉, 도덕봉(534m), 화산, 삽재, 갑하봉(469m), 570봉, 498봉, 우산봉(574m), 성재봉(226m)으로 사열하는 병사들처럼 줄줄이 읍소하며 늘어서 있다. 항상 흰 구름이 끼어있다는 백운봉에는 흰눈이 수북히 쌓여 그 이름을 대신한다. 아내와 나누는 일상사의 이야기도 스쳐 지나는 바람소리와 대지의 숨소리에 묻혀 버린다. 그저 응! 응! 형식적인 대꾸를 할 뿐이었는데 발소리가 안들려 뒤돌아보니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아내와 다니는 이 순간만이라도 일상사에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 대자연의 박동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음을 어쩌란 말이냐? 세파에 찌든 영혼이 저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걸 어쩌란 말이냐? 아내여! 미안! 이해해 주구려.


⑤ 백운봉-금수봉(15:00-15:40)
백운(白雲)대신 백설(白雪)을 머리에 인 백운봉에서 아름다운 병풍 같은 금수봉으로 가는 길은 제법 자란 나무그늘 아래에 쌓인 눈이 녹고있는 중이어서 어지간히 미끄럽다. 이러한 길은 조심스럽게 가기보다는 발뒤꿈치나 바깥 면부터 착지하며 약간 달리면서 가는 것이 좋다. 그것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도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순조롭게 산행하는 방법이다. 아내에게 그 방법을 설명하니 과연 그렇다한다. 서운한 아내의 마음이 조금 풀린 것 같다. 배시시 웃는 입가의 웃음꽃이 대자연보다도 아름답다. 금수봉을 오르는 오르막은 지쳐버린 다릿님을 한층 고단하게 한다. 마침내 다다른 정상(頂上) 팔각정! 여기서 마시는 한 모금의 물, 한 알의 사과가 이렇게 고마운 양식일 줄이야. 여기서 사방을 조망하여보니 동측으로는 속리산과 계족산이, 남측에는 대둔산과 서대산과 구봉산이, 서측에는 천호산과 천마산과 계룡산이, 북측에는 도덕봉과 금병산등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고단함을 일시에 덜어버리게 한다. 그래서 금수봉이라고 했는가 보다.


⑥ 금수봉-삼거리(15:40-16:10)
그러한 경치는 비단에 수를 놓은 금수강산의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한편으로 북한의 주석궁 뒤에 있다는 금수산을 불현듯 생각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산봉우리마다 비슷한 이름도 참 많다. 국사봉, 시루봉, 천황봉, 장군봉등이 그렇다. 금수봉에서 흘러내린 비단자락은 종국에는 성북동삼림욕장의 칼장골을 가로질러 방동저수지에 옷자락을 담그고 있다. 방동저수지는 대청호가 생기기 전에는 대전시민의 식수원이었다. 금수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역시 급경사여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수통골을 종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기에 이르면 고단하여 장딴지가 뒤틀릴 정도로 쥐가 날 수도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한다. 누군가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에 더욱 조심하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앞에 얼음판이 보였다. 한번 밟아봐? 그 미끌미끌한 자연의 감촉을 느껴봐? 그런데 밟는 순간 우지직! 하며 나의 몸뚱이가 나동그라진다. 무릎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지만 제법 얼얼하다. 산에서는 겸손, 겸손하여야한다고 수십 번 아내에게 되뇌었건만 순간의 모험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얼음을 밟다니... 아직도 나는 내 마음을 한참 수양해야 될 것 같다.


⑦ 삼거리-빈계산(16:10-16:30)
삼거리에는 추운 날씨인데도 행상이 올라와 두부, 라면, 막걸리등을 팔고 있다. 여기서 먹어보는 맛이야 꿀맛이지만 우리는 으레 먹거리를 배낭에 싸와서 먹고, 술은 절대 먹질 않으며 의자에 잠시 쉬어 반가운 인사만 나누는 정도이니 저 행상은 우리를 구두쇠라고 비웃지는 않을까? 넘어져 얼얼한 기운이 아직 가시기도 전이어서 "이대로 수통골로 내려갈까?, 빈계산으로 갈까?"하고 고민하다가 오늘의 목표인 얼마 남지 않은 종주를 위하여 빈계산으로 방향을 잡다. 여기가 마지막 급사면으로 마음은 앞서가는데 발걸음이 무디다. 조금 가다 쉬고 또 쉬고 줄을 잡고 오른다. 수통골 종주코스 중 가장 급한 경사가 여기가 아닌가 한다. 요령 있는 사람들은 반대편에서 종주 하지만 이 급경사지에 달라붙는 맛을 아는 사람들은 땀을 훔치면서 꼭 이 코스를 택한다. 힘들여 오르니 정상에 아담한 돌탑들이 반겨준다.


⑧ 빈계산-주차장(16:30-17:00)
몇 년 전에는 여기에 돌탑이 한 개뿐이었는데 믿음이 깊으신 어느 분이 공들여 쌓고 있는지 벌써 높은 돌탑이 4개나 나란히 서있다. 익산 마니산의 돌탑 형상으로 그림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계곡 곳곳에 돌탑이 들어차 미륵 용화세상이 도래할지 모르겠다고 추측해보니 재미있다. 빈계산은 일명 암탉산이다. 마한시대 신흔국이란 부족국가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호남고속도로 주변을 따라가면서 관바위, 코끼리바위, 용바위등이 즐비한 아기자기한 능선이 방동저수지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왼쪽으로 가면 주차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잠깐 숨을 고르고 완만한 능선 길을 가볍게 달려가니 어느덧 고단한 장딴지가 풀어져 다시 뛰어가고 싶지만 아내가 쉬엄쉬엄 가잔다. 마라톤도 그렇다. 어느 한순간 더 이상 뛰지 못할 것같이 절망이 몰려올지라도 꾹 참고서 뛰면 어느덧 가벼워져 다시 뛸 수 있게 되는데 등산도 그런 것 같다.


4. 우담발화에 대한 기억
시야가 툭 트여진 곳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니 우리가 지나온 산봉우리들이 코끼리 발바닥에 박힌 발톱들처럼 말발굽형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을 향하여 힘껏 포효하니 메아리가 계곡 가득히 반향 되어 온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 명암(明暗)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지나온 봉우리들은 어깨에 한껏 힘을 주는지 붉은 근육들이 깊은 수통골의 검은 가랑이 사이로 끝없이 탐닉해 들어가 겨울의 마알간 계곡수를 뱉어내는 것도 모자라서 지나는 바람소리와 어우러져 신음소리를 토해 내고 있다. 암탉산이 울고 있었다. 능선 아래 학하리 마을 뒷편의 광수사에서 쇠북소리가 둥! 둥! 울려온다. 재작년이었던가? 저 사찰의 대웅전 불상 어깨에 삼천년만에 한번 나타난다는 우담발화(優曇鉢華)가 피었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던 적이 있다. 그걸 보려고 서울에서 친구가 일부러 내려와 안내해 주려고 갔다가 나도 덤으로 보았는데 우담발화라는 게 무슨 커다란 연등 같은 꽃이 아니고 돋보기로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의 실잠자리 알 같은 미세한 꽃이었다. 처음에 법당을 청소하던 아줌마가 좁쌀 알보다도 작은 형체를 발견했다는데 과연 그 아줌마는 시력이 얼마나 좋기에 컴컴한 법당 안에서 천지개벽할 때만 나타난다는 미세한 우담발화를 발견해 내었단 말인가? 그렇게 의심하는 나는 과연 사악한 존재인가? 속세에 물든 구제하기 어려운 탕아란 말인가? 하필 하산 길에 그런 생각이 들다니 정녕 다음 주에도 다시 산을 찾아 마음을 닦아야한다는 임탉산의 계시란 말인가? 어쨌거나 그러한 계시가 없더라도 산행은 계속될 것이다.


배달9200/개천5601/단기4336/서기2003/1/12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덧붙임)
불교에서는 모든 생물은 삼계(三界)를 돌고 도는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欲界(욕계), 色界(색계), 無色界(무색계)의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째로 음욕, 식욕, 재욕 같은 탐욕이 많아 정신이 흐리고 거칠며,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어리석은 중생이 사는 세계를 欲界(욕계)라 하며,

둘째로 욕심은 적지만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밝은 세계를 色界(색계)라고 하는데 여기서 色(색)은 물질이라는 뜻이며,

셋째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지만

아직 나(我)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 정신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그 중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無色界(무색계)라고 한다고 한다.

 

이것을 흔히 땅에서 허공으로 올라가면서 형성된 유형적인 계층으로 말하지만,

실은 입체적인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욕계(欲界)를 다시 구분하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6천 : 사천왕천, 도리천(33개의 천당이 있음),

수야마천, 도솔천(모든 부처님이 성도하기 전에 머무는 곳),

화락천, 타화자재천)으로 나누며,

 

색계(色界)는

초선천(범천,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

이선천(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삼선천(소정천, 무량정천, 변정천),

사선천(무운천, 복생천, 광과천),

정범지(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 화음천, 대자재천)로 나누며,

 

무색계(無色界, 4천)는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로 나눈다니

 

로마 카톨릭에서

지옥(地獄)과 연옥(煉獄)과 천당(天堂)으로 간단하게 구분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데

불교에서 그렇게 깊게 삼계를 생각하고 나눈 것은 다 선행(善行)을 쌓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중에 지옥(Naraka, Niraya, 那落迦, 奈落, 不樂, 可厭, 苦具, 無有)은

그 의처(依處)가 지하이기 때문에 이같이 부른다.

현세에 악업을 지은 자가 사후에 이곳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이 지옥에는

근본지옥(根本地獄), 근변지옥(近邊地獄), 고독지옥(孤獨地獄)등이 있다.

지옥 가운데 팔대지옥(八大地獄)은

무간(無間), 대초열(大焦熱), 초열(焦熱), 대규환(大叫喚), 규환(叫喚), 중합(衆合), 흑승(黑繩), 등활지옥(等活地獄)이 있다.

그 중에서 무간지옥(無間地獄)이 고통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