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여행과산행길

북악 하늘길 환주(環走) ① (2012/11/23)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17. 14:57
북악 하늘길 환주(環走) ① (1) 하늘길 하늘에 길이 있다? 그랬다. 지난번 [삼각-형제-북악] 종주시 하늘에 길이 있음을 보았기에 환주(環走)하려 계획. (2) 여정 1구간 : 삼청각-호경암-하늘마루, 2.5km, 오르내림 반복, 60분 2구간 : 하늘마루-팔각정(1km)-창의문, 3.7km, 평탄한 길, 60분 3구간 : 창의문-북악산-숙정문-삼청각, 3.8km, 오르내림 반복, 120분 (3) 쉼 모든 인생사엔 쉼이 있다. 쉼 기회에 충분히 쉬어야한다. 100m 뛰듯이 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미래를 꿈꾸다 현실이란 괴물에 막힌 아이같은 천재 안철수가 잠적하며 쉼을 갖듯... 1구간 : 삼청각-홍련사입구-숙정문안내소-삼청각쉼터-수고해다리- 성북천발원지-팔각정/호경암갈림길-서마루-솔바람교-옹달샘- 계곡마루-남마루-호경암-하늘전망대-북까페-하늘교-하늘마루 (4) 일 사람에겐 일이 있어야... 일도 하나의 놀이, 인생은 놀이 직업도 놀이의 일종 그러므로 잘 논다는 것은 곧 일을 잘 한다는 의미. 2구간 : 하늘마루-조망데크-삼청각갈림길-북악팔각정-조망정자- 북악스카이2교-백사실갈림길-산모퉁이갈림길-창의문 (5) 보람 쉼과 일을 거친 보람은, 보람중 최고의 보람은 부모님 잘 모시고 남을 위한 일을 했을 때 온다는 것을 자각. 3구간 : 창의문-쉼터1-쉼터2-백악산(342m)-청운대(293m)- 1.21사태소나무-곡장-촛대바위-숙정문-홍련사-삼청각 2012/11/23(금) 을지로입구역 1번출구에서 삼청각가는 셔틀버스타고 이동 11:50-15:50, 4시간소요, 10km, 나 홀로, 천천히 배달9209/개천5910/단기4345/서기2012/11/23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1) 삼청각 셔틀버스에서 북악을 바라보며... 1-2) 삼청각을 나서며... 1-3) 홍련사에서 우측 숙정문 안내소 방향 1-4) 노무현 전대통령의 흔적이 남아있는 들머리 1-5) 오늘 환주계획(삼청각-호경암-하늘마루-팔각정-창의문-백악-숙정문-삼청각, 10km) 1-5) 말바위쉼터, 숙정문, 호경암 가는 3거리 1-6) 北岳, 白岳, 拱極山, 面岳 1-7) 삼청각 쉼터 가는 중 1-8) 삼청각 쉼터에서 1-9) 성북천발원지에서 1-10) 서마루로 가는 길 1-11) 서마루에서 내려다 본 올라온 길 1-12) 서마루 1-13) 서마루->솔바람교->계곡마루 가는 길 1-14) 계곡마루 옹달샘과 산국 1-15) 계곡마루 1-16) 계곡마루-> 남마루 진행 1-17) 남마루 조망(북악, 삼청각, 팔각정) 1-18) 詩와 함께 가는 남마루-> 호경암 가는 길 1-19) 호경암 1-20) 호경암에서 돼지그림 발견 1-21) 호경암을 내려오며 1-22) 하늘 전망대 1-23) 그리운 삼각산, 그리고 보현봉->형제봉(형봉,아우봉 2개로 보임)->하늘길 1-24) 유명한 북까페(200권 자유열람) 1-25) 하늘교, 하늘마루 

 


 (A Thousand Kisses Deep/ Chris Botti)

 

[40년만에 시민품에 돌아본 북악산 답사코스] 서울도심속 무릉도원 있었네 국민일보 | 입력 2007.04.15 17:46 1968년 1·21사태 후 폐쇄된 북악산(옛 백악산)을 처음 오르는 감회는 남달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일 북악산 전면개방 행사에서 "서울 명륜동에 살 때 (서울)성벽을 걷다가 막히는 바람에 무척 답답했다"고 했지만 대통령보다 먼저 명륜동에 살았던 주민으로서 성곽 통제는 무척 갑갑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1960년대만 해도 북악산 통제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군부대 영내를 제외하곤 자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어 북악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 가재를 잡곤 했다. 성곽과 북악산은 아이들의 전쟁놀이터였다. 하지만 1972년 유신헌법이 통과되고 청와대 보안이 강화되면서 무장 군인들에게 '서바이벌 놀이터'를 빼앗기고 말았다. 12일 오전 혜화문에서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을 따라 북악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혜화문 근처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 친구집은 1992년 혜화문 복원과 함께 흔적도 없어졌다. 혜화문에서 서울과학고(구 보성고)·경신고 뒤가 성곽인데 70년대까지만 해도 부서진 성을 축대 삼아 집을 지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가지정 명승 북악산 산행은 지난해 1차 개방한 성북동 홍련사, 그리고 이번에 전면 개방된 명륜동 와룡공원과 창의문(자하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명승과 사적을 제대로 보려면 혜화문에서부터 출발해 창의문으로 향해야 한다. 그 반대도 좋다. 경신고 뒤쪽 성곽만 따라가면 되니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와룡공원에 이르면 낙산과 동대문,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성 아래 숲 길을 가게 되는데 벚꽃과 진달래가 반긴다. 20분 정도 걸으면 다시 성안에 닿고 신원확인 절차가 이뤄지는 말바위전망대다. 개방 구간중 문화재 탐사의 백미는 숙정문과 곡장(曲墻)이다. 서울 성곽의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은 예를 받든다는 숭례문(崇禮門·남대문)과 대비해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의미다. 험한 산 위에 별 쓸모도 없을 것 같은 이 문이 있는 것은 사대문이라는 격식을 갖추기 위해서다. 가뭄이 들면 숭례문을 닫고 이 문을 열어 기우제를 지냈다.숙정문은 문루 없이 오랫동안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으로 남아 있었으나 1976년 성곽을 보수하면서 복원했다. 홍예 위 두개의 돌출물이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빗물을 받아내기 위한 누조(漏槽)이다. 문 오른쪽으로 태조 세종 숙종 때 각기 축조한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후대에 이를수록 틈새 없이 견 고해지는 것이 특징. 문루에 오르면 아래로 삼청각, 위로 팔각정이 보인다. 숙정문에서 700m쯤 떨어진 곡장은 성벽 위에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곽중 일부를 자연지세에 맞추어 돌출시킨 것을 말한다. 적의 화살이나 화포 공격을 피하기 위한 여장(女墻)과 총쏘는 구멍인 원·근총안이 각도를 달리해 아래로 향하고 있다. 곡장에서 바라본 북한산은 신록을 준비하고 있다. 19세기말 프랑스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뎅이 찍은 북한산 사진은 땔감을 못구한 민중들이 민둥산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1세기가 지난 후 나무가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백악산 정상 밑에 다다르면 청운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경복궁을 화재나 재앙으로부터 지켜준다는 상서로운 해태바위가 산중턱에 있는 것이 보인다. 축조 당시 공사 구역과 책임자, 공사 일시 등을 표기한 성벽 돌도 청운대 부근에 있다. 수백년 조선소나무 바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1시간30분여 만에 닿은 정상. '백악산 해발 342m' 표석이 눈에 띈다. 한쪽으로는 '북괴의 공중위협으로부터 청와대를 방호하기 위해 79년부터 운영했다'는 발칸진지 자리 표석이 예사 장소가 아님을 알린다. 발아래 오른쪽으로는 겸재 정선이 육십년지기 친구의 쾌차를 기원하며 그렸다는 '인왕제색도'가 펼쳐지고 앞으로는 관악산, 왼쪽으로는 아차산이 흐린 날씨 탓에 희미한 윤곽만 나타냈다. 고도(古都) 서울이 한 눈에 잡혔다. 북악산 문화재해설사 유선영씨는 "서울성곽은 대대적으로 재정비를 했던 숙종 30년(1704년)을 제외하곤 부분적 보수만 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며 "태종 세종 숙종 시기 축조 기법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숙정문 옆 성벽이 가장 매력적인 장소"라고 설명했다. 결혼 이후 한동안 신도시에 살았다. 외지로 떠돌 때도 부모가 계신 성곽마을 명륜동에 수시로 들러야 했기에 떠났다는 느낌은 없었다. 신도시와 고도의 차이를 한 예만 들라면 '산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도는 산책길을 주고 사색케 한다. 개방된 4.3km 북악산 서울성곽 산책은 자연과 어우러진 이상세계나 다름없는 겸재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이다. 전정희 기자 jjhjeon@kmib.co.kr 성북구 북악하늘길, 하늘교 개통 기사입력 2010.03.02 12:24 아시아경제 성북구 지난달 27일 성북구민걷기대회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와 오동근린공원 산책로서 열려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주민 건강 증진을 위한 성북구민걷기대회가 지난달 27일 오전 7시 새마을운동 성북구지회와 월곡2동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각각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와 오동근린공원 산책로에서 열렸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 정상인 하늘마루와 북악하늘길을 잇는 ‘하늘교’가 임시 개통돼 걷기대회의 의미를 더했다. 주민들은 폭 5m, 길이 26m인 하늘교를 이용해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 하늘마루에서 일명 김신조루트로 불리는 북악하늘길 제2산책로로 안전하게 건넜다. 하늘교는 서울성곽을 상징하는 석교(石橋)로 북악산길 2차선 도로 위를 지나는데 이 다리를 통해 등산객들은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와 북악하늘길 제1∼3 산책로를 안전하게 오갈 수 있다. 하늘교 개통은 또 외사산인 북한산과 내사산인 북악산을 잇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한편 성북구는 풍부한 주변 녹지와 공원, 산책로 등 장점을 살려 매월 넷째 주 토요일마다 구민걷기대회를 열고 있으며 다음 걷기대회는 오는 27일 오전 7시 지역 내 8곳에서 동시에 개최될 예정이다. 서울 북악 하늘길 ‘김신조 루트’ 2010-03-09 경향신문 발길 닿는 곳마다 ‘환상 조망’…산소 가득 ‘도심 속 오아시스’ 서울에서 봄나들이 갈 만한 곳을 고민하던 중 서울 성북구가 ‘북악하늘길’에 3산책로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개방한 950m 길이의 2산책로에 이어 추가로 640m의 산책로를 연 것. 2·3 산책로는 일명 ‘김신조 루트’다. 1968년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할 때 온 군사 통로. 북한 개성에서 시작해 임진강을 거쳐 파평산, 삼봉산, 우이령, 북악산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우이령과 북악산 자락의 김신조 루트가 사건 이후 처음 개방됐다. 서울 북악산 ‘김신조 루트’의 압권은 북악산을 파노라마처럼 둘러싼 서울 도심과 부도심의 풍광이다. 인왕산 산책로는 수도 없이 다녔는데, 북악하늘길은 처음이다. 지난해 금기의 땅에 가고픈 마음이 생겼지만 신분증 지참 같은 번거로운 과정과 군사 통제 지역이란 점이 걸렸다. 성북구청에 문의했더니 ‘김신조 루트’엔 신분증이고 뭐고 필요 없단다. 출발 장소를 성균관대 후문 근처 와룡공원으로 잡았다. 여기서 말바위쉼터로 올라가 숙정문안내소를 거쳐 성북천발원지(지도 참조)에서 ‘김신조 루트’를 밟을 요량이었다. 여행길엔 이런저런 일이 있게 마련. 일요일(7일) 오전 말바위쉼터에 이르자 안내소 문이 잠겨 있다. 입장 시간은 오전 10시인데, 30분 일찍 도착한 것. 기다리던 중 수십명이 우르르 패찰과 기념품을 받으며 무사 통과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실 직원들이라고 한다. 몇몇 시민들이 ‘규정과 원칙’이 뭐냐며 항의한다. 사무소 직원은 “VIP들은 특별 탐방을 신청하면 (시간외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교훈은 2가지. 서울성곽길 탐방엔 신분증 지참이 필수라는 것, 또 VIP들이 오는 시간은 피해야 한다는 것. 아니면 VIP가 되거나. 4월부터는 개방 시간이 오전 9시부터니 조금 일찍 가도 좋을 듯하다. 숙정문안내소에 패찰을 반납하고 성북천발원지로 가 본격 탐방에 들어갔다. ‘김신조 루트’의 압권은 조망인 것 같다. 2산책로의 서마루-계곡마루-남마루-하늘전망대나 3산책로의 동마루, 숲속다리 전망대에선 남산, 청계산, 관악산뿐만 아니라 평창동, 북악스카이웨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마다 서울의 경관이 제각각 매력을 뿜어낸다. 3산책로 끝 부분에 새로 만든 ‘숲길다리’ 위에서 사진도 찍고 북악스카이웨이를 살펴볼 만도 하다. 서울의 ‘비무장지대’라 불릴 정도로 숲이 잘 보존됐다. 도심과 확연히 다른 맑은 공기가 코끝으로 느껴진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도 많아 아쉬웠는데, 완연한 봄이 오면 꼭 다시 와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전반적으로 북한산 등산로보다는 덜 가파르고, 인왕산 산책로보다는 오르막 내리막이 많다. 단점은 중간 중간 군사작전용으로 만든 좁다란 시멘트 계단이 많다는 점. 한두 시간 걷다 보니 무릎에 약간 무리가 오는 듯했다. 성북구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늘전망대에서 ‘바른걷기 강습’을 한다. 강사들이 ‘비탈길을 오르내릴 때에도 항상 발뒤꿈치부터 착지’ ‘두 무릎을 쭉 펴고 걷기’ 같은 유의사항을 담은 안내문을 나눠줬다. 남마루와 동마루 사이 호경암은 68년 총격전이 벌어졌던 곳. 50여개의 탄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북괴의 잔악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으로 표지를 세웠다는 안내문이 나온다. 군대 시절 기억을 되살리려 올라온 건 아니었건만, 여러 군사시설이나 벙커니 시멘트 계단을 보며 옛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숲길엔 ‘모더니즘 계열 시’로 무작정 외운,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 시비도 서 있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고교 졸업하고 나서는 처음 읽었다. 시인은 요즘의 재개발을 예견한 듯하다. 그래서 문명 비판이고, 모더니즘이란 걸 십수 년만에야 깨달으며 산을 내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