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2004 유럽 여행 시조[41-43] 떼주강 –41. 에두아르드 7세 공원
대서양 굽어보며 내달려간 탐험정신
여기에 올라오니 그 마음이 보일 듯
가야지! 꿈을 찾아서 수평선 저 너머로
42. 금의 거리
세계의 절반의 땅 지배했던 황금영화
퇴색한 십팔 세기 건물들로 남았지만
이제는 금의 거리여! 행복으로 넘쳐라.
43. 4.25다리
범선이 드나들던 떼주강 하늘높이
펠리컨 나래 편 듯 걸려있는 철교아래
빨간색 해안열차가 지렁이처럼 기어간다.
배달9201/개천5902/단기4337/서기2004/4/20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에두아두르 공원
1-1. 에두아두르 공원 전경
1-2. 에두아르드 공원을 뒤로 하고...
2. 떼주강과 425 다리
2-1. 425 다리
2-2. 강 건너 편의 예수상(못 가봄)
3. 아주다 궁전(가 보지 못함)4. 리스보아의 광장들(이 광장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방사선 도시)
4-1. 로시우 광장(동페드루4세 광장)
13세기부터 리스본의 중심지로 공식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행해졌고 종교재판도 열렸다.
원래 이름은 동페드루 4세 광장인데 로시우로 더 많이 불린다.
4-2. 코메르시우 광장, 리스본에서 가장 큰 광장이자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4-3.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
17c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
중앙에 높이 30cm 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5. 금의 거리 풍경
5-1. 도자기 그림타일 가게 풍경
5-2. 해안 철로
5-3. 리스본의 최대 쇼핑 중심지인 아우구스타 거리. 우리의 명동거리를
연상케 하는 곳으로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점, 명품 숍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덧붙임)
(1)
호텔 조식 후 이동버스에 오르니
우리를 인도할 버스 운전 기사도 여성이다.
안내를 맡은 동포 여성이 간단히 포르투갈을 소개한다.
15-16세기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그들은
이웃 스페인과 같은 혈통이면서도
그들을 한 때 식민지배한 그들에 대하여 정서적으로 혐오하여
스페인 어투로 응답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니
포르투갈 사람을 대할 때 조심할 일이다.
국민소득은 13,000불로 EU 15국 중 13위로 하위이지만
해양제국으로서의 우월적 자존심 속에서
과거를 음미하며 대단한 자긍심으로 살아간단다.
마치 삼도(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유사하다하겠다.
그리고 간단한 포르투갈 인사법을 알려준다.
아침인사 bom dia (봉지아)
점심인사 boa tarde (보아 따르지)
저녁인사 boa noite (보아 노이찌)
만나서 반갑습니다 prazer em conhecer (쁘라제르 엥 꽁예쎄르)
대단히 감사합니다 muito obrigado(a) (무이뚜 오브리가두)
죄송합니다 desculpe-me, com licenca (데스꿀삐미, 꽁 리쎈싸)
좋은 하루 되세요 Tenha um bom dia (뗑냐 웅 봉 지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m que posso lhe ajudar? (뗑냐 웅 봉 지아)
좋아요 bom (m), boa (f) (봉, 보아)
안녕히 가세요 adeus, tchau (아데우쉬, 챠우)
천만에(드나가)
여성기사에게 “봉디아”라고 인사하니
작은 키의 여성은 이내 미소로 화답한다.
리스보아에는 현재 우리 교민 120여분이 가족처럼 우애 있게 살아간단다.
16세기부터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와 임진왜란 참전 등
포르투갈인들이 한국에 체류했던 결과로
사분(Sabao 비누),
타바코(Tabaco 담배),
빵(Pao),
빌로드, 고무, 레자등과 같은 단어들이
한국말의 어휘에 남게 되었을 뿐더러
식민지 브라질에서 가져 온 고추를 전래하여
우리 고유의 고추장을 개발하게 하였고,
삼도(일본)에는 조총을 전래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무기를 갖게하여
마침내 조선을 전쟁터로 변하게 하였으니
우리에게 병과 약을 동시에 준 그들이고 보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겠다.
[天朝壯士餞別圖천조장사전별도]
1599년 4월 임진왜란에 원병(援兵)으로 왔던 명군(明軍)이 철수할 때,
명장 형개(邢介)가 자신들이 철군하는 모습을 그려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다.
그 결과 화원(畵員) 김수운(金水雲)이 그린 전별도를 받았는데, 형개(邢介)는
이 그림을 다시 자신의 연락관인 김대현(金大賢)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전한다.
명군의 대규모 행렬이 다채롭게 묘사된 그림이다. 당시 해귀(海鬼)라고 불렸던
소수의 포르투갈 용병들이 명군(明軍)과 함께 참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좌측 하단에 수레를 탄 포르투갈 병사들의 모습이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2)
리스보아 신시가지의 중심거리인
리베르다데 大路 주변은 한가하다.
대서양의 갯내조차 여유롭게 풍겨오는 것 같은데
1902년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리스보아 방문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에두아르두 7세 공원(Parque Eduardo VII)에서 내려다보노라니
드넓은 떼주강 하구로 황금을 가득 실은 범선들이 밀려들어오는 것만 같다.
리스보아 시내와 강폭 14km의 테주(Tejo)江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공원 정상에는 남성을 상징하는 쌍둥이 무혈혁명기념탑이 있고
우리나라의 다보탑과 비슷한 조형물이 있었다.
시내 쪽으로 경사지게 이어진 기하학적 문양의 화단이 특징이며
화단의 끝부분에 퐁발후작의 동상이 위치해 있다.
(3)
이어 로시우 광장을 지난다.
로시오 광장 중앙에 브라질 초대총독 페드루 4세의 동상이 서있어
원래 "동 페드루 4세 광장"으로 불렸으나
현재 "로시오 광장"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는데
13세기부터 리스보아의 중심지로 종교재판 등
거의 모든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으로
이 일대에 大航海 시대에 노획해온 금, 은, 보석 등을 거래하던
중심지구인 金, 銀의 거리가 있고,
지금도 은행, 관청 등이 밀집해 있는 리스보아 최대의 쇼핑지역이란다.
(4)
금의 거리를 지나니
이내 드넓은 떼주강 하구가 바다처럼 다가오는데
거대한 이중 철교가 하늘에 걸려있다.
위로는 일반 차량이
아래로는 기차가 다닐 수 있는 구조로 건설된 다리이다.
이 425다리의 통행량이 워낙 많아
현재는 상류에 총 연장 17km의 “바스코다가마 다리”를 신설하였다 한다.
원래는 “살라자르 다리”라고 불려 졌는데
40여년 계속된 살라자르의 철권독재에 대항하여
젊은 군인들이 일으킨 1974년 4.25 혁명을 기념하여
“4.25다리”로 불린다는데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붉은 카네이션으로 상징되는
포르투갈 민주화의 날이 4월 25일이다.
그 날을 깃점으로 포르투갈은
진정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으니
우리로 말하면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독재가 무너진 후 일어난
1980년 5.18민주화 운동 정도에 비견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들은 무혈 혁명이었지만
우리는 유혈 혁명이었던 점이 다른 것 같다.
그 4월 25일 이후 포르투갈에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하였고
그때 까지도 남아 있던 식민지 국가들은 점점 독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파란 하늘 높이 걸려있는 다리가
곧 비상(飛翔)하는 포르투갈의 민주주의 같아 보인다.
그 다리 아래로 해안 철로가 떼주강을 따라 놓여 있는데
성냥갑 같은 협궤열차가 지렁이 기어가듯 지나간다.
말할 것 없이 아름다운 풍경인데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 10곳 중 하나로 선정되었단다.
해안열차를 한 번 타보고 싶었는데
탈 수는 없었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5)
차창 밖으로 광장이 지나가고
고대적 양식을 지닌 건물들이 현대식 건물들과 간혹 엉켜있는데
길거리의 인도는 어디든 예의 그 자잘한 돌타일이 깔려있고
어떤 곳은 보수를 위해 쓰다 남은 돌타일 더미가 놓여 있다.
살펴보니 돌타일은 우리의 여느 타일처럼 납작하지 않고 뿌리가 깊다.
즉 옛 우리의 옛 성곽에 쌓는 석축이
바닥에 깔려 시공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6)
우리의 안방 오락이 되어버린 화투는
16세기에 일본과 교류가 있었던 포르투갈 상인들이
카르타(carta)라는 일종의 딱지놀이인 서양 카드를
삼도(일본)에 들여온 것이 가루다이고,
이를 한국화한 것이 화투라는데
카드의 포르투갈 말인 카르타에서 가루다란 말이 생겼음으로 미루어
화투의 뿌리는 서양 카드인 트럼프임을 알 수 있다.
일본학자들은 화투를 두고
일본의 외래문화 수용의 표본으로 무척 자랑해온 터였다.
아무튼 그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려 두리번거려 보았는데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아래 그림에 보듯이 딱지 비슷한 도자기 타일 문양만 보았다.
이 참에 화투에 대하여 알아보자.
일본인들은 그 카르타를 모방하여
하나후다(꽃딱지라는 뜻)를 만들었는데,
그게 개화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 화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서양 카드는 중국에서 전래 했다는 설이 있다.
혹자는 한국의 투전이 그 원조라는 것이니
화투는 우리나라가 원조이고 역수입되었다고 해야 할까?
유럽에 카드가 들어온 것은
1300년경으로 이탈리아 중부도시 쉐나에서였다고 한다.
지나(중국)에 갔던 수도사들에 의해서 들어와
중세 수도원들에 무척 유행, 병폐가 심했던지
"악마가 발명한 인간 타락 도구"라고 매도한 글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지나(중국)의 카드가 56장으로 3조(組)로 돼있던 것을
기사(騎士)의 상징인 하트, 귀족의 상징인 스페이드,
상인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농민의 상징인 클로버 4조(組)로 늘린 것이 다를 뿐이란다.
지나의 황제가 후궁들을 불러놓고 놀았던
이 카드의 뿌리에 대해 추적한 세 명의 학자가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P 아널드는 그의 저서 "도박백과"에서
최초로 카드놀이를 시작한 것은 한국이며,
화살 그림을 그린 갸름한 카드,
곧 투전(鬪箋)이 시조라고 그 구조적 특징을 들어 고증했다.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의 유희를 조사한 브루클린 박물관장 S 크린의 보고서에도
한국의 전통 투전을 서양 카드의 뿌리로 추정했으며,
B 아네스도 이 세상 최초의 카드는 한국의 투전이 아니면
지나의 화폐, 인도의 장기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 세 학자들의 고증이나 추정이 맞는다면,
한국의 투전이 700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며 놀이를 퍼뜨리고 원점회귀를 한 것이 되며,
화투의 그림을 주체화시킨다는 것은
돌면서 때 묻은 문화의 때를 벗기는 문화작업이랄 수 있다.
투전놀이 방법에도 ‘동동’ ‘찐붕어’ ‘소몰이’ ‘엿광메’ 등 많다는데,
이를 찾아 현대인의 생리에 맞게 개조하면
투전 종주국의 위상을 한껏 드날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상은 이규태씨 고찰)
그런 관점에서라도 치매방지에 독특한 효과가 있다는 화투를
타부시할 필요는 없다하겠는데
이번 여행에 화투 몇 목 챙겨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갈걸 그랬나보다.
배달9201/개천5902/단기4337/서기2004/04/20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