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2004 유럽 여행 시조[47-50] 수도원, 조르헤성 –47. 제로니모스 수도원
고딕의 성당 안에 가득 찬 해양문물은
이대로 천년도 갈 무언(無言)의 예술인듯
동서(東西)가 하나로 만난 수도원의 묵시록(默示錄)!
48. 수도원 앞의 1837빵집
수백 년 세월 흘러 주인은 바뀌었지만
옛집이 살아있어 문지방 넘어보니
풍기는 고소한 맛깔 입가에 침이 흘러
49. 성 조르헤
한눈에 리스보아 조망하는 언덕위에
로마가 주춧돌 놓고 아랍이 성채 쌓아
마침내 나타난 주인 엔리크가 깃발 꽂다.
50. 화도(FADO)頌
거칠게 몰아치는 대서양 된바람에
가늘게 흐느끼며 허리 휜 풀잎소리
움츠린 야생화 같은 곱디고운 맵시여!
배달9201/개천5902/단기4337/서기2004/4/20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마누엘(Manueline) 양식 :
마누엘 양식은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져 포르투갈 내에서만 성행했던 건축 양식으로 포르투갈 인들이
창안해낸 고유의 건축 양식. 주앙 1세 때 엔리크 왕자에 의한 포르투갈은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
으로 국가적 자부심과 민족적 자신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은 포르투갈 고유의 것을 찾
거나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건축에 있어서도 건축가들은 더 이상 유럽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고
딕 양식이 아닌 새로운 건축 양식을 고민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포르투갈의 고유 건축 양식은 아비스
왕조의 5대 국왕이었던 마누엘 1세 때 가장 크게 성행했기 때문에, 16세기 포르투갈 건축 양식을 마
누엘 양식이라고 불렀다. 마누엘 양식은 기본 골격은 고딕 양식으로 하되 전형적인 고딕 양식에서 탈
피하여 해외의 다른 건축 양식 몇 가지 특징들을 적절히 합친 양식이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마누엘
1세 때 설립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마누엘 양식의 특징은 분수나 파도를 상징하는 창문양, 수도원
내부의 조개를 비롯한 어패류, 물고기, 해양생물 모양의 장식들이 고딕 양식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1. 제로니무스 수도원
1-1. 제로니무스 수도원 外觀(그날 임페리얼 광장에선 기마부대의 425혁명기념일 예행연습이 있었다.)
1-2. 1502년 착공된 마누엘양식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중정의 모습
1-3. 벨랭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누엘 양식의 성당 내부 모습
2. 1837빵집
1837년 수도승들로부터 시작된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빵집
3. 조르헤城
3-1. 1775년 대지진에도 견딘 알파마지구의 골목을 거슬러 올라가다 내려다 본 리스보아 풍광
3-2. 드디어 멀리 조르헤 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3-3. 5C서고트족이 최초 구축, 12C초 개축한 조르헤에 다가가본 모습
3-4. 조르헤 성에서(깃발의 오른쪽이 뽕나무인데 엄청컸다.)
<<<조르헤 성내의 콜크나무>>>
<<<콜크 채취작업>>>
3-5. 조르헤에서 조망한 리스보아(떼주강은 바다였고 거기를 가로지르는 425다리)
3-6. 조르헤성에서 일행과 함께
4. 엑스포공원과 바스코다가마 다리
4-1. 엑스포공원의 해양수족관과 강안의 관광용 리프트카
4-2. 전장 17.5km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라는 바스코다가마다리를 배경으로...
4-3. 퐁발광장
덧붙임)
(1)
비좁은 국토 속에서
120만의 사람들이 살아가던
포르투갈인 들의 관점으로 야만의 땅을 지배했던
그들만의 자존(自尊)을 해양발견 기념비 앞에서 느껴보며
해안철로를 가로질러 박물관 옆의 고색창연한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수도원 앞의 임페리얼 광장에
웬 기마병들이 빼곡히 도열하여 있고
군악대가 장엄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전통을 자랑하는 포르투갈 용병이
우리를 환영하는가 하였는데 그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4.25무혈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식 연습이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 20일이다.
4월 25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관광객뿐이 아니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구경하느라 인산인해다.
카이제르 수염을 기른 말을 탄 포르투갈 군인들을 보니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그들의 기상이 느껴진다.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은
규모면에서 보면 밀라노 두오모나
바티칸 대성당에 비할 바 못되지만
그 내용을 보니 화려하고 강성했던
15~16세기 포르투갈의 부(富)의 정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15세기 유럽 각국이 영토 분쟁과 왕위 쟁탈에 연연할 때
포르투갈은 눈을 밖으로 돌려
바다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주앙 1세의 아들인
엔리케 왕자는 거센 파도와 싸우며
신천지를 발견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여
대항해 시대를 열게 했고
결국에는 리스보아를
유럽에서 가장 강대한 도시로 성장시켰다.
그 후 마누엘 1세(1469∼1521)는
해외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富를 바탕으로
훗날의 1755년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리스보아 최대 자랑거리인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건설했다고 한다.
장엄하고 화려한 이 수도원은
16세기 초 엔리케 왕자의 위업과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일주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는데,
사실은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제로니모스 성인을 기리는 수도원이라 한다.
프랑스계 건축가 보와타크가 설계하여
1502년 착공된 것으로
후기 고딕양식을 기조로 하면서 마누엘 양식을 가미해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도록 만들어 졌다.
남문 위쪽 벽에는
엔리케 항해왕의 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제로니모스의 생애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남문을 통해 들어가니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었다.
입구에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의 조각 등 성인들의 실물크기 조각이 있었고,
건물 외벽은 온통 조각으로 치장하였는데
큰 4개의 기둥(각주)만으로 대지진을 이겨낸 것은
지금도 해석되지 않는
건축구조학적으로 불가사의한 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25m의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대항해시대의 작품답게 해양 문물과 관련 있는 모티브로 장식되어 있었다.
입구 오른쪽의 주제단의 장식 역시 일품이다.
주제단 반대쪽 상단은 성가대실인데
남미산 나무로 화려한 조각을 하였다.
미사에 사용되는 모든 물건도 옛것 그대로 사용 중이다.
그 아래 두 개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오른쪽이 회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의 관이고,
왼쪽은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의 활약상을 서사시로 읊은
국민시인 루이스 데 카몽에스의 관이란다.
성가대실에는 마누엘 1세와 주앙 3세의 관도 모셔져 있었다.
바스코 다 가마와 카몽에스 관 사이를 지나면
서문으로 나오게 되는데 본래 정문이었지만
19세기에 건축된 문 앞의 건물에 가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한 변의 길이가 55m인 정사각형 회랑으로 둘러싸인 뜰이 나온다.
나와 보니 석회암을 사용한 회랑 기둥에 새겨진
정밀한 조각과 정원이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아프리카에서 실종된
영특한 세바스찬 왕을 흑인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고,
왕실의 문장도 기존의 사자보다 큰 동물인 코끼리로 바뀌어 표현되어 있다.
열대식물과 바다짐승,
그리고 이국적인 동양의 특산물을 조각한 회랑기둥과
정교하고 환상적인 정원 공간의 배치는 미의 극치라 할 만하다.
이곳은 콜럼버스가 항해 출발 전에
기도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지금도 모든 항해자들의 필수 기도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1983년에 벨렝탑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다.
수도원을 나오니
일행이 옛적 수사(修士)들이 운영했다는
빵집으로 가보자고 한다.
수도원 왼쪽으로 몇 발자국을 가니
골목에 허름한 집이 있었는데
1837년도부터 지금까지
옛적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입구부터 인산인해인데 고소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 한다.
안채에 이르니 여기에도 사람들이 가득히 앉아 있었는데
한참을 기다리니
우리의 밤빵과 비슷한 크기의 빵이 나왔는데
그 맛이 참으로 오묘했다.
수백 년의 연륜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고소하다.
입가심으로 간장종지 크기의 커피 잔에
커피가 나왔는데 소태맛이다.
이곳 사람들은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아 물어보니
여러 종류의 커피가 있는데
이 집 빵에는 이런 커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2)
빵집을 나와
리스본 구시가지 알파마(Alfama)지역의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하여 시내전경을 관망할 수 있다는
죠르헤성(Castelo de Sao Jorge)에 가보기로 하였다.
언덕 위의 마을에 이르러
마을 성당 앞에 버스를 주차하고
미로 같은 언덕길을 허위허위 걸어서 올라갔다.
가파른 언덕길 양쪽으로 온통 오래된 살림집들이
에스파냐 톨레도의 집들처럼 닥지닥지 엉겨 붙어 있다.
붉은 기와를 올린 지붕 아래 하얀 벽을 가진 3~5층 정도의 건물들이었는데
빨래와 화분이 어지러이 놓인
베란다가 그대로 드러난 서민들의 집이다.
굽이쳐 흐르는 몇 개의 언덕,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좁은 골목길,
높다란 돌계단을 따라 지어진 흰 벽돌집들,
그리고 발코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집집마다 걸린 빨래 행렬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단 6초 만에 아름다운 리스보아를 잿더미로 바꿔버린
1775년의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이곳 알파마 지구는
조르헤성과 함께 그대로 살아남아 오늘에 전한단다.
이곳은 로마시대부터 왕과 귀족들의 별장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오늘날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살림집들을 감상하며
거의 올라갔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길이 좁아졌다.
도로 확장 공사 중 옛 유적이 발굴되어 공사는 중단되고
임시로 비닐보양을 해놓은 모습이 보인다.
그제야 왜 길이 더 이상 확장하지 못하고 좁아졌는데 짐작이 갔다.
아직도 완전 발굴되지 않은
조르헤성은 5세기경 서고트족이 구축하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 교도들이 개축했는데
그들이 물러간 뒤에야 포르투갈인들의 진정한 성이 된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성의 대부분은
12세기 초에 개축한 것이라 하며
방금 올라오면서 본 발굴 유적이
서코트인이나 무어인이 세운 성채의 초석인 듯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성문으로 들어가려는데
흑인 하나가 기타를 치며 구성진 흑인영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그가 부른 음반들이 놓여있었는데
벗어놓은 모자 안에는 동전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그의 음성이 제법 가창력이 있어 보여
그의 면전에서 서서 한참을 들어 주었다.
내가 관심 있어 하자 그가 미소를 보내며
목청을 더욱 돋워 열창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로를 빠져나와 드디어 언덕에 오르니
정상에 조르헤 성이 버티고 있었다.
돌로 쌓은 이 성은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일부는 부서져 내리기도 하고
이끼로 덮이기도 하는 등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성곽 구석구석에 대포가 배치되어 떼주강을 노려보고 있었다.
흡사 강화도의 초지진이나 광성보에 오른 느낌이다.
거기서 본 대포와 이곳의 대포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똑같은 모습이었다.
정상에는 올리브나무와
콜크나무 군락이 자생하고 있어서
직접 칼로 콜크나무의 피막을 벗겨보니 의외로 표피가 두터웠다.
그러고 보니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유럽최초로 만들었고
또한 포도주 마개인 콜크의 유럽 최대산지라던가?
난생처음 콜크나무를 보았는데
생김새는 올리브나무와 비슷했고
그 껍질은 우리의 굴참나무와 유사한 두꺼운 껍질이 특징이었다.
드디어 성문을 통과하여 보루에 올라서니
떼주강 하구의 풍광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발아래로는 하얀 벽과 오렌지 빛 지붕들이 덮인 집들이 개미집 같고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떼주강에는
동력선들이 하얀 포말을 뿜으며 어디론가 내달려가고 있었다.
전장 2천278미터인 4.25 다리(Ponte 25 de Abril)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다만 아쉽게도 여기서는 유럽 최장(最長)이라는
바스코 다 가마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성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미로처럼 엉켜있어 방어하기에 적당했고
왕의 방,
왕비의 방,
마굿간,
하인들의 방등이 따로 있었다.
보루에 올라서니 커다란 뽕나무가 솟아올라 손에 잡힐 듯했다.
유럽의 뽕나무는 이렇게 크게 자라는가하고 일행이 감탄했다.
(3)
조르헤 성을 내려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바스코 다 가마 다리”를 보러 가기로 했다.
시내 중심부에서 떼주강 상류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98년 개최된 리스보아 엑스포 전시장이 있는 엑스포공원 근처에 있었다.
공원에는 현대적이고 독특한 건물이나 볼거리가 많았는데
바스코 다 가마 타워의 멋진 전망과
해양수족관, 나라별 전시장,
기발한 아이디어의 조형물 등이 공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테주강 위에 건설된 17.5km에 이르는 유럽에서 제일 긴 이 다리는
EU에서 시설비를 투자하여 건립해 놓고
통행료 수입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한다.
(4)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안내인은 화도(Fado, 운명, 숙명이란 뜻)를 틀어준다.
리스보아 민중의 삶을 노래한 민요로서
언제 들어도 구슬프고 서정적이다.
우리의 판소리,
스페인의 플라멩고,
이태리의 깐소네와 비유되는
가슴을 울리는 선율인 포르투갈의 화도는 도대체 뭘까?
이 노래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다듬어진 것은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기원에 대해서는
뱃사람의 노래,
죄수의 노래,
어떤 종류의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 갖가지 설이 있다는데,
원래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 브라질로 전해진 음악이
18세기 선원들에 의해 포르투갈로 전래되었고,
다시 이태리의 오페라 멜로디와 결합되어
포르투갈인의 한과 설움을 대변하는
대중음악으로 정착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하겠다.
그러나 음악 역사학적으로 보아
거의 확실한 것은
1800년 전후에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풍이면서도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modinha》와
경쾌한 춤노래 《룬두:lund》가
이 노래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트리스테(fado triste)와 메노(fado menor)라 불리는
고전적인 곡조는 가슴 속 깊이 와 닿는 애조를 띤다.
2박자, 4박자의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며
조성(調性)은 단조가 많고, 장, 단조 모두 화성구조(和聲構造)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미묘한 싱커페이션(당김음)과 섬세한 가락으로 되어 있어
가수의 노래솜씨에 따라 매우 풍부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가장 인기 있는 화디스타(화도 가수)는
지난 1999년 숨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 한다.
포루투갈만의 독특한 전통 민요인
화도를 이동하는 버스에서 듣고 있노라니
내가 마치 떠나버린 사랑과 잃어버린 부귀영화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가족과 떨어져 이역만리에 와있다는 생각에
애절한 선율에 가슴이 요동치며
정과 상념에 휩싸여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답지 않게 너무 감성적으로 변한 것 같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이국의 풍경에 눈길을 주어야만 하였다.
화도는 라이브 클럽에서 생음악으로 들어야한다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짧은 일정 탓에
이동 중인 차안에서 테이프로 듣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5)
조르헤 성을 나온 버스는
리스보아 시내를 내달렸다.
이제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 불렀다는
신트라로 가야하는데
안내인이 차창 밖으로 스치는 고적들에 대하여 숨차게 설명했다.
먼저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 공원이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오전에 본 에두아르두 7세 공원 정상부의
도로 건너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국민가수인 아마리아 로드리게스(1920~1999)를 기리는 공원으로
입구에 뚱뚱한 母子像이 있었다.
국민가수로 추앙받은 그녀가 사망하였을 때
포르투갈 수상은
3일간의 國葬을 선포하여 애도하였고
“포르투갈의 목소리”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TV 주말연속극 주제곡으로 쓰인
“maldicao(어두운 숙명)”과 “Barco Negro(검은 돛배)”등이 알려져 있다.
다음은 퐁발(후작)광장(Praca Marpuess de Pombal)이 지나갔다.
퐁발광장은 리베르다데 대로의 기점이 되는 광장으로
리스보아 도시의 축이 되는 시내교통의 중심 로터리 역할을 한다고 한다.
18C 후반 포르투갈의 사회개혁을 단행한 정치가이자,
대지진(1755.11. 1) 후 리스보아 재건 계획을 수립하는 등
많은 분야에서 개혁을 단행하여 근대 포르투갈의 기초를 구축한
퐁발 후작의 동상이 공원 중앙에 서 있었다.
다음은 리베르다데 거리(Avenida de Liberdade)가 차창을 스쳤다.
리스본 최대의 번화가로 퐁발 후작 광장에서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까지 길이 1.2㎞의 거리 양옆에
호텔, 항공사, 외국회사, 극장, 카페, 은행 등이 밀집해 있었는데
“포르투갈의 샹젤리제”라고 불리기도 하며,
도로 중앙에 가로수와 벤치가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위로부터 로드리게스 공원,
에두아르드 공원,
퐁발후작광장,
포르투갈의 샹젤리제인 리베르다데 거리(Avenida de Liberdade),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
코메르시우광장 등이 떼주강 쪽으로 일직선으로 형성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배달9201/개천5902/단기4337/서기2004/4/20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